# 226
226화
광존은 자신만큼 큰 도를 앞으로 내밀더니 그대로 튀어나갔다.
“와하하하! 어디 내 칼을 받아봐라!”
옥선진인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날렸다.
“이노오오옴!”
콰콰쾅!
둘이 부딪치자 주변에 있던 자들이 모두 물러섰다.
커다란 굉음이 울리며 무당산 전체가 뒤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능선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청운은 피식 웃음 지었다.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나를 보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명백한 실수였다. 생각해보면 요희가 그토록 난리를 친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미안하다고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남자 대 남자로서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팟!
청운이 몸을 날렸다.
무공을 익힐 때 처음부터 외팔이였다면 어색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양팔인 상태에서 무공을 익혔다가 한 팔이 사라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먼저 몸의 균형 감각이 사라지고, 잘린 팔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덕분에 그동안 익힌 무공을 처음부터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몸의 균형을 잡고 무공을 변형시킬 때까지 많은 시일이 필요한 법. 그런 면에서 옥선진인은 타고난 무제였다.
한쪽 팔이 잘린 지 고작 반년이 흘렀을 뿐인데 벌써 예전의 무위를 되찾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다.
챙! 채앵 챙챙챙!
거대한 도를 나뭇가지 휘두르듯이 가볍게 휘두르는 광존의 무공은 명불허전이었다.
자신의 몸만 한 거대한 도를 정교하게 휘두르는 모습은 가히 도왕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엄청났다.
그에 맞서는 옥선진인 역시 그가 왜 차기 천하제일검이었는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싸움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게 느껴질 만큼 격렬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공방이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크윽.”
서걱!
옥선진인의 왼쪽 옆구리가 제법 깊이 베어졌다.
싸움에 심취하다 보니 한쪽 팔이 잘린 것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렸다. 덕분에 쉽게 막을 수 있는 공격을 막지 못했다.
옥선진인은 옆구리를 움켜쥔 채 뒤로 물러섰다.
싸움을 지켜보던 무당 제자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했다.
장문인이라도 계셨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장문인은 무림맹으로 정예와 함께 떠난 상태였다.
광존이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도사 놈들 겁먹은 표정을 보니 막혔던 가슴이 뚫리는구나!”
무당파 놈들이 어떻게 기습을 알아차렸는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다 죽이면 될 일.”
비릿한 웃음과 함께 광존이 물러선 옥선진인 방향으로 성큼 발을 옮겼다.
그때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가운뎃다리는 괜찮나?”
광존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는 소리가 들린 허공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놈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잘린 거야? 바지 좀 내려 봐. 얼마나 잘렸는지 보게.”
“이, 이런 개새끼가……!”
우르르르릉!
광존이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
청운은 시종일관 미안하다는 투로 말하며 광존을 상대했다.
“조심해. 그나마 남은 것도 잘릴라.”
“으아아아아!”
광존의 비명 같은 괴성이 무당산을 가득 메웠다.
* * *
양양의 서쪽에 자리한 융중산은 천하제일뇌라 불렸던 제갈공명이 은거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삼국이 통일된 후 제갈공명의 후손들이 숨어들어 왔다는 전설도 있다.
그 융중산 기슭에 자리한 제갈세가 주변에 여느 때와 달리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한낮인데도 하늘을 가릴 만큼 짙은 안개가 햇빛을 가린 채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제갈세가 안쪽에 자리한 높다란 전각.
오 층으로 된 그 전각의 오층에서 십여 명의 인물이 짙게 낀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염을 가지런하게 기른 중년의 사내가 중앙에 오연하게 서 있는 한 중년인을 향해서 공손하게 말했다.
“가주, 이대로 지켜보고만 계실 것입니까?”
“…….”
그의 말을 들었음에도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유문은 아무 말 없이 안개를 바라볼 뿐이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예의 중년인이 다시 말했다.
“가주, 이대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놈들이 벌써 팔 진 중 삼 진을 뚫었습니다.”
중년인의 말을 듣기는 했는지 제갈유문의 눈이 안개 낀 곳 중 한 곳을 바라보았다.
짙은 안개가 요동치며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현재 제갈세가 외부는 금문팔진도라는 천고의 절진이 펼쳐진 상태였다.
제갈공명이 만들었다는 팔진도는 하늘도 가둔다는 최고의 병진이다. 이 팔진도를 방어에 특화시킨 진법이 금문팔진도다.
제갈세가가 융중산에 자리 잡은 지 천 년이 넘는 동안 딱 세 번 발동했던 진법.
그런데 오늘, 그 금문팔진도가 발동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금문팔진도를 펼친 지 일각 동안 팔 문 중 삼 문이 뚫렸다는 것이다.
“허허허, 내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군.”
열릴 것 같지 않던 제갈유문의 입이 열렸다.
선조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금문팔진도가 무자비하게 뚫리고 있었다.
적은 마치 진법을 알고 있기라도 하는지 거침이 없었다.
‘역시 그의 말이 맞았어.’
제갈유문은 얼마 전에 받은 서찰을 떠올렸다.
이청운이 보낸 것이었는데, 내용은 단순했다.
-금문팔진도를 너무 믿지 마십시오. 어쩌면 놈들이 파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신호를 보내주십시오.
“젊은 친구가 대단해.”
청운에게서 온 뜬금없는 서찰에 제갈유문운 의아했다.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상했다.
금문팔진도가 어떤 진법인데 뚫린단 말인가?
하지만 숙부 제갈신기의 당부가 있었기에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적을 맞을 준비를 해놓았다.
그런데 청운의 말대로 거침없이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더 미룰 수는 없겠군.’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지금도 걱정이 되는지 주위에서 난리였다.
“가주! 어서 제자들을 투입해서 놈들을 쳐야 합니다.”
“맞습니다. 당장 친위팔군을 투입해서 진을 보강하고 놈들과 맞서야 합니다.”
친위팔군은 금문팔진도 속에서 적을 상대하는 제갈세가의 비밀타격대다. 처음부터 적을 상대했어야 하는데 청운의 서찰을 받고 뒤로 물렸었다.
‘어쩌면 이청운 덕분에 제자들 목숨을 살린 것인지도 모르겠군.’
만일 금문팔진도와 함께 투입했다면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놈들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가주! 사 진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소. 어서 결단을 내려주시오!”
원로인 제갈신천이 다그치듯 소리쳤다. 그는 친위팔군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제갈유문이 제갈신천을 보며 말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뭘 더 기다리란 말씀이시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돌이킬 수 없소이다.”
“알고 있습니다.”
제갈유문은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아래쪽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오른손에 쥐고 있는 백우선을 휘저었다.
오층 전의 아래에서 대기하던 장한이 허리를 숙인 후에 품속에서 무언가 기다란 원통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하늘 위로 향한 후 원통의 뒷부분을 돌렸다.
철컥!
슈우웅! 펑!
짜자자자작!
하늘 위로 솟구친 폭죽이 폭발하며 붉은 연기가 하늘 가득 퍼졌다.
오층 전각 위에 있던 이들은 그제야 가주가 준비해 놓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편, 제갈세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 명이 서 있었다.
백청청과 백야대주, 그리고 혈황이었다.
저 멀리 제갈세가를 향해서 목을 죽 빼고 있던 백청청이 펄쩍 뛰며 좋아했다.
“할아버지! 신호dP요. 신호!”
“허허, 좀 더 빨리 올 줄 알았는데 좀 늦었구나.”
백야대주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곁에 있던 혈황은 무엇이 불만인지 한마디 툭 던지며 몸을 날렸다.
“쯧쯧, 제갈세가도 예전 같지 않군. 먼저 갑니다.”
혈황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육지비행술.
땅에서 뜬 상태로 이동하는 극상의 경공술을 아무렇지 않게 펼쳤다.
그 모습을 본 백야대주는 의아한 눈길을 주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놈이란 말이야.”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백청청이 말했다.
“할아버지. 가가께서 그러는데요, 저 공자님 약간 이상하대요. 그러니 무슨 말을 하건 그냥 흘려들으라고 했어요.”
“그래? 허허, 뭐 그 녀석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았지만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늦었구나. 서두르도록 하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에서 희끗한 무언가가 솟구쳤다.
곁에 몸을 숨기고 있던 백야였다.
그때 안개 속에서 굉음과 비명이 들렸다.
“아이 참. 저 먼저 가요!”
팟!
백청청도 더 기다리지 못하고 신형을 날렸다. 그 모습에 백야대주가 껄껄 웃으며 뒤따라갔다.
-사대호신위는 청청이를 보호해라.
-존명!
백야대주를 지켜야 하는 호신위가 백청청을 보호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금문팔진도의 사문을 뚫고 오 진을 파훼하기 위해 움직이던 노룡회 무사들은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뭐야? 어떻게 된 것이지?”
“젠장! 어떤 놈인지 찾아!”
누군가가 소리 없이 다가와서 급소를 찌르고 사라졌다. 그놈이 사라진 곳에는 노룡회 무사의 시체만 남았다.
“으윽!”
“컥!”
안개 속에서 다가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습격자의 움직임에 벌써 수십이 쓰러졌다.
한쪽에서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렸다.
“백야다!”
“놈들을 막아!”
검은 복면을 쓰고 있던 흑야대 대원들은 백야를 알아보고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백야의 무인들은 나타날 때보다 더 빠르게 안개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르릉!
팡팡팡!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늘 위에서 거대한 손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조심해! 백가장 계집년이다!”
“겁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
백야 대원과 달리, 백청청은 안개를 이용해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보무도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더니 커다란 손바닥을 형상화시켜서 사정없이 휘둘렀다.
노룡회 지휘관들은 이를 악물었다.
“덤벼라! 검둥이들아!”
겁 없이 입을 터는 백청청의 모습이 달갑지 않았다.
“당장 저년을 잡아!”
“팔다리 한둘 없어도 된다! 목숨만 붙여놓아라!”
노룡회 무인들의 눈이 돌아갔다.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백청청에게 몰려갔다.
그러나 백청청은 귀찮은 파리 떼를 쫓듯이 쌍장을 휘두를 뿐이었다.
우르르르릉!
팡! 파바방!
피떡이 되어 나뒹굴면서도, 노룡회 무사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실력도 녹녹치 않았다.
그들은 백청청의 공격을 막아내며 빈틈을 노렸다.
스팟!
검은 복면을 한 자가 그림자처럼 접근하더니 그대로 백청청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그대로 당한다면 허리가 두 동강 나거나 큰 부상을 당할 판이었다.
그때, 백청청 곁에 스르륵 나타난 수신호위가 흑야대 대원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챙!
맑은 쇳소리와 더불어 불꽃 튀는 공방이 벌어졌다.
“흥! 그럴 줄 알았다! 물러서지 말고 덮쳐!”
수신호위의 등장을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노룡회와 흑야는 멈추지 않고 백청청을 압박했다.
“치! 쉽지 않네.”
백청청은 숨 쉴 틈 없이 적의 공격을 피했다.
일대일이라면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물고 늘어지면서 숫자로 압박하자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이 그녀를 향해 뻗었다.
우르르릉!
콰콰콰쾅!
고막을 뒤흔드는 천둥소리.
백청청 주변에 모여든 적이 폭발과 함께 뒤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