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223화
제갈신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림맹의 지속된 공격에, 흩어져 있던 놈들이 둘로 뭉쳤다. 그중 하나를 추적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문제는 놈들 개개인의 무공이 무림맹 무사들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분산된 무림맹 무사들이 놈들의 집중 공격에 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짜증이 난 제갈신우는 월평을 닦달했다.
“찾아!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내!”
“예, 알겠습니다.”
월평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제갈신우는 방을 나가는 월평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신기를 따르던 놈들 중에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놈이 하나 없어.”
그로부터 사흘이 흐른 늦은 오후, 사라졌던 노룡회 고수들로 보이는 자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그들이 향하는 방향이 문제였다.
“뭐라! 놈들이 숭산으로 향하고 있다고?”
“예, 총군사. 놈들이 수십 명씩 조를 이루어서 이동하는데, 아무래도 숭산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사오십 명씩 이루어진 무리가 스물이 넘는다고 했다. 합하면 천 명이 넘는 인원. 노룡회 놈들이 분명해 보였다.
제갈신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회의를 소집해!”
“예!”
소식을 전한 월평은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제갈신우 역시 서둘러 방을 나섰다.
노룡회 무사들이 소림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무림맹이 발칵 뒤집혔다.
소림사의 제자들이 먼저 무림맹을 나서고, 맹주전에서는 긴급 장로회의가 벌어졌다.
장로회의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성이 오갔다.
“당장 소림을 구원할 병력을 보내야 합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무얼 한 것입니까?”
“지금 그걸 따질 때입니까? 당장 무사를 파견해야지요!”
“맞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소림이 무너지면 그다음 목표는 이곳이 될 겁니다.”
곧 맹주 양조생이 결정을 내렸다.
“총군사는 지금 즉시 무사들을 소집하시오!”
“예, 맹주!”
제갈신우가 힘차게 대답하고는 항상 곁에 붙어서 함께 다니는 제갈민에게 지시를 내렸다.
무림맹에서 소림까지는 멀지 않았다. 빠르게 경공을 펼치면 한나절 거리였다.
지금이라도 나서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한편, 총군사에서 물러나 쉬고 있던 제갈신기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냐?”
지나가던 무사 하나가 포권을 취하고는 말했다.
“사라졌던 노룡회 무사들이 소림사를 공격하기 위해 몰려가고 있다 합니다. 그래서 지금 소림사를 지원할 지원 무사들을 소집하고 있습니다.”
“뭐야?”
제갈신기는 무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군사부로 달려갔다.
마침 제갈신우가 회의장에서 돌아오던 참이었다.
“형님, 말을 들었습니다. 소림을 돕기 위해 지원 무사를 보내신다고요?”
“그래. 보내기로 했다. 긴급 지시를 내렸으니 아마 지금쯤 모여들고 있을 게야.”
“얼마나 보내실 겁니까?”
제갈신우는 제갈신기가 다그치듯 묻자 이마를 찌푸렸다.
“적의 숫자가 일천이다. 그럼 우리도 최소한 일천은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노룡회를 상대하기 위해 추가로 무사 이천을 내보냈다. 이제 남은 인원은 삼천 정도. 그중 일천을 소림사에 보내면 이천 명만 남는다.
“먼저 나가 있는 지원대에게 소림으로 향하라는 연락은 했습니까?”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연락을 해도 제때 도착하기 힘들 텐데. 그리고 너는 관여하지 마라. 총군사는 네가 아니라 나니까.”
제갈신우는 싸늘하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제갈신기가 따라서 들어가려고 했지만 제갈신우가 손을 저었다.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제갈신기는 할 수 없이 돌아섰다.
가슴이 답답했지만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았다.
‘분명 뭔가 있다. 사라졌던 자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더니 소림을 친다?’
정파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소림사다. 노룡회에도 공격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추적조를 따돌리고 사라졌던 자들이 대놓고 나타났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수상해.’
그때 문득 얼마 전에 받은 서신이 생각났다.
‘아! 맞아, 청운이 보낸 전서가 있지.’
그동안 이청운과 은밀하게 소식을 주고받았다.
때로는 닷새에 한번 올 때도 있고, 때로는 열흘 만에 올 때도 있었다.
남들이 보면 시시콜콜 근황이나 묻는 이야기 같지만, 그 내면에는 중요한 정보가 숨겨져 있었다.
어쩌면 그 정보 속에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단서가 있을지도 몰랐다.
제갈신기는 급히 처소로 달려갔다.
* * *
노룡회가 소림사를 향해 이동한다는 소식은 청운에게도 전해졌다.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한 청운은 고개를 들고 이마를 좁혔다.
‘소림이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긴 한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도 제갈신기와 비슷한 의문이 들었다.
얼마든지 움직임을 숨길 수 있었던 자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감 때문에?
그럴 리 없다. 자신감 때문이라면 처음부터 모습을 감추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청운은 이마를 찌푸린 채, 보고서를 가져온 자를 바라보았다.
삼십대의 평범해 보이는 자. 그는 백야대 십조 중 백야대주가 그에게 붙여준 삼조의 조장으로, 이름 대신 백야삼호로 불렸다.
“다른 보고는 없었습니까? 그들 외에 또 다른 자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든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든가…….”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사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걸 봤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청운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사들이 서쪽으로 갔다?”
“예, 공자. 인원은 이삼십 명 정도라고 합니다.”
많은 숫자는 아니다.
그 정도로는 중소문파도 공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그자들은 누굴까? 그자들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하지만 그 정도 정보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조원들에게 그들을 좀 더 주시하라고 전해주십시오.”
“예, 공자.”
두 번째 보고가 들어온 것은 반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이번에는 사도맹의 정보원 쪽을 통해 들어온 정보였다.
노룡회 무사로 의심되는 무사 삼십여 명이 장강을 건너 삼문협 근처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 한 곳에서만 발견된 게 아니었다. 그러한 숫자의 무사가 모두 세 곳에서 포착되었다.
그들 모두 서쪽으로 향했다고 한다.
발견된 자들만 백여 명.
청운은 지도를 펴놓고 그들이 나타났다는 곳을 표시했다. 그러고는 서쪽을 바라보았다.
정체불명의 무사와 노룡회 무사들이 나타난 곳에서 서쪽으로 가면 장안이 나온다.
그리고 장안 남쪽에는 종남이 있고, 중간에는 화산이 있다.
“설마……?”
청운의 시선이 화산에 꽂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발견된 자들의 숫자는 백여 명에 불과했다. 그 정도 전력으로는 화산을 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가 아니라면?
몇 배의 인원이 숨어서 이동한다면?
청운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노룡회가 소림사를 공격하려는 시점에 화산 쪽으로 이동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더구나 노룡회 무사들 외에 다른 자들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만약 그들이 천황교에 속한 다른 세력이거나, 아니면 천황교의 정예라면?
머릿속에서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계속 들려왔다.
지도에서 고개를 든 청운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붓을 들어 종이에 몇 자 적었다.
그러고는 백야삼호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화산파 장문인 처소 기둥에 이것을 붙여 놓으시오.”
백야삼호는 적어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펼쳐진 채 준 것이어서 내용을 읽는 건 어렵지 않았다.
종이에 적힌 글자는 몇 자 되지 않았다.
[며칠 내로 화산을 피로 씻어 신혈교에 대한 복수를 할 것이다! 노룡회.]
평소 표정이 거의 없던 백야삼호의 얼굴에 웃음이 옅게 떠올랐다.
하지만 곧 무심하게 표정을 지우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공자.”
백야삼호는 내심 감탄하며 돌아섰다.
청운이 그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그래도 별 움직임이 없다 싶으면… 두어 사람 다리뼈를 부러뜨려도 괜찮소.”
“물론 범인은 노룡회로 해야겠지요?”
무뚝뚝하기만 하던 백야삼호도 제법 박자를 맞출 줄 알았다.
청운은 씩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서둘러라! 늦기 전에 소림에 도착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속력을 더 내라!”
무림맹을 출발한 무인들은 쉬지도 않고 달렸다.
시간상 노룡회가 이미 숭산으로 올라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 소림사가 당하지 않을 거라 믿지만, 상대는 신비세력의 주구인 노룡회다.
무림맹마저 피로 물들인 놈들.
놈들에게 습격을 당한다면 아무리 소림사라 해도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저 산길만 돌아가면 숭산 초입입니다!”
선두에서 달리던 자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마침내 숭산이 보이는 산맥의 초입에 들어섰다. 여기서 이각만 더 가면 숭산에 들어설 수 있다.
무림맹 무인들을 지휘하는 남궁세가의 장로 남궁청이 소리쳐서 지시를 내렸다.
“저 앞을 돌아가서 숭산에 오르기 전에 잠시 쉬도록 하라!”
지친 상태로 적과 마주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소림사의 상황이 위급하다 해도 최소한 숨은 고른 다음에 올라가야 했다.
잠시 후, 넓은 공터가 나왔다.
무림맹 무사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들끓는 기를 가라앉혔다.
“일각 후 출발할 것이다. 멸사대는 이쪽으로 올라가고… 의기대은 이쪽….”
남궁청은 지원 무사들을 이끄는 각 조직의 수장들과 함께 간단한 회의를 진행했다.
그런데 그때 무언가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살을 찌푸린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눈이 커진 그가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암기다! 조심해!”
공터의 오른쪽은 제법 높은 절벽이었다. 그런데 그 절벽 위에서 시커먼 점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슈슈슈슈슉!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을 받은 무림맹 무사들은 나무와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모두가 몸을 숨기기에는 엄폐물보다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주위에 엄폐물이 없는 자들은 황급히 무기를 빼들고 방어했다.
따다다당!
티디딩!
퍼버버벅!
새카맣게 떨어지던 암기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무림맹 무사들 중에는 암기를 튕겨낼 정도의 고수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처 방어하지 못한 무사들의 몸에 암기가 박히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휴식을 취하던 공터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남궁청이 악을 쓰듯 명령을 내렸다.
“곧 암기가 떨어질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텨라!”
그 와중에도 암기가 계속 날아들었다.
쇠로 만든 암기만이 아니었다. 작은 돌조각도 공력이 실리니 나무들이 퍽퍽!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장로! 위치가 너무 불리합니다. 일단 저쪽으로 피하는 게 어떻겠습니다!”
멸사대의 간부 하나가 소리쳐서 의견을 말했다.
남궁청은 그가 가리킨 남쪽을 바라보았다.
오십여 장만 달려가면 앞과 좌우가 탁 트여서 적이 매복할 만한 곳이 없었다. 당연히 암기도 그곳까지는 날아오지 못할 듯했다.
문제는 숭산으로 가는 길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었다.
“좋아! 그럼 뒤쪽에 있는 사람들부터 빠져나가라! 부상자들 챙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