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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221화 (221/257)

# 221

221화

“황제께서 간악한 사교인 천황교의 술수에 당한 걸 몰랐단 말입니까? 왕야, 그대도 그 일에 일조한 걸로 알거늘!”

태친왕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나, 나는 오호대장군의 요구를 들어주었을 뿐…….”

청운은 냉랭히 코웃음 쳤다.

“흥! 그 오호대장군이 천황교라는 사교의 주구라는 걸 정녕 몰랐단 말입니까!”

“그, 그게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싸울 생각은 있습니까?”

태친왕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오호대장군이 무능한 황제의 권한을 축소시켜야 한다는 말에 찬성했을 뿐이다.

대신 각 지역에 있는 왕야의 권한을 확대시킨다고 했었는데, 최근에 와서야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내게 무슨 힘이 있어서 싸우겠는가?”

태친왕의 몸이 축 처졌다.

눈빛도 공허하게 비었다.

청운은 그런 태친왕을 노려보며 다그쳤다.

“싸우는 건 우리가 싸울 겁니다. 왕야께선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우리가 황제의 적이 아니라는 걸 확인만 시켜주면 됩니다. 하시겠습니까?”

“정말… 그렇게만 해도 되겠는가?”

“아시잖습니까? 이런 싸움에서는 명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태친왕의 눈에 다시 힘이 실렸다.

입술을 질끈 씹은 그가 말했다.

“좋다. 놈들을 황궁에서 쫓아낼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걸 내놓겠노라.”

청운은 속으로 안도했다.

그가 온 목적은 태친왕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것만이 실낱같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명분이 없으면 싸움조차 할 수 없는 곳이 황궁이었다.

만약 태친왕이 거부했다면, 승산은 삼 할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태친왕이 나서겠다고 했으니 승산이 오 할은 되었다.

‘이제 한판 승부를 겨룰 발판은 마련했군.’

* * *

객잔으로 돌아가자, 백야대주가 방에서 나와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왜 나와 계십니까?”

“네놈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럼 안에서 기다리시지…….”

“서경왕부에 갔다 온 거냐?”

노인네가 눈치는 귀신이다.

“예, 태친왕을 만나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천황교 놈들이 황궁을 뒤집어 놓은 것 때문에?”

“예, 어르신.”

“황궁과 무림은 그동안 소 닭 보듯이 관여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힘이 생기니 욕심이 난 것이겠지요.”

“미친놈.”

백야대주가 짜증난 투로 말했다. 물론 천황교주를 향해 한 말이었다.

“그런데 왜 저를 기다리신 겁니까?”

“그야 청청이 때문이지.”

“백 소저가 저를 따르는 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

“언제 뒈질지 모르는 놈에게 손녀를 맡기고 마음이 편한 할애비가 어디 있겠느냐?”

청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백청청을 얻는다는 게 욕심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강서에서는 제왕이나 마찬가지인 백가장주의 딸 아닌가 말이다.

“죄송하지만, 제 일은 마무리될 때까지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누가 포기하라더냐?”

백야대주가 째려보며 말했다.

“그럼……?”

“일 다 끝나면 어떻게 할 거냐? 무림에 있을 거냐, 황궁에 들어갈 거냐?”

“어디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살 생각입니다. 무림이고 황궁이고 다 잊고요.”

생각지 못한 대답인 듯 백야대주가 청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지금까지 제 손에 몇 사람이 죽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 거라 보십니까? 제 나이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아마 그것만으로도 지옥에 갈지 모릅니다.”

“킁, 그렇게 따지면 나는 반드시 지옥에 가겠구나.”

청운은 백야대주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아마 그가 죽인 사람을 다 하면 천 명도 넘을 것이다. 개중에는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전대 거마들도 많았다.

“어쨌거나, 일이 마무리되면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뭐,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나는 청청이가 고생을 하는 걸 원치 않을 뿐이다. 어디 두고 보마.”

“저도 하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봐.”

“일을 빨리 끝내고 백 소저와 함께 떠나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보도 필요하죠.”

“백야를 달라는 말이라면 꿈도 꾸지 마라.”

“제가 뭐 도둑놈인 줄 아십니까?”

“아니긴? 손녀를 훔쳐가려는 놈이.”

청운은 백야대주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할 말만 했다.

“백야의 정보 수집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좀 도와주시지요.”

그때 방이 있는 쪽에서 백청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그렇죠, 할아버지?”

“끄응, 이놈들이 아예 할애비의 등골을 빼먹으려고 하는구나.”

“아이, 누가 할아버지 등골을 빼먹어요. 허락하실 거죠?”

“알았다, 이놈아.”

백청청은 청운을 향해 한쪽 눈을 감으며 찡긋했다.

청운도 전음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소, 소저.

* * *

화산파에 머물던 무림맹 무사들은 무림맹 총단이 대충 정리되자 화산을 떠나 총단으로 돌아갔다.

총단에 도착한 무사들은 참담한 마음이었다.

부서진 건물들이야 고치면 된다. 완전히 무너진 건물도 새로 세우면 된다.

잃어버린 재물 역시 열심히 해서 채우면 된다.

부족했던 무사는 이미 사방에서 달려온 정파 무사와 무림맹 산하 문파의 무사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총단에서 죽어간 동료와 사형제들은 되살릴 수 없었다.

곳곳에 있던 자료들 역시 마음만 있다고 해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에 천근만근 쇠뭉치를 매달고 돌아간 무림맹 무사들은 이를 악물고 재건에 나섰다.

맹주도 무림맹 산하의 모든 문파에 맹주령을 발동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전과 다른 강한 요구였다.

아니, 도움 요청이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다.

노룡회와 천황교를 상대하려면 무림맹을 최대한 빨리 복구해야 했다.

빠른 복구를 위해서는 자금과 정보가 필요했다.

그런데 무림맹주의 강력한 의지가 하늘을 움직였는지, 심산유곡에 은거했던 고수들이 하나둘 세상으로 나왔다.

화산에 있던 임시 무림맹이 다시 총단으로 복구했다는 소식을 듣고 구대문파와 팔대세가 고수들이 달려왔다.

그러한 소식은 사도맹에도 전해졌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들이 뭐 먹을 것이 있다고 튀어나와!”

용천관은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분통을 터트렸다.

예전부터 그랬다. 사파에서 천하통일을 하려고 달려 나가면 어디선가 기어 나와서 앞길을 막았다.

이번에도 그 수를 전부 파악하지 못할 만큼 많은 자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용천관은 자신이 팽개친 두루마리를 노려보다가 곁에 있는 사뇌에게 물었다.

“뇌정검객(雷情劍客) 석은추(晳銀追)가 내가 아는 그 뇌정검객이 맞지?”

보고서에 적힌 명단 중에 그 이름도 있었다.

“예, 삼십 년 전에 모습을 감춘 뇌정검객이 맞습니다.”

“빌어먹을 늙은이. 내가 무림에 막 출도했을 때도 머리가 하얗게 쇠었었는데 아직도 살아 있었다니.”

뇌정검객은 당시에도 한 칼 하던 정파의 고수였다. 삼십 년이 지났는데도 팔팔하다는 보고다.

용천관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사뇌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도 연락해! 빌어먹을 늙은이들이 죽지도 않고 나타났다고 전해. 그러면 우리 쪽 노괴들도 알아서 올 거야.”

“알겠습니다.”

“아참, 명단에 있는 늙은이들과 원한 있는 분들 알지? 그래, 그놈들 명단을 죽 적어서 보내드려라. 그러면 무덤 속에 있어도 기어 나오실 거니까.”

“명안입니다. 곧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사파의 마존들도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 * *

무림맹 총단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복구가 예상보다 빨라서 무너진 건물도 대부분 사람이 기거할 정도는 되었다.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그 시각.

무림맹 안쪽 작은 전각 안에서는 두 사람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림맹 총군사직에서 실각한 제갈신기와 현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유풍이었다.

제갈유풍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숙부님, 놈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주, 걱정되시는가?”

“예, 요즘처럼 제가 무능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입니다.”

폭풍 전야의 고요가 이럴 것이다. 분명 무언가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제갈신기는 조카인 제갈유풍을 한 차례 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놈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네.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것뿐.”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절대 두려워서 몸을 숨길 자들이 아니네.”

제갈신기의 말에 제갈유풍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제갈신기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맹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말을 해도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제갈유풍은 그 말에 반문을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제갈신기는 그의 마음을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

무림맹 총군사 자리를 내려놓은 것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것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리 생각할 만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팽당한 신세가 되었으니, 누군들 그런 상황이 되면 기분이 좋겠는가.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아니네. 그저 첩자들 때문에 알리지 않은 것이야.”

제갈유풍이 흠칫하며 물었다.

“아직도 무림맹에 첩자가 남아 있단 말입니까?”

“이번에 몰려든 전대 고수 중에도 틀림없이 있을 거네. 그래서 놈들이 더욱 날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지.”

“으음, 그렇다면 그놈들부터 잡아내야겠군요. 어쨌든 제가 너무 앞서 생각하고 숙부님을 오해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갈유풍은 포권을 취하며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제갈신기는 손사래를 치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는 괜찮네. 문제는 신우 형님이네. 가주께서 조언을 잘 해주셔야 하네. 내 말은 이제 안 들으시니까.”

“알겠습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숙부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리게. 곧 가주에게 말씀드릴 일이 있을 거네.”

* * *

장안에서 돌아온 이후, 청운은 모든 정보망을 가동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사도맹에서 보내주는 정보 외에도 백야와 마존령 대원들이 세상에 나가서 보내주는 정보도 있었다.

그가 특히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노룡회의 움직임이었다.

신혈교가 무너졌으니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거라 생각했다.

‘조만간 터질 것 같은데.’

청운은 그들의 움직임 중 몇 가지를 골라서 무림맹에 흘렸다. 덕분에 무림맹이 분주해졌다.

‘과연 무림맹만으로 놈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기인이사들이 은거를 깨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말이 들렸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예전의 힘을 뛰어넘을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강한 자들이 나서주느냐인데.’

청운은 손에 쥔 전서를 내려다보았다.

[사천연합 합류 결정]

아마파, 청성파, 당문이 주축이 된 사천성 정파인들의 연합이 사천연합이다.

연합을 결성하고 움직이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드디어 그들이 무림맹으로 출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이 합류한다면 무림맹에 큰 힘이 되겠군.’

거칠기로 유명한 사천성 무인들은 마교를 막아낼 때 최전방에서 싸우는 무림인들이다. 그들이 무림맹에 합류하면 지난번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청운은 전서를 내려놓고 곁에 쌓여 있는 두루마리 중 하나를 펼쳤다.

[하북팽가 고립]

칠 주야 전에 날아든 전서 때문에 백야에게 소식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자세한 내용이 적힌 두루마리였다.

차르륵.

청운은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을 빠르게 읽었다.

‘금군이 출동해서 팽가를 압박했군. 이러면 대놓고 움직이기가 힘들겠는데?’

황실에서 하북팽가를 압박하고 나섰다. 도독부 병사를 동원해서 팽가를 포위하고 가둬버린 것이다.

그나마 힘으로 밀고 들어가지는 않은 듯했다.

하긴 군부에 투신한 팽가 사람이 많고 그들에게 배운 병사들 역시 적지 않았다. 자칫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황실로서도 큰 손해였다.

반면 팽가 역시 황군이 앞을 막는다면 무림맹에 합류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일개 가문이 황실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스승님과 정 소감에게 연락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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