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218화
순간, 안쪽에서 십여 줄기 공세가 그를 향해 쏟아졌다.
“흥!”
냉소를 터트린 그는 처음부터 환우구검을 펼쳤다.
시간을 오래 끌 이유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교주라는 자를 찾아야 했다.
‘혁련휘! 그놈도 안에 있을지 모른다!’
콰우우우!
그의 검에서 일어난 검강이 용틀임을 하며 허공을 휘감았다.
쩌저저정!
무기가 부러져 나가고 피가 튀었다.
달려들던 자들 중 대여섯 명이 피를 뿌리며 좌우로 튕겨 나갔다.
청운은 재차 앞으로 전진하며 검을 떨쳤다.
묵황색 검강이 벼락처럼 뻗어나가며 닥치는 대로 자르고 베어냈다.
잠깐 사이 십여 명을 베어버린 청운은 더 깊숙이 들어갔다.
전각은 뒤에 있는 또 다른 전각과 회랑으로 이어져 있었다.
회랑을 통과하고 나서야, 열두 개의 거대한 기둥이 좌우를 받치고 있는 전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청운은 그 전각 안으로 들어간 후 걸음을 멈추었다.
맨 안쪽 커다란 태사의에 한 사내가 턱을 괴고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혈마인가?’
그리고 그자의 좌우에는 사십대에서 육십대에 이르는 자들 여덟 명이 서 있었다.
아쉽게도 혁련휘는 보이지 않았다.
놈도 있을 줄 알았는데.
저벅, 저벅.
청운은 태사의에 앉아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귀하가 신혈교 교주 혈마인가?”
혈마는 거만한 자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아악!
그의 몸에서 폭풍 같은 기세가 피어올랐다. 그 기세에 대전이 부르르 떨고, 천장과 대들보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네놈이 이청운이냐?”
“그렇다. 내가 이청운이다.”
청운이 도발적인 말투로 혈마의 신경을 건드렸다.
‘건방진 놈이……!’
혈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안 그래도 혁련휘로 인해 짜증이 났던 그로서는 또 새파란 애송이에게 반말을 들으니 분노가 솟구쳤다.
“듣던 대로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큰절이라도 해줄까?”
“머, 뭐라?”
혈마는 부르르 몸을 떨며 청운을 노려보았다.
청운도 담담하고 무심한 눈길로 혈마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혈마가 이를 갈며 비릿하게 말했다.
“그러잖아도 네놈을 찾아서 찢어죽일 생각이었는데, 제 발로 기어 들어왔구나.”
혈마는 왼손을 들어서 앞으로 휘저었다.
좌우에 서 있던 신혈교 팔대존자 중 넷이 몸을 날려서 청운의 앞에 내려섰다.
그들은 처음부터 협공을 펼쳐서 청운을 공격했다.
“켈켈켈, 놈! 죽여주마!”
“죽어라!”
슈슈슈슉!
가공할 기운이 청운을 덮쳤다.
때를 같이해 청운의 검도 춤을 췄다.
“누가 죽을지는 해봐야 알겠지!”
환우무상검. 파천무!
묵황색 강기의 그물이 허공을 가득 메우는가 싶더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기로 작정한 청운의 공격은 말 그대로 무시무시했다.
교주의 호법인 팔대존자 중 넷이 삼 초식을 버티지 못하고 피안개를 뿌리며 죽어갔다.
대경실색한 나머지 넷이 그를 공격했지만 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열두 개 기둥 중 세 개가 그들 목숨과 함께 가루로 부서졌다.
콰과과광!
무너져 내린 기둥들이 굉음을 내며 나뒹굴었다.
“이노오오옴!”
혈마가 노성을 내지르며 청운을 덮쳤다.
콰아아아아!
가공할 기운이 실린 붉은 구름이 그의 몸에서 피어났다. 혈마의 독문무공인 혈천마공이 십성 공력으로 펼쳐진 것이다.
청운도 묵황색 검강을 일으킨 채 환우구검을 펼치며 정면으로 마주쳐 갔다.
콰르르르릉!
콰과광!
두 사람의 기운이 부딪치면서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천둥소리가 대전을 뒤흔들었다.
안 그래도 기둥 세 개가 부러진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은 점점 더 강하게 격돌했다.
그렇게 십여 초식이 지나자, 혈마의 오만한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혈마는 자신이 밀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안 좋았다.
그는 혈천마공을 극성까지 끌어올렸다.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천장에서 부서진 잔재와 먼지가 쏟아지는 전각 안이 붉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청운도 전력을 다해서 공력을 끌어올렸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몸을 날리고,
콰과과광!
또다시 연속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뒤로 이 장 정도 물러선 청운은 붉은 구름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혈마의 몸이 온통 피로 뒤덮여 있었다. 말 그대로 진짜 ‘혈마’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심장에 청운의 검이 박혀 있었다.
“이. 이런… 어이없는 일이… 애송이에게 내가…….”
청운은 말을 더듬는 혈마를 보며 우장을 머리 위로 들었다.
“지옥에 가면 염라대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장을 앞으로 뻗었다.
쾅!
가슴에 검이 꽂힌 혈마의 몸이 뒤로 날아가서 벽에 열십자 형태로 박혔다.
한편, 신혈교 깊숙한 곳에서는 괴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백의를 입은 복면인 이십여 명, 흑의에 흑색 복면을 쓴 자들 삼십여 명.
백야와 흑야.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손을 썼다. 심지어 그들은 검이 격돌해도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의 검은 부딪치는 것조차 드물었다.
안개처럼 뿌연 그들은 서로의 검신을 휘감고 가공할 기운을 쏟아냈다.
마치 하얀 유령과 검은 유령이 싸우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 것은 분명한지 심한 부상을 입으면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시간이 가면서 하나둘 흑의 복면인들이 쓰러졌다.
숫자는 흑야가 많았지만 개개인의 무공에서 차이가 컸다.
백야의 무인들도 부상당한 사람이 나오긴 했으나 흑야에 비하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반각 정도 지나자, 흑야의 무인 중 살아남은 자가 다섯으로 줄어들었다.
백야의 무인은 그때까지 세 명이 쓰러졌다.
한쪽에서 지켜보던 백야대주는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그가 아는 흑야는 이렇게 약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놈들이 아니군. 그럼 진짜배기는 따로 있다는 건데…….”
* * *
전장이 되었던 신혈교는 아직도 검은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지독한 혈전이 한나절 만에 막을 내렸다.
수백 명의 목숨을 대가로 일군 위대한 승리였다.
이천에 이르는 신혈교도들을 죽이고 오백 명 가까운 자들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모두가 환호하며 기뻐할 때, 혈황은 자신을 곤란하게 했던 혁련휘의 정체를 뒤늦게 깨닫고 이를 갈았다.
‘그 새끼가 혁련휘였어! 멍청하게 그놈을 몰라보다니!’
그는 혁련휘를 몰라본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제길! 예전 무공의 절반만 회복했었어도 그놈을 작신 패버렸을 텐데.”
가슴에 열불이 일어서 얼굴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함께 싸운 마존령 대원들이 속도 모르고 자신을 추켜세웠지만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그때 청운이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아쉽게도 혁련휘는 여기에 없나 봅니다.”
혈황은 움찔했다.
없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이 놓치는 바람에 도망치고 말았다.
혈황은 청운이 다가오자 슬그머니 얼굴을 돌렸다.
그의 마음도 모르고 청운이 말했다.
“혁련휘가 천황교의 소천주라는군요.”
혈황도 그 사실을 알고 지금 열불이 뻗쳐 있었다.
“개정대법을 받고, 혈룡단도 복용하고, 극상승의 무공도 전수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못 이긴 거지.’
“그만 가시죠. 회의한다고 다들 모였으니.”
“알았다.”
혈황은 짐짓 굳은 표정을 하고 청운의 말에 대답했다.
‘당분간 혈황신공을 되찾는 일에 전념해야겠어.’
* * *
밖에서 전장 정리가 한창일 때 내부에서는 이번 싸움에 참가한 사도맹 간부들이 모였다.
사뇌가 군사로서 회의를 이끌었다.
“여러분께서 목숨을 걸고 싸워준 덕분에 신혈교를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짝짝짝.
사뇌의 말에 모두가 손뼉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피해로 큰 승리를 했다. 기뻐하는 것도 당연했다.
“한데, 안타깝게도 천황교 소천주인 혁련휘가 도망쳤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을 놓쳤다는 것은 옥의 티였다.
“다행인 점은 신혈교 교주인 혈마와 장로들을 대부분 처치했다는 겁니다. 아마 천황교도 쉽게 반격하지는 못할 겁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말해보게.”
용천관의 말에 사뇌가 답했다.
“일단 부상자들을 치료할 동안 이곳에 머물 예정입니다. 식량도 충분하고 약도 있으니 이동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치료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천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게. 어차피 이곳에서 얻은 전리품도 챙겨야 할 테니 말이야.”
전리품 이야기가 나오자 피로에 절었던 간부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신혈교에는 돈과 무공비급은 물론 눈이 휘둥그레질 보물들이 많았다.
* * *
신혈교에서 얻은 전리품은 어마어마했다.
천황교가 신혈교라는 종속 교단을 세운 지 이백 년, 단 한 번도 침입을 받지 않고 세력을 키운 터라 그동안 모아 놓은 것들이 몇 수레는 되었다.
개중에는 무공비급도 있었고, 금은보화도 있었고, 보검보도를 비롯한 신병이기도 있었다.
평생 하나 얻기도 힘든 보물이 눈앞에 쌓이니 사도맹 간부들의 눈이 벌게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보물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였다.
자칫 잘못 분배하면 불만이 쌓여 싸움이 날 수 있었다.
모두들 행여나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불이익이 있을까 봐 함부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이청운이 말했다.
“제가 한 말씀 드릴까 합니다.”
이번 싸움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마존령주다.
그가 아니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조차 없었다.
“말해보게.”
용천관이 허락하자, 이청운이 의견을 내놓았다.
“먼저 논공행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제 말은 공의 크기가 정해졌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청운은 그 말을 하고 간부들을 둘러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보화는 견문이 밝은 군사와 장로 다섯 분이 가치를 평가해서 각 단체별로 적절히 분배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휘하 무사들에게 분배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그리고 신병이기는 무공 특성을 고려해서 분배하고, 그 가치가 현저히 높은 경우는 그 차이만큼 보화를 덜 가져가는 것이지요.”
간부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논공행상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정도면 누가 봐도 공평한 분배였다.
“문제는 무공비급입니다.”
그 말이 나오자, 전각 안에 둘러앉은 삼십여 명의 간부들 눈빛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상승 무공은 지금 당장 무공의 가치를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멋모르고 욕심을 냈다가는 자칫 본신의 무공과 충돌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여 무공비급은 일단 사도맹 총단으로 옮긴 후,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분배를 하든가, 맹의 무사들을 키우는 데 쓰여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무공비급을 욕심냈던 사람들 중 많은 이가 불만스런 표정이었다.
그러나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지는 못했다.
그때 용천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존령주의 이야기는 잘 들었네. 의견이 명료해서 따질 것도 없을 것 같군.”
맹주가 그리 말하니 불만스런 표정마저도 쏙 들어갔다.
결국 보물의 분배를 결정하는 사람은 맹주다. 자칫 잘못 보이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맹주가 욕심내지 않고 이청운의 분배 의견에 찬성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누구나 알겠지만, 이번 신혈교를 무너뜨리는 것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마존령주다. 그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말해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