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217화 (217/257)

# 217

217화

쾅!

파바바바방!

둘은 허공에서 부딪치며 격렬하게 서로를 공격했다.

혁련휘의 몸을 감싸고 있던 기운이 실타래처럼 풀어지더니, 거대한 뱀처럼 휘몰아치며 혈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혈황 역시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붉은 아지랑이가 폭사하듯 퍼져 나가서 혁련휘가 펼친 강기 공격에 맞섰다.

콰르르르릉!

연이어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혈황의 붉은 기운이 혁련휘의 강기를 이기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휘리릭.

안 되겠다 싶었는지, 혈황이 뒤로 훌쩍 몸을 빼며 몸을 회전시켰다.

그 순간,

스팟.

뱀처럼 달려들던 강기가 혈황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윽!”

혈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하하! 건방진 놈! 제법이다만 너 따위 천한 놈은 본 공자의 상대가 되지 못하느니라!”

혁련휘가 득의의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뻗었다. 강기 다발이 혈황을 집어삼킬 듯이 밀려갔다.

혈황은 혁련휘의 공격을 피하면서 이를 갈았다.

‘저 쳐 죽일 놈이 누군데 이리도 강한 거지!’

혁련휘는 천황교의 소천주로 돌아가면서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런데 소천주가 되어 천황의 무공을 익히면서 과거의 모습과 조금 달라졌다.

살은 살대로 빠지고, 눈은 더욱 날카로워졌으며,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흘렀다.

반면 혈황은 도망치던 나약한 혁련가의 공자만 알고 있던 터라 상대가 혁련휘라는 걸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어쨌든 그는 애송이에게 밀린 것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용마장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수련해서 과거의 힘을 조금 더 찾았다. 그 정도만 해도 청운과의 차이를 크게 좁혔다고 생각했다.

혈황신공의 본신을 다 드러내지 않아도 대적할 놈이 천하에 몇 없을 거라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젊은 애송이 새끼에게 밀리다니!

‘이 새끼밖에 없는데, 상관없겠지?’

혈황은 억눌러 놓았던 혈황신공의 본신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의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이 폭사되었다.

후아악!

붉은 혈기가 그의 전신에서 뿜어졌다.

“오냐,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내 네놈의 대가리를 부숴버리고 말겠다!”

혈황은 혈황신공을 끌어올린 채 혁련휘의 공격에 정면으로 부딪쳐 갔다.

“얼마든지 와라, 천한 놈!”

두 사람의 기운이 뒤엉키면서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다.

언제까지나 공방이 계속될 것 같던 그때, 계곡 안쪽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앙!

엄청난 굉음에 혈황을 몰아붙이던 혁련휘가 흠칫했다.

그 찰나의 순간, 혈기가 빛살처럼 빠르게 혁련휘가 만든 강기벽의 틈을 파고들었다.

깜짝 놀란 혁련휘가 몸을 뒤로 날렸다.

푹!

“크윽!”

찰나 간의 차이로 혈기 한 줄기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혁련휘 몸에서 뻗어 나간 강기벽이 출렁였다.

혈황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틈이 생긴 강기벽을 집중해서 공략했다.

“맛이 어떠냐, 이 싸가지 없는 놈아!”

이를 악다문 혁련휘는 크게 놀라며 몸을 뒤로 날렸다.

빠드득.

그는 믿지 못할 현실에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미 충격으로 공력이 흔들린 상태였다. 오기만으로 싸우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그는 총단 쪽으로 날아가며 분노에 찬 일성을 내질렀다.

“개자식! 다음에 만나면, 네놈의 심장을 뽑아서 씹어 먹으리라!”

* * *

청운은 능선에 서서 남쪽 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맹주 용천관을 비롯한 사도맹의 주력 일천여 명이 신혈교도들을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미 쓰러진 사람만 해도 양측 합해서 칠팔백 명이 넘을 듯했다. 피가 골을 타고 흘러서 계곡물을 시뻘겋게 물들인 상태였다.

‘오래지 않아 결정이 나겠군.’

신혈교도는 남은 자가 삼백 정도. 현 상황에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일각 안에 싸움이 끝날 듯했다.

청운은 계산이 나오자, 즉시 몸을 날려서 서쪽의 관문으로 향했다.

남쪽과 서쪽의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마지막 방점을 찍기 위해 총단을 공격할 수 있다.

전처럼 모든 것을 사도맹에 맡겨 놓았다가 실패하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어느 한 곳이라도 패배의 징후가 보인다면 총단에 대한 공격을 보류해야만 한다.

서쪽 관문은 부맹주 맹천기가 사도맹 일천 무사를 데리고 공격 중이었다.

청운에게 패한 뒤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 이를 악문 맹천기였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신혈교 공격에서 반드시 큰 공을 세워야만 했다. 맹주인 용천관보다도 더 큰 공을.

결국 그는 남들 몰래 숨겨두었던 힘을 불러냈다.

삼백삼십 명으로 이루어진 사사천교의 정예무사, 사사천단(死邪天團).

그들은 본래 용천관을 밀어내고 사도맹을 뒤엎기 위해서 십삼 년 전부터 그가 비밀리에 키운 무사들이다.

지난번 신혈교 공격 때도 맹천기는 그들을 내놓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사사천교의 최고위 간부들뿐. 용천관도 그들의 존재를 모르니 따지지도 못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지금은 숨겨두어야 할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사람들은 이청운에게 패한 자신을 용천관의 경쟁자로 보지 않았다.

타 문파와 손을 잡고 용천관을 몰아낸다 한들 마도사파의 무사들은 자신을 마도의 제왕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는 능력이 없으니 남과 손잡고 주군을 몰아낸 배신자로만 볼 뿐.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그만한 자격을 다시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격을 얻기에는 신혈교와의 전쟁이 최상의 기회였다.

맹천기는 자신이 선두에 섰다. 측근들이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죽어도 내가 먼저 죽을 것이다! 수하들을 칼날 위에 던져놓고 나만 살겠다고 할 수는 없다! 모두 나를 따르라!”

그의 일갈이 계곡을 뒤흔들었다.

사사천단은 사기가 충천해서 신혈교도들을 몰아붙였다.

사사천단뿐만이 아니었다. 사도맹의 무사들 역시 과연 맹천기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맹천기는 최상의 기회를 살리기 위한 절실한 마음에 한 행동이었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놀랄 만큼 대단했다.

산 능선의 집채만 한 바위 위에서 치열한 싸움을 지켜보던 청운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대단해. 역시 사도의 하늘을 노릴 만한 자격이 있어.”

마음이 하나가 된 그들의 힘이라면 서쪽 관문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이제 남은 것은 총단 공격.

건곤일척의 승부를 봐야 할 때다.

* * *

능선 위 높은 바위 봉우리 위에서 하늘 높이 폭죽이 솟구쳤다.

펑!

붉은 구름이 하늘에서 퍼졌다.

동쪽과 서쪽, 남쪽 모두에서 붉은 구름이 보였다.

이단계 계획의 완료를 뜻하는 폭죽이었다.

용천관이 그 폭죽을 보고 검을 쳐들었다.

“사도맹의 자랑스런 무사들이여! 마지막 마무리를 하러 가자!”

맹천기의 일갈이 다시 한번 터졌다.

“내가 선두에 설 것이다! 나를 따르라!”

혈황은 그 폭죽의 붉은 구름을 보고 대뜸 욕부터 했다.

“그 개새끼를 잡으러 갈 때가 됐군!”

혁련휘와 싸운 걸 모르는 오대사령은 무슨 말인가 싶어 의아해했다.

혈황이 그들을 재촉했다.

“뭐 하나? 시작한 일, 이제 끝내야지!”

폭죽을 쏘아올린 청운은 동, 서, 남쪽에서 가공할 기운들이 밀려드는 걸 느끼며 일어났다.

저 멀리 신혈교의 총단이 보였다.

거대한 장원의 왼쪽에는 호수가, 오른쪽에는 깎아지른 백 장 절벽이 있었다.

풍경만큼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청운은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사악한 자들이 저토록 아름다운 대자연을 차지한 채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니.

혈황과 마존령 대원들이 달려오는 것을 본 청운은 즉시 그들과 합류해서 신혈교 총단을 위해 신형을 날렸다.

남쪽과 서쪽에서 용천관과 맹천기가 이끄는 사도맹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오는 게 보였다.

신혈교 총단 앞에는 신혈교도들이 나와 있었다.

삼차 관문까지 통과하며 삼천에 이르는 적을 상대했는데, 아직도 천 명이 넘는 교도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있는 쪽에서 웅얼거리는 기묘한 진언이 끊임없이 계곡에 울려 퍼졌다.

밖에 서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안쪽에서도 외어대는 듯했다.

심지어 공력까지 실려서 울림이 더욱 괴이하게 느껴졌다.

사도맹 무사들은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살기가 무뎌지고, 진기마저 흐트러지는 듯했다.

달리던 속도도 점점 떨어졌다.

“정신들 차리시오!”

청운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뒤이어 용천관과 맹천기도 공력을 실어서 소리쳤다.

“놈들의 사이한 진언에 흔들리지 마라!”

“놈들이 사공을 쓴다! 모두 정신을 차리고 전진하라!”

달리던 사도맹 무사들의 발걸음이 다시 빨라졌다.

양측의 거리가 삼십 장으로 가까워졌을 때, 신혈교도 쪽에서 굉량(宏量)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혈의 세상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리니!”

“위선에 찬 인간들을 멸하라!”

와아아아아아!

“신혈의 세상을 위해!”

신혈교도들이 무기를 빼들고 일제히 내달렸다.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곧 서로가 뒤엉켰다.

신혈교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도맹 무사들의 검이 배를 꿰뚫어도 달려들어 동귀어진을 감행했다.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에서 푸른빛이 번뜩였다.

“독이다! 놈들 무기에 독이 발라져 있다!”

“목을 쳐!”

사도맹 무사들이 대경해서 소리쳤다.

신혈교도들은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두 사람이 죽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사도맹 무사들은 신혈교도들의 지독한 동귀어진에 질린 낯빛이 되었다.

“고수들이 앞으로 나가라!”

용천관이 소리쳤다.

상대를 일검 일도에 목을 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고수들이 나서야 했다.

문제는 신혈교도들 중에 혈룡단을 복용한 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최소한 수백 명. 더구나 그들은 진기마저 폭주시켜서 평소보다 배의 공력을 발휘했다.

폭주한 진기가 소모되면 죽음밖에 없는 상태인데도 대부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크하하하! 간악한 사도맹 놈들을 쳐 죽여라!”

“신혈께서 보호하사 천당에 갈 것이니 죽음을 걱정하지 말고 놈들을 쳐라!”

신혈교의 간부들은 신혈교도들을 독려하며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황이 펼쳐졌다.

수천 명이 뒤엉켜서 상대를 죽이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다.

자칫하면 동료가 다칠 수 있으니 사도맹은 고수들조차 마음대로 무공을 펼칠 수 없었다.

반면 신혈교는 동료와 적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적의 죽음이었다. 자신의 무기가 동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총단 안쪽에서는 괴이한 진언이 계속 울려 퍼졌다.

“장사진(長蛇陣)으로 놈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갑시다!”

청운이 소리치고는 전면을 향해 검을 떨쳤다.

콰아아아아!

쩌저저정!

쭉 뻗어나간 검강에 의해 칠팔 명이 베어지고 양쪽으로 튕겨나갔다.

뒤이어 혈황이 나서며 쌍장을 뿌렸다.

앞을 막기 위해 나서던 서너 명이 다시 홀훌 날아갔다.

청운과 혈황이 앞장서며 신혈교도들을 무너뜨리자, 오대사령과 마존령 대원들이 길게 늘어서며 뒤를 따라갔다.

신혈교도들이 이룬 인간 장벽은 두텁고 강했다. 하지만 청운과 혈황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전면을 틀어막고 있던 인간 장벽을 무너뜨린 청운과 혈황이 먼저 신혈교 총단의 담장을 날아 넘었다.

신혈교 총단 안쪽에서는 삼십여 명이 공력을 끌어올려서 사이한 진언을 외어대고 있었다.

청운과 혈황, 오대사령을 비롯한 마존령 대원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청운이 혈황과 오대사령에게 말했다.

“저들은 그대들이 책임지고 맡으시오! 나는 신혈교주를 찾아보겠소!”

“알았다. 우리가 맡지!”

혈황이 답하고는 진언을 외는 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오대사령과 마존령 대원들도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청운은 그 즉시 허공으로 솟구쳐서 거대한 전각으로 훌훌 날아갔다.

쾅!

장력을 날려서 전각의 문을 부순 그는 곧장 안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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