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216화 (216/257)

# 216

216화

마존령 대원들이 요상을 하며 전열을 정비하고 있을 때, 마존령주 휘하 전령조의 대원이 달려왔다.

“령주께 아룁니다. 맹의 본진이 십오 리 후방까지 도달했습니다.”

청운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래? 강 조장, 모두 준비하라고 하시오.”

“예, 령주!”

강욱이 포권을 취하며 답하고 전령들을 오대사령에게 보냈다.

그로부터 반각 후, 마존령 대원들은 계곡의 안쪽을 향해 진입했다.

신혈교로의 진입을 막는 마지막 관문은 총단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거대한 바위산으로 막힌 북쪽을 제외하고 동서와 남쪽에 각기 하나씩, 모두 세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일천 무사들이 운집한 남쪽 거점은 신혈교 총단으로 들어가는 정문과도 같았다.

이전에는 사도맹과 무림맹의 공격을 알고 잠복했다가 그들의 공격을 저지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손쓸 새도 없이 감시초소와 일, 이차 관문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삼차 관문에서 놈들의 공격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사도맹이 세 줄기로 한꺼번에 치면서 들어오기 때문에 세 개 거점의 힘을 집중시킬 수도 없었다.

“놈들이 옵니다!”

계곡의 아래쪽을 감시하던 자들로부터 고함이 들려왔다.

신혈교 장로 혈귀마검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을 쓰듯 외쳤다.

“놈들에게 본 교의 위엄을 보여줘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교를 위해 싸워라!”

“신혈의 세상을 위해!”

“놈들을 물리치고 신혈의 세상을 만들자!”

와아아아아!

신혈교도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함성을 질렀다.

일천 신혈교도들의 함성은 계곡 전체를 울렸다.

곧이어 동쪽과 서쪽의 신혈교도들도 마주 함성을 질렀다.

온 산 전체가 그들의 함성으로 울렸다.

청운은 마존령 대원들과 함께 서쪽 거점으로 접근했다.

오 장 높이의 통나무를 세워 계곡을 틀어막은 목책이 저만치 보였다.

계곡 양쪽은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산을 우회에서 올라가면 절벽을 넘어갈 수도 있을 듯했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들의 존재를 아는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절벽을 넘어가다 암습을 받는 것보다 오 장 높이 목책을 넘어가는 것이 나았다.

마존령 대원들이 접근하자 화살비가 쏟아졌다.

선두에 선 청운과 혈황, 오대사령이 강기를 일으켜서 화살비를 쳐내며 전진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바위와 나무를 이용해서 화살을 피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목책과의 거리가 이십 장쯤 남았을 때였다.

청운이 바닥에 내려서며 땅을 굴렀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화살과 자갈들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날아들던 화살도 청운이 일으킨 묵황색 기운의 벽에 막혀서 튕겨 나갔다.

“타앗!”

청운이 양손을 휘두르자, 묵황색 기운이 폭풍처럼 밀려갔다. 허공에 떠오른 화살과 자갈들도 폭풍에 휩쓸려서 목책을 향해 날아갔다.

공력이 실린 화살과 자갈들은 활로 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었다.

퍼벅! 쾅!

화살은 목책에 꼬리만 남긴 채 박히고, 자갈은 목책을 터트려버렸다.

수백, 수천 개나 되는 화살과 자갈은 순식간에 목책의 일부를 부수고, 목책 위에 올라가서 화살을 쏘던 자들마저 휩쓸어버렸다.

“크하하하! 그거 좋은 방법이로다!”

혈황이 대소를 터트리고는 청운처럼 발을 구르고 양손을 휘둘렀다.

화살과 자갈이 붉은 폭풍에 휘말려서 목책으로 날아갔다.

화살을 쏘며 기세등등하던 목책 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졌다.

화살에 몸이 뚫리고, 자갈에 머리가 터져 나갔다.

심지어 자잘한 자갈조차 그 어떤 암기보다 무서웠다.

잠깐 사이 화살비가 완전히 그치고, 목책 위에 있던 자들이 모두 도망쳐서 모습을 감췄다.

쾅!

청운이 다시 신형을 날리며 일장을 내치자 목책의 문이 폭발하듯 부서지며 떨어져 나갔다.

곧 뒤따라온 마존령 대원들은 좌우로 쫙 퍼져서 목책을 날아 넘었다.

청운은 목책 안으로 들어가며 검을 빼들었다.

저만치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자들이 보였다. 언뜻 보이는 자만 해도 수백 명은 될 듯했다.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십여 명에게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최소한 절정 수준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저 앞에 선 자들을 먼저 제거합시다!”

청운이 냉랭히 소리치자, 혈황과 오대사령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차피 대화는 필요 없었다.

죽고 죽이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결과만이 남았을 뿐.

신혈교 고수들도 날아드는 혈황과 오대사령을 보며 마주 쳐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대의 나이가 더 어렸다. 개중에는 이십 대로 보이는 놈도 둘이나 있었다.

자신감을 되찾은 그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몸을 날렸다.

“건방진 놈들! 모가지를 잘라주마!”

“새파란 애송이가 어디서 감히!”

“네놈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개밥으로 줘야겠다!”

혈황이 제일 먼저 적과 마주쳤다.

그는 다섯 자 크기의 도를 무기로 사용했는데, 자신을 보며 ‘새파란 애송이’ 운운한 자였다.

공력을 일으킨 혈황은 그자를 보며 쌍수를 뻗었다.

그의 손에서 붉은 기운이 뻗어갔다. 혈황진기를 드러내놓고 사용할 수 없기에 약간 변형시킨 수법이었는데,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위력을 실을 수 있었다.

“이놈!”

상대도 일갈을 내지르고는 거도를 휘둘렀다.

순간, 혈황의 좌수에서 뻗어나간 기운이 거도를 휘감았다.

거도를 휘두른 자의 눈이 커졌다.

거미줄에 칭칭 감긴 듯 자신의 도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혈황은 그를 보며 씩, 웃고는 우수를 뻗었다.

도를 휘두른 자의 눈에 공포가 떠올랐다.

혈황의 우수에서 뻗은 기운이 채찍처럼 그의 목을 휘감자, 목이 오그라들면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우드득.

도를 휘두른 자의 머리가 괴이하게 꺾였다.

혈황은 그자를 한쪽으로 던져 버리고 다른 먹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청운은 신혈교의 고수 셋을 쓰러뜨리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용화청이 온통 피로 물든 채 적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적의 몸에서 튄 피였다.

염왕검 하후관과 냉혈마도 육송도 신혈교의 절정 고수를 맞이해서 우세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마창 송기중은 적과 비등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밀릴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의외인 것은 고한이었다. 그는 이미 한 사람을 쓰러뜨리고 두 번째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의 검은 간결하면서도 빈틈이 보이면 치명적으로 파고들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그의 검을 얕본 상대는 경미한 실수에도 목숨을 내놓아야만 했다.

‘단순함에 극의가 있는 검. 대단하군.’

어쨌든 혈황이 있으니 오대사령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우려할 만한 고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른 마존령 대원들을 돕기 위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적의 인원이 네 배나 많았다. 아무리 마존령 대원들의 무위가 그들보다 뛰어나다 해도 등 뒤의 검을 피해 가기 쉽지 않은 법이었다.

적진으로 뛰어든 그는 일말의 인정도 두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광풍 폭우와 같은 강기가 일어났다.

일검에 서너 명씩 쓰러지며 순식간에 이삼십 명이 죽어갔다.

뒤늦게 공포에 질린 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서 멀어졌다.

“으으, 검귀다! 악마 같은 놈이다!”

“그놈에게서 물러서!”

다른 마존령 대원들을 공격하던 자들도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반면 마존령 대원들은 사기가 충천해서 적을 몰아붙였다.

빠르게 늘어가는 시신이 넓은 마당을 뒤덮었다.

피가 내가 되어 흘렀다.

쓰러진 자만 오백여 명. 이대로 조금만 지나면 승부가 결정 날 듯했다.

그런데 그때, 계곡 안쪽에서 흑의를 입은 자들 삼십여 명이 나타났다.

숫자는 삼십여 명에 불과한데 마치 검은 구름이 밀려 내려오는 듯했다.

그들을 발견한 청운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흑야 놈들이다. 드디어 나왔군!’

청운은 고개를 들어서 양쪽 절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절벽 위에서 은은한 기운에 휘감긴 뭔가가 아래로 떨어졌다. 마치 하얀 구름이 쏟아지는 듯했다.

백야의 무사들이었다.

흑야의 무리도 백야의 무사들을 발견하고는 속도를 줄였다.

그 직후, 백야의 무사들이 흑야 무리의 머리 위를 덮쳤다.

청운은 까마득한 절벽 위에 서 있는 백야대주를 확인하고는 다시 검을 신혈교 무사들을 향해 돌렸다.

백야대주가 직접 온 이상 흑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두려움을 모르던 신혈교 교도들이 공포에 질려서 하나둘 도망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곁에서 함께 싸우던 사람이 도망치자 공포가 전염되면서 빠르게 숫자가 늘었다.

결국 이백여 명이 도망쳤다.

남은 자는 백여 명. 그마저도 대부분 부상을 입은 자들이었다.

신혈교도들을 돕기 위해 달려왔던 흑야의 무리도 백야에 막혀서 대부분 죽고 서너 명만 도주했다.

‘이곳은 끝났군.’

청운은 삼차 거점이 무너졌다 생각하고는 시선을 안쪽으로 돌렸다.

사도맹이 공격하기로 한 다른 두 곳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곳의 희생이 너무 많으면 총단을 공략할 수 없는 것이다.

청운은 혈황을 보며 말했다.

“나는 다른 곳 상황을 살펴볼 거요. 이곳을 부탁하겠소!”

“걱정 말고 가봐!”

혈황이 소리치고는 살아남은 신혈교 교도들을 둘러보았다.

꼭 입맛을 다시는 듯한 표정이었다.

청운이 안쪽으로 몸을 날리고 반각쯤 지난 후, 삼차 거점의 싸움이 끝났다.

마존령 대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운공을 하며 부상을 치료하고 있을 때, 안쪽을 힐끔거린 혈황이 용화청에게 말했다.

“나는 령주의 뒤를 따라가 볼 거다. 부상을 치료하고 대기하다가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달려와라.”

“알겠소.”

용화청은 혈황의 반말에도 별 불만 없이 대답했다.

마존령 대원의 심사를 맡은 사람이었다. 그의 무공이 청운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 * *

삼차 거점을 떠난 혈황은 곧장 안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계곡을 몇 구비 꺾어졌을 때 저 앞에서 날아오는 자가 보였다.

뒷짐을 지고 땅을 박찰 때마다 십여 장씩 죽죽 미끄러지는 걸 보니 제법 한 수 있는 놈 같았다.

그자를 본 혈황은 걸음을 늦추었다.

‘저 건방진 새끼는 뭐 하는 놈이지?’

혈황이 있는 곳으로 날아오던 혁련휘도 눈살을 찌푸렸다.

‘저놈은 뭐지?’

이청운이 이끄는 마존령이 서쪽을 공격한다는 말을 뒤늦게 듣고 부랴부랴 총단을 나선 그였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놈이 멈춰 서서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 아닌가 말이다.

“오호, 뭐 하는 놈인지 몰라도 제법 강하게 보이는군.”

혁련휘는 혈황을 살펴보고는 눈이 커졌다.

가만히 보니 제법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꿩 대신 닭이라 했는데, 청운을 잡으려 왔다가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했다.

신혈교도가 아니라면 마존령의 고수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혁련휘는 혈황 앞으로 신형을 날리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수십 줄기 기운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네놈은 혹시 마존령의 잡놈이 아니더냐?”

혈황은 혈황대로 날아드는 혁련휘를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호오! 저 무공을 다시 볼 수 있다니.’

무엇이 기쁜지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는데,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혁련휘가 끌어올린 기운의 정체를 아는 것이다.

‘그 죽일 놈들의 무공을 익힌 놈이란 말이지?’

혈황도 혈황신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 주위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기존의 혈황신공을 펼칠 때 뿜어지는 혈기보다 색이 옅었다. 그 바람에 누가 봐도 혈황의 혈황신공처럼 보이지 않았다.

남들이 알면 문제가 될 것 같아서 그간의 노력으로 혈황신공을 변형시킨 것이다.

“이놈! 너야말로 개잡놈 같구나!”

파밧!

땅을 박찬 그는 혁련휘를 향해 마주쳐 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