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214화 (214/257)

# 214

214화

정 소감은 황제에게 그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뜻을 함께하기로 한 관리들이 있음을 알렸다.

청운이 황제를 위해서 음지로 숨어들었다는 것과 참고 기다리면 구해주러 달려올 거라는 말도 전했다.

-폐하,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대인이 올 때까지 버티시옵소서. 그는 만고의 충신으로, 현 상황을 해결하고 역적들을 처단할 수 있는 사람은 그분밖에 없사옵니다.

황제의 고개가 미미하게 끄덕여졌다.

그 미약한 움직임에, 물을 가져오라 명을 내리고 돌아선 환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언가 낌새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눈알을 굴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폐하, 보중하시옵소서.

생각보다 감시자로 붙은 환관이 날카로웠다. 더 있다가는 꼬리가 밟힐지도 모를 일이다.

정 소감은 일단 물러서기로 하고 몸을 숨겼다.

건청궁을 빠져나온 정 소감은 종종걸음으로 황궁을 거닐었다.

사방에 금의위가 깔려 있었다. 물론 풍 대영반의 사람이 아닌, 오호대장군이 심어놓은 자들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인원보다 어둠에 숨어서 오가는 이들을 감시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어느새 황궁은 진정한 용담호혈이 되어 있었다.

‘대인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조력자를 더 늘려야 해.’

정 소감은 청운이 파직된 후 황궁으로 복귀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몸을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자신과 청운 사이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터라 복귀와 동시에 붙잡힐 것이 뻔했다.

그래서 그는 무림맹으로 함께 떠났던 환관 중 목숨을 잃은 자로 역용을 했다. 죽은 환관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보다 잘 알았고, 아직은 그의 죽음이 황궁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만 하지 않으면 들킬 염려는 없었다.

정 소감은 은밀히 움직이며 하나둘 사람을 모았다.

아무나 함께하자며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이미 뇌옥에 갇혀 있는 정원 태감과 풍천호 대영반에게 접촉을 했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덕분에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인사들 명단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명단에 적힌 이들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기류에 편승한 배신자가 분명히 있기 마련이기에 조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슬쩍 떠보는 것으로 배신자를 두 명이나 찾아내서 제거했다.

황궁에서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유야무야 넘어갔다.

지금 황궁에서 한두 사람의 죽음은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뜻을 함께할 자들이 모이자 정 소감은 황제에게 사실을 알렸다.

황제가 승낙했으니, 이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천향서원의 원주님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 * *

“교주, 사도맹이 우릴 치기 위해서 마존령이라는 걸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들에 대한 감시는 철저하게 되고 있소?”

혁련휘의 말에 혈마는 이마를 찌푸렸다.

아무리 총교주의 손자라 해도 자신의 상관은 아니다. 수하 다루듯이 하는 혁련휘의 말에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어린놈이 건방지게…….’

하지만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네. 이청운이란 놈이 그들을 지휘할 거라 들었네.”

혁련휘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죽일 놈의 새끼……. 끝까지 말썽이군.”

“걱정 마시게. 그놈이 모은 자들은 이백여 명에 불과하네. 그 인원으로 놈이 뭘 할 수 있겠나?”

혈마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혁련휘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교주께서 뭘 모르시는군. 놈은 잡초처럼 끈질긴 놈이오. 저번에도 죽었다고 했는데 살아났지 않소? 저번에 확실하게 죽였어야 하는데…….”

혈마는 혁련휘의 그 말에 괜히 옆에 있는 장로들만 쏘아보았다.

죽었을 거라는 그들의 보고만 믿고 있다가 혁련휘에게 한 소리 들은 걸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대가리를 터트려서 죽여버리고 싶었다.

“아예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건 어떻겠나? 총교주께서 허락만 하시면…….”

“교주도 아시잖소? 지금은 사도맹보다 황궁이 더 중요하오. 사도맹을 무너뜨리려면 황궁 쪽으로 보낸 인원이 돌아와야만 하는데, 총교주께서 허락하실 것 같소?”

“끄응, 그냥 황제의 모가지를 치면 되는 일 아닌가? 뭘 그리 질질 끄는지 모르겠군.”

“황제를 죽인다고 해서 나라를 뒤엎을 수 있다면 나라의 주인이 십 년에 한 번씩 바뀌었을 거요.”

황제를 죽이고 권력을 잡아봐야 화무십일홍에 불과할 뿐이다.

천하가 들고 일어날 테니까.

천황교는 황제의 권력을 고스란히 빼앗는 게 목적이지 전쟁이 아니다.

전쟁을 하려 했다면 진즉 벌였을 것이다.

“어쨌든 싸움에서 이기고도 웅크리고만 있으니 교도들의 불만이 많네.”

“걱정 마시오. 황궁의 일이 곧 매듭지어질 테니까. 황군만 완전히 장악하면 천하는 우리 것이 될 거요. 우리가 사도맹이나 무림맹을 치고 천하를 피로 물들인다고 해서 누가 막을 수 있겠소?”

혁련휘는 살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전까지 수하들을 똑바로 관리하도록 하시오. 한 번만 더 엉터리 정보로 교를 위기에 빠뜨리면 교주께서도 책임을 져야 할 거요.”

“알겠네. 이제부터는 그런 일이 없을 거…….”

혈마는 자신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홱, 몸을 돌려서 방을 나서는 혁련휘의 등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끄응, 죽일 놈의 새끼. 어디서 어른이 말하는데…….’

그때 걸음을 멈춘 혁련휘가 고개만 돌리고 말했다.

“아! 교주의 첩 중에 교화라는 애가 있던데, 잠시 그 아이를 불러서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 좀 해도 괜찮겠지요?”

혈마는 머리 꼭대기에서 김이 나는 듯했다. 그도 혁련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그러나 입가에는 미소를 매달고 대답했다.

“허허허, 젊은 청춘끼리 차를 마시는데 내가 왜 반대하겠나?”

“고맙소. 혹 오늘 못 돌아가더라도 너무 찾지는 마시오.”

혁련휘는 씩 웃으며 방을 나갔다.

혈마는 잡고 있던 태사의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단단한 자단목이 가루가 되어서 떨어졌다.

최근 얻은 교화는 그가 가장 아끼는 애첩이었다. 그런데 뭐라? 오늘 못 돌아가더라도 찾지 말라고?

‘언젠가는… 반드시 네놈에게 오늘의 죄를 묻고 말 거다, 이놈.’

* * *

마존령이 체계를 완성한 지 보름째 되던 날.

용마장의 안쪽, 청운의 처소에 일단의 사람들이 모였다.

청운과 마존령의 오대사령, 각 조의 조장들로 모두 스물네 명이나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상석에 앉아 있던 청운이 입을 열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군요.”

청운의 말에 모인 이들이 눈을 빛냈다.

각자 적성에 맞는 무공을 익힌 터라 열흘 전보다 형형한 눈빛이었다.

청운은 그들의 면면을 일일이 살피고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의 일차 목표는 신혈교가 될 거요. 노룡회를 상대하는 것은 신혈교와의 상황이 매듭지어진 다음의 일이 될 것이고.”

“령주, 계획을 말씀해주시지요.”

용화청이 말했다. 그는 마존령주인 청운의 오른팔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싸움이 될 거요.”

청운이 커다란 탁자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탁자 가운데로 시선을 집중했다.

커다란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용마장이 가장 밑에 있고, 그 위에 장안, 그 위쪽에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신혈교의 위치였다.

산줄기와 계곡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서 지도만 보고도 신혈교가 코앞에 있는 듯 느껴졌다.

지난 십여 일 동안 오십여 명이 투입되어서 만들어진 지도였다.

지도에는 크고 작은 점이 삼십 개 가까이 찍혀 있었는데, 감시초소와 계곡 내에 있는 신혈교 무사들의 분소였다.

감시초소는 이십여 곳, 분소는 모두 여덟 곳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력과의 정면대결이 아니오. 우린 놈들을 외곽에서부터 철저히 부수고 들어가서 놈들의 주력을 총단이 있는 계곡 안에 고립시켜야 하오.”

청운이 기다란 막대기로 지도에 점이 찍힌 곳과 선이 그어진 곳을 가리켰다.

“일사령과 이사령은 바로 이곳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시오. 그리고 삼사령과 사사령은…….”

그가 가리키는 곳은 신혈교로 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길목에는 감시초소와 각기 백 명에서 이백 명으로 이루어졌다는 신혈교 무사들의 거점도 있었다.

“일단계로 신혈교 총단 외곽 삼십 리를 장악하고 나면 그다음…….”

작전은 모두 삼 단계로 계획되었다.

그런데 청운은 간부들에게 일단계 계획만 자세히 알려주고, 이단계와 삼단계는 대략적인 계획만 알려주었다.

천황교의 간자는 천하 어디에든 있었다.

미리 정보가 새어나가서 동료들이 함정에 빠지는 일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삼 단계까지 진행하고 나면 총단 안에 있는 놈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할 거요.”

청운의 계획을 듣고 있던 마존령의 간부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공격해서 승리하려는 계획이 아니었다.

이번 싸움은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니라 말살에 있었다.

철저한 말살.

살고 싶은 자는 도망치는 수밖에 없는 공포의 말살 작전이었다.

그 일이 가능한 것은 마존령이 소수의 고수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소수의 고수로 움직이기 때문에 진퇴가 자유롭고, 최악의 경우라 하더라도 빠져나오기가 수월한 만큼 적은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맹의 본대는 후방에서 상황에 따라 우리를 지원하게 될 거요. 이단계의 세부계획은 일차 목표지점에 도착해서 알려주겠소.”

청운이 막대기를 거두고 간부들을 둘러보았다.

“오 일 후 새벽에 출발할 거요. 그전까지 자신들의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시오. 오늘 땀 한 방울을 더 흘리면, 내일 피를 한 방울 덜 흘린다는 점, 명심하시고.”

오대사령과 조장들이 일어나서 결연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령주!”

* * *

청운은 회의를 마치고 백야대주를 찾아갔다.

자청해서 백야대주와 함께 있던 혈황은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수련을 해야 한다며 다른 사람으로 대체시키고 빠져나간 것이다.

사실은 어린놈 취급하는 것에 열받아서 더 참지 못하고 도망친 것이지만.

시비가 찻잔에 차를 따르고 물러가자 백야대주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오 일 후 출발하기로 했다며?”

“예, 어르신.”

“너희들만으로 할 수 있겠느냐?”

“신혈교만 치는 것이라면 해볼 만합니다. 그리고 사도맹의 일천 무사가 뒤에서 지원을 할 겁니다.”

“일전에는 사도맹과 무림맹이 함께 공격하고도 오히려 피해만 크게 입었다. 그런데도 가능하다고 보느냐?”

“그래서 이번에는 철저한 작전 아래에서 움직일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청청이 때문이니라. 사도맹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백야대주는 청운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바로 거부했다.

청운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사도맹을 도와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럼 무슨 부탁을 하겠다는 거냐?”

“흑야를 맡아주십시오.”

백야와 흑야의 관계를 알고 하는 말이었다.

백야대주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청운은 재촉하지 않고 느긋이 기다렸다. 자신이 직접 따라서 차도 한 잔 더 마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야대주가 마음에 안 든다는 투로 말했다.

“흑야와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니, 사도맹과 결부시키지 마라.”

“어차피 백야에게 흑야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요?”

“물론 제거해야겠지. 하지만 남의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출 생각은 없다.”

“어르신께서는 저를 남이라 생각하시는가 보군요.”

“아직은 남이지.”

“백 소저에게도 물어봐야겠습니다, 정말 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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