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211화 (211/257)

# 211

211화

“예, 오랜만입니다.”

공손한 양조생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무림맹 인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자가 누구이기에?’

‘뭐지? 맹주가 노망났나?’

힘 하나 쓸 것 같지 않은 노복을 대하는 모습이 스승을 대하는 듯했다.

양조생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혹, 백가장을 나온 것인지요?”

“맞다. 이청운이라는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느냐?”

“사도맹으로 갔습니다.”

백야대주의 한쪽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사도맹? 쯧쯧, 그래서 이놈들이 청청이를 그리 모질게 대한 것이군.’

청운이 사도맹으로 갔으니 좋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는 짓이 꼴사나워서 확 엎어버릴까 했는데 참기로 했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군. 에잉.”

백야대주는 휭하니 몸을 돌렸다.

“가자, 청아야.”

“예, 할아버지.”

백청청은 전각을 나가기 전에 무림맹 인사들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언젠가는 알게 될 거예요. 당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때쯤에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겠죠.”

그러고는 무림맹 인사들이 화를 내기도 전에 백야대주를 따라 전각을 나섰다.

양조생은 사라지는 둘의 모습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일청자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도대체 저 노인이 누군데 맹주께서 그리 대하신 겁니까?”

입가에 쓴웃음을 매단 양조생이 답했다.

“그가 바로…… 백야의 주인, 백야대주요.”

무림맹 인사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

“이런…….”

* * *

이청운이 사도맹에 몸을 담은 소식은 백가장에도 전해졌다.

“가주, 이청운이 사도맹에 몸을 의탁했다는 전서입니다.”

태사의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던 백철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도맹? 그 빌어먹을 놈들에게 의탁을 해요?”

백철군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모습에 함께 있던 백가장 장로들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궁에서 파직당하고, 무림맹에서 쫓겨난 데다 추포령이 떨어졌으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을 겁니다.”

“신비세력을 치기 위해서 사도맹을 이용하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백철군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갈 곳이 없단 말입니까? 여기로 와서 무릎 꿇고 빌면 될 것 아닙니까?”

청운 때문에 백청청과 백야마저 떠났다.

청운에 대해서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장로들도 그런 백철군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장로 중 한 사람이 백철군의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주, 조금 전에 뭐라 하셨습니까? 찾아와서 빌면 어떻게 하신다고요?”

백철군이 태사의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못마땅해도 어쩌겠습니까? 청청이가 놈을 워낙 좋아하는데.”

백청청을 시집보낼 수 있는 기회!

장로들이 백철군 편으로 돌아섰다.

“그거 옳은 말씀입니다! 허허허.”

“하긴 청청이도 이제 시집갈 때가 되었지요.”

“어떻게 하시겠소, 가주? 우리가 가서 데려올까요?”

이제 강서성을 넘어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신비세력에서 흑야가 나타난 이상 백가장도 강호에 나갈 명분이 생긴 것이다.

장로들은 가주의 명령이 떨어지길 바라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백철군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백철군이 말했다.

“대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쿵!

장로들은 심장이 떨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내심 기대했던 말이지만 직접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너무들 좋아하지 마십시오. 회의에서 결론이 나야 하니까요.”

“이, 이를 말입니까? 허허허.”

“사실 이곳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것도 좋긴 한데…… 그래도 가끔은 바깥바람을 쐬어야 뼛속에 곰팡이가 슬지 않는 법이지요.”

“물론이지요. 음허허허허.”

장로들의 얼굴에 환한 꽃이 피었다.

당장 허락이 떨어지면 지붕이라도 뚫고 날아갈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 * *

진령의 용마장원 뒤쪽 계곡에는 심사를 받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지난 구 일 동안 심사를 받은 사람만 해도 일천 명에 이르렀다.

그중 심사를 통과한 사람은 모두 백오십여 명.

개중에는 용천관의 손자인 용화청과 갈환도 있었다.

특히 그 두 사람은 심사를 통과하자마자 마존령의 잔일을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자처한 것이다.

심사를 받으러 왔던 사람들은 용화청이 잔일을 하는 걸 보고 바짝 긴장했다.

덕분에 심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말썽을 피우는 자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떠더더덩!

강맹한 기운이 연달아 격돌하면서 귀청을 찢는 굉음이 계곡을 뒤흔들었다.

“크읍!”

마흔 살가량의 갈의를 입은 중년인이 뒤로 주르륵 물러선 후 망연한 시선으로 청운을 바라보았다.

청운은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그를 향해 검을 뻗은 자세였다.

“일단 합격입니다. 그런데 더 하시겠습니까?”

갈의 중년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검을 거꾸로 쥐고 예를 취했다.

“염왕문의 하후관, 패배를 인정하오.”

무공에 자신이 있었다.

마도에서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열을 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사도맹주라 해도 백 초식 이내에는 자신을 이길 수 없을 거라 여겼다.

사실 이번에 나선 것도 무공비급이 탐나서라기보다는, 이청운이란 자를 꺾어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패했다.

화경에 오른 자신이.

그것도 이십이 초식 만에.

아마 상대가 마음만 먹었다면 더 빨리 승부가 났을지도 몰랐다.

하후관은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할 뿐 패배를 인정하지 못할 만큼 철면피가 아니었다.

“귀공을 마존령 오대 사령 중 하나로 중용할까 하오.”

하후관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청운에게 패했다고 해서 자존심마저 팽개친 것은 아니었다.

자신과 같은 직위를 지닌 자가 넷이나 더 있다는 것에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청운이 말했다.

“현재 오대 사령은 둘이 확정되었소. 그중 한 사람은 용화청, 용 공자요. 그리도 또 다른 한 사람은 냉혈마도 육송이오.”

하후관의 눈이 커졌다.

솔직히 용화청은 맹주의 손자여서 그렇지 실력만 따지면 자신보다 아래였다.

그러나 냉혈마도 육송은 아니었다.

그는 육송과 대결을 해본 적이 있었다.

육송은 백 초를 겨루고도 승부를 내지 못한 강자였다. 그가 오대사령 중 한 사람이라면 자존심 상할 것도 없었다.

“알겠소. 령주의 뜻에 따르겠소이다.”

“고맙소.”

청운은 미소를 지으며 공수의 예를 취했다.

이로써 화경에 도달한 고수만 셋이나 얻었다.

이번 마존령 단원을 뽑는 심사는 대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콰광!

그때 뒤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이제 인정하지지?”

혈황의 몰아붙이는 듯한 목소리에 이어서 억눌린 목소리가 들렸다.

“끄응, 인정하마. 내가 졌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삼십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자였다.

짙은 적색 무복을 입고 있는데, 장창을 들고 있었다.

마창 송기중.

마도제일창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고수였다.

“청운 아니, 령주! 이 친구도 오대사령으로 해.”

“알았……네. 그렇게 하지.”

청운은 둘이 있을 때처럼 존대를 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잘랐다.

혈황은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대놓고 불만을 터트리진 못했다.

‘제길, 변용을 할 때 나이를 더 먹은 모습으로 할 걸.’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기왕이면 젊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이십대 중반의 모습으로 변용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기 때문에 바꾸기도 애매했다.

어쨌든 그렇게 오대사령 중 넷이 확정되었다.

오대사령 중 다섯 번째 사람이 확정된 것은 그로부터 한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심사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어느덧 마존령 단원으로 뽑힌 무사가 이백 명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그런데 심사대상이 다섯 사람쯤 남았을 때 그가 나섰다.

나이는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강호에 알려진 이름도 아니었다.

“고한이오. 아직 별호는 없소.”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청운은 그를 얕보지 않았다.

“이청운이오.”

고한은 칼을 무기로 사용했다. 면이 상당히 좁은 칼이었다.

언뜻 보면 왜도처럼 생겼는데, 그보다는 휘어짐이 적어서 검에 가까웠다.

길이는 석 자 다섯 치 정도.

그 검을 보고 혈황이 말했다.

“구려검(句麗劍)?”

고한은 흠칫하며 혈황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검을 알아보는 사람은 처음이오.”

“놀랍군. 구려검을 쓰는 사람을 보게 되다니.”

청운은 구려검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혈황이 그리 말할 정도면 예사롭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해서 겨루어 봅시다.”

“그리하겠소.”

고한은 칼을 빼들고 옆으로 뻗었다. 웅혼한 도기가 도신에서 피어났다.

청운도 검을 들어 앞으로 뻗었다.

두 사람의 비무는 이십칠 초식에서야 결론이 났다.

승부는 청운의 승리였다.

하지만 청운은 고한의 초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마 전이었다면 이긴다 해도 부상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고한의 초식은 신비로울 정도로 절묘했다.

전체적인 실력도 앞서 싸운 냉혈마도나 염왕검 하후관보다 반 초식 정도는 더 강한 듯 느껴졌다.

“역시 내가 패했구려.”

고한은 의외로 패배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정말 놀라운 도법이었소.”

“높이 평가해줘서 고맙소.”

“고 형께서 오대사령 중 한 자리를 맡아주시오.”

“명대로 하겠소.”

말투만 보면 청운보다도 더 서생 같은 사람이었다.

‘정말 예의가 바른 사람이군.’

청운은 고한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런데 고 형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사도맹에 들어온 거요?”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천황교와 싸우기 위해서요. 본래는 무림맹에 갈까 했소. 그런데 그들은 사문이 변변치 못한 나를 반기지 않더군요.”

청운은 고한이 무슨 일을 겪었을지 짐작하고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정파의 그 오만함이 언젠가는 크게 문제가 되리라.

하지만 곧 무언가를 깨닫고 눈이 커졌다.

“고 형이 천황교라는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요?”

신혈교라면 몰라도, 천황교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강호 활동도 많지 않은 그가 어떻게 그 이름을 안단 말인가?

그런데 고한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나왔다.

“스승님께서 과거 천황교의 비밀을 파헤치려 한 적이 있었소. 결국 그들에게 들켜서 중상을 입고 겨우 목숨만 구해서 빠져나왔소만.”

“혹시 천황교의 총단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그건 모르오. 스승님께서도 추적 중에 들켜서 천황교의 총단 위치는 알아내지 못하셨소.”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그것만 알아냈어도 싸움이 조금은 쉬워질 텐데…….

그러나 아직은 실망할 때가 아니었다.

“정확하진 않은데…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로는, 북경 인근, 아니면 태산 인근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소.”

“그래요?”

그 정도 정보만 해도 어딘가.

신혈교의 간부를 고문하고도 알아내지 못한 사실이었다.

* * *

마존령의 단원 심사에 통과한 사람은 모두 이백이 명으로 결정되었다.

마존령주 아래에 오대사령을 두고, 각 사령 아래에 삼십 명씩 배정되었다. 나머지는 마존령주 직속 호위와 전령으로 삼았다.

청운은 모든 단원들에게 약속대로 무공 구결을 전수해주었다.

일인 당 세 가지 무공을 익힐 수 있었다.

단원들은 환호했다. 열두 가지 무공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줄 알았는데 세 가지를 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마존령의 조직체계가 거의 다 정비되었을 때, 백청청이 청운을 찾아 용마장원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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