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201화 (201/257)

# 201

201화

퍼버벅!

실처럼 가느다란 혈기가 두 장로의 몸을 꿰뚫었다.

염왕검과 지옥사검이 검을 앞으로 내민 자세로 허공에 멈췄다.

수십 가닥의 붉은 혈기가 둘의 몸을 꿰뚫고 허공에서 흐느적거렸다.

신군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도망쳐! 어서!”

그 순간, 청운의 손이 신군에게로 향했다.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혈기가 신군을 뒤덮였다.

“아, 안 돼! 크아악!”

신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몸에서는 피분수가 솟구쳤다.

* * *

협곡 아래쪽의 싸움은 시간이 가면서 더욱 격렬해졌다.

신혈교 무사들 사이로 흑야가 나타나서 사도맹을 기습하기 시작했다. 신혈교만 해도 벅차거늘 흑야가 합세하자 균형이 빠르게 무너졌다.

그나마 사파의 최고 정예들이 모였기에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둘 쓰러져 가는 부하들 모습에 용천관이 분노했다.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다! 네놈들을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우르르르릉.

분노의 사자후를 터트린 용천관의 쌍장이 쉬지 않고 적을 찢어발겼다.

그의 앞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적은 너무도 많았다.

용천관은 내공의 소모가 극심해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선 그는 흐트러진 숨을 고르며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대로는 안 돼.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전멸이다.’

총단에는 이곳에 온 무사들보다 더 많은 무사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최정예 무사들이 빠진 사도맹은 알맹이 없는 만두와 같다.

문제는 알맹이가 빠진 사도맹을 정파 놈들이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빌어먹을 놈들. 신호탄을 쏘아 올린 지 벌써 한 시진이 넘었거늘.’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무림맹 고수들이 구원해주는 길뿐이다. 그러나 무림맹 쪽 무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용천관은 사자후를 터트리며 부하들의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렸다.

“곧 증원군이 올 것이다! 어떡게든 버텨라!”

그러고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신혈교 무리에게 뛰어들었다.

“내가 흑사자 용천관이다! 크하하하하!”

한편, 능선 위에 나타난 일단의 무리가 협곡을 향해 내달렸다.

그들은 신호탄을 보고 달려온 무림맹 무사들이었다.

하지만 인원이 많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오백여 명. 전체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숫자였고 정파의 최고 고수들이 빠져 있었다.

다행이라면 무림맹의 정예라 할 수 있는 오대단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온 것마저도 제갈신기가 총군사 자리마저 내던지며 겨우 끌어낸 결과였다.

장로와 각 문파의 수장들은 눈엣가시 같은 제갈신기가 스스로 물러선다고 하자 적선하듯이 오단을 보낸 것이다.

단숨에 능선을 내려간 그들은 곧장 신혈교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쳐라!”

“신혈교 놈들을 모조리 도륙하라!”

“사도맹을 도와서 적을 쳐라!”

최정예로 구성된 오단은 싸움으로 지친 신혈교 무리를 한쪽에서부터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오단이 뒤쪽에서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오자 사도맹을 포위하고 있던 신혈교의 포위망에 구멍이 생겼다.

게다가 지휘관들인 신군과 장로들이 청운과의 싸움으로 빠지는 바람에 제대로 된 지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혈교 신도들은 갑작스런 습격을 받고 우왕좌왕하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사도맹 무사들은 무림맹 무사들이 나타난 걸 알고, 바닥까지 떨어졌던 사기가 다시 솟구쳤다.

“힘내라! 무림맹이 왔다!”

“젠장, 정파 놈들을 막아!”

처음 신혈교는 신도를 둘로 나눴다. 부교주인 신군이 이끄는 쪽은 사도맹을 치기로 했고, 무림맹은 교주인 혈마가 공격하기로 했다.

그런데 무림맹 무사들이 대거 나타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주가 이끄는 교도들에게 문제가 발생했단 말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모르는 또 다른 무림맹 무리가 있었단 말인가?

‘젠장! 왜 명령이 없지?’

일선에서 신혈교 무리를 이끌던 상천관 대주는 의문이 들었다. 부하들과 함께 최전방에서 싸우는 야전 지휘관이기에 작은 변화에도 민감했다.

무림맹 무인들이 나타났다면 지휘소에서 다음 명령이 내려와야 하는데 아무 명령도 없자 의문이 들었다.

서걱!

상천관은 눈앞의 사도맹 무인 목을 베고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절벽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던 신군과 장로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긴 했는데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듯했다.

그것도 서너 명밖에 남지 않았고, 마침 그가 볼 때는 상대의 공격에 의해 한 사람이 훌훌 날아가고 있었다.

‘젠장! 당했어!’

믿고 싶지 않았지만 정황상 신군과 장로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이 분명했다.

‘진무사가 협곡에 없는 걸 보니 위로 올라갔군.’

그는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급변하는 전장의 흐름이 이미 놈들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신도들이 전력을 다해 사도맹과 무림맹 놈들을 공격하고 있지만, 이미 포위망에 구멍이 뚫리고 있었다.

‘젠장 틀렸어.’

전장은 기세 싸움과 더불어 흐름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미 둘 다 적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울 것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물러서야 한다.

상천관은 큰 소리로 외쳤다.

“도망치는 놈들은 놔둬라! 더 이상 추적하지 마라!”

이곳에 있는 신혈교 신도들 중 최고위 지휘관인 상천관의 외침에 일선 지휘관들이 부하들을 뒤로 물렸다.

“물러서라!”

“추적하지 마라!”

사도맹 무사들은 포위망이 완전히 뚫리자 빠르게 멀어졌다.

부상이 심한 자들도 이를 악물고 걸음을 옮겼다.

무림맹 오단 역시 적의 공격이 주춤하자 방어진만 공격을 늦추고 서서히 물러섰다.

사도맹이 후퇴하는데 무리해서 적진으로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 * *

신혈교의 살아남은 장로들은 무시무시한 청운의 공격을 피해서 뒤로 멀찌감치 피했다.

그 순간, 청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윽!’

우웅! 찌지지지징!

혈도를 타고 흐르던 내공에 이상이 생겼다. 몸 안에 잠재되어 있던 세 개의 기운이 엉키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일으킨 혈황신공이 결국 문제가 된 것이다.

혈황신공을 운용하자 혈기가 온몸을 휘저었고 약해진 내공을 밀어냈다. 이에 화들짝 놀란 뇌기가 천명진기를 도와서 혈기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크윽, 이게 무슨?’

붉은 혈기에 둘러 쌓여 있던 청운의 몸에서 푸른 뇌전이 번쩍였다.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청운은 이가 부서지도록 악물었다. 비슷한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격렬하게 반응한 적은 없었다.

청운은 들끓는 내공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양의심법을 운용했다.

하지만 들끓은 진기가 쉽게 안정이 되지 않았다.

‘크윽, 진정이 안 되다니.’

순간적으로 청운의 몸이 순간 비틀거렸다.

“으윽.”

입에서 신음마저 흘러나왔다.

멀찌감치 물러섰던 장로들이 눈을 번뜩였다.

“놈도 심한 내상을 입었다!”

“기회야! 함께 치세!”

장로 셋이 몸을 날리며 청운을 공격했다.

퍼버버버벙!

콰콰콰콰쾅!

연속으로 몰아치는 공격이 청운을 강타했다.

청운이 다급히 막으려 했지만 혈기와 뇌기가 따로따로 놀면서 제대로 된 위력이 발휘되지 않았다.

“크윽!”

결국, 청운의 몸이 실 끊어진 연처럼 튕겨나갔다.

“자, 잡았다!”

“놈을 처치했다!”

“이번 기회에 놈을 완전히 끝내야 하네!”

그사이, 맥없이 튕겨져서 나뒹군 청운이 바닥을 차고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헛! 저놈이!”

장로들은 대경했지만 오히려 추적하려던 걸음을 멈췄다.

놈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치명상을 입지는 않은 듯했다. 그렇다면 목숨을 걸고 쫓을 이유가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신군이 당하던 모습이 공포로 남아 있었다.

* * *

한편, 무림맹은 지원대를 급파하고도 여전히 천천히 이동했다.

굳이 서둘러서 신혈교 본거지를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사도맹이 신호탄을 보냈다는 것은 그들과 신혈교가 제대로 붙었다는 말이었다.

피해가 누적되어서 차후 무림에서 사파 놈들을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계략을 꾸몄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러 능선 아래 넓은 분지를 지날 때였다.

투두두두둥!

슈우우우욱!

무언가 날카로운 파공성이 협곡에 메아리치며 하늘에 시커먼 무언가가 날아올랐다.

“화살?”

“막아!”

“적의 습격이다!”

적의 습격을 대비하며 천천히 나아가던 무림맹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당황하지 않았다.

선두에서 나아가던 자들이 하늘 위로 장력을 쏘아 보냈다.

무기를 뽑아 들고 휘둘러서 화살을 쳐내기도 했다.

화살 공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터라 피해를 입긴 했어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곧 화살비가 멈췄다.

그리고 능선 위에 서 있던 혈마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 무림맹 놈들의 심장을 꺼내서 씹어 먹을 것이다! 모조리 주살하라!”

혈마의 명령이 떨어지자, 능선에서 신혈교 무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신혈천하!”

“만마지존!”

신도들은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무림맹을 향해서 달려 나갔다.

그 모습에 무림맹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번 일을 끝으로 총군사 자리를 내놓기로 한 제갈신기는 두 눈을 차갑게 가라앉히며 큰 소리로 외쳤다.

“놈들이 온다! 구파는 중앙! 세가연합은 좌측! 무림연합은 우측! 사신단은 후미에 대기하라!”

몇몇 무림인사들이 제갈신기의 명령에 미간을 찌뿌렸다. 무림맹의 주 전력 중 하나인 사신단이 후미로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따질 시간이 없었다.

제갈신기는 고개를 돌려서 곁에 있는 무림맹주 양조생에에 말했다.

“맹주님, 자리를 지키시다가 놈들의 수장이 나타나면 상대해주십시오.”

“알겠네.”

제갈신기의 시선이 검왕에게로 향했다.

“놈들이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검왕 어르신께서는 상황을 봐서 나서주십시오.”

검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적의 수장을 상대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의 뜻에 따라서만 움직일 수 없었다.

천뇌라 불리는 제갈신기가 그리 말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지.”

제갈신기는 다시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서 사신단 중 삼단의 단주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신호를 하면 단원들을 이끌고 돌격하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총군사님.”

남궁룡과 영호천이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천일영도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가 가라앉았다.

싸움은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무림맹은 전력의 손실이 거의 없던 터라 사도맹과 달리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혈마는 무림맹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하게 대항하자 참지 못하고 모습을 보였다.

“양조생! 이리 나와서 목을 내밀어라! 본좌가 너의 목을 잘라주겠다!”

양조생이 기다렸다는 듯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오냐, 이놈! 내 너를 지옥으로 보내주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두 사람은 가공할 기운을 내뿜고 있는 상대를 바로 알아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 거리를 좁힌 두 사람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패왕으로 불리는 무림맹주 양조생은 처음부터 그의 독문무공을 꺼내서 혈마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혈마의 무위는 결코 양조생의 아래가 아니었다.

가공할 기운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휘돌자, 근처에 있던 자들은 멀찌감치 물러섰다.

천지가 진동하고 땅이 뒤집어지는 엄청난 대결이었다.

두 사람이 대결하는 동안, 검왕은 그 인근에서 신혈교의 고수 셋을 상대하며 그들이 두 사람의 대결에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정파 제일고수인 검왕의 실력으로도 셋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이자들이 누군데 이리도 강하단 말인가?’

경시하던 마음을 버린 그는 신중하게 자신의 진신절학을 펼치며 세 사람을 상대했다.

양조생과 검왕이 나서서 적의 수뇌부를 상대하는 사이 양측의 싸움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일진일퇴의 공방이었다.

제갈신기는 뒤편에 서서 전체를 조율했다.

“중앙을 지원하라! 우측은 방어를 튼튼히 보강하고 물러서지 마라!”

“예!”

제갈신기의 명령을 곁에서 보좌하던 군사들이 빠르게 전달했다.

싸움이 팽팽하게 진행될 때, 우측에 있던 적의 뒤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왔군.”

제갈신기는 두 눈을 빛냈다.

그는 적의 습격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무림맹 무력단체 중 셋을 장로들과 함께 후미로 돌렸다.

그런데 우회시킨 전력이 드디어 놈들의 후미를 친 것이다.

“뒤에 적이다!”

“놈들을 막아!”

신혈교 쪽에서 악다구니가 터져 나왔다.

팽팽하던 접전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제갈신기는 쐐기를 박기 위해서 마지막 패를 꺼내들었다.

“사신단은 출진하라!”

“존명!”

남궁룡과 영호천, 천일영은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튀어나가며 부하들에게 외쳤다.

“모두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

커다란 함성과 함께 사신단 중 삼단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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