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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200화 (200/257)

# 200

200화

청운은 절벽 쪽으로 붙으며 위에서 보이지 않게 모습을 숨겼다.

만화은신사형을 펼쳐서 어둠 속에 모습은 숨긴 그는 비천무영신법을 펼치며 절벽을 타고 올랐다.

‘만화은신사형을 펼치고도 무공을 펼칠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지만 지금은 신혈교의 수장들이 있는 곳까지 무사하게 접근하는 게 우선이었다.

사자바위 쪽은 경사가 완만했기에 오르고 내리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설혹 직각으로 이뤄진 절벽이라 할지라도 청운의 발길을 붙잡지는 못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경극을 관람하듯 구경하고 있던 신군과 신혈교 장로들은 사라져 버린 청운을 찾기 위해서 협곡 아래로 고개를 죽 내밀었다.

휙!

한 줄기 바람이 아래에서부터 치솟으며 무언가 희끄무레한 물체가 솟구쳤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자들이 화들짝 놀라며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섰다.

“쥐새끼들! 여기 있었구나!”

아래에서 솟구친 물체는 청운이었다.

그의 두 눈에서 줄기줄기 시퍼런 한광이 뿜어졌다.

치켜세운 오른손에는 시리도록 맑은 검이 들려 있었고, 검끝에서 둥근 광원이 피어났다.

“타핫!”

청운은 기합과 동시에 적을 향해서 검을 내질렀다.

쩌저저정!

어둠 속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청운이 뇌신이 되어 모두에게 신벌을 내리는 것 같았다.

“막아!”

신군은 급히 내공을 끌어올리며 쌍장을 내밀었고, 장로들도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며 청운이 쏘아낸 벼락에 맞섰다.

콰콰콰쾅!

불규칙적으로 뿜어진 벼락은 가지를 치며 신군과 장로들이 서 있던 자리를 초토화했다.

뿌연 흙먼지를 뚫고 누군가 튀어나오며 검을 휘둘렀다.

스컹 챙!

청운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상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신군이었다.

순간 청운은 부딪치면서 생긴 반동을 이용해서 몸을 물리며 빙글 재주를 넘었다.

연이어 환우무삼검의 무상혈과 무상뇌를 연거푸 쏟아냈다.

신군 역시 광폭한 공세를 펼치며 청운의 공격에 맞섰다.

청운의 무공은 신군에게 뒤질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래쪽에서 격렬한 싸움을 겪은 터라 내공이 많이 소모된 상태였다.

그 바람에 신군의 공격을 온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옷 여기저기가 예리하게 잘려나갔다.

신군은 청운을 노려보며 예리한 안광을 뿜어냈다.

“제법이구나!”

신혈교 장로들이 신군 주위로 넓게 포진하며 청운을 포위했다.

청운은 절벽을 뒤로하고 배수의 진을 친 형국이 되었다.

‘이자가 신혈교의 교주일까? 아니면 다른 자?’

눈앞의 중년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통성명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크아악!”

“막아! 놈들을 몰아붙여!”

저 아래 협곡에서 요란한 고함과 비명, 그리고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며 청운을 압박했다.

사도맹이 피해가 많이 입긴 했어도 더 이상 적이 늘어나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장들이 공격에 가담한다면 사도맹은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컸다.

스르륵.

청운은 환우구검을 펼치기 위해서, 늘어트린 검을 옆으로 올리며 날갯짓을 하듯이 어깨 높이로 올렸다.

청운이 가타부타 말도 없이 공격 자세를 취하자 신군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급하긴 급했나 보군. 하긴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귀에 거슬리겠지. 크크.’

청운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차린 신군은 서둘러서 장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놈도 지쳤다! 쳐라!”

“광폭! 흐핫!”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우측에 있던 노인이 기합과 함께 앞으로 튀어나갔다.

암천일광검(暗天一光劍).

노인, 아니, 일광마 요천귀란 자의 성명절학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빛이 요천귀의 검으로 빨려들어 갔다. 주위가 삽시간에 어둠에 잠겼다.

번쩍! 챙!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뻗어온 검을 막아낸 청운은 연달아 공격해 들어오는 검을 빠르게 쳐냈다.

요천귀가 공격을 시작하자 신혈교 장로 중 검을 든 셋이 자신의 성명절기를 펼쳤다.

염왕검(閻王劍)의 염라십팔검(閻羅十八劍).

유성잔마(流星殘魔)의 유성추월검(流星追月劍).

지옥사검(地獄死劍)의 지옥멸마검(地獄滅魔劒).

그들의 손에서 오래전 절전되었다고 알려진 개세절학(蓋世絶學)이 쏟아졌다.

문제는 그들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포위한 채 기회를 노리고 있는 장로가 넷이나 더 남아 있었다.

그들은 청운이 다른 장로의 공격을 쳐낼 때 자신들의 무공을 사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청운이 지친 기색을 보이자, 청운을 향해서 각자의 무공을 펼쳤다.

슈슝!

파바방!

손 그림자가 나비처럼 춤추며 청운을 덮쳤다.

뜨거운 불덩이가 청운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고, 발밑에서는 얼음 기둥이 솟구쳤다.

청운은 곧장 환우구검에서 환우무상검으로 검세를 바꿨다.

몸 주위에 검의 잔상이 만들어지더니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상대의 공격을 받아냈다.

그 직후!

파바바방!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이 거대한 폭음과 함께 주위를 밝혔다.

청운을 공격하던 신혈교 장로들이 폭발과 함께 뒤로 살짝 물러섰다.

찰나의 순간 약간의 숨 쉴 공간이 만들어졌다. 청운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환우무상검의 무상천을 펼쳤다.

신군이 청운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섰다.

투캉! 채앵!

타다다다당.

서른여섯 번의 공방이 눈 깜박일 순간에 오갔다.

공력이 많이 고갈된 바람에 청운은 무상천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밀리지도 않았지만.

청운은 신군을 향해서 몸을 회전하며 파고들었다.

신군이 미간을 찡그리며 뒤로 훌쩍 물러서자, 장로들이 그의 양옆을 스치듯이 지나치며 청운을 공격했다.

회리리릭!

흑사편(黑蛇鞭)이 뱀처럼 허공을 가르며 청운의 허리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청운은 깜짝 놀라며 신형을 비틀었다.

스팟!

옆구리가 뜨끔하더니 불에 지진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독?’

청운은 세 걸음이나 물러서며 자세를 잡았다.

옆구리에 난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흑야 무리와 싸우던 중 입은 상처 위에 다른 상처가 덧씌워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신이 만독불침은 아니지만 천독불침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흑사편에 발라진 독도 보통 독이 아니었다.

흑사편에 발라진 칠보단혼산(七步斷魂散)과 단장부심열독(斷腸腐心熱毒)은 극독으로 분류되는 절독이다.

특히 한번 당하면 일곱 발을 떼기 전에 피가 굳어서 절명한다고 알려진 칠보단혼산은 삼대절독에 버금가는 강호 오대절독 중 하나였다.

‘혈황 님께서 독을 조심하라 그리 일렀거늘.’

만독불침이 되기 전까지는 독공을 사용하는 자를 조심하라 했었다.

지금처럼 무기에 독을 바른 자가 보이면 최우선으로 처리하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한순간의 방심으로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버틸 만하다는 것이다.

푹, 푹푹.

청운은 독이 퍼지지 못하게 혈도를 막았다. 상황이 지금보다 좋다면 독을 한곳으로 모아서 배출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청운은 흑사편을 사용한 자를 쳐다보았다.

흑사편을 휘두른 자는 뒤쪽에 대기하던 마른 체형의 장로 중 한 명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자는 득의의 표정으로 웃어댔다.

“캬캬캬. 내 흑사편 맛이 어떠냐? 벌써 힘이 빠지는 것이냐?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고작해야 칠보단혼산과 단장부심독이 발라져 있는 것뿐이니.”

“역시 흑귀 님입니다.”

“크크, 아무렴. 흑귀의 흑사편에 스치고 살아남은 자는 없었지.”

“그럼 기다리면 되겠군.”

신혈교의 장로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물러섰다.

그들은 청운이 독에 중독된 걸 알고 여유를 부렸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청운이 쓰러지거나 힘이 빠질 것이다. 저 사나운 놈을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데 왜 쓸데없이 힘을 쓴단 말인가.

그러나 신혈교 부교주인 신군만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독에 중독된 것은 맞는 것 같은데, 너무 태연해.’

독에 중독된 자치고는 너무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손을 섞어 봤기에 혼자서 청운을 상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뛰어넘는 무위를 가진 자가 그 정도 독에 쉽게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공이 많이 소모되어서 버티지 못하는 건가?’

신군은 청운을 경계하며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한편, 청운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좋아! 어디 누가 죽는가 해보자!’

으드득.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쥔 그는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을 폈다.

그러고는 턱을 살짝 당기며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악인들을 지옥으로 보낼 수만 있다면, 마공이라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우우우웅!

단전에서 신경을 잡아끄는 공명음이 들려왔다.

청운의 기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신혈교 장로들이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뭐지?”

확 바뀌어버린 청운의 기도에 의아함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싸움을 자포자기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분하고 억울해서 화를 삭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몸 주위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신군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그치듯이 명령을 내렸다.

“공격해라! 놈을 쳐!”

기다리기만 하면 알아서 쓰러질 청운을 공격하라니.

장로들은 신군의 명령을 듣고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군은 답답한지 앞으로 튀어나가며 노성을 터트렸다.

“어서 놈을 죽여!”

뒤늦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장로들이 청운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한번 장로들의 공격이 청운을 향해 쏟아졌다.

그 순간 청운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후아악!

동시에 청운의 몸에서 거대한 태풍 같은 기운이 뿜어졌다.

신군과 장로들의 공격이 벽에 막힌 듯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태풍 같은 기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신혈교의 장로들을 집어삼켰다.

콰과광!

“크윽!”

“헉!”

어둠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신혈교의 장로들이 뒤로 날아가서 나뒹굴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고개를 쳐든 신군과 장로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나마 신군이 전력으로 상대하지 않았다면 심각한 내상을 입거나, 죽었을지도 몰랐다.

장로들은 거대한 기운이 뿜어내고 있는 청운을 바라보았다.

청운이 붉은 아지랑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넘실거리는 붉은 기운과 싸늘하게 굳은 표정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청운은 오연하게 서서 신군과 장로들을 내려다보았다. 열릴 것 같지 않던 그의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혈황을 닮은 말투가 흘러나왔다.

“다 까불었느냐?”

신군과 장로들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옥의 음부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인 양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벅.

청운이 발을 내디뎠다.

쿵!

사뿐히 밟았을 뿐인데 산이 뒤흔들리는 듯했다.

신군이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그가 온몸을 격하게 떨며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서, 설마…… 혀, 혀, 혈황?”

신군은 혈황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혈황의 독문무공인 혈황신공에 대해서도.

청운의 몸을 두르고 있는 붉은 아지랑이가 자신이 들었던 혈황신공과 비슷했다.

그는 청운이 한 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정말 혈황신공이라면 도망쳐야 한다. 총교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저주받은 무공이 현세에 나타나다니!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머릿속에서는 어서 도망치라고 알려왔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독사 앞에 선 개구리처럼 온몸이 굳었다.

장로 중 둘이 혈황신공의 무서움을 알지 못하고 청운을 공격하는 게 보였다.

슈슈슉!

염왕검과 지옥사검이 검강을 일으키고는 신검합일을 한 채 청운을 공격했다.

그 모습에 신군이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안 돼!”

하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청운의 몸을 두르고 있던 붉은 혈기가 둘의 공격에 반응했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던 혈기가 그대로 염왕검과 지옥사검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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