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198화
한편, 제갈신기가 보낸 전령은 청운에게 무림맹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협곡을 달렸다.
그러나 한참을 달려도 청운과 사도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령은 청운에게 죽임을 당한 혈살마대 대원들의 시신이 보이자 빠르게 달리던 걸음을 늦추었다.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졌군.’
전령은 청운과의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서 시체를 살폈다. 그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낌 전령이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파밧.
쾅!
전령이 서 있던 자리에 장력이 떨어지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깜짝 놀란 전령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공격한 자를 찾았다.
온몸을 검은 야행복으로 두른 복면인이 보였다.
복면인이 전령을 보며 비릿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도맹 놈인가 보군.”
싸늘한 한광이 그의 두 눈에서 쏟아졌다.
전령은 주춤주춤 물러섰다.
‘내 상대가 아니다.’
그 역시 절정에 다다른 실력을 지녔지만 싸움보다는 경공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도망칠 궁리를 하는 전령을 향해서 복면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도망치려고? 어디 한번 도망쳐 봐라. 크큭.”
팟!
전령은 싸움을 포기하고 경공을 펼쳤다. 하늘 높이 솟구친 그는 청운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나 복면인은 혼자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전령이 솟구치자 벼락처럼 암기가 쏘아졌다.
“큭!”
털썩.
암기에 맞은 전령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
흑의 복면인 하나가 전령의 품을 뒤지더니 서찰을 꺼내서 예의 복면인에게 내밀었다.
“어디 무슨 내용인지 볼까?”
복면인은 서찰을 빠르게 읽더니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역시 그랬군.”
흑의 복면인은 서찰을 품에 집어넣더니 명령을 내렸다.
“나는 먼저 돌아갈 것이니 너희들은 이들을 수습하고 오도록.”
“존명!”
명령을 내린 복면인의 모습이 현장에서 사라지자, 남겨진 자들은 시체를 수습했다.
* * *
혈마는 손에 쥔 서찰을 와락 움켜쥐며 조소를 지었다.
“후후후후, 역시 고의로 속도를 늦춘 것이었군.”
쌍뇌 역시 서찰의 내용을 아는 듯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순조롭게 흐르는군요,”
“무림맹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좋겠지. 놈들은 지금 어디쯤 왔느냐?”
“선발대는 사자곡에 있고, 본진도 귀곡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혈마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두 눈에서 살기가 넘실거렸다.
“놈들을 모조리 염라대왕에게 보내줘라.”
* * *
하룻밤이 흐르고 다시 밤이 찾아왔을 때 청운과 별동대는 약속된 마지막 장소에 도착했다.
길을 뚫고 오는 동안 몇 차례 크고 작은 습격이 있었지만, 청운과 별동대는 별 어려움 없이 적을 물리쳤다.
용화청이 청운에게 말했다.
“진무사, 붉은 사자바위가 저기 저 바위 같소.”
청운은 용화청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협곡의 오른편 절벽의 중간에 커다란 갈기를 가진 사자머리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사자머리 아래에서 휘어지는 협곡은 다른 곳보다 넓었다.
청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른편 사자바위 쪽 절벽이 다른 곳에 비해서 낮았다. 뒤쪽으로 완만한 경사가 있어서 충분히 협곡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본진을 기다리지요.”
신혈교의 본거지에서 멀지 않은 위치였다. 이곳에서 모인 후 무림맹과 약속시간에 맞춰서 공격하면 된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놈들을 큰 혼란에 빠트리고 적은 피해로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들지?’
어젯밤부터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느낌이 청운을 압박했다.
청운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애써 불안감을 떨쳐냈다.
그런 청운을 보며 용화청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소?”
“아, 미안하오. 그보다 경계병을 뽑아서 주위를 살펴주시오.”
“알겠소이다.”
용화천은 곧장 예를 갖춘 후 물러났다.
별동대에서 경비에 설 인원을 차출했다.
협곡 위와 앞뒤에 적절하게 인원이 배치되었다.
그렇게 별동대는 본진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시간이 흘러 해가 저물었다. 산속은 생각보다 일찍 밤이 찾아온다.
본진을 기다리는 동안 어느새 사위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청운은 저무는 석양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슬아슬하겠군.’
사도맹 본진이 곧 도착할 것이다.
무림맹과 약속된 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놈들 역시 자신들이 가까이 접근한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협곡의 높은 절벽 사이로 드리운 달빛이 휘영청 밝았다. 달빛을 받은 사자머리가 붉게 타올랐다.
‘저래서 붉은 사자머리군.’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번 일이 끝나면 함께 석양에 불타는 사자머리를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훗, 주책이구나. 풍진 강호에 나와서 여인이나 생각하고 있다니.’
며칠 보지 못한 백청청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상은 다 나았는지 모르겠군.’
흑야의 공격을 받아서 기절했던 백청청이다. 워낙 강한 그녀였기에 크게 걱정은 되지 않지만 신경이 쓰였다.
청운이 주위 경관을 감상할 때였다.
스스스.
무언가 미세한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꿈틀.
청운의 미간이 구겨졌다.
‘오지 않기를 바랐건만.’
아무래도 신혈교가 움직이는 것 같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곳의 지형은 습격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저 멀리 능선 너머에서부터 무언가 기척이 느껴졌다. 피어오르는 기세가 거대한 것을 봐서는 대규모 인원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용 공자. 손님들이 온 것 같소.
-습격이오?
-그런 것 같군요. 경비무사들을 은밀하게 뒤로 물리고 모두에게 알리시오.
-예, 대인.
청운은 용화청에게 전음을 보내서 위기를 알렸다. 용화청은 청운의 신호에 맞춰서 별동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전방에 나가 있던 정찰대와 경비를 서던 이들이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청운은 안광을 돋우었다.
밤인데도 저 멀리 능선 위의 나뭇가지조차 선명하게 보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무언가 점은 물체들이 능선을 빠르게 지나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많다.’
잠깐 본 숫자만 해도 백이 넘어갔다. 그런데도 끝나지 않고 놈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청운은 고개를 돌려 다른 곳도 살폈다. 숲 사이의 공간에 난 수풀 사이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놈들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 듯했다.
청운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몸을 은신한 채 적을 맞을 준비를 하는 별동대가 보였다.
‘이들만으로는 안 된다.’
별동대 실력이 뛰어나다지만 모습을 보인 자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동안 나타난 놈들을 생각해보면 이들 역시 혈룡단으로 강화된 무사들일 것이다.
사도맹 본진이 함께 싸운다면 모를까 지금 인원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청운이 빠르게 판단을 할 때 정체불명의 인영들은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이곳을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곳을 포기하고 물러서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빙 돌아가야 한다. 그리된다면 무림맹과 약속한 시간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이곳을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게 끝장이다.’
청운은 이를 강하게 물었다.
잠깐 동안 별동대를 뒤로 물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새 놈들이 지척까지 다다랐다.
모습을 드러낸 습격자들은 망설이지 않고 별동대를 향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퍼버버벙!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청운은 눈을 빛내며 검을 뽑았다.
스르릉.
“본대가 올 때까지 물러서지 마라!”
팟!
청운이 바닥을 차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청운의 명령에 별동대도 적을 공격했다.
“쳐라!”
“죽여!”
차자자자장!
곳곳에서 격돌이 벌어졌다.
청운 역시 자신을 공격해 들어오는 자들을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슈슈슈슉!
검강이 번개처럼 길게 늘어지며 적을 휩쓸었다.
퍼버버벙.
검강이 스쳐간 곳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그때였다.
“쏴라!”
숲속에서 검은 철전이 쏟아졌다.
투두두두둥!
슈슈슈슈슉!
청운은 몸을 빙그르르 회전시키며 철전을 튕겨냈다.
일반 화살과 달리 철전은 관통력이 강력했다. 거기에 내공까지 더해진 터라 그 위력은 절정 고수조차 막기가 힘들 정도였다.
터더더더덩!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철전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청운은 허공을 밟으며, 검을 쥐지 않은 왼손에 내공을 불어넣고는 그대로 격공장을 펼쳤다.
콰광!
“크어억!”
“으악!”
숨어서 철전을 쏘던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나갔다.
청운은 강기가 발현된 검을 휘둘렀다.
검에 맺힌 검강이 번개가 되어 궁수들과 앞을 막아섰던 자들을 강타했다.
“크악!”
“컥!”
계속 터져 나오는 비명과 함께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청운은 극상승의 비천무영신법을 펼치며 곧장 협곡으로 몸을 날렸다.
협곡 안은 아귀비환의 장소로 변한 상태였다.
별동대는 신혈교의 무사들을 맞이해서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방어에 치중했음에도 이미 별동대원 중 일부는 차디찬 바닥에 몸을 누인 상태였다.
용화청과 갈환, 그리고 유영산이 그나마 선두에서 선전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이 별동대에서 가장 높다 보니 상대하는 적 역시 가장 많은 인원이 달라붙은 상태였다.
“물러서지 마라! 죽음으로 지켜라! 곧 본진이 올 것이다!”
중앙에 자리한 용화청이 목소리를 높이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부상자를 뒤로 물려라!”
“흥! 마음대로 둘 것 같으냐! 좀 더 놈들을 몰아붙여라!”
협곡 안이 비명으로 가득 메워질 때 협곡의 절벽 위 한 지점에서 일단의 무리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혈교의 핵심 간부와 장로들이었다.
그들은 전장이 되어버린 협곡 안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특히 중앙에 서 있던 신혈교 부교주 신군의 냉막한 얼굴에 놀라움과 경외감이 떠올라 있었다.
“볼수록 놀랍군.”
신음처럼 흘러나온 사내의 음성에 주위에 있던 장로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신군, 이대로 놈이 날뛰게 뒀다가는 피해가 클 것입니다.”
그러나 신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아냐. 본대가 나타나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
신군은 청운의 움직임을 살피기 여념이 없었다.
“아니, 아니야. 오! 도대체 무공을 얼마나 알고 있는 거야?”
감탄사를 흘리는 신군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가, 조금씩 차갑게 변해갔다.
“살려둬서는 안 될 놈이군.”
청운을 이번 기회에 제거하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골치를 썩일 것이 뻔했다.
신군은 저 멀리 협곡의 끝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달려오는 자들이 보였다.
“크크, 굼뜬 것들하고는.”
그의 입매가 비틀렸다.
* * *
“우리가 왔다!”
“우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협곡 뒤쪽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 청운과 힘겹게 적을 상대하던 별동대도 힘이 솟았다.
“지원군이다!”
“본대가 왔다! 적을 주살하라!”
별동대를 이끄는 용화청은 목소리를 높이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이에 화답하듯이 여기저기서 조장들이 힘을 내라며 소리쳤다.
찰나의 시간이 억겁같이 느껴질 때 협곡을 날듯이 날아온 자들이 신혈교 신도들을 향해서 무자비하게 무공을 펼쳤다.
사도맹 최강자인 용천관의 손에서 무시무시한 장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 뒤를 이어 날아온 장로들과 최정예 무인들의 공격이 협곡을 가득 메웠다.
콰과과과광!
연이어 들리는 폭음과 비명, 그리고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는 지옥도를 연상시켰다.
지원군의 합류에 일방적으로 몰리던 별동대가 한숨을 돌렸다.
청운 역시 조금씩 지치고 있던 터였다.
‘다행이군. 아주 늦진 않았어.’
너무 많은 적을 상대로 전력을 쏟아내다 보니 한 번도 마르지 않던 내공 부족을 느꼈다.
애써 잡은 승기를 이대로 날릴 수는 없었기에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서 적을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