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97화 (197/257)

# 197

197화

순식간에 은신해 있던 신혈교 무사 수십 명이 제거되었다.

청운의 손에 제거된 자가 대부분이었지만, 별동대에 당한 자들도 이삼십 명이나 되었다.

청운은 별동대 대원들의 실력을 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림맹의 청년 고수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실력이었다.

특히 용화청과 갈환, 그리고 유영산의 실력은 오룡과 당장 붙는다 해도 밀리지 않을 듯했다.

‘용화청이 자신할 만하군.’

별동대가 만들어진 것은 용화청의 부탁 때문이었다.

용화청은 노회한 마도사파의 고수들이 자신들의 욕망만을 위해서 사도맹을 좌지우지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핑계를 대고 별동대를 만든 다음 사도맹의 미래를 이끌 힘을 키울 작정이었다.

용화청이 직접 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마도사파의 노고수들이 견제를 할 것이 분명했다. 맹주의 손자가 힘을 키우는 걸 욕심 많은 간부들이 바라겠는가.

청운은 그의 부탁을 받고 사뇌를 만나 별동대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사뇌도 순순히 청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별동대에는 사도맹의 기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휘익!

청운이 신호를 보냈다.

휘파람 소리가 협곡을 가로질렀다. 사방으로 산개해서 숨어 있던 적을 처리한 별동대가 한곳으로 모였다.

모두들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청운은 별동대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 * *

열두 개의 커다란 기둥이 자리한 대전에서 한 사내가 오체투지 한 채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놈이 협곡의 세 번째 구비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뚫렸어.”

혈마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협곡에 은신하고 있던 자들은 신혈교에서 은밀하게 키운 자들이다. 특히 혈룡단을 복용한 뒤로 더욱 강해진 자들이거늘 벌써 세 번씩이나 뚫렸다.

혈마는 주위를 둘러보며 허공에 대고 말했다.

“혈살마대를 투입하라.”

혈살마대.

신혈교의 최정예로 이뤄진 공격대 중 하나다. 죽음의 살귀로 알려진 공포스런 존재들. 그들을 파견하겠다는 말이었다.

“존명!”

“쌍뇌의 계략대로 놈들을 천천히 끌어들여라. 놈들에게 지옥을 구경시켜줄 것이니라.”

“예!”

이미 사도맹과 무리맹을 상대할 계략은 준비되어 있었다. 놈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멸살계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 * *

청운의 뒤를 따라서 협곡에 진입한 본대는 사뇌의 지시를 받으며 천천히 이동했다.

십 조로 나눈 정찰대가 사방을 휘저으며 정찰을 했다. 혹, 청운이 지나간 자리에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협곡의 양쪽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기습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선두 쪽에서 급히 전령 한 명이 뛰어왔다.

“앞쪽에 싸운 흔적과 함께 적의 시체 서른여섯 구가 발견되었습니다.”

벌써 세 번째였다.

별동대 겸 선봉을 맡은 청운이 지나간 자리에 어김없이 시체가 쌓여 있었다.

“끄응, 혼자 다 해 먹는군.”

용천관은 싫지 않은 앓는 소리를 냈다.

함께 움직인 별동대에 손자인 용화청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싸움이 잘 마무리되면 손자의 위상도 올라가지 않겠는가.

용천관은 힐끔 눈을 돌려서 사뇌를 보았다.

‘사뇌의 표정이 심상치 않군.’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평소의 그를 아는 이가 본다면 믿지 않을 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사뇌,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

“상황이 너무 순탄하게 흐릅니다.”

“그건 좋은 일 아닌가?”

“고요 뒤에는 폭풍이 몰아치는 법이지요.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전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흐음, 알겠네. 자네가 알아서 명령을 내리게.”

사뇌는 따로 무인들을 뽑아서 협곡 위로 보냈다. 이미 협곡의 양쪽으로 무인들을 보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한편, 청운은 인상을 찡그렸다.

저 앞에 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 채 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청운은 그들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손을 흔들어서, 뒤따르는 별동대를 멈춰 세웠다.

“잠시 멈추시오.”

용화청이 앞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오? 저자들 때문이오?”

“그렇소. 어떤 자들인지 알아봐야겠소.”

“이곳에 있다는 건 어차피 적이란 말인데, 그냥 쓸어버리는 게 낫지 않겠소?”

“그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어서 그렇소.”

화경에 도달한 고수인 청운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그만큼 강한 자들이라는 뜻.

용화청이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청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협곡에 들어와서 상대했던 자들과 차원이 다른 기도를 지닌 자들이었다. 한 발 한 발 가까이 다가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졌다.

‘고수다.’

청운이 가까이 접근하자, 길을 막고 있던 자들이 눈을 빛냈다.

“제법이군.”

넓은 천으로 목을 둘러서 아래턱과 입을 가린 사내가 말했다. 설마 함께 오던 자들을 놔두고 홀로 걸어올지는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청운은 사내들의 면면을 살폈다.

총 여덟 명. 각기 다른 무장을 하고 있다.

‘초절정에서 화경 사이…….’

갈무리하지 않은 흉포한 기세가 거칠게 놈들의 주위를 요동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도 강하건만 뭉쳐서 뿜어지니 백만대군을 눈앞에 둔 것처럼 대단했다.

청운은 십 장 거리까지 다가가서 우뚝 멈춰 섰다.

자유롭게 서거나 앉아 있던 자들 중 얼굴을 천으로 반쯤 가린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청운을 마주했다.

“내가 먼저 상대해보지.”

패배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말투였다.

“네놈이 진무사 이청운이냐?”

“내 소문이 벌써 신혈교에 퍼졌나 보군. 그러는 너희들은 누구인가?”

“혈살마대.”

사내는 청운의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정체를 밝혔다.

청운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들어보지 못한 자들이었다.

놈들이 어디에 속한 누구이건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죽을 테니까.

팟!

슈욱!

청운의 신형이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갔다.

“헛!”

화들짝 놀란 사내가 검을 빼 들고 청운의 검을 막아냈다.

푸캉!

“큭! 비겁한!”

청운의 기습 공격에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청운의 공격을 빠른 쾌검으로 막아냈지만 내부가 진동된 것이다.

청운은 얼굴을 반쯤 가린 사내를 몰아붙이며 일갈했다.

“제법이구나! 내 일격을 막아내다니!”

챙, 채채챙!

청운은 그림자처럼 사내를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사내와 함께 있던 자들은 눈을 치켜떴지만 합공에 나서지 않았다. 합공은커녕 뒤로 물러나서 눈을 빛내며 구경만 했다.

동료가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한번 승기를 놓친 사내는 연신 물러섰다.

청운은 입꼬리를 올리며 사내를 몰아붙였다. 이들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자존심만 세서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

그렇다면 놈들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 전에 한 놈이라도 더 처리해야 한다.

챙챙! 투캉!

어느 순간,

슈욱!

“큭”

청운의 검이 사내의 몸을 어루만지듯이 스치며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사내는 급히 상체를 뒤로 젖혔다. 목에 두르고 있던 커다란 천이 숭덩 잘려나갔다.

부릅떠진 두 눈.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푹!

가슴에서 무언가 따끔함과 함께 듣기 거북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건의 사내는 입을 뻐끔거릴 뿐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청운을 보았다.

허공으로 솟구친 청운의 검이 순식간에 빙글 돌더니 그대로 사내의 가슴을 찍어버린 것이다.

청운의 무심한 눈길과 냉막함이 죽음의 공포와 함께 사내의 영혼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 순간, 기회라 생각한 듯 혈살마대의 나머지 고수 중 셋이 청운의 등 뒤로 몸을 날리며 무기를 휘둘렀다. 그들은 각지 다른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심지어 철퇴를 든 자도 있었다.

“죽어라, 이놈!”

“머리를 부숴버리겠다!”

촤아악!

청운은 사내의 가슴을 꿰뚫었던 검을 뽑으며 빙글 돌아서 사방으로 검날을 뿌렸다.

터더더더덩.

날아드는 무기들을 쳐낸 청운이 철퇴를 들고 있는 사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철퇴를 든 사내는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강기를 보고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순간, 청운의 검에서 뻗어나간 강기가 철퇴를 든 사내의 몸을 두 쪽으로 갈라버렸다.

“끄어어억.”

청운은 뒤로 물러서며 사내의 몸에서 뿜어지는 핏줄기를 피했다.

사내와 함께 협공했던 자들은 동료가 힘도 못 써보고 당하자 이를 악물고 신중을 기했다.

반면,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두 사람을 제거한 청운은 그제야 혈살마대의 고수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 것 같았다.

뿜어지는 기세에 비해서 형편없는 초식 운용. 전에도 비슷한 자들을 만나본 적이 있었다.

‘이제 보니 혈룡단으로 단기간에 강해진 자들이군.’

그때 마침 용화청을 비롯해 뒤쪽에서 지켜보던 별동대도 몸을 날리며 혈살마대 고수들을 공격했다.

청운은 이제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용화청이라면 일대일로 싸워볼 만했다. 갈환과 유영산도 합공을 한다면 한 사람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듯했다.

언제까지 자신이 적을 처리할 수 없는 만큼 그들도 강적을 상대하며 경험을 쌓아야 했다.

싸움은 일각 정도 지나서 끝이 났다.

혈살마대 고수들을 모두 처치하는 대가로 별동대 대원 중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슬퍼하는 사람도, 기뻐하는 사람도 없었다.

혈살마대의 고수들은 청운이었기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일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몽과 같았다.

초절정 고수인 용화청조차 상대의 막강한 공력에 고전을 해야만 했다.

앞으로 또 어떤 자들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

긴장감이 그들을 짓눌렀다.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모양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본대에 조심하라 전하시오.”

청운의 말에 용화청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청운은 자신이 전진해야 하는 협곡을 바라보았다.

범의 아가리처럼 붉은 기운을 흘리고 있는 협곡이 검붉은 입을 쩍 벌린 채 청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혈마는 혈살마대가 당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갈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쌍뇌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무림맹 놈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공격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쌍뇌의 말에 혈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도맹과 진무사란 놈에 대해 물었는데 왜 갑자기 무림맹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곧 문득 든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혈마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처럼 밝은 표정이 되어서 쌍뇌에게 물었다.

“설마, 놈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래도 확인을 해보고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이들을 파견했습니다. 오늘 안에 연락이 올 것이니 잠시 노여움을 거두시지요.”

“크크크. 하긴 겉으로 고고한 척 위선을 더는 정파 놈들이 하는 일이 그렇지.”

혈마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만일 자신의 생각과 같은 이유로 정파가 미적거린다면 좋은 기회였다.

솔직히 둘을 상대하기는 벅찬 감이 있었다. 각개격파를 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 * *

거침없이 협곡을 지나치던 청운은 기이한 불안감에 이마를 찌푸렸다.

혈살마대라는 자들을 제거한 이후부터 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놈들이 반나절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한 방을 노린다는 말인데.’

청운은 어렵지 않게 신혈교들의 계략을 간파했다.

언젠가는 대규모 접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시기가 가까워진 듯했다.

‘무림맹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모르겠군. 무림맹이 제때에 뒤를 공격한다면 놈들은 독 안에 든 쥐다.’

제갈신기와 철저하게 준비한 계책이다. 사뇌가 검증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책략이기에 승리를 자신했다.

‘그런데 이 불안감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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