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189화
복면인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그들을 확인한 자들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여자란 말인가?”
“헉. 저들은?”
“주작단의 십선녀잖아?”
“맞군. 어찌 저들이…?”
주위를 포위한 사신단 무인들이 의문을 가질 때, 땅을 박찬 청운이 영호천 쪽으로 몸을 날렸다.
콰광!
복면인은 영호천에게 일장을 날린 후 거리를 벌린 후, 자신 앞에 날아내리는 청운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빠드득.
“또 네놈이구나!”
복면인의 입에서 옥구슬 굴러가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복면인의 정체를 눈치채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서, 설마… 주작단주 문희?”
“선녀문 문희 소문주의 목소리 아닌가?”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모두의 시선이 복면인에게 모였다. 그 모습에 복면인은 당황했는지 주춤 뒤로 물러섰다.
청운이 복면인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들켰는데 언제까지 복면을 쓰고 있을 생각인가?”
“…….”
“흥, 직접 벗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벗겨주지.”
팟!
청운은 일갈하며 바닥을 찼다. 곧장 복면인에게 쇄도한 그는 왼손을 갈고리처럼 만든 상태에서 복면인의 머리 쪽을 공격했다.
휘익, 팡!
복면을 잡아채기라도 하려는지 갈고리 같은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복면인은 상체를 흔들며 청운의 공격을 흘렸다. 그러고는 보법을 밟으며 뒤로 물러서면서 검을 뻗었다.
쉐엑, 쉭쉭쉭!
터터텅, 팡팡!
청운은 복면인이 휘두르는 검의 옆면을 쳐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잉어가 물살을 가르며 폭포수를 올라가듯이 청운의 오른팔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팟!
부욱.
복면인이 급하게 상체를 뒤로 물렸지만 한발 늦었다. 청운의 움켜쥔 오른손에 찢겨진 검은 천 조각이 들려 있었다.
사르르륵.
복면이 찢겨지며 긴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렸다. 이내 복면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청룡단과 백호단 단원들은 물론, 뒤늦게 몰려온 군웅들의 입에서 탄식에 가까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역시 문희 단주였군.”
“젠장 아니길 바랐건만.”
자신들이 농락당했다는 걸 알게 된 그들은 곧 분노에 찬 눈빛을 쏟아냈다.
하지만 문희는 그들의 눈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웃었다.
“호호호.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그녀의 당당함에 군웅들이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느새 분노가 사라진 그들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갈!”
청운이 사자후를 터트렸다.
으르르르릉!
눈동자가 흔들리던 군웅들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럴 수가?”
“섭혼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디서 같잖은 섭혼술을 쓰는 것이냐!”
청운의 말에 군웅들이 분노를 터트렸다.
“저 요사한 계집이 정녕 마녀로구나!”
“감히 우리를 농락하다니…!”
문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웃었다.
“호호호. 참 아깝단 말이야. 잠시나마 내 몸종으로 만들까 생각했는데, 역시 안 되겠구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문희의 두 눈에서 연분홍빛 기운이 일렁거렸다.
야릇한 기운이 주위로 퍼졌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청운이 먼저 움직였다.
파밧!
슈슈슈슉!
청운의 손 그림자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서른여섯 개의 손 그림자가 사방에서 문희에게 쏟아졌다.
문희는 눈을 빛내며 곧장 앞으로 튀어나가며 검을 휘저었다. 시퍼런 기운을 품은 검영이 손 그림자 숲을 헤치며 청운에게 쏘아졌다.
하나둘 사라지는 손 그림자를 보며 청운은 미간을 좁혔다.
‘그동안 무공을 숨겼단 말이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온전하게 사로잡기는 쉽지 않을 것 같군.’
그때였다.
문희의 공격을 피해 일 장 정도 물러선 청운의 고개가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응?”
문희가 취하고 있는 기수식이 눈에 익었다.
‘어디서 봤지? 아!’
청운은 문희를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지 친숙하고 위화감이 들었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녀의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제 보니 구면이었군.”
“무슨 소리지?”
문희는 청운이 자신을 아는 척하자 눈살을 찌푸렸다.
청운은 턱을 살짝 쳐들며 냉랭히 말했다.
“두 번이나 겨뤘었는데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하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요희라고 했던가?”
“…….”
오리발을 내밀던 문희는 입을 닫았다.
하지만 곧 요사스런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호, 미안해할 것 없어. 멍청한 놈이라고 그동안 실컷 욕을 했었으니까.”
“그거 아쉽네. 난 참 예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흥,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시지!”
자신이 그렇게 청운에게 꼬리를 쳤었지만 청운은 천년 바위라도 되는지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뭐라?
요희는 기분이 살짝 언짢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청운의 말에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그런데 말이야. 전에 그 덩치 큰 친구는 괜찮나?”
“뭐?”
“그 왜 있지 않나. 네가 잘못해서 고추를 잘라버린…….”
“죽어!”
쾅!
요희가 분노를 터트리며 청운의 말을 자르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녀의 검에는 어느새 시퍼런 검강이 맺혀 있었다.
청운은 피식 웃으며 몸을 빼냈다. 설마 말 한마디에 그녀가 이성을 잃고 공격할 줄은 몰랐다.
‘일단 주작단주가 요희라는 마녀란 걸 밝혀낸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했군.’
내심 만족한 청운은 빠르게 물러서며 요희를 자극했다.
“제법이군. 혹시 그 멍청이를 좋아하기라도 했나?”
“놈! 죽여 버리겠다!”
이성을 잃은 문희는 싸늘하게 말하며 사정없이 검을 휘저었다.
쉬쉬쉭!
요희의 검강이 청운을 향해서 뻗어 나갔다.
그녀 역시 화경에 도달한 고수로 노룡회의 최고위 간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 그녀의 검에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강력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청운도 마침내 검을 빼들고 요희를 상대했다.
그의 검에서 피어난 강기가 청룡처럼 꿈틀거렸다.
콰콰쾅!
연이어 빛이 번쩍이며 굉음이 허공에 가득했다.
용호상박의 싸움이 계속되자 위쪽 도관에서 자던 무림맹의 고수들마저 몰려들었다.
청운은 요희를 상대하며 냉소를 지었다.
“너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
“흥! 내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일 거다!”
청운은 방어를 하며 빈틈을 노렸다.
급한 건 자신이 아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무림맹 고수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녀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붙잡힐 것이 뻔했다.
그럼 무림맹 사람들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말을 멀리하고 요희를 옹호한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그런데 그때, 청운조차 생각지 못한 변화가 발생했다.
“단주님을 보호하라!”
“단주! 이쪽으로 피하십시오!”
일단의 무리들이 포위망의 한쪽으로 뛰어들면서 군웅들을 공격한 것이다.
개중에는 십선녀 중 나머지 다섯도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포위망을 뚫고 들어오는 자들에게 향했다.
“미친! 주작단이다!”
“정신 차려라! 저년은 신비세력의 간자란 말이다!”
주위에서 무인들이 주작단을 향해서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귀신에 홀리기라도 했는지 이성을 잃고 공격했다.
백여 명이 넘는 인원이 뛰어들자 장내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청운은 미친 듯이 공격하는 요희 때문에 그들을 도울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나머지 십선녀 중 하나가 요희를 향해 소리쳤다.
“궁주님! 어서 피하셔야 하옵니다!”
그제야 요희는 자신이 청운의 격장지계에 걸린 것을 알아차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저희가 길을 뚫겠습니다.”
계속되는 선녀들의 말에 요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들의 말대로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뻔했다.
요희는 청운을 향해 검을 겨누며 명령을 내렸다.
“뚫어라!”
“존명!”
다섯 시비가 자신들이 뚫고 들어온 쪽으로 몸을 날렸다. 요희도 여전히 청운을 향해서 검을 뻗은 채 뒤로 날아갔다.
주작단원들이 그들의 뒤를 받쳤다.
시비 중 한 명이 가늘게 떨리는 기이한 목소리로 외쳤다.
“간악한 자들이 단주님을 공격하고 있어요. 제발 저들을 막아줘요.”
“크아아아악!”
“단주님을 보호하라!”
“어서 도망치십시오! 이곳은 저희가 막겠습니다.”
뒤늦게 뛰어든 무리들이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두 눈에는 붉은 기운이 맺혀 있었다.
그 모습에 청운이 사자후를 터트렸다.
“가아아아알!”
대기를 뒤흔드는 일성이 이성을 잃은 자들의 고막을 후려쳤다.
동료를 공격하던 자들이 두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다.
청운은 연이어 무림인들에게 소리쳤다.
“섭혼술에 당했을 뿐입니다. 죽이지 마시고 제압하세요!”
청운의 말에 주위에 모인 무림맹 고수들이 붉게 변한 동료들을 하나둘 제압하기 시작했다.
청운은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는 무리들을 향해서 몸을 날리며 외쳤다.
“오룡과 청룡단은 나를 따르고, 백호단은 이들을 제압하시오!”
청운이 외치자 청룡단원들이 몸을 날렸다.
추격은 쉽지 않았다.
캄캄한 어둠 속, 삼삼오오 뒤에 남겨진 자들이 목숨을 도외시하고 등귀어진의 수법으로 공격해 왔다.
청운은 그들을 일일이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조금만 늦추어도 요희와 그녀의 시비들이 몸을 숨길 것이 뻔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건만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자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우리가 상대할 것이니 어서 추격하시오!”
“광견, 뭐 하냐! 어서 가!”
때마침 뒤를 따라온 오룡과 청룡단의 소리가 들렸다.
청운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어딜!”
“막아! 놈을 보내면 안 된다!”
몇 사람이 그의 앞을 막으려 했지만, 그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요희의 곁을 지키던 다섯 시비가 청운의 앞을 막아섰다.
“멈춰라!”
“더 이상 가지 못한다.”
청운은 그녀들 뒤를 슬쩍 보았다. 어둠 속임에도 저 멀리 요희의 신형이 보였다.
그런데 그의 눈에 새로운 인물이 보였다.
‘누구지?’
요희의 뒤를 바짝 따라가는 자가 있었다.
그가 요희의 사람인지, 아니면 무림맹 고수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둠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 봐도 대단한 고수인 듯 느껴졌다.
“여긴 우리가 맡겠네!”
청운이 멈칫한 사이, 누군가가 장내에 내려서며 소리쳤다.
청룡단의 오룡 중 남궁룡을 비롯한 세 사람이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주작단 무사들을 상대하고 있는 듯했다.
“이 여자들은 우리에게 맡기고 빨리 쫓게!”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몸을 날렸다.
다섯 시비가 청운의 앞을 막으려 하자 남궁룡이 일갈했다.
“갈! 너희들 상대는 여기다.”
남궁룡의 기세에 시비들은 곧장 청운을 쫓지 못했다.
청운은 사라져 버린 요희를 찾기 위해서 기를 넓게 퍼트렸다.
희미하게나마 요희와 누군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저곳이군.”
그런데 누구와 싸우는 거지?
무림맹 고수들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나?
능선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위화감에 눈살을 찌푸린 그는 곧장 비천무영신법을 극성으로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