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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88화 (188/257)

# 188

188화

무림맹의 정예무사와 정파의 고수들이 속속 화산에 도착했다.

화산파의 시설만으로는 그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기에 화양의 객잔 몇 곳을 통째로 빌려서 임시 거처로 삼았다.

그렇게 무사들이 운집하는 동안 천뇌 제갈신기는 군사들을 모아서 머리를 맞댔다.

그들은 각 세력에서 보내온 고수를 분류하고 그들의 병과에 맞게 재편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미 신혈교의 위치는 확인이 된 상태였다.

안겸에게 얻은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동천에 보냈던 무림맹 무사들로부터 좀 더 자세한 소식도 전해졌다.

신혈교는 동천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계곡 안에 있으며, 밖에서는 그들의 거주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뒤쪽으로 돌아가서 높은 산에 올라가 확인하니, 큰 건물만 이십여 채나 된다고 했다.

동천에서 그곳에 들어가는 물품을 납품하는 자를 찾아내 알아낸 결과, 그 계곡 안의 인원은 대략 천 명 정도 된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무림맹 간부들은 마음을 놓았다.

“천 명 정도라면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겠습니다그려.”

“괜히 사도맹과 동맹을 맺은 것 아닌지 모르겠소이다.”

“이거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휘두르는 것 아니오?”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감이 조금 느슨해졌다.

하지만 제갈신기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신비세력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신비세력의 예하 단체 중 하나인 노룡회를 상대해본 터였다.

신혈교 역시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봐야 했다.

장안의 회동 이후 사흘째 되던 날 밤, 제갈신기는 청운과 마주앉았다.

“예정했던 무사 이천이 모였으니 내일 출발할 예정이네.”

장로회의에서 그렇게 결정되었다.

청운은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니, 않은 것이 아니라, 부르지 않았다.

정파의 장로들은 황궁의 관리인 청운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무림의 일은 무림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혈교를 얕보고 있었다. 그들 정도는 무림맹의 힘만으로도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황궁의 진무사에게 공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청운도 불만이 없었다. 회의에 참석해봐야 고리타분하고 고집만 센 장로들의 말에 속만 끓을 뿐이었다.

차라리 총군사인 제갈신기와 만나서 회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편했다.

“일단 이곳에 존재하는 간자들부터 솎아내지요.”

청운의 말에 제갈신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에 숨어 있던 간자는 잡아냈다. 하지만 화산과 종남으로 먼저 떠난 이들 속에 있는 자들은 아직 처리하지 않은 상태였다.

“갑자기 눈과 귀가 막히면 저들도 혼란스러울 거네.”

이곳의 간자를 제거했다면 신비세력에서 또 다른 자들을 보냈을 것이다. 그들을 찾아내지 못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 간자가 존재한다면 굳이 다른 자를 보낼 이유가 없다.

그게 바로 제갈신기와 청운이 이곳의 간자를 놔둔 이유였다.

“잘하면 그들을 미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미끼?”

“그자들 외에 또 간자가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흐음, 하긴 자네 말이 맞네.”

“부디 큰 월척이 걸리길 바랄 뿐입니다.”

“낚시꾼 솜씨가 어떤지, 어디 한번 구경해볼까?”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밤이 깊어가는 해시 초, 무림맹 무사들이 거주하는 화양의 객잔 곳곳에서 소란스런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단순한 다툼이라 생각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

하지만 무림맹 무사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러한 다툼이 벌어진 곳은 한두 곳이 아니었다. 모두 다섯 곳에서 벌어졌고, 시간도 같았다.

게다가 싸움이 끝날 때쯤이면, 무림맹의 법을 집행하는 정법당과 사신단 고수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조사하겠다며 끌고 갔다.

그 일은 전격적으로 벌어져서 이각 만에 마무리되었다.

“다섯 명 모두 잡아 가두었습니다.”

작전을 진두지휘한 영호천이 보고를 올렸다.

청운과 제갈신기는 만족한 듯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네.”

무림맹 무사들은 누가 또 간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전을 기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영호천과 청룡단의 오룡 중 부상이 심하지 않은 넷을 동원했다.

“진무사, 진짜 그들이 간자요?”

남궁룡이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 다툼을 핑계로 잡아들인 자들 중에는 나름대로 이름을 떨친 칠절서생 이문도 있었고, 용형검이라 불리는 고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은 화산파의 제자인 정우였다.

“그렇소. 무림맹에서 잡아들인 간자들을 통해서 밝혀졌소.”

“그들이 거짓으로 신비세력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지목했을 수도 있지 않나?”

이번에는 강호풍이 물었다.

답은 제갈신기가 했다.

“그 점도 무림맹에 숨어 있던 자들을 잡으면서 이미 확인했네.”

청운이 그에게 말했다.

“총군사께서는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리십시오.”

“알았네. 그리하지.”

그 말이 또 강호풍으로 하여금 의문을 품게 했다.

“총군사님, 그들이 진짜 간자라면 은밀히 조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조사는 할 거네. 다만 그 전에 알아볼 것이 있어서 말이야. 겸사겸사 무림맹 무사들에게 경각심도 심어줄 수 있지 않겠나?”

“……?”

강호풍이 그래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청운이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어차피 다음 단계를 위해서는 이들의 힘도 필요했다.

“낚시를 할 때는 먼저 밑밥을 줘야 고기가 잘 잡히는 법이지요.”

뭔 소리야?

강호풍은 이마를 찌푸렸다.

하지만 뒤이어진 청운의 이야기를 듣고 눈을 번들거렸다.

“기왕이면 큰 놈이 걸리면 좋겠군.”

간자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자, 화산파와 화양 일대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무림맹에서 잡은 간자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화산파에도 숨어 있었다니.

느슨해졌던 긴장감이 다시 팽팽하게 당겨졌다.

제갈신기와 청운의 목적 중 일부는 이룬 셈이었다.

그렇게 소문이 퍼져갈 무렵, 제갈신기와 청운은 잡아들인 자들을 심문했다.

그들을 가둔 곳은 화산파에서 창고로 쓰는 건물이었는데, 혈도를 제압해서 기둥에 묶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은 간자가 아니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제갈신기가 무림맹에서 잡은 간자로부터 얻은 증거를 내밀어도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어찌나 간절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는지 정말 그들이 신비세력과 관련 없는 자들이고, 제갈신기와 청운이 엉뚱한 사람을 잡아들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사실 확인을 위해서 찾아온 화산파의 장로 현응자는 불만을 토로했다.

“이보시오, 총군사. 정우 사질은 아니라고 하잖소? 도대체 증거도 없이 간자들의 말만 믿고 이렇게 잡아들이는 법이 어디 있소?”

그러나 제갈신기는 물러서지 않았다.

“무림맹에서 잡은 자들도 처음에는 강력하게 간자가 아니라고 했지요. 하지만 결국은 간자로 밝혀졌습니다. 만약 이자들이 간자가 아니라면, 제가 책임을 지지요.”

무림맹의 총군사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현응자도 더 이상 강하게 다그칠 수가 없었다.

“총군사가 그리 말하니 내 기다려보겠소. 하지만 정말 아닐 경우…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거요.”

“물론입니다. 만약 간자가 아니면, 총군사의 자리를 내놓을 겁니다.”

그날의 심문은 자정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확실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청운은 그들이 간자라는 걸 확신했다.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들의 몸속에 혈룡단을 복용해서 얻은 기운이 있는 것이다.

* * *

자정이 지나자 구름이 끼면서 화산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화르륵.

잔잔한 바람에 화톳불이 흔들렸다.

번을 서는 무사들의 눈동자에 흔들리는 그림자들이 일렁거렸다.

휘익.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불빛에 보이는 듯했다.

번을 서던 무인 한 명이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응?”

“왜 그러는가?”

“아닐세.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이 사람아, 벌레가 불빛에 비친 거겠지.”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맞춰서 벌레가 기승을 부렸다. 화톳불의 불빛을 보고 날아든 벌레가 사방에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무사는 곧 고개를 돌려서 정면을 보았다. 그 역시 벌레 때문에 짜증이 이는지 손사레를 치며 대답했다.

“하긴 사파 놈들과 동맹을 맺었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내일 출동한다고 하던데, 도대체 신비세력이란 곳이 얼마나 강해서 사도맹과 동맹을 맺고 치려는지 모르겠군.”

“우리야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뭐.”

“저쪽이나 한번 돌아보세. 누가 겁대가리 없이 이곳에 오겠냐만, 그래도 한 번씩 돌아봐야지.”

“그러세.”

건물을 지키던 무사 둘이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자리를 떴다.

그때였다.

휙!

몇 개의 그림자가 바람처럼 날아서 건물 지붕에 내려섰다.

흑의를 입고 복면을 쓴 그들은 어둠과 동화되어서 순식간에 건물 안으로 스며들었다.

어두운 실내는 화톳불이 없어서 밖에 있는 불빛으로 겨우 사물의 형체만 알아볼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복면인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창고 안 기둥에 사내들 다섯이 묶여 있는 게 보였다.

“병신 같은 것들.”

싸늘한 한마디에 기둥에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자들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중 한 명이 희미하게 웅얼거렸다.

“하, 하아 하아암.”

입을 크게 벌리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는 소리였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앞에 나선 복면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힘겹게 웅얼거린 자의 입에 귀를 가져갔다.

“뭐라고?”

“하, 하아암 저어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복면인이 뒤늦게 그 말뜻을 눈치채고 급히 몸을 세웠다.

“뭐? 함정?”

힘겹게 말하던 이의 고개가 힘없이 꺾였다.

그 순간 건물 밖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낚시는 실적이 나쁘지 않군.”

복면인은 그 소리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이 가는 소리와 함께 복면인이 으르렁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그는 기둥에 묶인 자들을 향해서 한 손을 휘저었다.

휘익.

서거걱!

툭! 대구르르르.

함정을 알린 자의 목이 떨어졌다.

하지만 다른 자들 넷은 기둥에서 벗어나며 복면인들을 공격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복면인들이 놀라서 사방으로 퍼졌다.

“길을 뚫어라!”

“존명!”

뾰족한 음성이 실내를 가득 메운 순간, 복면인들이 벽을 부셨다.

쾅!

흙으로 만든 벽에 구멍이 뻥 뚫렸다. 복면인들은 구멍이 뚫림과 동시에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면서 사방에 장력을 뿌렸다.

콰콰쾅!

하지만 그들이 움직일 때를 대비하여 기다리고 있던 자들 역시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복면인들을 향해서 장력을 발출했다.

복면인과 밖에서 건물을 포위하고 있던 자들 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건물을 포위한 건 청룡단과 백호단이었다.

“놈들을 놓치지 마라!”

남궁룡이 구멍을 통해서 나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다른 사람들도 밖으로 나왔는데, 역시 오룡 중 둘과 영호천이었다.

복면인의 숫자는 고작 다섯이었다. 그들의 무공은 절정 고수라도 경시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하지만 영호천과 오룡의 상대는 아니었다.

문제는 복면인 중 처음에 나섰던 자였다.

영호천이 그를 상대했는데, 놀랍게도 영호천이 밀리는 듯 느껴졌다.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자존심이 상한 영호천은 전력을 다해서 복면인을 공격했다.

옆에서 바라보던 혈황은 짜증을 냈다.

[그딴 놈 하나 이기지 못하다니!]

그러나 쾌재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오호! 진짜 월척이 걸렸군!’

청운이었다.

그는 영호천과 싸우는 복면인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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