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83화 (183/257)

# 183

183화

용천관의 미간이 구겨졌다. 불쾌한 발언이었다.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다니.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일장에 쳐 죽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하제일뇌를 다툰다는 자신의 장자방이기에 꾹 참았다.

-사뇌, 자네가 생각할 때 내가 이청운에게 패할 것 같은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청운은 어디까지 성장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주군,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보느니 기회가 왔을 때 제거하시는 게 낫습니다.

-흠, 쉽지 않은 문제야.

용천관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사뇌는 용천관의 표정을 읽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평생을 모신 주군이기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주군, 충정으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제 말을 허투루 들으시면 안 됩니다.

-말해보게.

-감사합니다. 이청운은 분명히 사도맹과 주군께 큰 위협이 될 자입니다. 지금 제거하는 게 정 마음에 안 드시면, 나중에라도 기회가 오거든 꼭 목을 치셔야 합니다.

-어? 끝났군.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세.

용천관은 사뇌의 마지막 말에 대한 대답을 회피했다.

사뇌 역시 더 청하지 않고 한발 물러섰다.

그의 눈에 싸움을 끝내고 물 위를 걸어서 다가오는 청운이 보였다. 절로 눈매가 좁혀졌다.

‘기분을 찝찝하게 하는 놈이야.’

강기슭에 도착한 청운은 곧장 용천관에게 다가갔다.

다가오는 청운을 바라보는 용천관의 몸속에서부터 강한 투지가 일었다.

겉으로 볼 때는 중년이지만 실제로 칠십이 넘은 나이였다.

이 나이에 호승심이라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무인인가?’

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청운을 맞이했다.

짝짝짝.

“대단해. 듣던 것보다 더.”

용천관은 손뼉까지 치며 청운 앞으로 나아갔다.

청운은 용천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투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역시 용천관과 한번 겨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 가주와 비교해서 절대 밑이 아니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황궁에서 백철군과 겨룬 적이 있었다. 보는 시선이 많아서 최고 무공인 혈황신공을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대신 싸우겠다는 혈황을 말리며 패배했었다.

지금은 깨달음 덕분에 당시보다 강해졌지만, 백철군과 다시 겨룬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자자, 이리 앉게. 내 오늘 진귀한 구경을 했네. 하하하.”

용천관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알려진 대로 사람 죽이는 걸 파리 잡듯이 하는 독심만 빼면 나름대로 호방한 인물이었다.

청운이 자리에 앉고 용천관이 맞은편에 앉았다.

주위에 있던 용천관의 호위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경계에 들어갔다.

용천관이 청운을 지그시 보며 입을 열었다.

“젊은 친구가 뛰어난 실력을 지녔군.”

“과찬이십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니야. 당금 무림에서 자네 상대가 몇이나 되겠는가? 자네 또래에서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겠지.”

용천관은 미소까지 지은 채 말을 건넸다. 다른 이들이 보면 조손 사이의 정겨운 대화로 오인할 만큼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청운은 마음이 급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맹주…….”

그런데 그가 입을 열자마자, 용천관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말이야, 휴전을 하는 일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네.”

청운의 표정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약속이 다르군요.”

“약속이란 원래 깨라고 있는 것이니까.”

사파의 하늘이라는 사도맹주다운 대답이었다.

마도사파가 별건가?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신의를 개떡처럼 취급하고, 힘과 오만과 거만으로 무장한 채,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간교한 계책도 마다하지 않는 자들이 마도사파의 무사들 아닌가 말이다.

그래도 청운이 아는 용천관에 대한 평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마도사파의 무사들 중에서 나름대로 남자답고, 신의도 조금은 알고, 사람 죽이는 걸 즐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불과 이각 전에 한 약속을 내팽개치다니!

하지만 청운은 그를 탓하지는 않았다.

그의 두 눈에 담긴 어떤 열기를 봤기 때문이었다.

청운은 그 열기가 궁금해서 물었다.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황궁으로부터 인정받는 거.”

용천관의 대답에 청운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황제와 무척 가깝다고 들었네만.”

“저도 언제 목이 잘릴지 모릅니다. 맹주쯤 되시면 잘 아실 거 아닙니까? 천자의 말 한마디에 옷을 벗어야 하는 게 신하라는 거 말입니다.”

용천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황제는 엄청난 돈을 들여서 정도문파에 도관과 사찰을 지어주고 있네. 결국은 정파를 인정한다는 거지. 하지만 우리 마도사파가 모시는 신은 사이비로 취급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청운은 한숨을 깊이 쉰 후 고개를 저었다.

“후우우우, 용 맹주께서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군요. 그 부탁은 들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럼 나 역시 자네 부탁을 들어줄 수 없네.”

“용 맹주님, 둘의 사안이 다르지 않습니까?”

“맞네. 그러나 아쉬운 건 우리가 아니지 않나?”

용천관은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청운은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아직은 협상이 끝난 게 아니었다.

‘호오, 그걸 참는다?’

용천관은 청운이 곧장 화를 내며 달려들 줄 알았다. 그러길 내심 기대했는데 처음과 변함없는 모습인 걸 보고 살심이 꿈틀거렸다.

‘좋아, 네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꾸나.’

그때 청운이 차가운 시선으로 용천관을 보며 말했다.

“맹주님, 저와 한 처음의 약속을 지켜주시지요.”

“말했지 않나? 그냥은 안 된다고.”

“결국, 이번에도 힘으로 눌러야 하나 보군요.”

씨익.

용천관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내심 만족한 그가 눈을 부라렸다.

“감히 본좌를 힘으로 누르겠다고?!”

“못 할 건 또 뭡니까?”

청운이 맞대응하자, 사도맹의 간부들이 버럭 노성을 터트렸다.

“이놈! 어디서 감히 맹주님께 헛소리를 하는 거냐!”

“맹주! 제가 그놈의 목을 잘라버리겠소이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놈의 입을 찢어서 다시는 망발을 못 하게 하겠습니다!”

“조용히 해!”

용천관이 한 소리 하며 세차게 손을 저었다.

그는 자신의 입 안에 들어온 먹이를 내줄 마음이 없었다.

고오오오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힘을 끌어올렸다.

폭풍 같은 기세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휘도는가 싶더니, 얽혀들며 요동쳤다.

주위에 있던 자들이 대경해서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때부터 중앙에서 부딪친 가공할 위력의 기운 두 줄기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콰과과과과!

용천관이 뿜어낸 기운은 붉은 기를 띠고 있었다. 반면 청운의 몸에서 뿜어진 기운은 푸른빛이었다.

붉고 푸른 두 기운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얽혀들며 기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세의 싸움!

하지만 둘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공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오냐, 이놈! 어디 얼마나 강한지 보자!’

‘사도맹주라고 하면 내가 겁먹을 줄 알았소?’

그그그그긍!

허공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거칠게 휘도는 기운이 밀고 밀리며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쳤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

하지만 상황은 청운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사도맹 고수들이 무기를 빼들며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차하면 달려들겠다는 듯.

‘제길! 곤란하게 됐군.’

청운도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여차하면 명년 오늘이 자신의 제삿날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곳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고오오오옹!

크아아아앙!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둘의 대결을 지켜보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서 중앙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대한 두 개의 형체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붉은 기운 속에서 솟아난 거인은 세상을 불태워버릴 것 같은 아수라의 형상이었다.

반면 청운 쪽의 푸른색 기운 속에서는 한 마리 청룡이 머리를 쳐들고 용틀임을 했다.

두 사이를 먹구름 같은 기운이 휘돌았다.

그 속에서 푸른 번개가 번쩍였다.

우르르릉! 콰과과광!

한 줄기 강력한 벼락이 대지를 강타했다.

콰아앙!

둘 사이의 대지에서 거대한 회오리가 솟구치며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파라라락!

용천관의 곤룡포가 거친 바람에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펄럭였다.

청운의 옷자락도 태풍을 만난 듯 요동쳤다.

어느 순간, 아수라가 성큼 앞으로 튀어나갔다. 때를 같이해 청룡도 아수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청룡이 아수라의 몸을 칭칭 감았다. 아수라가 청룡의 몸통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쾅쾅쾅!

“크아아아앙!”

청룡은 몸을 비틀며 입을 벌려서 아수라를 공격했다. 아수라는 양팔을 벌려서 청룡의 입을 위아래로 붙잡았다.

아수라의 팔 근육에 붙은 심줄이 툭 불거지더니 그대로 청룡의 입을 위아래로 찢어발겼다.

푸아아악!

팟!

청룡의 형상이 사르르 흩어졌다. 아수라가 포효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용천관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걸렸다.

그가 청운을 향해서 소리쳤다.

“어떠냐? 힘의 차이를 알겠느냐?”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크하하하하!”

용천관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광소를 터트렸다.

그때 청운이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몸에서 다시 청룡이 솟구쳤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였다.

용천관이 눈을 부릅떴다.

그토록 막대한 진기를 쏟아부었으니 탈진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탈진은커녕 청룡이 세 마리로 늘어났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 밀리는 척하면서 자신이 방심한 틈을 노렸다는 뜻?

“이 교활한 놈이……!”

눈을 부릅뜬 용천관도 쌍장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수라가 청룡을 향해 마주쳐 갔다.

청룡들이 아수라를 휘감으며 물어뜯었다.

두 마리가 사지와 몸통을 감싸고, 남은 한 마리가 머리를 깨물었다.

아수라도 청룡의 목을 잡고 부러뜨리고, 입을 잡아서 찢어냈다.

그러나 청룡은 모두 세 마리였다.

달려들어서 목을 문 청룡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수라도 마지막 힘을 끌어내서 청룡의 대갈통을 세차게 후려쳤다.

바위도 가루로 만들어버릴 가공할 위력의 일권이 청룡의 머리를 부수었다.

그리고 결국, 청룡과 거인이 빛과 함께 흩어졌다.

청운은 그제야 숨을 깊이 들이쉬고 흔들린 진기를 다스렸다.

“다행히 제가 이긴 것 같군요.”

“흥! 이기긴 누가 이겼단 말이냐?”

“맹주님께서 먼저 공격했으니 비긴 것도 이긴 거와 마찬가지 아닙니까?”

용천관은 인정할 수 없었다.

“이건 무효야!”

그가 악쓰듯이 버럭 소리쳤지만, 청운은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그 모습에 용천관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다시 하자니까!”

“안 합니다.”

“방금은 한눈파는 바람에 진 거야. 자네도 이렇게 이기면 찜찜할 거 아냐?”

용천관은 청운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청운은 냉정하게 그의 청을 뿌리쳤다.

“싫습니다.”

“싫어? 싫다고? 흥! 그럼 나 역시 정파와 협상을 하지 않을 거다.”

“그러십시오. 아예 이번 기회에 정파와 전면전을 벌이시죠? 저는 무림이 망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청운이 귀찮다는 듯이 외면했다.

용천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이럼 안 되는데…….’

당장 일장을 날려서 청운을 공격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좋게 말로 하니까, 내가 우습나? 당장 다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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