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179화
전서를 받은 청운은 곧장 오룡과 영호천을 불렀다.
“당분간 사령회가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신비세력의 장난질입니다. 혹, 다른 도발이 있어도 대응하지 마십시오. 제가 돌아올 때까지 경계를 강화하고 자리를 지키셔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영호천이 대표로 대답을 했다.
“영호 공자께서 중심이 되어주셔야겠습니다. 남궁 형과 다른 오룡분들과 힘을 합친다면 능히 놈들의 계략을 간파하고 물리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예, 대인.”
청운은 영호천의 대답을 들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청룡단과 백호단 단원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대부분이 악전고투를 벌여서인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크고 작은 상처가 있는데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서둘러 안정을 취하고 심법을 운용해서 바닥난 내공을 채워야 한다.
‘이들만으로는 부족해.’
자신이 있다면 모를까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사령회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신비세력이 더 마음에 걸렸다.
청운은 품속에서 기다란 원통을 꺼내 영호천에게 건네며 말했다.
“근방에 금의위가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걸 허공에 터트리면 그들이 도움을 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청운은 이미 금의위를 위남 근교로 와서 대기하라고 지시를 한 상태였다. 아쉬운 점이라면 서경왕부에서 금군을 동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 소감이 노력했지만 태친왕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다.
그는 병사들이 장안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무림인이 하는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덕분에 청운이 사용할 패가 줄어들었다.
그나마 금의위라도 동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서경왕부에 들러서 왕야를 설득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었다.
-혈황 님 조금 불안해서 그러는데 여기 계시겠습니까?
[언제는 안 따라다닌다고 삐져놓고는.]
-안 삐졌다니까요.
청운의 반응에 혈황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르며 청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하, 놀려먹는 맛이 있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라.]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청운은 오룡들에게도 여러 가지 당부를 마저 했다. 혈황도 남았고 다른 이들도 믿음직했기에 서둘러 화산으로 신형을 날렸다.
* * *
청운이 비천무영신법을 최대한으로 펼쳐서 화산에 도착했다.
제갈신우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청운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현장을 볼 수 있을까요?”
“가세. 처음 안겸을 보호하던 그곳에 그대로 둔 상태네.”
현장은 아직 이렇다 할 증거를 찾지 못했기에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한 상태였다.
청운은 안겸과 백가장 호위들의 몸에 난 상처를 살펴보았다.
안겸의 가슴에 난 상흔을 봐서는 잠을 자다가 당한 듯했다.
호위무사 둘은 이마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목과 가슴에 상처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나마 반항을 하려고 했던 흔적이 있었다.
곁에서 함께 있던 제갈신우가 청운에게 물었다.
“자네라면 절정고수 셋을 소리 없이 처리할 수 있나?”
“대비하고 있다면 모를까, 준비하지 않은 상태의 기습이라면 가능합니다.”
“거리도 있고, 은밀하게 숨어 있는데도?”
현재 조사에 혼선이 있는 부분이었다.
첫 번째 문제는 자객의 숫자였다.
같은 무공에 셋이 당했다. 호위무사 몸에 남은 흔적은 분명히 자객이 한 명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맞지 않아서 의견이 분분했다.
청운은 이 부분을 명쾌하게 대답했다.
“처음 이 둘을 처리할 때 저쪽에 숨어 있던 호위가 놀라서 나오게 하거나, 동시에 공격했다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안쪽 호위의 몸에 상처가 두 군데입니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안쪽에 있는 호위를 어떤 수단으로 공격한 것이냐는 것이네.”
입구 쪽에 있던 호위 둘의 위치와 안쪽에 있는 호위 사이에는 벽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벽에 구멍이 뚫린 것도 아니었다.
청운은 제갈신우의 대답에 손을 휘저었다.
슈욱.
청운의 몸에서 무언가 붉은 기운이 휘어지며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그 모습에 제갈신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생각 못 한 방법은 아니지만 직접 보니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허, 휘어져서 공격했다는 말이군. 보이지도 않은 곳을 향해서 말이야.”
“제가 아는 무공 중에도 이런 상황에서 펼칠 수 있는 무공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분들도 같은 말씀을 안 하시던가요?”
“그런 의견이 나오긴 했는데 구조물이 복잡해서 힘들다고 하더군. 적어도 두 번은 휘어져야 안쪽 호위를 공격할 수 있으니 말이야.”
지공을 어검술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검의 고수로 치면 이기어검술을 펼친 것과 같았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갈신우의 말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자객이 특별한 무공을 사용했거나, 아니면 화경의 고수가 아닐까 합니다.”
“끄응,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자네 입으로 들으니 막막하군.”
화경의 고수가 개입했다면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범인을 추격하고 잡아들이려면 그만큼 많은 고수들이 필요했다.
그때 청운이 호위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 무공이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하셨나 보군요.”
“안타깝게도 아는 이가 없더군. 비슷한 무공 역시 모르겠다고 하네. 특히 여기 보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 부분이 특이한데, 구멍 난 부분이 너무 매끄럽고 회전을 하면서 지나갔더군.”
제갈신우가 지적한 부분을 보았다.
구멍 안쪽이 매끄럽게 잘려 있었다.
‘회전을 하면서 쏘아진 지풍이라면 파괴력이 배가 되지. 덕분에 앞쪽보다 뒤쪽의 구멍이 크군.’
호위들의 이마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지만, 뒤통수는 훨씬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특징이 뚜렷한데도 어떤 무공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혈황이 함께 왔다면 물어볼 텐데 혈황은 영호천 곁에 남았다.
‘모셔왔어야 하는 데 아쉽군.’
혈황이라면 분명히 이 무공을 알아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곁에 없으니 다음번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백가장인데…….’
이번에 호위무사가 셋이나 죽었다. 남은 호위무사 중 멀쩡한 사람은 다섯뿐. 백청청을 호위하는 일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상자 중 다섯이 경상이라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 백청청을 호위하는 일 정도는 어렵지 않을 듯했다.
청운은 방 안을 둘러본 다음에 밖으로 나섰다. 제갈신우의 말대로 이렇다 할 단서는 무공 흔적밖에 없었다.
청운은 곧장 백영상을 찾아갔다.
그는 거처에서 혼자 쉬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청운은 백영상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심경이 복잡하신가 보군.’
호위무사가 셋이나 죽임을 당했으니 생각이 복잡할 것이다.
청운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백영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로님, 그런데 백 소저는 어디 있습니까?”
“조금 전에 볼일이 있다며 호위무사 둘과 나갔네,”
“어디에 간 줄 아십니까?”
“글쎄, 행선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네.”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든 청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 소저를 찾아보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시죠.”
“알겠네. 그보다 면목이 없네.”
“지나간 일입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던 안겸이 살해당하지 않았는가. 말 몇 마디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그러나 청운은 이를 문제 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객은 화경에 도달한 고수가 분명해 보였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막지 못했을 것이니 그에게만 잘못을 물을 수도 없었다.
방을 나선 청운은 몇 사람에게 물어서 백청청이 간 곳을 알아냈다.
그녀는 주작단을 찾아간 것이었다.
청운은 다급히 주작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설마 또 한판 붙은 것은 아니겠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둘이 만날 때마다 사고가 생겼지 않은가.
* * *
주작단이 쉬고 있는 곳의 마당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웅성거리기는 했지만 싸움은 아직 벌어진 것 같지 않았다.
분위기가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청운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히 늦지는 않은 것 같군.’
마당을 바라보았다.
백청청이 보무도 당당하게 마당의 중앙에 서 있었다. 백가장의 호위무사들 역시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그녀를 호위하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문희와 그의 시비들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문희의 뒤쪽에 늘어서 있는 주작단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청운은 서둘러서 백청청과 문희가 대치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백 소저, 여기서 무얼 하고 계신 것이오?”
“응? 가가, 벌써 다녀오시는 길인가요?”
백청청을 뒤를 돌아보며 청운을 향해서 밝게 웃었다. 청운은 걱정되는 마음에 문희와 백청청 사이에 서서 물었다.
“안겸이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돌아왔소. 그런데 무슨 일이오?”
“문 단주께서 큰 전과를 올렸다고 하길래 얼굴이라도 보려고 왔지요.”
청운은 눈매를 좁히며 백청청을 보았다.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딱 봐도 시비 걸러 온 것 같은데.’
주변에 있는 주작단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오기 전에 무언가 불편한 언사가 오고 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싸움이 벌어질 만큼 일이 커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일이 벌어질 것 같긴 했지만.
청운은 덥석 백청청의 손을 잡아챘다.
“백 소저, 그만 돌아갑시다. 문희 단주께서도 쉬시구려.”
청운은 서둘러 백청청을 끌고 주작단 거처를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뒤쪽에서 문희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요. 지금 뭐 하자는 것이죠?”
“얼굴 봤으니 그만 가겠다는 것이오. 혹, 볼일이라도 남았소?”
청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희에게 쏘아붙였다.
당장 다그쳐서 정체를 밝혀내고 싶었다. 하지만 마도사파와 전쟁 직전인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문희도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진무사께 말씀드린 게 아니에요. 거기 천둥벌거숭이에게 말한 것이죠.”
“뭐? 너 지금 뭐랬어? 가가, 잠깐만 놔보세요.”
백청청이 발끈하며 몸을 돌렸다. 당장 달려가서 잘난 상판대기에 주먹을 날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청운에게 손목을 잡혀 있었기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청운은 이런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백청청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청운은 다시 백청청을 보았다. 지그시 그녀의 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소?”
“그게, 말 몇 마디 했어요.”
“혹, 여우 어쩌고, 꼬리 뭐 이런 말 한 것이오?”
“예……. 어떻게 아셨어요?”
죄인이라도 되는지 풀 죽은 얼굴로 청운에게 물었다. 청운은 방긋 웃어주며 말했다.
“만날 때마다 하시는 말이니 기억하는 것이오.”
“죄송해요.”
백청청은 풀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 청운이 의외의 말을 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 일로 기죽을 필요는 없소.”
“예?”
“바른말을 했는데 어찌 이리 기가 죽는단 말이오. 잘했소.”
“가, 가가.”
백청청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청운은 포근한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듣고 있던 문희는 어이가 없었다.
“진무사! 지금 뭐라 하셨죠?”
그 소리에 청운은 천천히 몸을 돌려 문희를 보았다.
싸늘한 눈빛. 경멸이 가득 담긴 조롱의 눈초리였다.
청운은 문희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내 말이 뭐가 틀렸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