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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76화 (176/257)

# 176

176화

수라혈군 도문척.

사령회의 회주이자 수라사객의 일인인 그가 나타났다.

한때 정파에게 공포의 대명사라 불렸던 혈귀의 등장에 남궁룡이 긴장했다.

도문척은 허공을 걷듯이 서서히 땅으로 내려섰다.

“이런 곳에서 질풍신룡을 보다니, 어젯밤 꿈이 흉몽이 아니라 길몽이었군.”

씨익 웃는 그의 미소에 남궁룡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준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이름이 강호에 널리 알려졌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좋아할 수가 없었다.

“잘도 우리 아이들을 다져놓았구나.”

“…….”

“크크크, 어디 얼마나 잘 배웠는지 실력 한번 볼까?”

쾅!

땅을 박찬 도문척이 오 장 거리를 좁히며 남궁룡을 공격했다. 치켜든 그의 검에서 시퍼런 검광이 뻗어 나왔다.

남궁룡도 반사적으로 검을 뿌렸다.

챙!

강하게 부딪친 둘은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치며 연달아 검을 떨쳤다.

차자장!

도문척의 신형이 빙그르르 허공에서 재주를 넘더니, 그대로 남궁룡을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 남궁룡의 검이 비스듬히 사선으로 그어졌다.

둘의 검이 부딪치는 찰나에 도문척의 검이 남궁룡의 검을 미끄러지듯이 타고 흘렀다.

깜짝 놀란 남궁룡은 검을 비틀어서 도문척의 검을 튕겨냈다.

수라사혈검.

도문척을 사파 최고의 검객으로 만든 독문검법이었다.

뱀처럼 상대의 검을 휘감고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그의 검법은 지금까지 수십 명의 정파 고수들을 저승으로 보낸 상승의 절기였다.

겨우 그의 검을 떨쳐낸 남궁룡은 창궁비연신법을 펼치며 땅으로 내려섰다.

‘강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독사가 먹이를 노리는 듯한 날카로움에 강맹함마저 더해져서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오성 경지의 제왕검형으로는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자다. 더구나 계속된 싸움으로 공력마저 많이 소모된 상태.

하지만 도망치듯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남궁룡은 전력을 다해서 공력을 끌어올렸다.

우웅!

단전에서 맑은 기운이 울음을 토했다. 가슴 높이로 든 검에서도 맑은 검기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도문척이 피식, 조소를 지었다.

“제법이군. 오룡이 일파의 주인들과 겨룰 정도의 고수라더니, 헛소리가 아니었구나.”

남궁룡은 이를 악물고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을 운용했다. 그의 혈맥을 따라서 노도와 같은 기운이 온몸을 타고 일주천했다.

정신이 맑아지며 온몸에 힘이 솟구쳤다.

검병을 움켜쥔 남궁룡은 곧장 도문척을 향해서 신형을 날렸다.

“차아앗!”

제왕검형 중 두 번째 초식인 제왕현신이 도문척을 향해 펼쳐졌다.

도문척은 자세를 낮추고 검코를 들어 올리며 씩 웃었다.

젊은 놈의 실력은 자신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젊은 놈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수많은 생사투를 치른 경험이.

챙! 차자장.

둘은 빠르게 검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도문척의 검이 급격히 휘어지며 남궁룡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깜짝 놀란 남궁룡이 상체를 뒤로 물리며 검을 휘저었다.

팅!

도문척은 손목을 살짝 틀었다.

검신이 춤을 추듯 요동치더니, 쳐들린 검첨이 교묘하게 방향을 틀며 남궁룡의 가슴을 재차 파고들었다.

쒜에엑!

극쾌의 변화였다.

피하기에 늦었다 생각한 남궁룡은 혼신을 다해 몸을 틀며 검을 휘둘렀다. 온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해도 치명상만큼은 면해야 했다.

하지만 도문척의 검은 남궁룡의 움직임을 비웃듯이 다시 한번 검로를 꺾었다.

‘걸렸다, 이놈!’

피이잉!

남궁룡은 생각지도 못한 변화에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도문척의 검이 그의 앞섶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

캉!

또 다른 검이 두 사람 사이로 날아들며 도문척의 검을 퉁겨 냈다.

“어떤 놈이냐?”

도문척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옆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일갈을 터트렸다.

동시에 한 사람이 남궁룡의 앞에 내려섰다.

백호단 단주 영호천이었다.

겨우 중심을 잡은 남궁룡은 뒤로 물러서서 영호천과 보조를 맞췄다.

“괜찮소?”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남궁룡은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식은땀에 한기를 느끼며 검병을 움켜쥐었다.

그때 영호천이 전음을 보냈다.

-물러서야 합니다. 지금은 사령회주와 싸울 때가 아닙니다.

남궁룡은 흠칫 몸을 떨었다.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느라 포위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내가 공격하면 빠르게 물러서시오.

다시 남궁룡의 귓가로 영호천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알겠습니다.

남궁룡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튀어나간 영호천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슈슉 슈슈슉!

그의 검첨에서 연달아 검강이 쏟아졌다.

“이노오옴!”

도문척은 눈을 빛내며 영호천의 검을 막아냈다.

채채챙!

“지금!”

파바밧!

영호천은 강한 일격을 도문척에게 날리고는 뒤로 몸을 날렸다.

남궁룡이 한발 먼저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도문척은 도주하는 둘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애송이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파밧.

도문척도 신형을 날렸다.

청룡단과 백호단이 사령회 고수들을 막아선 덕분에 정파의 무사들은 빠르게 장내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청룡단과 백호단은 포위망에 갇혀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시간이 갈수록 적의 숫자는 더욱 더 많아졌다.

영호천과 남궁룡을 비롯한 오룡이 앞장서서 사령회 고수들을 막고는 있지만,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여유롭게 뒤를 따라온 도문척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고작 도망친다는 곳이 이곳인가? 그럼 죽어야지.”

도문척이 두 눈에서 흉광을 번뜩이며 명령을 내렸다.

“적사단을 투입해서 저 애송이들을 쓸어버려라!”

“존명!”

도문척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 붉은 적포로 온몸을 감싼 자들이 공격에 나섰다.

모습을 드러내면 피가 강을 이룬다고 알려진 사령회 최고의 정예. 사령회의 도수부로 알려진 적령사신단이었다.

포위당해서 겨우 적을 막아내던 남궁룡은 새롭게 공격해 들어오는 자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적령사신단?”

빠드득.

남궁룡은 이를 갈았다. 곁에서 적의 목을 베던 영호천도 앞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적령사신단까지 투입하다니. 사령회주가 끝장을 볼 생각인가 보군.’

위기를 느낀 그는 급히 명령을 내렸다.

“백호단은 원형진을 펼쳐라! 청룡단은 부상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오시오!”

남궁룡은 이미 적령사신단과 맞서서 정신없이 싸우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통솔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험이 부족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부하들을 보자 지휘를 포기하고 부하들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다.

이십 대 남궁룡의 한계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살아나간다면 다음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 분명했다.

영호천의 명령에 청룡단과 백호단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원형진이 만들어지고 부상자가 안쪽으로 옮겨졌다. 청룡단은 잠시나마 숨을 골랐다.

그사이 영호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외각에서는 남궁룡을 비롯한 오룡이 사령회 고수들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전대 거마로 보이는 자들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는 모습도 보였다.

과연 오룡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사령회주가 작정하고 나선 이상 그들만으로는 전세를 뒤집기에 역부족이었다.

‘제길, 지원 무사들이 오지 않는 이상 살아남기 힘들 것 같군.’

그렇다고 해서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순간, 멈칫한 영호천이 피식, 실소를 지었다.

‘적이 강하다고 패배부터 생각하다니.’

실력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당당히 싸우고 있는 오룡과 자신의 모습이 비교되었다.

비록 자룡궁이 잘못된 길을 걸었지만 언제나 정파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살았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져버린 자부심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댔다.

이때 영호천의 눈에 사령회주 도문척이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가 오룡의 싸움에 끼어든다면, 최소한 오룡 중 한두 명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스윽.

영호천이 자신도 모르게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중얼거렸다.

“죽음이 내 앞에 놓인다 할지라도…….”

척.

다시 한 발 내디디며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렸다.

“사마외도에게 등을 보이거나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다.”

후아아악!

영호천의 몸에서 숨겨두었던 거대한 기운이 폭발했다.

팡!

대지를 박찬 영호천은 곧장 도문척을 향해 날아가며 일검을 휘둘렀다.

쉐에엑!

콰쾅!

도문척은 강력한 기운을 느끼고 몸을 틀었다. 손에 들린 검도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일순간 뿌연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뿌옇게 변해버린 시야 사이로 번쩍이는 백색 광채가 보였다.

대경한 도문척은 고개를 한쪽으로 눕히며 몸을 비틀었다.

스팟!

한 줄기 가느다란 선이 도문척의 왼쪽 뺨에 생겨났다. 그러나 뺨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분노한 도문척은 사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챙챙 채채챙!

강력한 충격이 검을 통해서 느껴졌다.

도문척은 상대의 심상치 않은 공격에 신경이 곤두섰다.

‘결코 내 아래가 아니다!’

공력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린 그는 영호천의 검에 맞서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그렇게 오룡은 오룡대로, 영호천은 영호천대로 사령회의 고수들과 겨루기 시작했다.

그런데 팽팽한 대결이 이어지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사령회 무사들이 협공을 하기 시작했다.

오룡이 후기지수 중 최고의 기재들이라면 상대는 사령회의 정예 고수들이었다.

연수합격이 쉴 새 없이 이어지자 오룡 중에서도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크윽.”

먼저 강호풍이 왼팔에 상처를 입고 신음을 흘렸다. 갈라진 옷자락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더니 한쪽 팔이 붉게 물들었다.

소림의 광표도 세 사람의 협공에 안색이 창백해진 채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입가에 피가 묻은 걸 보니 내상을 입은 듯했다.

남궁룡과 장추룡, 팽도천이 겨우겨우 버티고 있지만, 그들 역시 언제 위기가 찾아올지 모를 만큼 위태로웠다.

문제는 사령회 고수들의 숫자가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보다는 청룡단과 백호단 무사들의 숫자가 더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하나둘 쓰러지다가 결국은 전멸할 것이 뻔한 상황.

청룡단과 백호단을 이끄는 영호천과 남궁룡의 얼굴이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포위망이 겹겹이 펼쳐져 있어서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악에 바친 남궁룡이 무림맹 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잘 들으시오! 만약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면! 마도 놈을 한 놈이라도 더 죽이시오! 우리의 형제들을 위해! 정의를 위해!”

무림맹 무사들은 그 말에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좋소이다! 형제들을 위해!”

“정의를 위해!”

“놈들을 죽여라!”

바로 그때!

“멈추시오!!!”

쩌렁쩌렁한 외침이 천둥처럼 창공을 뒤흔들었다.

귀가 먹먹해진 사람들은 격렬하게 싸우다 말고 주춤거렸다.

심지어 영호천과 도문척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도문척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누가……?’

적인가, 아군인가.

한 소리 외침만으로도 상대가 자신보다 강한 고수라는 걸 느낀 그였다.

만약 나타난 자가 적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서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이 푸른 기운에 휩싸인 채 날아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청룡이 꿈틀거리며 날아드는 듯 장관이었다.

그때 무림맹의 무사들이 날아드는 사람을 보고 소리쳤다.

“진무사다!”

오룡도 표정이 환해졌다.

“청운!”

“이 형!”

“크하하하! 광견, 어서 와라!”

온몸을 피로 뒤집어쓴 팽도천이 광소를 터트리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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