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170화
칠성도문(七星刀門)은 장안 인근에 자리한 유서 깊은 정도문파였다.
화산파나 종남파 같은 대문파는 아니지만 섬서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들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달님마저 잠든다는 인시 말. 그 칠성도문의 높다란 담장을 뛰어넘는 자들이 있었다.
수십, 아니 수백의 야행인들이 칠성도문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곧 안쪽에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적이다! 사령회의 기습이다!”
챙챙 채채챙!
사방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울렸다.
칠성도문 무인들이 사방에서 뛰쳐나와 기습한 자들을 상대했다. 창졸지간에 당한 기습이었다. 칠성도문 제자들은 제대로 대항하지도 못하고 하나둘 쓰러져 갔다.
무인만 삼백이 넘던 칠성도문이 시신으로 뒤덮이는 데는 반 시진이면 충분했다.
“존자! 모두 끝났습니다.”
덩치가 좋은 장한이 비쩍 마른 노인 앞에 와서 포권을 취했다.
“끌끌, 진작 이렇게 처리했어야 했어.”
노인은 사령회의 장로 중 한 명인 백골존자(白骨尊者)였다.
그는 회주인 도문척이 정파에 대한 공격을 늦춘 게 못마땅했다. 진즉 공격했으면 이 꼭두새벽에 달려올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말이다.
“칠성도제(七星刀帝)는 찾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칠객은?”
“셋은 처리했는데 나머지 넷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종남파나 화산파에 간 것 같습니다.”
백골존자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정작 죽였어야 할 놈들이 없었다.
“흥, 명이 긴 놈들이군. 어차피 며칠 더 사는 것뿐이지만. 그만 가자!”
수백 년간 이어온 칠성도문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 * *
장안 일대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처절한 비명이 새벽을 깨웠다.
정파와 관련 있는 문파들은 철저하게 부서졌으며 불타올랐다.
누구도 장안 인근에서 피바람이 몰아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장안성에 서경왕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에 침전에서 보고를 받은 태친왕은 대노했다.
만일 황제가 있는 황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황제는 흉수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관련자를 찾아서 구족을 멸하고 그 뿌리를 뽑아서 태워 죽였을 것이다.
“감히! 짐의 궁전 앞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이냐!”
침전문을 박차고 나온 태친왕은 극도로 분노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당장 동창의 정 소감을 불러라!”
“예, 전하!”
침전을 지키던 양 태감은 서둘러 내관에게 일러 정 소감을 불러오게 했다.
잠시 후 연락을 받은 정 소감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오는 길에 내관에게 전후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대인의 말씀대로 일이 벌어졌구나.’
정 소감은 침전 앞마당에 바짝 엎드려서 태친왕에게 인사를 했다.
“천세 천세 천천세! 태친왕 전하 천천세!”
“어서 오너라. 그대가 말한 일이 간밤에 벌어졌다.”
“저언하! 이 모두가 소인이 저언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옵니당! 소인을 벌하여 주시옵소성! 흑흑.”
정 소감은 눈물까지 흘리며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태친왕은 어제 일을 떠올렸다.
정 소감이 대전으로 찾아와서 사령회가 혈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며 경계해야 한다고 했었다.
대신들이 무림 일에 관여하면 안 된다며 정 소감을 몰아붙였었다.
시끄러워지는 것을 경계한 태친왕은 정 소감을 물렸다.
그는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함부로 군사를 움직였다가는 황제의 눈 밖에 날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극도로 조심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은 다른 왕부와 달리 선왕에 의해서 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을 따르는 왕부의 대신이라는 작자들이 못 미더웠다.
태친왕은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 소감이 마음에 들었다.
“짐이 정 소감의 청을 물리면 안 되는 일이었어. 어제 경이 말한 대로 병사들을 움직였다면 이런 참담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경의 생각은 어떤가? 내가 어찌하면 좋겠는가?”
“저언하! 소인에게 금군을 내어주시옵소성. 진무사 휘하의 금의위를 움직일 수 있게 윤허해 주시옵소성!”
“그리하면 그 무도한 자들을 잡아들일 수 있겠는가?”
“저언하! 안타깝게도 금군과 금의위만으로는 그들을 상대하기 벅차옵니다.”
“뭐라? 폐하의 군대로 그놈들을 처단할 수 없다는 말이냐?”
태친왕의 얼굴에 노기가 일었다. 조금 전까지 좋았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정 소감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전하, 금군을 동원한다면 그들을 처단할 수 있사옵니당. 그러나 전하의 금군 역시 전쟁과 같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옵니다.”
태친왕은 이를 악물었다.
‘당장 금군을 동원해서 놈들을 쓸어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안타깝게도 금군이 많이 상하면 문책이 내려올 수도 있었다. 아무리 자신 휘하의 병사들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황제의 병사가 아니던가.
“무림인을 상대하려면 피해가 크겠군.”
“그러하옵니당. 일당백의 실력을 갖춘 자들이옵니다. 어떤 자는 감히 금군만으로 상대할 수 없는 실력자이옵니당. 안타깝게도 황제 폐하께서도 정파 무인들의 도움으로 황궁 경계를 강화하고 있사옵니다.”
“허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태친왕은 길게 탄식하며 하늘을 보았다. 무도한 자들이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런데 왕이라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태친왕은 두 눈에 힘을 주며 정 소감에게 물었다.
“짐이 정 소감을 믿어도 되겠는가?”
“전하! 소인을 믿으시옵소성. 하옵고, 폐하께옵서 믿고 쓰고 있는 진무사 이청운을 믿으시옵소서. 그가 온다면 사파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옵니다.”
태친왕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론을 내려야 했다.
‘진무사는 폐하가 임명한 관리 아닌가. 그가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서 적을 상대한다면 피해가 커도 내 잘못은 아니지.’
굳었던 태친왕의 얼굴이 펴졌다. 이후의 일은 자신이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좋다. 짐이 경과 진무사를 믿고 병사들을 내어주겠다.”
“망극하옵니다, 저언하!”
정 소감은 오체투지를 하며 태친왕에게 절을 했다.
* * *
사령회의 정파에 대한 공격은 새벽이 오기 전에 시작되어서 날이 밝기 전에 끝이 났다.
사망자만 수백이 넘었다.
소식을 접한 서경왕부는 곧장 금군을 출동시켰다.
그 선두에 정 소감이 있었다.
정 소감은 천 명의 병력을 나눠서 습격받은 정파 세력으로 보냈다. 살아남은 자들을 보호하며 시체를 수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본인 역시 직접 일군을 이끌고 움직였다.
정 소감이 이끄는 병사들이 칠성도문에 들어섰을 때 정 소감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헉! 이, 이럴 수가.”
참혹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시체 속에는 어린아이와 노약자도 있었다.
정 소감은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혹시 모르니 생존자를 찾아봐라!”
“예! 서둘러라!”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죽은 자들을 살피며 혹시 살아남은 자가 있는지 살폈다.
“아이들마저 죽이다니.”
정 소감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리 사파라지만 이럴 수는 없다. 무언가 이상해. 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극악무도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 텐데.’
정과 사가 아무리 원수지간이라지만 정도가 있다. 그 도를 넘어서면 천하인의 공분을 사게 된다. 이번 일은 천하인의 공분을 사고도 남을 일이었다.
정 소감이 칠성도문을 수습할 때 기다리던 금의위가 도착했다.
“정 소감님!”
“어서 오십시오. 웅 대인.”
웅천이 금의위를 거느리고 달려왔다.
이미 시체가 수습되는 단계였기에 정 소감이 보았던 목불인견을 웅천은 보지 못했다.
정 소감은 웅천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물었다.
“웅 대인, 사령회와 싸우게 되면 금의위가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려울 것입니다. 일반 무인들이야 상대하겠지만 고수가 부족합니다.”
“아! 이들의 복수를 해줄 수 없겠군요.”
웅천의 냉정한 말에 정 소감은 탄식했다. 원통하게 죽은 자들에게 미안했다. 관리라는 자가 힘이 없어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백성의 원한을 풀어줄 길이 없었다.
‘역시 금의위의 실력만으로는 안 되는가?’
청운이 무공을 전수하며 키운 인물들이었다. 그런데도 아직은 무림인들의 상대가 아니라니.
‘대인! 어디 계신 것이옵니까? 소인, 대인이 너무 보고 싶사옵니다.’
* * *
화산파를 출발한 청룡단은 곧장 위남으로 달렸다.
선두에서 달리던 남궁룡은 위남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검은 연기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형님, 조금 늦은 것 같은데요.”
“젠장, 놈들이 먼저 도착했나?”
강호풍이 남궁룡의 말에 아쉬운 듯 투덜거렸다.
쉬지도 않고 달려왔는데 한발 늦은 듯했다.
무당의 장추룡과 소림의 광표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정파의 후기지수 중 최고라는 오룡 중 넷이 청룡단에 있었다. 오봉 중 삼봉도 청룡단원이었고. 청룡단은 사신단 중 최고의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장추룡이 남궁룡을 보며 물었다.
“단주, 어떻게 할 건가?”
남궁룡은 위남을 보며 모두에게 말했다.
“반각 쉬고 들어가지요.”
그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종남산 초입에 도착한 청운은 뜻밖의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오? 사령회가 정파를 공격하다니요?”
“오늘 새벽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런……!”
문제는 그 다음 이야기였다.
“그 바람에 장안 쪽에서 온 무사들이 모두 종남을 내려갔습니다.”
“뭐요? 언제 갔소?”
“일각쯤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올라오기 직전에 길이 어긋났다는 말이었다.
“장로님, 백 소저와 함께 먼저 올라가십시오. 저는 그 사람들을 쫓아가 봐야겠습니다.”
“으음, 알겠네.”
백가장 사람들과 안겸을 먼저 종남파로 올려 보낸 청운은 장안으로 향했다.
일각 전에 출발했다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전력을 다해서 경공을 펼치며 삼십 리를 가자 저 멀리 달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기 가는군.’
수백에 달하는 사람들이 종남산에서 흘러내린 강줄기를 따라서 달려가고 있었다.
“멈추시오!”
청운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며 무리를 멈춰 세웠다.
청운을 알아본 사내들이 인사를 건넸다.
“진무사님 아니십니까.”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 보군요. 저희가 급해서 그러니 다음에 이야기하시지요.”
청운은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장안으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가문이 혈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급히 돌아가는 중입니다.”
선두에 있던 덩치 좋은 장한이 대표로 말했다. 그는 철권 이가(鐵拳 李家)의 소가주인 강금천이었다. 철산권이라 불리는 그의 주먹은 바위도 부술 만큼 단단했다.
청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 가면 적의 계략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뭐요?”
“진무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저기서 청운의 말에 반문했다.
청운은 재빨리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이성을 잃지는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눈 속에서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약간의 계기만 주어진다면 화산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오는 길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사령회 책사라면 함정을 파고 기다릴 것입니다. 이성을 잃고 달려올 여러분은 손쉬운 먹잇감이니까요.”
“…….”
순간적으로 군웅들이 입을 닫았다.
청운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나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이 이성을 누른 지 오래였다.
철산권 강금천 곁에 있던 중년인이 나서며 청운에게 말했다.
“설혹 그렇다 할지라도 가족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봐야지 않겠소.”
“칠성도제 님이시군요.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중년인은 칠성도문 문주인 칠성도제였다. 그는 최대한 정중하게 청운에게 말했다.
“지금 인사를 나누고 있을 상황이 아니오. 진무사께서는 속히 길을 열어주시오.”
“불가합니다.”
“진무사, 이 일은 그대가 나설 일이 아니오만.”
누가 있어 위험에 처한 가족에게 간다는데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청운은 이들을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포권을 취한 그가 정중하게 말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제가 한 가지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도 가셔야겠다면 더 말리지 않겠습니다.”
“정 그렇다면 어서 말씀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