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69화 (169/257)

# 169

169화

사내들이 일제히 문희와 그녀 일행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문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문희의 검은 허공을 한 바퀴 돌며 상대의 검을 어렵지 않게 쳐 냈다. 그 후 몸을 한 바퀴 빙그르르 돌린 그녀는 사내들 품으로 파고들며 검을 뿌렸다.

따다당!

서걱! 서걱!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내가 주춤 물러섰다.

문희는 검을 회수하며 한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은 자는 중앙에 앉아 있는 장주를 포함해서 다섯이었다.

“네년이 감히……!”

장주가 두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살아남은 넷이 바닥에 쓰러졌다.

쿠쿵!

문희는 검을 허공에 한차례 뿌리며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팡! 후두둑.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서, 경악하고 있는 영마장 장주를 보며 말했다.

“당신도 덤벼야지?”

영마장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방금 문희의 움직임을 두 눈에 제대로 담지도 못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수가 분명했다.

하지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이런 개X끼들…….’

빠드득!

이를 간 그는 자신의 애병인 거치도를 뽑아 들고 문희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일격필살의 동귀어진 수법을 펼쳤다.

사선으로 베어지는 거치도에는 영마장주의 혼신의 힘이 담겨 있었다.

“흥, 그 정도로는 내 머리카락 하나도 못 자르겠는데?”

문희는 자세를 낮추며 거치도를 피했다. 그러고는 빙글 돌며 장주의 품으로 파고들어서 심장을 찔렀다.

푹!

“컥!”

영마장주의 입에서 다급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는 왈칵 피를 뿜으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 시각, 외부에서 공격을 시작한 주작단이 마침내 장원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마도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단주! 저희가 왔습니다!”

문희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처단하세요! 악을 멸하는 일에 주저하지 마세요!”

“예! 단주님의 명령이시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모두 죽여라!”

주작단과 몰려든 정파인들이 망설이지 않고 살수를 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문희는 미소를 지었다.

‘자고로 피는 피를 부르는 법이지.’

상황이 예상대로 흐르고 있었다.

영마장이 무너진 걸 알면 사령회에서도 더 이상 참고 있지 못할 것이다.

‘호호호호. 이청운, 그 죽일 놈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 * *

화산파에서는 위남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청룡단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가 끝나면 위남으로 보내서 마도사파를 압박할 계획이었다.

제갈신우는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청룡단주 남궁룡에게 설명하고 다시 한번 임무를 주지시켰다.

“다시 말하지만, 청룡단은 위남에서 마도사파를 몰아내고 그곳에 있는 정파인들과 힘을 합쳐야 하네. 거점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지?”

“예, 장로.”

“전면전보다는 위남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하게.”

남궁룡은 제갈신우의 속마음을 간파하고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회의에서 마도사파를 치기로 결정이 났다.

하지만 당장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었다. 놈들이 허튼짓하지 못하게 기만 꺾어놓으면 생각이었다.

주작단의 영마장 공격이 알려진 것은 준비를 마친 청룡단이 화산을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급보이옵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청룡단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 쪽으로 향했다. 첩의당 무사가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는가?”

“주작단이 위남의 영마장을 공격해서 괴멸시켰다고 하옵니다.”

“뭐라? 그게 무슨 말이냐?”

제갈신우가 두 눈을 부릅뜨며 소식을 전하러 온 첩의당 무사에게 물었다.

첩의당 무사가 손에 들려 있는 전서를 건네며 말했다.

“방금 위남에 있는 첩의당 요원에게서 전서구를 보내왔습니다.”

제갈신우는 문사의 손에서 작은 쪽지를 빼앗아서 읽고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어찌 그곳을 벌써 공격했다는 말인가!”

“장로, 무슨 일이오?”

곁에 있던 현허진인이 묻자, 제갈신우는 전서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현허진인이 소리 내어 전서를 읽었다.

“영마장 멸. 주작단 퇴각? 허어, 주작단의 힘만으로 영마장을 괴멸시켰단 말인가?”

소식을 접한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청룡단이 할 일을 주작단이 했다는 말이었다. 영마장을 괴멸시킨 것은 마땅히 좋아해야 할 일이었다.

문제는 청룡단의 일거리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화산파의 수뇌부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수염만 쓰다듬었다.

“허어, 어찌 명령도 없이 단독으로 그런 일을…….”

“험, 문희 여시주의 공은 칭찬할 만하나, 위계를 지키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소이다.”

반면 다른 문파의 장로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어쨌든 마도사파 무리를 괴멸시켰지 않습니까? 당연히 칭찬을 해야지요.”

“맞습니다. 이제야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그려.”

무림맹 장로와 화산파 수뇌부가 신경전을 벌이자, 제갈신우가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오. 영마장을 괴멸시켰으면 그곳을 지켜야 하는데 돌아오고 있지 않소이까?”

현허진인이 이때라는 듯 나섰다.

“당장 청룡단을 급파해서 위남을 지키라고 합시다.”

제갈신우 역시 사태가 심각한 것을 알고 청룡단주 남궁룡에게 명령을 내렸다.

“남궁 단주, 당장 위남으로 가야 하네. 지체할 시간이 없네. 만일 이 소식을 사령회가 먼저 알게 되면 큰일이야. 사령회가 몰려온다면 위남에 있는 정파인들만으로는 막지 못하네.”

“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남궁룡은 지체 없이 대답을 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청룡단은 이미 대기하고 있었기에 그들과 함께 곧장 화산파 산문을 나섰다.

청룡단을 보낸 제갈신우는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전서가 날아온 시간과 청룡단이 달려가는 시간을 합쳐도 사령회보다 늦을지 모른다.’

무림맹 무인들이 모여 있는 화산파보다 사령회가 위남에서 더 가까운 것이다.

“주작단 때문에 일이 이렇게 틀어지다니.”

제갈신우는 한쪽에 모여 있는 무림인들에게 말했다.

“무림 동도 여러분, 우리도 위남으로 가십시다. 사령회 놈들이 몰려오면 청룡단만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게 좋겠소이다.”

“우리가 가서 놈들을 쓸어버립시다.”

군웅들이 너도나도 소리쳤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마도사파에 대한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제갈신우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어…….’

사제인 제갈신기가 싸우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었다. 자신 역시 전면전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중요한 거점인 위남만 손에 넣으면 만족했다. 그 정도면 사령회를 견제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흐르고 있었다.

한편, 영마장을 공격한 문희는 주작단과 함께 화산파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곧장 화산으로 향하지 않고 우회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무인 하나가 물었다.

“단주, 이 길로 가면 화산까지 빙 돌아가게 됩니다. 저쪽 능선을 넘는 게 빠릅니다.”

젊은 무인의 지적에 문희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

“우리 주작단은 정찰이 주 임무예요. 가는 길에 또 다른 적이 있는지 살펴봐야 해요. 피곤하시겠지만 조금만 힘을 내주세요.”

문희의 얼굴에는 미안한 감정이 잔뜩 묻어났다. 그 모습을 본 주작단 단원들은 더 이상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단주.”

“자, 어서 가세!”

의욕이 넘치는 단원들의 모습에 문희는 미소를 지었다.

‘어리석은 것들. 네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 * *

두두두두두!

수백의 인마가 대지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달려라! 낙오되는 자는 그대로 두고 달린다!”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붉은 망토가 밀물처럼 밀려갔다.

혈랑대.

대막의 공포라 알려진 사령회의 전투집단이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잿빛 무복을 입은 수백의 무인이 경공을 펼치며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수라대.

악귀를 만날지언정 수라대를 만나지 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손속이 잔인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등에 메여 있는 두 자루의 곡도가 뽑힌다면 인세에 지옥이 펼쳐질 거라고 알려진 자들이었다.

사령회 소속의 오대 무력집단 중 두 곳이 도문척의 명령을 받고 위남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각 전, 믿기 힘든 전서응이 사령회에 날아들었다.

덕분에 사령회가 발칵 뒤집혔다.

“그것 보십시오! 정파 놈들이 정사대전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원한다면 상대해줘야지요!”

“이번 기회에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회주!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모두의 시선이 태사의에 앉아 있는 수라혈군 도문척에게 모였다.

도문척 역시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파 놈들은 어쩔 수 없군. 피를 보고 싶다면 마다할 것 없지!”

쾅!

와직!

단단하기가 철 같다는 흑단으로 된 태사의 팔걸이가 박살이 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도문척이 외쳤다.

“수라대와 혈랑대를 위남으로 출진시켜라!”

“존명!”

“구유존자와 삽십육혈객을 불러라! 사령회에 속한 십팔문에 무사들을 준비하라 전하라!”

“예, 회주!”

도문척은 고개를 돌려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신안기군 원적을 보며 말했다.

“군사, 섬서에서 정파를 몰아내야겠네.”

“회주, 사도맹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흥! 우리가 기다리면 놈들이 먼저 공격해 올 거네. 뜨거운 맛을 봐야 놈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해.”

“…….”

원적은 대답하지 못했다. 무언가 이상하긴 한데 정보가 너무 부족하고 증거도 없었다.

“나를 설득하려 하지 말고! 자넨 가까운 곳에 있는 정파부터 정리하게.”

“……알겠습니다. 회주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느낌이 안 좋았다.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모두들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피 맛을 보게 하든지, 아니면 이들을 설득할 증거를 내놓지 않으면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원적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벌써부터 진한 피바람이 코를 간질이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묘한 전율이 일었다.

‘만약 누군가가 중간에서 이번 상황을 조종했다면…… 무서운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군.’

* * *

정 소감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보를 모았다. 청운이 자신이 왕부로 보낸 것은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청운의 예상대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무림맹의 주작단이 위남의 영마장을 공격했다고 하옵니다.”

“주작단? 문희라는 계집이 이끄는 주작단 말이냐?”

“니예, 정 소감님께서 예의주시하라고 하셨던 그 여자가 주작단을 이끌고 영마장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정 소감은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히 총군사는 마도사파를 공격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여우가 명령도 없이 움직였다는 건데…… 무슨 생각인 거지?’

정 소감은 문희가 되어서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답은 금방 나왔다.

‘양측이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건가?’

뻔한 수작이지만 막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곳이 황실이라면 정원 태감의 힘을 빌려서라도 어떻게든 황군을 움직여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서경왕부였다.

왕야는 청운을 달가워하지 않는 듯했다.

‘대인께서 나를 서경왕부에 보낸 것은 대인이 안 계실 때 군대를 이용해서 싸움을 막으라는 것인데…….’

위남에서 싸움이 벌어졌다지만 그 일은 무림에 관련된 일이다. 왕야의 성정상 이 정도에 군을 보내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무림인들의 싸움은 늘 있었던 일이고, 관여해봐야 골치 아픈 일만 벌어진다는 걸 관리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내가 조금 피곤해지더라도…….’

마음을 다잡은 정 소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깊게 숨을 들이쉰 그는 허리를 반쯤 구부리고 종종걸음으로 왕야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인을 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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