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64화 (164/257)

# 164

164화

백영상은 청운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백청청 핑계로 따라나선 유람이었다. 종남파도 구경했으니 다른 곳도 가봐야지 않겠는가.

범인을 잡으러 간다니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을 것 같고.

“흠, 내가 싫다고 해도 청청이가 따라갈 것이니 함께하세.”

“그럼 출발하지요.”

“이 밤에?”

“예, 놈이 또 어디로 튈지 모르니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긴……. 조금만 기다리게. 일각 안에 준비하겠네.”

백영상은 곧장 호위를 소집했다.

백청청도 청운과 함께 범인을 잡으러 간다고 하자 제일 먼저 서둘렀다.

청운은 무림맹 사람들에게 잠시 종남산 주위를 둘러본다는 이유를 대고 백가장 무인들과 함께 종남파를 나섰다.

무림맹 사람들이야 껄끄러운 청운이 알아서 나가니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 * *

고요하던 화산파가 무림맹에서 달려온 사신단과 각 문파의 무사들로 북적거렸다.

화산파와 무림맹 인사들은 사령회를 예의 주시했다.

총군사인 제갈신기의 생각과 달리, 그들은 사도맹이 종남파를 공격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사도맹 장안지부인 사령회가 선봉에 섰을 가능성이 컸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기다릴 겁니까? 당장 장안으로 가서 사령회 놈들을 박살 냅시다!”

“옳은 말씀이오! 마도의 무리와 한 하늘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건 치욕이외다!”

“놈들을 쳐서 종남 형제들의 원혼을 위로합시다!”

하루가 지나자 이 사람 저 사람 사령회 공격을 주장했다.

그러나 무림맹의 모든 지휘 권한은 맹주와 총군사에게 있었다.

특히 비상시국에는 총군사의 지휘를 따라야만 했다. 그러지 않을 시에는 하극상의 대죄를 짓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오후가 되었을 때였다. 개방으로부터 급박한 소식이 전해졌다.

“사령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곧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화산파 장문인인 현허도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놈들이 드디어 공격에 나설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맞서야지요. 놈들에게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당장 가서 놈들을 칩시다!”

이 사람 저 사람 열기에 들떠서 한마디씩 했다.

그때 무림맹에서 파견된 군사 사문량이 말했다.

“아직 맹에서 연락이 없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사문량은 사령회와 협상하는 일을 맡기로 했다. 덕분에 사신단과 함께 화산파에 와 있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사문량을 향해서 말했다.

“사 군사, 그러다가 정도문파가 종남파같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당하면 책임지시겠습니까?”

“총군사께서 대비는 하되 선공은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대비? 아니 그럼 방어만 하고 공격은 하지 말라는 말씀이시오?”

“사령회를 치면 사도맹이 움직일 겁니다. 아직 확실한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좀 더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회의는 신중하자는 측과 힘으로 밀어붙이자는 쪽으로 갈렸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싸우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그나마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바람에 당장 나설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다.

보다 못한 현허도장이 나섰다.

“모두 조용히 해주시고 잠시 주목해 주십시오.”

천하제일검 자리는 검왕에게 내줬지만, 그의 검은 검왕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의 한마디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빈도 역시 당장 마도의 무리를 쳐서 종남파 제자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싶소. 허나 총군사가 기다리라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소? 물론 무한정으로 기다릴 수는 없으니, 사흘 동안 저들의 동태를 살펴본 후 다시 결정을 내리도록 합시다.”

몇몇 사람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바로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화산에서 불씨가 튀기 시작했을 때, 청운은 진령의 남쪽 자락에 도착해 있었다.

* * *

염성현 끝자락에 자리한 신안은 한중과 붙어 있었다.

세 개의 큰 강이 만나다 보니 물류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제법 살기가 좋은 곳이었다.

오후 무렵, 신안 현성에 들어선 청운과 백가장 일행은 일단 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서 잠시 쉬고 계십시오. 놈의 위치를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저도 함께 가요.”

백청청이 기다렸다는 듯 일어서자, 백영상이 눈에 힘을 주고 한 소리 내질렀다.

“앉아!”

백청청은 입술을 씰룩이고는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청운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객잔을 나섰다.

‘후우, 장로님과 함께 오길 잘했지.’

객잔을 나선 청운은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바로 그 골목 입구에 개방의 표식이 있었다.

골목 안쪽에는 거적을 바닥에 깔고 있는 거지가 한 명 있었다.

-놈의 위치는?

청운은 전음으로 거지에게 물었다.

거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지춤을 뒤집고 빈대잡기에 열중이었다.

재차 거지의 귀로 청운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진무사요. 놈의 위치는 어디요?

그제야 거지가 투덜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빌어먹을 빈대 새끼들 같으니라고. 꼭 저기 파란 기둥의 그 검둥이 새끼같이 지랄 맞네. 카악, 퉤!”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청운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청운의 고개가 길의 끝자락에 자리한 파란색 건물로 향했다.

휙.

한 냥 정도 되는 은자를 바가지에 던진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거지는 잽싸게 은자를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청운은 커다란 대문 앞에 서서 고개를 쳐들었다.

장원의 대문 위 편액(扁額)에 음양장이라는 글자가 용사비등하게 새겨져 있었다.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자들이 청운을 보고 말했다.

“용무가 있으신지요?”

“장주를 만나러 온 사람이오. 안에 기별을 넣어주시겠소?”

“어디서 오신 누구라 전할까요?”

“하남 개봉에서 온 이삼원이 거래할 것이 있다고 전해주시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장주님께서 출타 중이신데 돌아오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청운은 경비의 안내를 받아서 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마당이 있었고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은 여타 다른 장원과 다름이 없었다.

지객당으로 안내된 청운은 시비가 내온 차를 마시며 차분히 부름을 기다렸다.

한편, 객잔에 자리를 잡은 백가장 무사들은 청운이 오기를 기다렸다.

“흐음.”

백영산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무언가 불만이 있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앞에 앉아서 차를 홀짝이고 있던 백청청이 물었다.

“할아버지, 심심하세요?”

“이놈아, 그럴 때는 무료하냐고 묻는 것이다.”

“헤헤, 무료하세요?”

“오냐. 강호 유람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고 나왔더니 온통 산밖에 없구나.”

백영상은 불만이 많았다.

강서성에 있는 백가장 인근도 온통 산이었다. 그런데 이곳까지 오면서 본 것이라고는 산과 숲밖에 없었다.

집에서도 매일 보던 풍경.

강호 유람까지 나와서 똑같은 것을 보자니 기운이 빠졌다.

“할아버지 그럼 이곳이라도 한 바퀴 돌고 오세요. 운성보다는 못해도 제법 규모가 있는 곳이잖아요.”

“흐음.”

백영산은 백청청의 제안을 생각해 보았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일절 표를 내지 않았다.

“아니다. 내 심심하다고 너를 두고 돌아다닐 수는 없지.”

“에이, 제가 어린앤가요, 뭐?”

“아는구나.”

“헤헤, 여기 얌전히 있을 테니 한 바퀴 돌고 오세요.”

백청청의 권유에 백영상은 마음이 흔들렸다.

백청청을 놔두고 다녀오자니 불안하고, 가만히 있자니 좀이 쑤셨다.

어떻게 나온 강호인데.

자신이 강호로 나간다니까 모두가 부러운 눈빛을 보내지 않았던가.

“알았다. 내 잠시 요 앞에 다녀오마. 대신 내가 올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느니라. 사고도 치지 말고.”

“예, 호위들과 함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백영상은 배시시 웃는 백청청이 못 미더웠다.

하지만, 잠시 다녀오는 동안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라고 생각한 백영상은 호위 둘만 대동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 객잔에는 열 명의 호위가 남아 있으니 별일이야 있을까 싶었다.

백청청은 창밖을 힐끔 보았다.

멀어져 가는 백영상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곁에 있던 호위 중 한 명이 인상을 굳히며 말했다.

“아가씨, 안 됩니다.”

백청청은 들은 척도 안 하며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얌전히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예의 사내는 백청청의 말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 * *

안겸은 좌우를 둘러보다가 객잔에서 창밖을 보는 한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크고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미인이었다.

‘저런 미인이 이런 촌구석에?’

한눈에 봐도 눈이 돌아갈 미모를 가진 소저였다. 주위에 사내들이 서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호위를 거느리고 나온 무가의 규수로 보였다.

‘아무리 일이 급해도 저런 미인을 두고 갈 수는 없지.’

안겸은 곧장 소저가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객잔은 한산했다. 식사 때가 아니어서 그런지 차를 마시는 몇몇 손님뿐이었다.

안겸은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이층으로 올라갔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소저가 보였다.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성큼 걸음을 옮긴 그는 그녀가 앉아 있는 탁자 옆에 섰다.

여인과 함께 앉아 있던 호위무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안겸이 올라올 때부터 신경을 쓰고 있었다.

평범한 무사가 아니었다. 절정 고수. 그것도 초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안겸의 앞을 막지 않았다. 괜한 분란을 만들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겸 역시 호위들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볼일이 없었다.

그가 등을 돌리고 창밖을 보고 있는 여인을 보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는 소저가 아닌 것 같은데,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소?”

“…….”

그러나 여자는 안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창밖을 볼 뿐이었다.

그 모습에 안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저, 사람이 불렀으면 대답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소?”

안겸의 거듭된 말에 등을 돌리고 있던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안겸의 두 눈에 탐욕이 번들거렸다.

그런데 여인이 그를 보고 말했다.

“뭐야, 이 검둥이는?”

여인의 말에 안겸은 탐욕 대신 살기가 솟구쳤다.

말을 한 여인은 백청청이었다.

할아버지나 청운이 언제 올지 몰라서 목이 빠져라 밖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웬 이상한 자가 나타나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지 않은가.

잘생기기라도 했으면 몇 마디 대꾸해줬을 텐데, 시커멓고 못생긴 데다가 희죽 웃는 모습이 영 밥맛이었다.

“거, 검둥이? 이년! 감히 나를 검둥이라 부르고 살아남기를 바랐느……. 커억!”

퍽!

주르륵.

안겸은 강력한 장력에 얻어맞고 뒤로 밀려났다.

“호오, 제법인데?”

백청청은 자신의 삼성 공력이 담긴 장력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은 안겸의 실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안겸은 쓰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슴을 탁탁 털며 씨익 웃기까지 했다.

“무공을 익혔단 말이지?”

마지막 순간에 몸을 틀어서 몸에 전해지는 충격을 줄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낭패를 볼 뻔했다.

지금도 가슴이 얼얼했지만, 그는 자신이 어린 계집에게 당할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목을 좌우로 비튼 그는 백청청과 호위무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당연히 호위무사들이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나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일어선 호위들이 앞으로 나서지 않고, 오히려 뒤로 물러나는 것 아닌가.

‘뭐야?’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상관없겠지. 어차피 계집만 놔두고 모조리 죽여 버릴 거니까.”

우웅!

안겸은 손가락을 구부리며 갈고리처럼 만들었다. 그의 아홉 개뿐인 손가락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거리며 흘러나왔다.

백청청의 눈빛이 반짝였다.

“호오, 가가께서 찾던 물건이 여기 있었네.”

후아아아앙!

백청청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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