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63화 (163/257)

# 163

163화

하나둘 떠오른 잔해가 허공에 가득했다. 백청청이 건물 전체를 들어 올리려는지 엄청난 내공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무지막지한 힘은 또 뭐야?’

청운조차 백청청의 내공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끝없이 흘러나오는 기세는 자신이 생각해도 엄청났다.

‘이상한데? 잔해를 옆으로 치우면 될 것을 왜 하나하나 들어 올리지?’

단순하게 무너진 잔해를 치우는 일이라면 간단했다. 그런데 건물 전체를 들어 올릴 기세였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잔해가 들어 올려졌다.

백청청의 손이 다시 기묘하게 뒤틀렸다.

쩌어엉!

그그그긍!

허공에 떠 있던 잔해가 둘로 쪼개지는 기사가 벌어졌다. 이내 양옆으로 옮겨지더니 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백청청이 자세를 풀었다. 무지막지한 내공 역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모두의 시선이 백청청이 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 아이가 울면서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부님! 우아앙!”

먼지를 뒤집어쓴 아이가 달려간 곳에는 시체들이 있었다.

아이는 그중 비스듬히 죽어 있는 자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종남파 옷을 입은 도인이었다.

지켜보던 종남파 사람들도 빠르게 달려갔다.

“크흑, 여기 있었구나. 내 그리 찾았거늘.”

“사형!”

비통한 음성이 종남파를 다시 뒤덮었다.

실종된 것으로 여겼던 도인이 발견된 것이다.

청운은 이 일을 벌인 백청청을 보았다. 그녀는 처연한 눈길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청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쓰러진 자들을 보며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 보았다.

딱히 이상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청운이 주위를 살필 때 도인의 시체가 옮겨졌다.

청운의 시선이 방금 도인이 죽어 있던 자리로 향했다.

그곳에 무언가 모를 작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쳤을 흔적이었다.

청운은 한 손을 휘저었다.

후웅.

말라버린 핏자국과 뿌연 먼지가 훅 일더니 한쪽으로 사라졌다.

깨끗하게 치워진 바닥에 다섯 개의 작은 구멍이 보였다. 구멍을 보자 청운의 머릿속에 떠오는 무공이 있었다.

‘역천마지(逆天魔指)?’

황궁무고에서 봤던 무공 중 패도의 무공으로 분류되었던 무공이다.

위력이 워낙 뛰어나서 마도 무공으로 취급받던 지법.

청운이 아는 한 현재 강호의 고수 중 그 무공을 펼칠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청운은 그중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를 잡아서 알아보면 되겠군.’

동시에 곁에 있던 혈황이 한마디 했다.

[역천마지의 흔적이군.]

그도 구멍의 흔적을 만든 무공을 알고 있었다. 황궁무고에서 청운과 함께 봤으니까.

-예, 맞습니다.

[누가 역천마지를 익히고 있는지 아느냐?]

-다행히 알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사도맹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 * *

백청청의 활약으로 종남파에서 무인들의 시선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덕분에 습격자들을 다시 조사하는 청운에게 협조적이었다.

청운은 경내를 돌며 흔적을 찾아보고 시체가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먼저 종남파 무인들의 몸에 남겨진 무공 흔적을 살폈다.

혈황도 시체들을 빠르게 살펴보며 독특한 무공 흔적을 몇 개 발견하고는 청운에게 알려주었다.

청운이 함께 있던 종남의 무인에게 말했다.

“이 사체와 저기 사체에 난 흔적을 그림으로 남겨줬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종남 무인은 곧장 사람을 시켜서 청운의 부탁을 실행했다.

시체를 안치한 곳에서 나온 청운은 종남파를 습격한 자들의 시체가 보관된 곳으로 갔다.

종남파를 습격한 자들은 시체를 회수해 가지 않았다. 정체를 숨기려면 동료의 시체를 수거해 가는 게 일반적인데.

‘보란 듯이 동료의 시체를 두고 같군.’

아마도 종남파와 무림맹에서 보기를 원하고 남겨두었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계획대로 무림맹이 오판을 할 테니까.

청운은 그들의 의도를 짐작하고 종남파 무인에게 물어보았다.

“이곳에 있는 시체들의 신상은 파악했습니까?”

“일부 파악된 자들도 있고, 아직 파악되지 않은 자들도 있습니다.”

“혹, 사령회의 무사도 있습니까?”

“예, 시주. 두세 명은 사령회 쪽 사람인 것으로 파악이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종남파에서는 사도맹이 주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거셌다.

문제는 사령회의 무리로 보이는 자는 소수라는 것이다.

그것도 절정 경지에 이른 자들은 정체를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사령회가 주도했다면 고위 간부 하나 보내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청운은 곁에 서 있는 정 소감에게 말했다.

“정 소감, 그대가 사령회 사람들의 초상을 그리게.”

“니에, 소인이 하겠사옵니다.”

“아, 그들의 몸에 난 특징도 있으면 같이 적어두고.”

“니에.”

청운은 정 소감에게 일을 맡기고 시체가 보관된 곳을 나섰다.

* * *

하진지부의 소식이 전해지자 사령회가 발칵 뒤집혔다.

“뭐야! 용문의 하진지부가 무림맹의 공격을 받아서 무사 이백여 명이 죽었다고?”

보고를 받은 수라혈군 도문척은 눈을 치켜뜨고 노성을 터트렸다.

“예, 회주.”

“이런……! 당장 회의 소집해!”

일각 만에 사령회 간부 수십 명이 사령전에 모였다.

중앙 태사의에는 덩치 큰 사내가 앉아 있었다. 수라사객의 일인이며 사령회 회주인 수라혈군 도문척이었다.

“모두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도문척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비처럼 수염이 거칠게 난 중년인이 벌떡 일어나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예, 회주! 당장 종남에 있는 무림맹 놈들을 쓸어버립시다!”

다른 간부들도 앞다투어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회주님, 음흉한 새끼들이 앞에서는 살랑거리고 뒤에서 더러운 짓을 벌였지 않습니까? 본보기로 정파에 속한 새끼들 몇 군데 쓸어버리시지요.”

“맞습니다. 우리가 종남파를 치지도 않았는데, 앙심을 품고 하진지부를 공격한 게 틀림없습니다.”

“더러운 위선자 놈들과는 말로 하면 안 됩니다. 패고 시작하시지요!”

“일단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합니다. 지난번에도 많이 참았지 않습니까? 자꾸 참으면 병 생깁니다.”

간부 대부분이 싸우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시끄러!”

도문척이 간부들을 향해 소리치며 눈을 부라렸다.

“무림맹이 어디 뒷골목 흑도새끼들과 같은 줄 알아? 조용히 하고 앉아 있어. 칠 때 치더라도 사실 확인이 먼저니까.”

말 몇 마디로 간부들의 입을 막은 도문척이 옆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는 군사인 원적이 앉아 있었다.

“상황부터 자세히 말해 봐.”

“이틀 전, 무림맹 산서지부 놈들이 하진지부를 습격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서 하진지부 무사 대부분이 죽고 십여 명만이 살아서 도망쳤다고 합니다.”

“무림맹 놈들이 확실해?”

“예, 확실하다고 합니다.”

원적의 대답이 나오자마자 간부들의 입이 다시 열렸다.

“거 보십시오! 무림맹 놈들이 종남파 복수를 한다고 쳤다니까요.”

“이번에는 진짜 우리가 칩시다!”

“조용히 하라니까!”

빽, 소리친 도문척이 의자 깊숙이 등을 묻고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미치겠군.”

누가 공격하고 싶지 않아서 망설이나?

솔직히 힘만 세다면 자신이 먼저 나서서 무림맹 놈들을 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령회가 아무리 섬서에서 한가락 한다고 하지만, 무림맹과 맞설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더구나 무림맹이 정말로 하진지부를 쳤다면 언제 사령회를 치겠다고 달려올지 몰랐다.

복수? 그것도 사령회가 산 이후의 일이다.

“원적, 맹에 연락은 했느냐?”

“회의에 오기 전 전서구를 띄웠습니다.”

“맹에서 무사들을 보낸다면 언제쯤 도착할 거라고 보느냐?”

“빨라도 사흘은 걸릴 겁니다.”

사도맹의 총단은 한중에 있다.

사도맹에서 사령회를 돕고 무림맹과 맞서기 위해 고수들을 파견한다 해도 진령을 넘어 오려면 이틀은 걸린다.

전서구가 도착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사흘.

도문척은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젠장! 사흘이 삼 년 같겠군.”

“일단 경비를 배로 늘리고, 종남과 화산에 있는 놈들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철저히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해. 그리고 밖에 나가 있는 놈들도 모두 들어오라고 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니까.”

“예, 회주.”

* * *

종남파가 내려다보이는 이름 모를 절벽 위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청운과 정 소감, 그리고 웅천 백호.

후두두둑.

한 마리 전서구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전서구가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하더니 곧장 동쪽으로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다.

전서구의 뒷모습을 보던 청운이 뒤에 시립해 있는 웅천에게 말했다.

“웅 백호.”

“예, 대인.”

“아무래도 정사대전을 바라는 자들이 있는 것 같네.”

“그들이옵니까?”

“그런 것 같아.”

“소장이 할 일이 무엇인지요?”

청운의 말에 웅천은 눈을 빛냈다.

그리 오랫동안 청운을 모신 건 아니다. 그러나 무림출도부터 언제나 최측근 자리를 지켰었다. 청운이 무슨 명령을 내리든지 완수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

청운은 그런 웅천의 마음을 아는지 명령을 내렸다.

“장안 위소로 가서 금의위를 점검하고,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게 준비해주게.”

“예, 대인, 하온데 금의위만으로 되겠습니까? 금군도 준비를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일은 정 소감이 해줘야겠어.”

정 소감이 기다렸다는 듯 예를 취했다.

“무엇이든 명령만 내려주시옵소서.”

“서찰을 써줄 것이니 서경왕부에 가주게.”

남경왕부에 이왕야와 칠왕야가 있다면, 장안의 서경왕부에는 오왕야가 있다.

금군을 움직이려면 그의 마음부터 움직여야 했다.

“니에, 왕야를 만나 잘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서찰만 전해주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오왕야가 청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럴 경우 왕야의 기분을 풀어 주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환관인 정 소감이 청운보다 나았다.

“소인만 믿으시옵소서. 마침 서경왕부에 연이 있사옵니다.”

“그래? 잘됐군. 그리고 자네가 한 가지 더 해줘야 할 일이 있네.”

“말씀만 하시옵소서.”

“장안에 가거든…….”

청운의 설명을 한참 동안 들은 정 소감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니에, 알겠사옵니다.”

“왕부의 일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네. 그 일이 해결되면 놈들의 음모를 막는 데 큰 힘이 될 거네.”

* * *

정 소감과 웅천을 장안으로 보낸 청운은 종남파를 도우며 소식을 기다렸다.

그렇게 늦은 밤이 되었을 때 개방 제자 하나가 그를 찾아왔다.

“대인, 찾았사옵니다.”

나직한 그 말에 청운의 눈빛이 빛났다.

“빨리 찾았군. 어디에 있던가?”

“예, 한중으로 가는 길에 석천(石泉)이라는 제법 큰 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서쪽 한중 방향으로 오십 리쯤 가시면 되옵니다.”

청운은 품속에서 백 냥짜리 전표를 꺼내 건네주었다.

“고생했네. 내 개방의 형제들에게 한턱내지.”

“아이쿠, 감사합니다.”

청운은 종남파를 돕기 위해서 와 있던 개방 제자에게 한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었다.

구혼지마 한겸.

종남파 제자를 죽인 역천마지의 주인.

무림맹에서 제갈신기 덕분에 본 강호인명록에 의하면 섬서의 남부를 주 무대로 활동한다고 했다.

사실 섬서성의 남부라 해도 워낙 광활해서 찾으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줄 알았다. 그런데 천하제일의 정보망을 지닌 개방답게 하루 만에 찾아낸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청운은 백영상 장로를 찾아갔다.

정 소감과 웅천을 장안으로 보낸 터였다. 동창 무인과 금의위도 그들에게 딸려 보냈다.

종남파에는 자신만 남은 상황.

혼자 가도 안겸을 잡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여럿이 가는 것이 나을 듯했다.

그렇다고 무림맹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애매했다. 무림맹에는 누가 신비세력의 간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구혼지마에 대한 정보를 종남파와 무림맹에 건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재 종남파에 있는 사람 중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행과 백가장 사람들뿐이었다.

“범인으로 짐작되는 자들 중 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지금 그자를 잡으러 갈 생각인데, 함께 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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