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161화
“무림맹 내의 간자들을 감시하던 조에서 보고가 들어왔는데, 그들도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하네. 아마도 몰랐던 모양이야.”
청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으음, 좋지 않은 소식이군요.”
제갈신기도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네. 아무래도…… 노룡회 외에 또 다른 조직이 있는 것 같네.”
잠시 생각하던 청운이 눈을 들어서 제갈신기를 직시했다.
“제가 종남에 가보겠습니다.”
“자네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지요.”
“하긴…… 이대로 흐르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네.”
“그리되면 놈들이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지요.”
“자네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얹어준 것 같아 미안하군.”
“미안하시면 나중에 배로 갚으시면 됩니다.”
피식, 제갈신기가 실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만 하게. 뭐든 줄 테니까.”
* * *
아침이 되자 사신단에 대한 인원 배치가 시작되었다.
단주야 어차피 무림대회 사강에 오른 사람들이 맡기로 했으니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조장 자리를 놓고 밥그릇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수뇌부가 실무를 맡은 군사들을 찾아가서 압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제갈신기는 이를 알면서도 묵과했다.
그렇게 사신단 조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청운이 그를 찾아갔다.
“준비는 잘되고 있습니까?”
“이제 인원 배치가 끝났네.”
“간자에 대한 감시는 어떻습니까?”
“계속 지켜보고 있네. 아직은 증거가 부족해.”
오랜 세월 아무도 모르게 스며든 신비세력의 첩자들이다. 단순히 누군가가 첩자라고 지목한다고 해서 첩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들을 옭아맬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청운이 혈황까지 동원했건만 아쉽게도 놈들이 빈틈을 드러내지 않았다.
“운이 좋은 놈들이야. 이번 일만 아니었어도 함정을 파서 모조리 제거했을 텐데, 아쉽군.”
“또 기회가 있겠지요. 그보다 전서구나 몇 마리 주십시오. 종남에 가게 되면 연락할 일이 자주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얼마든지 가져가게. 배고프다고 잡아먹진 말고.”
“이런, 들켰군요. 비둘기 고기가 맛있다고 해서 한 마리 슬쩍 하려고 했는데요.”
제갈신기는 청운의 너스레에 피식 웃고는 슬쩍 물었다.
“화산파에도 가볼 생각인가?”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화산파의 사람 중에도 간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화산파 본산에도 간자와 연결된 사람이 있을지 몰랐다.
거처로 돌아온 청운은 혈황과 마주했다.
-저와 함께 가시죠.
[그럴 필요가 있을까?]
-제 도움이 필요 없으시다면 어쩔 수 없고요.
[지금…… 협박하는 거냐?]
-제가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천하의 혈황 님을.
[그럼 뭐야. 질투하는 거냐?]
-제가 왜 질투를 합니까?
[그런데 왜 그래?]
-제가 뭘요? 제가 언제 영호천에게 가지 말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방해를 했습니까?
[흥. 질투하는 거 맞군.]
-제가 질투하는 게 아니라, 혈황 님이 삐지신 거 같은데요?
[내가 왜 삐져?]
-그게 아니면 왜 자꾸 트집을 잡으십니까?
[트집?]
-저와 함께 다니는 게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 놓아드릴 테니까요.
청운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자, 혈황도 더 이상 몰아붙일 수 없었다.
아직은 청운의 도움이 필요했다.
[킁, 좋다. 너와 함께 가마.]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시는 거 아니죠? 그런 거라면 굳이 함께 가실 필요가…….
[간다잖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노인이 너무 화를 내면 핏대가 터져서 쓰러질지 모른다고 하던데. 몸조심하세요.
[끄응, 빌어먹을 놈.]
-걱정 마세요. 돈 많이 벌어놔서 빌어먹을 일은 없습니다.
[…….]
말싸움으로는 혈황이 청운을 이길 수 없었다.
혈황은 그걸 알면서도 청운과 말싸움을 한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
‘이놈, 어디 두고 보자. 영호천이 조금만 더 크면…….’
그도 제법 뒤끝이 있는 남자(?)였다.
* * *
척마대와 멸사대는 무림맹 출발 이틀 후 종남산 자락에 도착했다.
척마대를 지휘하는 섬전쾌검 노해광은 종남산을 바라보았다.
‘종남산이 울고 있군.’
휘이이잉.
스산한 바람이 종남산을 휘감고 지나갔다.
삭막하면서도 메마른 바람이 종남파의 혈겁을 슬퍼하는 것만 같았다.
노해관이 자신을 보고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저 능선을 돌아가면 종남파다. 지금부터 놈들의 습격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고, 양충은 조원들을 데리고 먼저 출발해라.”
“존명!”
노해광은 척후조를 먼저 보냈다.
종남파를 공격한 자들이 올라가는 길목을 틀어막고 기습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주위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천리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부하들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생존자들이 있어서 자신들의 애타게 기다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척후조를 앞서 보내고 척마대와 멸사대는 종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려하던 기습은 없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얼마를 올라가자 저 멀리 종남파 산문이 보였다.
노해광이 부하들에게 외쳤다.
“척마대는 나를 따라서 곧장 입구를 밀고 들어간다. 멸사대는 뒤를 받쳐라!”
“존명!”
노해광이 먼저 신형을 날리고, 척마대와 멸사대 대원들이 뒤를 따라 땅을 박찼다.
그때, 반쯤 무너진 산문을 통해서 몇 사람이 나오는 게 보였다.
날듯이 나아가던 노해광은 그들을 보고 눈이 커졌다.
산문 앞으로 나온 자들 가운데 아는 얼굴이 있었다.
“일광자 님 아니십니까?”
종남파 장로인 일광자였다.
그가 직접 제자들과 함께 산문을 지키고 있었다.
일광자는 갑자기 나타난 무인들을 경계하다가 그들이 무림맹 무사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크게 기뻐했다.
“노 단주 아닌가?”
“장로님, 괜찮으십니까? 소식을 듣고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무사하셨군요.”
기쁨도 잠시 일광자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체불명의 무사들이 기습을 했네. 막아보려 했지만 놈들이 워낙 강해서 많은 제자가 죽었네. 다행히 놈들이 스스로 물러서지 않았다면 멸문을 당했을 것이네.”
그러고는 얼굴에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으며 먼 길을 달려온 무림맹 무사들을 반겼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들어가세. 자네들이 왔으니 이제 안심이 되는군.”
“그러시지요.”
경내에 들어서자 불타고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보였다.
멀쩡한 건물이 몇 채 없었다.
종남파 복장을 한 제자들이 건물의 잔해를 치우며 경내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천으로 덮인 시신들이 즐비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는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노해광이 그 모습을 보고 명령을 내렸다.
“척마대는 주위를 경계하고 멸사대는 종남파를 돕도록 하라.”
“존명.”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욱이 놈들이 다시 습격을 해올 수도 있기에 경계를 강화했다.
노해광은 멸사대주와 함께 일광자를 따라서 이동했다.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전각 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가 보니 한발 먼저 달려간 종남파 장로와 제자들이 몇몇 노인들과 함께 있었다.
그 노인들은 종남산 깊숙한 곳에 은거하여 화를 피한 종남파의 원로들이었다.
인사가 오가고 자리에 앉자 차가 나왔다.
마음이 급한 노해광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바로 물었다.
“자세한 상황을 말씀해주십시오.”
전후 사정을 빨리 알아내서 무림맹에 보고를 해야 했다.
일광자가 나서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종남파를 습격한 자들은 모두가 일류 고수 이상이었다. 개중에는 절정 고수도 십여 명이나 되었고, 초절정 경지에 이른 고수도 셋이나 되었다.
적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종남파는 허둥지둥 적을 맞이했다.
그래도 명색이 구대문파 중 하나인 종남파였다.
뒤늦게 전열을 정비해서 반격을 꾀했다.
하지만 적은 강했고, 손속이 매서웠다.
종남파는 장문인과 장로들이 제자들을 독려하며 반격에 나섰다.
싸움은 치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죽어가는 제자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종남파의 도관이 온통 피로 물들었을 때 놈들이 물러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감당하지 못할 만큼 큰 피해를 입은 후였다.
장문인이 한쪽 팔을 잃는 중상을 입었다.
일곱 명에 이르던 장로 중 살아남은 사람은 무림맹에 나가 있는 일청자를 제외하고 두 명뿐이었다.
일대제자를 비롯한 제자들의 피해는 수백 명이나 되었다.
아마 놈들이 물러가지 않았다면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렇게 놈들이 물러간 후 정리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요원하네.”
“놈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정확한 정체는 알 수가 없네. 다만…… 놈들 대부분이 사마도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지.”
노해광이 눈을 부릅뜨고 다시 물었다.
“그럼 사도맹 놈들이었단 말입니까?”
정말 그들이라면 전쟁은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런데 일광자가 주먹을 움켜쥐며 분노를 억누르고 대답했다.
“제자들이 말하길, 그들 중에 사도맹 고수가 섞여 있었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었네.”
“어쨌든 사도맹 놈들이 관여된 것은 분명하군요.”
“그렇다네. 그런데…… 뭔가 찜찜해.”
“예? 무슨 말씀이신지……?”
“사도맹에서 우리 종남을 공격하려 했다면, 사령회의 고수들이 가장 많이 보였어야 하네. 그들이 가장 가까이 있으니까. 그런데 사령회 무사는 거의 없었네. 모두가 의외라고 생각했지.”
“일단 시체부터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증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알겠네. 가세.”
* * *
신시(오후3시~오후5시) 말(末).
무림맹에 전서구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종남파로 떠났던 척마대주 노해광이 보낸 전서구였다.
전서구의 다리에 매달린 전서에는 종남파의 상황이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소식을 접한 무림맹 간부들은 분노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종남파가 멸문은 피했습니다.”
“쯧쯧쯧, 멸문을 피하긴 했네만 뿌리까지 흔들렸으니 앞날이 걱정입니다.”
수백 명이 죽임을 당했다. 다시 예전의 성세로 돌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싸움 중에 비전이 소실되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비전이 소실되었다면 예전의 성세로 돌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사마도의 마공을 익힌 자들이 종남파를 공격했다지 않습니까? 그중에 사도맹 놈들도 있었고요. 그러니 사도맹의 죄를 강력하게 추궁해야 합니다.”
“추궁만 하면 뭐합니까? 그냥 칩시다!”
“옳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사도맹의 눈치를 봤습니까?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사도맹은 반드시 없애야 할 마의 무리입니다!”
제갈신기는 무림맹 간부들의 동향을 전해 듣고 냉소를 지었다.
사도맹 공격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자들 중에 신비세력의 간자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의 의도를 알면서도 당장 잡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제갈신기로서는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분노를 억눌러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분노를 억누르는 대신 첩의단을 최대한 가동해서 신비세력의 간자로 보이는 자들을 철저히 감시했다.
‘흥! 언제까지 속일 수 있는지 보자, 이놈들.’
* * *
사도맹을 공격하자는 의견이 하늘을 찌를 때, 청운은 종남으로 가기 위해 무림맹을 나섰다.
금의위 중 웅천과 호위 다섯 명만이 그와 대동했다. 나머지 금의위 위사는 낙양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몇 사람이 고집을 부려 그와 동행했다.
모두 이십여 명. 그중 한 무리는 정 소감과 동창 무리였다.
그리고 다른 한 무리는 당연하게도 백청청과 그녀를 감시(?)하기 위한 백가의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