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59화 (159/257)

# 159

159화

“천황신공 때문이옵니다.”

“천황신공? 아! 그놈이 후손을 못 볼까 봐서?”

천황이 자식을 보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천황신공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대대로 천황신공을 익힌 자는 자식이 귀했다. 여인을 수십 명 얻어도 한두 명 얻기가 힘들었다.

천황신공의 부작용은 그 외에 또 하나가 있었다.

사내도 그 부작용이 뭔지 알지만 그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건망증이 심하다는 말을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사내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자손이 끊길까 봐 숨겼던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자신이 불같이 화를 냈던 일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 조금 미안하긴 하군. 그래도 천손의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한 사람인데.”

공손히 서 있던 사내는 그에 대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천황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아마 죽은 자를 위해 한마디라도 거들었다가는 자신의 머리가 부서질 것이 분명했다.

천황이 사내를 보며 말했다.

“어쨌든 내 후손을 지켰으니 노룡회에 상이라도 줘야 할 것 같군.”

“예, 한 가지 생각해둔 것이 있사옵니다.”

“그럼 진행해.”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가당치도 않거나 별 볼 일 없는 계략이라면 머리를 부수면 된다.

“아! 그리고 사도맹에 누가 있지?”

“신혈사가 있사옵니다.”

“그럼 신혈사에게 무림맹의 기둥을 하나 부러뜨리라고 해. 그럼 알아서 박 터지게 싸우겠지.”

“참으로 절묘한 신계이옵니다, 천황이시여!”

* * *

무림대회가 종반으로 치달렸다.

수천 명이 참가해서 남은 건 고작 열여섯.

모든 무림인들의 이목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첫 경기부터 치열했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팽팽한 대결이 펼쳐졌다. 그러나 대부분 한 사람의 승리를 점쳤다.

“강호풍 승!”

강호풍이 이번 대회에서 이변을 몰고 왔던 넷 중 한 명인 홍영칠검을 탈락시켰다.

오대검파의 하나인 청성의 검을 넘기에 홍영칠검의 검은 날카롭지 못했다.

모두의 예상대로 첫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경기는 문제가 있었다.

“이번 경기는 누가 이길 것 같나?”

“소림의 광표 스님이 이기지 않을까?”

“하긴, 아무리 장군부의 영호천이라 해도 오룡 중 한 명이며 소림의 미래라는 광표 스님을 넘기는 어려울 거야.”

두 번째 경기는 영호천과 광표의 경기였다.

광표는 소림의 미래라고 불릴 만큼 명성이 높았다. 그에 반해서 영호천은 이제 강호초출의 신인일 뿐이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오십여 합이 지날 때쯤 결판이 났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결과가 나왔다.

“영호천 승!”

그의 현란한 검술은 광표가 펼치는 소림절학의 약점을 철저히 파고들었다.

그 바람에 광표는 비무 내내 영호천에게 끌려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결국,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다음 경기는 팽도천과 사천당문 당가량의 경기였다.

당가량(唐可亮)은 당가의 셋째아들로 어려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젊은 무인이었다.

비록 오룡에는 들지 못했지만 사천신룡이라 불릴 만큼 무공이 대단했다.

특히 그가 절치부심하며 익힌 무영탈혼(無影奪魂)이라는 암기술은 당가의 비전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뛰어났다.

당가량과 마주선 팽도천은 커다란 청룡도를 뽑아 들고 가슴 앞에 비스듬히 세웠다.

‘응?’

청운은 그 모습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숱하게 팽도천과 비무를 해본 그였다. 팽가의 무공이라면 어느 정도 흉내를 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팽도천이 잡은 기수식은 처음 보는 자세였다.

‘암기술을 상대하기 위해서인가?’

당가량의 경기를 지켜보았을 테니 그의 암기술을 상대할 묘책을 들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 자세는 이해가 안 되었다.

저 자세로는 도법을 원활하게 펼치기 어려울 텐데…….

‘무언가 생각이 있겠지. 한번 볼까?’

청운은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과연 팽도천이 어떤 방법으로 당문의 암기술을 상대할지 궁금했다.

팽도천이 자세를 잡자. 당가량도 양팔을 벌리며 상체를 비스듬히 틀었다.

그는 오른손을 뒤로 돌리고 왼손을 앞에 두었다. 그의 왼손에는 혈리표가 들려 있었다.

문제는 오른손인데, 말아 쥐고 있어서 무엇을 들고 있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먼저 움직인 건 당가량이었다.

그는 양팔을 휘두르며 손에 들고 있던 혈리표를 던졌다.

쉬쉬쉭.

혈리표가 호선을 그리며 팽도천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팽도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상체를 흔들었다.

퍼버벅.

혈리표가 팽도천이 있던 자리를 두들겼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팽도천은 혼원보(混元步)를 밟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가슴에 도를 세운 자세였다.

당가량은 곧장 달려드는 팽도천을 피해서 사선으로 몸을 날렸다. 거리를 벌려서 팽도천이 접근하는 것을 막을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도 연속으로 왼손을 휘저었다.

슈슉, 슈슈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물체가 날아갔다.

팽도천은 가슴 앞에 세우고 있던 도를 비스듬히 기울여서 날아드는 암기를 튕겨 냈다.

티잉! 팅팅팅.

도의 넓은 면에 맞은 암기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파바밧.

팽도천은 혼원보를 이용해서 빠르게 당가량을 따라붙었다.

비무대 위가 넓다 해도 한정된 공간이었다.

결국 요리조리 피하던 당가량이 구석으로 몰리고 말았다.

하지만 당가량은 구석으로 몰렸음에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감에 찬 얼굴로 팽도천을 마주했다.

요리조리 도주하며 암기를 날리던 당가량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팽도천은 주저하지 않고 당가량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파밧.

순간, 당가량의 눈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말아 쥐고 있던 오른손이 기묘하게 움직였다.

팽도천은 뒤쪽으로 처져 있던 당가량의 오른손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그 바람에 당가량을 향해서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당가량의 왼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네 자루의 작은 유엽비도를 날렸다.

팅팅, 푹.

두 자루를 도신으로 비켜내고 한 자루를 피했지만, 마지막 한 자루가 팔에 꽂히고 말았다.

내공이 실려 있어서 강력했지만 이미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었기에 깊이 박히지는 않았다.

문제는 팽도천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놈!”

당가량의 입에서 일갈이 터져 나왔다. 저돌적인 돌격에 기합을 넣으며 뒤쪽에 감춘 오른팔을 앞으로 뿌렸다.

슈슈슈슉!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소리 없이 하늘을 날았다.

무영탈혼.

당가량의 비기가 드디어 펼쳐졌다. 지척에 다다른 팽도천이 피할 수 없는 빠르기였다.

띠디디딩!

팽도천의 가슴을 가린 도신에서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으아아아아!”

동시에 팽도천의 입에서 거대한 기합과 함께 가슴을 가리고 있던 청룡도가 처음으로 휘둘러졌다.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팽가의 비전 도법이 구석으로 내몰린 당가량의 전신을 강타했다.

당가량 역시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팽도천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당가량은 장력으로 맞받아쳤다.

하지만 그 여파에 밀려서 그만 비무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당가량 장외! 팽도천 승!”

심판은 곧장 승자와 패자를 가려냈다.

그 소리에 팽도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면 당가량은 어이없이 장외패를 당하자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팽도천에게 말했다.

“지독한 놈. 암기를 몸으로 받아내고 공격하다니.”

“크크, 내 몸이 좀 단단해.”

“흥! 이곳이 비무대 위가 아니었다면 네놈에게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내 도가 방금처럼 정직하게 날아갔을까?”

팽도천의 말에 당가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생각해 보니 팽도천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놈도 나를 봐준 것이군.’

팽도천의 도세는 무척이나 강력했다. 하지만 정직하게 날아들어서 장력을 이용해 막을 수 있었다.

아마 실전이었다면 팽도천의 말처럼 자신의 팔다리 중 한 개는 잘렸을지도 모른다.

당가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쉬웠지만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다.

“누가 팽가 아니랄까 봐.”

당가량은 뒷말을 입으로 삼키며 몸을 돌렸다.

온몸에 암기가 박혀 있었지만 팽도천은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청운이 보였다.

팽도천은 얼굴에 씩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팽도천은 비무대 위에 대자로 쓰러졌다.

“어?”

“의원! 의원 불러!”

승자가 갑자기 쓰러지자 난리가 났다.

팽도천은 당가량의 무영탈혼을 완벽하게 막지 못하고 상처를 입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암기에 독이 발라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구경꾼들은 팽도천을 살피는 의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러면 내일 경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어려울지도 모르겠는데.”

“이러면 팔강전 경기가 줄어드는 거 아냐? 다른 자를 위로 올려야 하는 거 아냐?”

사람들의 관심은 팽도천의 안위보다 내일 있을 팔강전이 걱정이었다.

팽도천의 부상이 얼마나 심한지 알아봐야 하겠지만 하룻밤 사이에 치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비무대 위에서 팽도천을 살피던 의원들이 양손을 높이 들어서 흔들며 고개를 흔들었다.

곧장 팽도천은 들것에 실려서 약당으로 옮겨졌다.

연이어 펼쳐진 네 번째 비무에서는 오룡의 하나인 남궁룡과 반오가 겨뤘다.

백의성검 반오는 육십사강 전에서 화산파 무인을 이기고 올라온 신예였다.

그동안 삼 푼의 힘을 숨기고 있었던 인물이라며 새롭게 주목받는 강자였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검을 넘을 수는 없었다. 그가 아무리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고 해도 남궁세가의 절학을 익힌 남궁룡의 상대는 아니었다.

남궁룡은 주로 사용하는 검법인 창궁비연검법이나 섬전십삼뢰검이 아닌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을 꺼내 들었다.

반오가 화산파와 겨루는 것을 봤기 때문인지 상대를 경시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가문의 직계만 익힌다는 비전을 꺼내 들고 강하게 압박했다.

남궁세가의 제왕검법을 제외하고 최고검법이라 알려진 창궁무애검법은 반오의 검법을 사정없이 꺾었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경기 역시 예상대로 흘러갔다.

문희와 천일영이 어렵지 않게 상대를 이겼다.

남은 경기는 두 경기였다.

하나는 월광선녀와 사홍린의 경기였고, 마지막 경기는 화산파와 점창파 제자의 경기였다.

그런데 둘의 경기가 펼쳐지기 전에 문제가 발생했다.

비무대를 내려가던 문희가 다음 경기를 위해서 비무대 위로 오르는 백청청과 눈이 마주쳤다.

문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면사를 한 월광선녀의 싸늘한 눈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누구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기억에 있음직한 눈빛이었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서 땅에 발을 디딜 때 문희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얼굴이 있었다.

“아! 호호호.”

계단을 내려와서 갑자기 큰 소리로 웃는 문희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사람들은 문희가 비무에서 승리하고 기분이 좋아서 웃는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문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게 누군가요?”

그녀의 음성에 은은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비무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월광선녀에게 말했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옷을 그렇게 입으면 내가 못 알아볼 줄 알았나요?”

비무를 구경하던 군웅들은 문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무언가 일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비무대 위에 있던 월광선녀는 의아한 듯이 말했다.

“나에게 한 말인가요?”

“그래요, 월광선녀. 아니, 백가장의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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