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152화
청운은 위염천과 구봉팔 등을 마차에 실어서 무림맹 내부에 있는 뇌옥에 가두었다.
그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그 마차에 누가 타고 있는지 볼 수가 없었다.
청운이 뇌옥에 도착한 직후 제갈신기가 두어 명과 함께 달려왔다.
그들은 역용한 청운을 알아보지 못했다.
청운은 제갈신기에게 전음을 보냈다.
-청운입니다.
제갈신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청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찌 된 것인가?
-일단 모두 물려주시지요.
제갈신기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물러나 있거라. 나는 여기 이자에게 알아볼 것이 있다.”
모두가 물러나고 남은 건 잡혀 온 자들과 제갈신기였다.
청운은 제갈신기에게 전음으로 이야기를 했다.
-말씀드렸던 자들을 잡아왔습니다.
제갈신기는 쓰러진 자들을 내려다봤다.
놈들의 정체가 무엇이고 동료들이 누구인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심문을 하다 보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여의치 않으면 놈들이 숨겨둔 발톱을 꺼낼 수도 있었다.
청운은 제갈신기에게 예상되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들이 사라진 것을 놈들도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든 사라진 자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놈들도 알게 되겠지요.
제갈신기는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미끼로 쓸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물론 정보는 정보대로 빼내야겠지요.
-흠,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아마 안팎에서 모습을 감춘 자들이 그림자를 드러낼 겁니다. 그들에 대한 감시는 천뇌 님이 맡아주십시오.
-알겠네.
* * *
그날 저녁.
달빛마저 잠에 취해 눈을 감은 자정 무렵. 청운은 뇌옥에서 위염천과 마주 앉았다.
무공이 폐해진 위염천은 잡혀 올 때와 달리 초췌한 모습이었다.
주름도 많아졌고, 머리카락도 단 두어 시진 만에 푸석푸석해졌다.
“목숨이라도 구하고 싶다면 말을 하는 게 좋을 거요.”
“나는…… 아는 게 없다.”
“구봉팔도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소. 하지만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후회했지요. 차라리 일찍 말했으면 몸이라도 건사했을 텐데…… 하면서 말이오.”
“…….”
구봉팔에 대한 심문은 축시에 이루어졌다.
그는 고문이 한 시진쯤 진행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동창의 고문 전문가가 직접 손을 쓰자 일각도 되지 않아서 입을 열었다.
문제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별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청운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적은 것 같았다.
청운은 다음 날로 미루려던 위염천에 대한 심문을 자시부터 진행했다.
그의 옆폐하다에는 구봉팔의 입을 연 고문 전문가가 시립해 있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노룡회가 무림맹에 심어 놓은 첩자들이오. 아마 적은 숫자는 아닐 거요. 당신은 그중 두어 사람만 알려주면 되오.”
위염천이 피식 웃었다.
“나는…… 모른다. 네가 내 살점을 한 점 한 점 발라낸다 해도 대답은 같을 거다. 모르는 걸 안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
“그럼 아는 것을 말해보시오. 분명히 당신은 구봉팔이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 거요.”
“그건…….”
그때 밖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자정을 알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든 청운이 말했다.
“내 인내심도 일각이 한계일 것 같소. 그 시간이 지나면, 저 친구가 귀하를 고문하게 될 거요.”
위염천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려서 고문 전문가를 바라보았다.
구봉팔의 처절한 비명을 한 시진이나 들었던 그는 고문 전문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렸다.
그는 이제 절정고수도 아니었다. 평범한 양민이나 다름없는 몸으로 그 처절한 고문을 버틸 수 있을지…….
그때 청운이 마지막 먹이를 던져주었다.
“아마 노룡회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당신을 죽이려 할 거요. 만약 당신이 최대한 협조를 한다면, 목숨을 구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소.”
하지만 위염천은 어떠한 고통이 닥쳐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너희가 아무리 고문해도……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죽여라.”
청운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 때문에 그러나 보군.”
위염천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시오. 그럼 우리가 당신의 가족을 빼돌리겠소.”
그 말에 위염천이 다시 시선을 돌려서 청운을 바라보았다.
청운이 다시 말했다.
“내가 노룡회 사람이라면, 당신이 입을 열든 안 열든 당신의 가족을 죽일 거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말이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잡히기 전에 자결이라도 하지 않겠소.”
위염천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청운이 마지막으로 못을 박듯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한 말에 대해서 약속을 어긴 적이 없소. 곰곰이 생각해보고 내일 아침까지 결정하시오.”
그러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위염천의 눈빛은 이전의 결의가 사라진 상태였다.
지금 더 다그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 * *
촛불 하나가 어두운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사내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사내의 입에서 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를 찾은 이유가 무엇인가?”
불만 섞인 사내의 음성에 화답하듯이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전언입니다.”
자신밖에 없는 실내에서 소리가 들렸지만 사내는 놀라지 않았다.
사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허공에서 예의 목소리가 울렸다.
“진무사 이청운에게 꼬리가 잡혔습니다.”
“지, 진무사?”
사내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의 반문을 확인시키듯이 허공에서 다시 음성이 들렸다.
“예! 그가 움직였습니다.”
“확실한가? 그자는 별채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사내는 믿을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청운에 관한 사항은 상시 보고를 받고 있었다. 무림대회가 끝나면 별채로 돌아가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예의 목소리가 다시 허공에서 들렸다.
“처음에는 다른 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대역을 별채에 두고 역용한 상태에서 움직인 것 같습니다.”
“허, 놈이 모두를 속였단 말인가?”
사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노기가 솟구쳤다. 그러나 화를 내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로잡혔다는 멍청한 놈은 누구지?”
“위염천이 이끄는 조입니다. 소향객잔 귀빈관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했는데, 실종된 상태입니다. 그들이 만난 자는…….”
예의 목소리는 하나하나 설명을 했다. 설명이 끝났을 때 사내는 일이 크게 잘못된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그러니 나를 찾았겠지.’
무림맹에 깊숙이 침투한 자신을 급히 찾았을 때는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야기였다.
“원하는 것은?”
“그들의 제거입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로잡힌 자들이 작은 정보라도 흘린다면 줄줄이 엮일 수도 있었다.
“알았다고 전하게.”
“예!”
허공에서 대답과 함께 무언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대들보 어둠에 숨어서 전언을 전하던 전령이 떠났다.
홀로 남은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향했다.
그가 사라진 실내에는 촛불만이 남아서 흔들거렸다.
* * *
길었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지만 무림맹 아침은 한 명의 무사로 인해서 어수선해졌다.
무사 한 명이 급히 제갈신기의 침소로 달려와서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총군사님! 큰일 났습니다!”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제갈신기가 침소를 나오며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호들갑인가?”
잠을 설친 것인지 그의 눈 밑이 살짝 어두웠다.
소식을 가져온 무사는 급히 인사를 하며 제갈신기에게 용무를 말했다.
“지하 뇌옥의 간수와 어젯밤에 잡아온 자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제갈신기는 곧장 뇌옥으로 갔다.
뇌옥 입구에는 수십 명의 무인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지하 뇌옥으로 내려간 제갈신기가 한쪽에 서 있는 간수장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이냐?”
“아침 점호를 위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간수 두 명과 죄수가 모두 쓰러져 있었습니다.”
간수장이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갈신기의 두 눈이 차갑게 변했다.
“진무사는?”
“안에 계십니다.”
제갈신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수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밖으로 나가고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이지 말게.”
“예!”
제갈신기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온 이들이 모두 밖으로 이동했다. 제갈신기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서 안으로 움직였다.
지하에는 옥방이 스물네 개 있었다. 그중 구(九)자가 적힌 옥방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청운이 보였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자의 가슴에 손을 대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제갈신기는 잠시 청운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쓰러져 있던 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끄응.”
청운은 그제야 사내의 몸에서 손을 떼고 일어났다. 몸을 돌린 그는 제갈신기를 보며 인사를 건넸다.
“간밤에 잠을 설치셨나 봅니다.”
“그리되었네. 그보다 그자만 살았나?”
“예, 다른 자들은 모두 중독되어서 죽었습니다.”
“쯧쯧, 결국 독인가? 예상대로군.”
청운과 제갈신기는 노룡회가 움직일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대대적으로 뇌옥을 침입할 게 아니라면 은밀한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중 독만 한 게 없었다.
제갈신기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으니 음식에 독을 탄 것은 아닐 것이고, 물에 독을 타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데, 늦게 일어나서 물을 안 마신 자들도 있을 텐데 모두 죽었다면 물도 아닐 것이고…….”
제갈신기가 주위를 둘러보는데 청운이 말했다.
“철문 아래 구석을 보십시오.”
제갈신기의 눈이 옥방의 철문 밑으로 향했다.
잠시 그곳을 바라보던 그가 걸음을 옮겨서 철문으로 가더니 쪼그리고 앉았다.
철문의 아래 틈새 구석에 시커먼 가루가 있었다. 무언가가 탄 재였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확인하지 못할 흔적이었다.
“독향을 피운 것 같습니다.”
청운이 먼저 말했다.
제갈신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생각보다 치밀한 놈들이야. 숨어 있다가 잡지 않기를 잘했어.”
적이 누군지 모르는데 부하들을 숨겨둘 수는 없었다. 만일 숨은 부하 중 간자가 있다면 일이 틀어졌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모두 죽은 것으로 발표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자는 아무도 모르게 옮겨주시고요.”
“알겠네. 부검한다고 빼내서 시체와 바꿔치기 하면 되니 어려운 일도 아니지.”
제갈신기는 겨우 살아난 위염천을 내려다보았다.
“한 사람이라도 해독이 되어서 다행이군. 다른 자들은 해독제가 통하지 않았나?”
그 말에 청운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해약을 미리 복용시켰습니다. 어떤 것이 효과를 발휘할지 몰라서 세 가지를 모두 복용시켰지요.”
제갈신기의 눈이 커졌다.
“허, 어쩐지 해독제가 될 만한 약을 미리 달라고 하더니…….”
청운은 제갈신기에게 독에 대한 내성을 높일 수 있는 약을 원했다.
독은 특성에 따라서 해독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다. 당연히 해독제의 종류가 많았다.
마침 제갈신기에게는 해독제가 몇 가지 있었다. 그는 그중 세 가지를 선택해서 청운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걸 미리 위염천에게 복용시켰다는 말이었다.
“완벽한 해독은 어려워도 제가 달려올 시간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 예상했지요.”
제갈신기는 피곤이 달아났는지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군. 자네의 예상이 맞아떨어져서.”
“예,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았다. 놈들이 다른 계략을 펼쳤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고생했네.”
“아닙니다. 고생은 천뇌 님께서 하신 것이죠. 뒷일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일단 누가 뇌옥에 출입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군.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청운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