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147화
[선녀문 소가주 말이다. 사람들이 음흉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데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즐기는 것 같구나.]
청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무리 강호에 몸담은 여자라 할지라도 수많은 이들이 노골적으로 시선을 보낸다면 부끄러워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오히려 문희는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듯 살짝살짝 몸을 틀어서 사람들의 눈요깃감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가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탄성이 터졌다.
“오오오!”
“와아아아!”
[저거 천생 우물이구나. 남자 한둘 잡아먹은 게 아니야. 아이쿠, 너를 보는데?]
청운은 혈황을 보던 시선을 좌측 비무대 위로 돌렸다. 혈황의 말대로 문희가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금세 배시시 눈웃음을 지으며 청운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묘한 상황에 청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 여자?’
알 수 없는 게 여인의 마음이라지만 싸늘했던 표정이 봄날 화사한 꽃망울처럼 순식간에 변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여인의 속은 알 수가 없었다.
곧 비무가 시작되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감에 차 있던 사내는 도를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했다.
문희가 시작과 동시에 사내의 품속으로 쑥 들어가더니 사내의 가슴에 일장을 날렸다.
펑!
“컥!”
사내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그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문희의 주먹질에 다시 하늘을 날았다.
사내의 몸은 바닥에 떨어져서 떼굴떼굴 구르더니 그대로 비무대 밖으로 떨어졌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놀랄 시간조차 없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심판이 문희의 승리를 알렸다.
“선녀문, 문희! 승리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들이 문희의 승리에 환호했다.
“우와아!”
“문희! 문희!”
“선녀문 최고다!”
사방에서 구경하던 이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청운도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문희의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더군다나 마지막 일격은 자신을 음흉하게 봤다며 내리는 벌 같았다.
문희가 내려가고 다음번 비무가 진행되었다.
청운은 비무대 아래로 내려가며 자신을 다시 힐끔 봤던 문희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어딘지 차가우면서도 끈적이는 눈빛이었다. 어디선가 한번쯤 본 듯한 눈빛이었는데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 * *
첫날 비무가 무사히 끝을 맺었다.
절반 가까운 무사들이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짐을 싸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아직 비무대회는 십사 일이나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이 객잔을 찾았다.
객잔에는 이미 많은 인파로 꽉 찬 상태였다.
서른이 살짝 넘어 보이는 두 사내도 한자리를 차지한 채 목을 축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네, 오늘 봤나?”
“누구? 오전에 있었던 문희 소저를 말하는 거야?”
“끌끌, 내 자네가 그리 말할 줄 알았지.”
“그 소저 말고 볼 게 있었나?”
질문한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친우에게 핀잔을 주었다.
“쯧쯧, 이 친구야, 무림대회에 여자 구경하러 왔나? 다른 사람들 무공을 잘 보고 혹시 얻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온 것 아닌가?”
“하하하, 미안하네. 그래도 어쩌겠는가? 눈앞에 천하제일 미인이 있는 것을.”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술을 한 잔 입 안에 털어 넣은 후에 입을 쓱 닦았다.
“이번에 참가한 자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제법 나왔네. 그중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무재가 나왔다고 지금 난리야.”
“그런 참가자가 있었나?”
“에잉,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서 술이나 들게.”
“어허, 이 친구 이거 안 되겠구먼. 그러지 말고 어서 이야기를 해보게. 그 무재가 누구인지.”
“이번 무림대회에는 오룡오봉 외에도 새롭게 등장한 신진 고수들이 많더군. 자네의 눈을 돌아가게 만든 선녀문의 소문주 문희도 그중 한 명이지,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보다 영호천이라는 자에게 더 관심이 가네.”
“영호천이라니?”
“그 왜 있지 않나. 오십 년 전에 오랑캐들을 소탕한 영호세가 말이네. 그곳 출신이라고 하더군.”
오십 년 전 북쪽의 오랑캐가 산서와 하북 지역을 기습한 일이 있었다. 그때 병사들을 이끌고 토벌한 장수가 영호충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 영호세가의 남자들이 대거 죽어서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구국의 영웅 가문에서 걸출한 인물이 다시 나왔군. 잘되었네. 그렇지 않아도 안타까웠는데.”
“그런데 그것 때문에 말이 많았다고 하더군.”
“무슨 말인가? 설마 장군부 출신이라고 딴지를 건 것인가?”
“영호천이 장군부 출신이긴 하지만 출사하지 않은 인물이네. 자신 역시 관부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더군. 그래서 참가가 허가되었고.”
“잘되었군. 영호세가의 무공을 견식할 좋은 기회 아닌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내가 친우의 술잔을 채워주며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럼 마지막 한 명은 누구인가?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쩌면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인물 중 가장 신비한 인물인지도 모르겠네.”
“왜?”
“그가 세 번째로 상대한 인물 때문이네.”
“누구를 상대했길래?”
친우의 재촉에 사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청성파의 일진자를 이겼네. 그것도 적수공권으로 말이야.”
“뭐? 일진자면 청성의 기재라는 자 아닌가?”
친우의 말에 사내가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일진자는 오룡에 들지 못했지만, 검법으로 위명을 날리는 청성파의 젊은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삼십육강 안에는 들어갈 강자였는데 예선에서 떨어졌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 이거 이야깃거리가 되겠는데? 그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해보게.”
사내는 친우의 재촉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 * *
한편, 무림대회 예선에 대해서 청운 역시 정 소감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럼 그자가 가장 수상하다는 말인가?”
“니에, 출신이 정확하지 않은 인물인데 청성파의 일진자를 적수공권으로 이겼사옵니다.”
청운은 무림대회에 삼천을 참가시켰다.
이번 무림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영호천이 바로 삼천이었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한때 최고의 무가로 이름을 날렸던 가문이 영호세가였다.
영호세가에서 일찍 죽은 영호천이라는 아이가 모처에서 수련을 한 것으로 꾸며서 새로운 신분을 만들었다.
청운에게 배운 역용술로 얼굴을 바꾼 터라 아무도 삼천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상대로 영호천은 어렵지 않게 예선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바람을 일으켰다.
정 소감이 그자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 사내의 이름은 이도형입니다. 나이는 대인과 비슷한 것으로 보였사온데, 그동안 산속에서 스승님과 함께 살았다고 하옵니다.”
“그자의 스승이 대단한 인물인가 보군. 권법가인가?”
아무런 내력도 없는 인물이 갑자기 대단한 고수를 키울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그런 일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러려면 대단한 기연이 필요했다. 자신이 혈황을 만난 것처럼.
정 소감은 고개를 흔들며 보고를 계속했다.
“권법가인지는 아직 모르겠사옵니다. 소인이 보고를 받고 그자가 치른 세 번째 경기를 봤사옵니다. 그런데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봐서는 아닌 것 같사옵니다.”
“호, 그럼 일진자 정도의 고수는 적수공권만으로도 상대할 수 있다는 거군.”
일진자는 상당한 고수였다. 비록 오룡의 일원인 강호풍에 비해서 떨어지는 실력이지만 그 역시 청성에서 알아주는 기재였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자는 예선 삼차전에서 상대를 모두 적수공권으로 상대했다고 하옵니다.”
“그자의 스승님이 누군지 정말 궁금하군. 한번 알아보게. 분명 예사 인물은 아닐 테니.”
“니에, 무림맹에서도 그가 사용한 무공을 보고 여러 인물을 유추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내일 예선전에서 무공과 스승이 누구인지 밝혀질 것이옵니다.”
“흠, 그가 싸우는 걸 보지 못한 게 아쉽군.”
신비세력인 노룡회가 어떤 수작을 벌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정체불명의 고수가 출연했다. 그런데 그 고수의 정체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수십 년간 폐관수련을 한 젊은 영웅의 탄생이라…….”
무언가 묘한 느낌이 신경을 거슬렸다.
* * *
둘째 날 무림대회도 성황리에 치러졌다.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세 사람의 경기가 주목을 받았다.
청운 역시 그들의 경기를 직접 가서 구경했다.
“이도형 승!”
심판이 금세 끝나버린 경기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이도형은 딱 두 번 움직였다. 그 속에 여덟 번의 주먹질을 상대에게 선사했다.
청운은 이도형의 움직임에 눈살을 찌푸렸다.
-보셨어요?
[제법인데? 딱히 형이라고 할 것은 없는데 무척 빠르군.]
이도형이 사용한 무공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빠르게 상대를 타격할 뿐 일정한 초식을 펼치지 않았다.
청운도 그 광경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초식을 넘어선 무초식의 경지라니, 대단한데요.
[아무리 그래봐야 너보다는 아래야.]
-그렇긴 한데…….
[그나저나 삼천, 아니지 이름을 바꿨으니 영호천이지. 그 아이 무공 좀 손봐 줘라. 이대로 붙었다가는 저놈한테 무조건 깨진다.]
청운은 혈황을 힐끔 봤다. 딱딱하게 얼굴이 굳은 것을 봐서는 영호천이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자신 역시 영호천이 신경 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이도형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 이렇다 할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 진산절학을 꺼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만 놓고 봐도 영호천이 살짝 밀릴 것 같았다.
-지난번에 알려주신 무공은 괜찮으시겠어요? 그거 혈사천교 무공이라면서요.
[원래는 천교 무공이 아니었다. 내가…… 크흠! 돈 주고 정당하게 구입한 무공이다.]
혈황은 헛기침을 하며 청운의 시선을 외면했다.
-예, 그러시겠지요. 안 내놓으면 엉덩이를 걷어차셨을 테니까요.
[아, 그놈 참. 아니라니까. 그리고 내가 다른 무공도 알려줬어. 덩치가 산만 한 놈이 젓가락을 들고 무공을 펼친다고 생각해 봐라.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치지. 그래서 내가 좋게 타일렀더니 알겠다고 하더라.]
정당하게 무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상대도 손해가 아니었다.
-좌우간 제가 오늘 밤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 *
늦은 밤까지 영호천을 가르치고 돌아온 청운은 곧장 침상에 누웠다.
잠이 들려는 순간에 자신을 급하게 찾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자 정 소감이 서 있었다.
“늦은 밤에 무슨 일인가?”
“대인, 일이 생겼사옵니다.”
“일이라니?”
정 소감이 늦은 시간에 자신을 찾아올 일은 많지 않았다. 웬만한 일이라면 다음 날 알려주어도 되었다.
그만큼 급한 일이라는 뜻.
아니나 다를까 정 소감의 말에 청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살인사건입니다.”
“살인사건? 누가 죽었지?”
“종남파 속가제자 유곡이 숙소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오늘 예선을 통과한 인물입니다.”
청운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범인은 잡았고?”
“예, 화산파의 속가제자인 매옥청이라 하옵니다.”
“화산의 속가제자?”
청운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이 너무도 의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화산파와 종남파는 가까운 곳에 있고 사이가 좋았다. 비무에서 패했다고 상대를 죽인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사옵니다.”
“이상한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