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46화 (146/257)

# 146

146화

그도 원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사령회에서 대화를 나누어볼 만한 사람은 원적밖에 없었다.

원적이 서문량을 보며 슬쩍 고개를 숙였다.

“회주님을 대신해서 대신 사죄드리겠습니다. 서문 형도 아시겠지만, 회주님이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그렇지 그리 나쁜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후우.”

서문량은 기분이 나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눈앞에 있었다.

그런 서문량에게 원적이 말했다.

“저와 따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보여드릴 것도 있고…….”

“좋습니다. 안 그래도 원 형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사문량은 원적을 따라가면서도 찌푸려진 미간이 펴지지 않았다.

‘이들은 정말 마화문이 악가를 공격한 걸 몰랐던 걸까?’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부정해도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무림맹 쪽에는 사도맹 쪽에서 습격한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그로부터 한 시진 후, 사문량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은 채 사령회를 나섰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원적도 이마에 깊은 주름이 그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한바탕 피바람이 불 것 같군.’

* * *

무림대회가 가까워지면서 수많은 무인들이 무림맹 인근으로 모여들었다.

무림인으로 살아가는 데 무공만큼 중요한 것이 명성이다. 명성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 명성을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들도 많았다. 그런 면에서 무림대회는 안전하게 명성을 쌓을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풍운의 꿈을 안고 수많은 무인이 무림대회에 대거 몰려들었다.

심지어 기인이사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고, 한동안 숨죽이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세력조차 재등장했다.

무림맹 외각에 자리한 객잔도 몰려든 무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은 서로를 살피며 대회 우승자를 점쳤다.

한 좌석에서도 이번 무림대회의 우승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이번 무림대회에서 이변이 없는 한 오룡 중 한 명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지 않겠나?”

“섣부른 판단은 안 되네. 오룡오봉이 대단하긴 해도 후기지수일 뿐이지 않나.”

“이 사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괜히 오룡오봉이 아니야. 지난번에 오대검파 회합에서 뒤집어진 이야기 못 들었나?”

중년 사내의 한마디에 주변의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함께 앉아 있던 다소 마른 사내가 말을 한 사내를 재촉했다.

“오대검파 회합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어서 말 좀 해보게.”

“거 사람 좀 기다리게. 목 좀 축이고.”

중년 사내는 백주를 한 잔 죽 들이키고는 안주 하나를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모두의 시선이 예의 사내에게 모였다. 뜸을 들이던 사내가 자신에게 모여든 시선을 즐기며 입을 열었다.

“한 반년 되었을 거야. 내가 청성파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오대검파가 회합하는 걸 목격했네.”

“운이 좋았군.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오룡 중 이룡인 강호풍 공자 알지? 그 공자가 오대검파의 제자들을 모조리 물리쳤네. 근데 더 재밌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놀라지 말게, 그가 펼친 무공이 청성파의 기본공이었다는 것이네.”

“뭐? 상승무공이 아니고?”

“그렇다니까. 청성파 사형들도 모조리 추풍낙엽이 되어서 쓰러졌네. 내가 직접 봤지만 두 눈이 의심스럽더군.”

반년 전 오대검파 회합에서 강호풍은 무섭게 성장한 모습을 선보였다. 그가 왜 오룡의 일인인지 보여준 자리였다.

마른 사내는 중년 사내를 재촉했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나?”

“그다음은 모르지. 외부인인 내가 구경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는데.”

“쩝, 아쉽군. 뒷이야기가 더 궁금한데. 그럼 다른 오룡오봉 소식은 없나?”

“별건 아니고, 오룡이 이번 대회에 전부 참석하고, 오봉 중 삼봉도 참석한다더군. 이봉은 잘 모르겠고.”

“이야! 볼 만하겠는데. 강호풍 실력도 확인할 수 있겠어.”

기대감이 몰려왔다. 확 달라졌다는 그의 실력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몇 년은 이야깃거리일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오룡오봉도 기대가 되었다.

한쪽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운은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갔다.

역용공으로 얼굴을 바꾸었기에 그를 알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청운은 혈황과 함께 무림맹 주위를 산책하듯 걸으며 뛰어난 기도를 갈무리한 이들이 있는지 살폈다.

[저기 보거라. 녀석이 이야기하던 선녀문인가 보구나.]

청운은 혈황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하얀 비단옷을 입은 여인들을 기준으로 많은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꽃을 보고 몰려든 벌 같군요.

[네 녀석 눈에는 그렇게 보이느냐? 내 눈에는 발정 난 수캐들이 꼬리를 흔드는 것으로 보이는 데.]

청운은 혈황의 말에 피식 웃었다.

혈황의 말대로 여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애쓰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우리는 황산오협입니다. 선녀문을 호위하는 데 한 팔 거들고 싶소.”

“감사합니다. 영웅들께서 신경 써 주시다니 몸들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제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나는 사천성에서 올라온 일검탈명이라는 별호를 사용하는 화문길이오.”

사내들이 앞다투어 여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혔다. 여인들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명이 쟁쟁하신 일검탈명 화문길 대협을 뵙게 되다니 영광이에요. 지난번 사천삼악 중 둘째인 귀협객을 베었다는 소문은 들었어요.”

“아시고 계셨구려. 하하하.”

무엇이 그리 좋은지 대소를 터트리며 좋아했다. 결국 화문길은 그의 소망대로 선녀문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무인들이 선녀문과 함께하겠다며 가슴을 탕탕 쳤다.

잠시 선녀문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청운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선녀문 문도가 하는 일은 별것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웃어줄 뿐이었다.

그런데도 주변에 모인 이들이 그녀들의 웃음에 환호하며 열광했다.

-혈황 님,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여인들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저 여자들은 오히려 사람들을 모으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원래 향기로운 꽃에 벌레가 끼기 마련이다. 실력들이 그만그만한 자들이지 않느냐? 문제가 발생하면 태반이 꼬리를 말고 도망칠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혈황의 말과 달리 모인 자들 중 일류무인도 제법 되었다.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했지만 집단으로 모인다면 그 실력과 별개로 힘을 발휘한다.

선녀문이 모습을 보인 지 이틀밖에 흐르지 않았는데도 벌써 백 명이 넘는 무인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무림대회가 개최할 때 수백 명이 뒤를 따를지도 몰랐다.

만약 그들이 소란을 일으킨다면 충분히 문제가 생기고도 남았다.

‘아무래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

* * *

무림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청운도 바빠졌다.

그런데 닷새를 남겨둔 날 오후, 하북팽가의 팽도천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청운을 보자마자 도부터 빼들고는 한판 붙자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곧 정신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다음 날에는 강호 출도 후 진천표국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이 찾아왔다.

강호풍과 남궁룡, 그리고 진설란과 제갈혜미에 팽도천까지.

그들은 청운의 별채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청운은 불평하지 않고 시간을 내서 대련을 해주었다. 모두 처음 만났을 때보다 실력이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게다가 가문과 사문에서도 신경을 썼는지 새로운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덕분에 청운도 구파와 오대세가의 진산절학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진 소저와 제갈 소저는 실력이 조금 부족하군. 하지만 남궁룡과 강호풍, 팽도천은 실력이 많이 늘었어. 삼천이 지지는 않겠지만, 부상당하지 않고 이기려면 쉽지 않겠는데?’

청운은 삼천을 무림대회에 출전시킬 생각이었다. 역용공을 사용하면 아무도 그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삼천은 자신이 새롭게 가르쳐준 무공을 빠르게 익혔다.

그 무공 중에는 혈황이 전수해주라며 알려준 무공도 있었다.

현재 그의 실력은 오룡보다 더 강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기는 것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부상을 당하지 않고 이겨야 그 다음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다.

‘어쨌든 구경할 만하겠군.’

* * *

청운의 우려와 달리 그동안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파인지 신비세력인지 모를 자들의 공격도 사라졌다.

정파와 사파가 신경을 곤두세운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 다시 습격사건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림맹에서는 무림대회가 벌어지는 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무림대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대회장으로 몰려들었다.

비무대가 마련된 대회장은 무림맹에서 오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수십만 평의 넓은 들판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특히 가장 큰 비무대 앞에는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 비무대 위에는 무림맹의 주요 간부와 각 문파의 수장들이 앉아 있었다.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서서히 입을 닫고 비무대 위를 쳐다보았다.

한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무림맹주 총군사인 제갈신기였다.

군웅들을 둘러본 그가 두 손을 맞잡으며 포권을 취하고는 웅혼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무림대회를 시작하겠소이다! 영웅들께서는 모두 가진 기량을 아낌없이 선보이길 바랍니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함성이 천둥처럼 터져 나왔다.

장장 보름간 이어지는 대회가 드디어 막을 올린 것이다.

멀리서 무림맹주 양조생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는 양조생이 짧게 인사말을 마치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 판을 깔아주겠다면 신나게 놀아주지. 후후후후.’

* * *

예선전부터 치열한 비무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이변도 속출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자들 몇 명이 승승장구한 것이다.

새로운 강자의 출연에 구경꾼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청운은 무림맹 간부와 대내외 인사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아서 대회를 구경했다.

“뛰어난 이들이 많군요.”

제갈신기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청운의 말에 답했다.

“그래도 정통의 강호인 구파와 세가연합을 넘기가 쉽지 않을 거네.”

“그렇겠지요. 그런데 이번 무림대회를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특히 신비세력과 사도맹은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자칫 잘못하면 그들로 인해서 무림대회가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제갈신기도 그 점에 대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본 맹의 첩의단 대원들을 일대일로 붙여서 철저히 감시하고 있네.”

대회가 한창 진행될 때 좌측 비무대에서 큰 함성소리가 들렸다. 청운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비무대 위로 한 여인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백색 비단 무복을 곱게 차려입은 묘령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얇은 면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청운의 눈에는 면사 안의 얼굴이 보였다.

짙은 눈썹과 커다란 눈망울 그리고 오뚝한 콧날과 붉은 입술은 쉽게 볼 수 없는 절세의 미모였다.

곁에 있던 제갈신기가 청운에게 말했다.

“요즘 화제를 몰고 다니는 문희라는 선녀문의 소문주네.”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녀문의 여인들을 본 적은 있지만 소문주라는 여인은 처음으로 봤다.

수많은 젊은 무인들이 왜 선녀문을 따라다니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녀의 상대로 나온 중년 사내는 커다란 박도를 사용했다. 그는 희죽거리며, 비무대 위로 올라온 문희를 눈으로 희롱하고 있었다.

선녀문의 소문주인 문희는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어서 몸매가 환히 드러나 있었다. 잘록한 허리를 기준으로 항아리 같은 몸매여서 비무대 위를 지켜보는 이들의 눈을 호강시켜 주고 있었다.

그런데 혈황이 그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무엇이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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