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45화 (145/257)

# 145

145화

제갈신기는 목소리의 주인이 이청운이라는 걸 알고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왔는가?”

“낙양의 상인들이 왔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네. 진무사 말대로 비무대회에 쓸 물품 중 상당한 양이 타버려서 골치가 아프군.”

“가격이 많이 올랐다지요?”

“그렇다더군. 그런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가?”

“낙양에 나가 있는 위사들에게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이상한 말?”

“며칠 전부터 낙양으로 들어오던 물품들이 갑자기 줄어들었답니다. 그 바람에 전체적인 물품 가격이 급격히 올라서 어제부터 객잔의 밥값을 전보다 더 받는다고 투덜대더군요.”

“며칠 전부터 물품 공급이 줄어들었다고?”

제갈신기가 반문하며 눈빛을 반짝였다.

청운이 그런 제갈신기를 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상하지요?”

“으으음, 진무사는 이번 화재와 그 일이 연관 있다고 보는가 보군.”

“총군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네. 그로 인해 무림대회를 제대로 치를지 걱정이 되는 상황 아닌가.”

제갈신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아무리 가격이 배로 뛰었다 해도 무림맹에 그 정도 물량을 구입할 자금이 없습니까?”

“무림맹은 말 그대로 연맹이네. 각 문파에서 보내주는 자금으로 운영이 되지. 그러다 보니 지출할 수 있는 비용에 한계가 있네.”

“무림맹이 자체적으로 돈을 버는 사업이 없습니까?”

“우리도 전부터 자체적인 사업을 해보려 했지만, 대문파들의 반대가 심했네. 맹이 직접적인 사업을 하면 누군가는 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청운은 그 말을 듣고서야 왜 제갈신기가 고민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무림대회 같은 큰 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들어간다. 그런데 정해진 비용으로 운영되는 무림맹 입장에서 갑자기 두 배의 금액을 사용한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일까.

물론 사후 각 문파에 할당을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럴 경우 반발도 반발이거니와 무림맹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총군사를 맡고 있는 제갈신기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정도의 금액이 필요한 겁니까?”

제갈신기는 청운의 말을 가볍게 알아들었다. 그저 무림대회를 치르는 비용이 궁금한가 보다 했다.

“모두 은자 십만 냥 정도가 들 거라 생각했네. 그런데 이번 일로 인해서 오만 냥 정도가 추가로 들어가야 할 판이네.”

은자 오만 냥. 일반 양민 오만 명이 한 달 동안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이다.

아마 자신이 그 금액을 무림맹 금고에서 빼내 쓴다면 장로들이 가만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 돈, 제가 내지요.”

제갈신기는 청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네가? 오십 냥이 아니라, 오만 냥이라는 걸 알고 하는 소린가?”

“아직 귀먹을 나이는 아닙니다.”

“그 큰돈을 어떻게……? 혹시 황궁의 돈을 끌어오겠다는 건……?”

청운이 척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제 돈입니다. 제가 이래 봬도 제법 부자거든요.”

정말 청운이 도와준다면, 그 돈을 내놓는다면 모든 고민이 해결된다.

제갈신기는 안도하는 한편으로 의문이 들었다.

“정말 도와주겠다면 고맙긴 하네만…… 혹시 나에게 바라는 거라도 있나?”

“별거 아닙니다. 신비세력과 싸우는 일을 조금 도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정의와 협의를 위해서죠.”

청운을 빤히 쳐다보던 제갈신기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정의와 협의를 위해서라…… 그거라면 당연히 도와줘야지.”

* * *

화재사건이 벌어지고 사흘이 지난 날 오후.

청운은 금의위와 동창의 간부를 불러들여 마주 앉았다.

청운이 먼저 웅천에게 물었다.

“알아보았소?”

“예, 무림맹에서 실종된 자가 여덟이고, 행방이 묘연한 자도 십여 명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많군. 그들이 이번 방화범일 확률은 어느 정도요?”

“대인께서 예상하신 대로 상당수가 가담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특히 창고지기로 있었던 자웅쌍검이 의심됩니다.”

물품을 보관하던 창고 여러 채가 동시에 불이 붙었다. 그 창고를 지키는 인물이 자웅쌍검이었다. 그와 그를 따르는 몇몇 조장들이 함께 사라진 것을 봐서는 한통속 같았다.

“놈의 행방을 알아보시고 혹 모르니 개방에도 연락을 넣어서 사라진 자들을 은밀히 찾아달라고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이미 사라져 버린 자들이지만 어딘가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청운은 고개를 돌려서 정 소감을 보았다.

“몸은 괜찮은가?”

“니에, 대인 덕에 가뿐하옵니다.”

정 소감은 중년 사내의 흉계에 빠져서 가벼운 내상을 입었었다. 청운이 운기요상을 펼쳐서 치료해주지 않았다면 이처럼 빨리 거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청운은 정 소감의 몸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경험 부족으로 인한 일이었으니 다음부터는 더욱 조심하게. 그리고 경험 많은 이들과 논검을 해보게.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니에, 그렇지 않아도 삼천과 논검을 시작했사옵니다.”

“잘되었군. 그는 한때 무공사부로 활약하던 인물이니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네.”

“열심히 하겠사옵니다.”

“아, 동창에서 사람들이 더 왔다고?”

“니에, 이차로 선발된 자들인데 태감님께서 신경 써주신 듯합니다.”

동창의 무사들은 절반이 죽고 나머지도 대부분 약당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동창의 힘은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

더구나 지난번 동창에 인원을 추가로 파견해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안 된다고 해서 이제 동창의 도움은 더 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상당히 많은 인원을 보내주었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 소감에게 지시를 내렸다.

“동창이 해줘야 할 일이 있네.”

“무엇이온지요?”

“무림대회에 오는 이들을 습격한 사파를 조사해 주게.”

정 소감은 청운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차렸다.

“소인도 그들의 정체가 수상하다고 생각했사옵니다. 무림맹을 몰래 공격한 것도 아니고 정체를 밝히면서 떠들었다고 하옵니다. 사도맹과 무림맹을 이간질하려는 수작일 수도 있으니 철저히 조사해 보겠사옵니당.”

“나와 같은 생각이군. 정사의 관계를 보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닌데 시기가 좋지 않네. 마치 누군가가 개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너무 무리해서 알아보려고 하지 말고 항상 조심하게.”

“니에, 소인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다른 일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일이었다. 자칫 정사대전이라도 벌어졌다가는 중원이 피로 물들 것이다.

* * *

무림대회 준비가 한창일 때 무림맹에서 파견한 대표단이 장안 인근에 있는 사령회를 방문했다.

주변에 있는 화산파와 종남파를 견제하기 위해서 사파의 여러 세력이 힘을 합친 곳이 사령회였다.

무림맹을 이루는 대표적인 문파들이 지척이기 때문에 정파를 견제하는 성격이 강한 곳이었다.

무림맹 대표단은 곧장 대전으로 안내되었다.

무림맹 대표단을 이끌고 온 사람은 제갈신기의 제자인 사문량(士文良)이었다.

그는 키가 크고 다소 마른 체형이지만 호남형이어서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는 외모였다.

그가 함께 온 네 사람과 함께 대전으로 들어가자, 중앙 태사의에 앉아 있던 덩치 큰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어서 오게. 오랜만에 보는군.”

사파에는 검을 귀신같이 쓰는 검객이 넷 있다. 세인들은 그들을 수라사객(修羅邪客)이라 불렀다.

덩치 큰 사내는 수라사객 중 혈객으로 불렸던 수라혈군(修羅血君) 도문척으로, 사령회의 회주가 바로 그였다.

“회주님, 안녕하셨습니까?”

사문량은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그러나 도문척은 표정이 싸늘했다.

“그리 평안하지는 않았네. 그래, 무슨 염치로 우리를 찾아왔나?”

“염치라니,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허, 정녕 몰라서 묻는 건가?”

사문량은 고개를 들어서 도문척을 보았다.

기세를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빛만으로도 숨이 막혀왔다.

사문량은 도문척의 기세에도 물러서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먼저 말씀하시지요.”

“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가만히 있는 우리를 건드려 놓고 뭐라? 할 말이 있으면 먼저 하라고?”

사문량의 미간이 좁혀졌다.

‘내가 할 말을 하다니? 설마, 사도맹에도 문제가 발생한 것인가?’

그때 도문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성큼 걸어오더니 사문량에게 버럭 소리쳤다.

“열다섯이 죽었어! 네놈들 정파의 습격을 받고 열다섯이 죽었단 말이야!”

서문량은 이를 악물며 당당히 도문척에게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는 더 죽었습니다.”

“뭐? 그래서 습격한 일이 잘한 일이냐?”

“회주님, 습격은 저희가 받았습니다. 무림대회에 오던 산동악가가 마화문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사문량의 말에 도문척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다 곧 고개를 쳐들고 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어디서 되지도 않는 수작질이냐?”

“수작질이라니요?”

“마화문이 어떤 곳인지 모르느냐? 산동악가를 마화문이 건드렸다고?”

사문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화문이 제법 이름이 있다지만 산동악가와 싸우면 필패였다. 그런데도 습격했다는 것은 누군가 협력했다는 뜻. 무림맹에서는 그 누군가가 사도맹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사문량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이 가져온 패를 꺼냈다.

“시체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마화문의 독문무공인 귀화수가 그들의 심장에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도문척의 미간이 깊이 파였다.

“뭐라고?”

귀화수는 마화문의 독문무공이다. 그것도 아무나 익힐 수 없는 문주만의 비전이었다.

사문량이 쐐기를 박듯이 한 가지 사실을 더 꺼냈다.

“포로로 잡힌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도맹 소속이라고 이미 밝혔습니다.”

“뭐?”

“그들이 그러더군요. 사도맹의 지시로 움직였다고요.”

“허, 지시? 이 자식이 어디 수작질이야!”

후아아악!

도문척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쏟아져서 서문량을 짓눌렀다.

서문량은 이를 악물었지만 그 자리에 서서 버텨냈다.

하지만 곧 그의 무릎이 허망하게 굽혀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공으로 짓눌렀을 뿐 내상을 입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맹의 대표에게 손을 쓰다니! 본 맹과 전면전이라도 벌이겠다는 거요?”

사문량과 함께 온 무림맹 간부들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서문량은 그 와중에도 이를 악문 채 도문척을 노려보았다.

수라혈군은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나서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오냐! 네놈이 바른 대로 말하지 않겠다면 일장에 쳐 죽여주마!”

화가 머리끝까지 난 수라혈군이 들어 올린 손에 내공을 모았다. 그의 손이 붉게 변했을 때 그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주님,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왜?”

도문척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을 부른 문사 차림의 사내를 보았다.

사령회 군사인 신안기군(神眼機君) 원적(元籍)이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는 그는 사파의 인물답지 않게 정면승부를 좋아하는 자였다.

“아무래도 이번 일에 저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서문 형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원적이 나서자 도문척도 기세를 누그러트렸다. 그는 원적의 말을 듣고 몸을 획 돌리더니 태사의로 돌아갔다.

“알아서 해.”

“허억, 허억…….”

서문량은 그제야 숨을 크게 들이켜며 일어났다.

짧은 시간에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서문 군사, 괜찮으십니까?”

“저자들과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만 돌아가시는 게…….”

무림맹 간부들이 분노한 표정으로 서문량에게 말했다.

하지만 서문량은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손을 저어서 간부들의 입을 막은 그는 원적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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