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42화 (142/257)

# 142

142화

정 소감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어서 오게. 그래 요즘 바쁘지?”

“니에, 살펴봐야 할 무림인이 많사옵니다.”

몰려드는 무림인들 때문에 동창이 바빠졌다. 그들을 일일이 감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누가 들어왔는지는 알 필요가 있었다. 일정 이상의 실력을 가진 자라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분명히 신비세력이 준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운은 정 소감의 어려움을 아는지 넌지시 물었다.

“정원 태감님께 인원을 더 보내달라고는 해보았나?”

“말씀드렸는데 어렵다고 하십니다.”

“흠, 정보가 샐 우려 때문인가 보군.”

“니에, 한 명이라도 간자가 섞이면 모든 것이 틀어질 테니까요.”

청운은 정 소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봐도 인원이 더 필요했다.

청운은 정 소감에게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흑검방에 말해서 인원을 보내달라고 하거나 금의위를 활용하는 건 어떤가?”

“둘 다 괜찮은 방법이옵니다.”

정 소감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청운은 정 소감에게 몇 가지 더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정 소감이 청운에게 넌지시 물었다.

“대인, 백 소저는 어찌하실 생각이시옵니까?”

“끄응, 그 때문에 골치가 아프네.”

백청청이 사고를 제대로 쳐서 뒷수습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소림사 출신 승려들이 강하게 유감을 표현했다.

소림사 입장에서 제운탑은 소중한 보물이었다. 아무리 소림사가 무승이 많다고 하지만 그들도 기본은 부처님을 모시고 해탈을 위해서 수련하는 스님이다.

그나마 습격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다행이었다.

백가장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백영상 장로가 달려와서 소림사를 달래며 백마사의 스님들과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문제는 백청청의 거취 문제였다.

정 소감은 청운에게 넌지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대인, 백 소저를 백가장으로 돌려보내시는 게 어떨는지요?”

“말은 했는데 단호하게 거절하더군.”

“아! 그러셨군요.”

정 소감은 백청청이 어떻게 나왔을지 머릿속에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돌아가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대인, 무림맹 주변이 살기로 가득하옵니다. 백 소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다시 말씀하시는 건 어떻겠사옵니까?”

“흐음.”

청운은 깊은 한숨을 쉬며 정 소감을 보았다.

백청청의 무위를 정 소감도 보았다는 것을 청운은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무위라면 상대를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정 소감의 백청청을 걱정하는 말이 어딘지 어색했다.

‘정 소감은 백 소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하긴, 사고를 단단히 쳤으니.’

순수하게 백청청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정 소감의 걱정 어린 눈에 담겨 있었다.

청운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 소감 말대로 할 수도 없고.’

백청청은 황실 손님 자격으로 무림맹에 와 있었다.

그녀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황실과 직결되었다. 지금처럼 큰 사고를 치면 온전히 황실 책임이고, 그 일을 수습하는 사람은 자신 아니면 정 소감이어야 했다.

정 소감 역시 함부로 청운에게 돌려보내라고 직언을 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건 백청청은 황실의 손님이었다.

청운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일단 더 두고 보세. 그녀를 내치면 황실에 와 있는 백가장 사람들이 돌아갈 수도 있네. 그리고 백가장에서도 이곳에 사람들이 왔으니 호위 문제는 그쪽으로 전부 돌리게.”

“니에, 알겠사옵니다.”

정 소감은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다고 싫은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이런 감정이 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백청청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정 소감은 청운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별채로 통하는 대문을 나와서 돌아가는 길에 삼천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저를 기다리신 겝니까?”

“하하, 표 나나 보군요.”

삼천은 무슨 이유에선지 정 소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딱히 삼천과 할 이야기가 없었지만 정 소감은 삼천에게 물었다.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제 집무실로 가시지요.”

“고맙소. 정 소감은 역시 눈치가 빠르군요.”

정 소감의 집무실은 단출했다. 화려한 장신구는 보이지 않았고 서책이 꽂힌 서가와 멋들어진 족자 몇 개가 다였다.

삼천이 족자를 힐끔 보더니 물었다.

“대인이 그려주신 겁니까?”

“니에, 가끔 소인에게 선물로 주신답니다.”

“나도 몇 점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연중삼원의 그림이나 글씨라면 가보로 남길 만하지요.”

청운의 작품은 지금도 수천 냥에서 수만 냥을 오간다. 훗날 얼마나 많은 가치가 책정될지 기대되는 물건이었다.

정 소감은 차를 따라주며 삼천에게 물었다.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요?”

“아, 바쁜 사람을 붙잡고 내가 너무 시간을 끌었군요.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내가 도와주겠소.”

“네? 도와주시겠다니, 무슨 말씀이시온지?”

정 소감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한 얼굴로 삼천을 보았다. 삼천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대인과 좀 더 가까워지는데 도와주겠다는 말이오.”

“허, 불쾌하군용.”

정 소감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러나 삼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 소감에게 말했다.

“백 낭자에게 밀리고 있지를 않소.”

“삼천! 말씀 가려서 하시지요.”

“포기할 생각이오?”

“네 이노오옴!”

화아악!

정 소감이 참지 못하고 내공을 터트렸다. 그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졌다.

그 기운은 고스란히 삼천을 덮쳤다.

삼천의 두 눈이 커졌다.

‘이럴 수가! 일개 환관이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정 소감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저 청운의 곁에서 수발이나 드는 환관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 못지않은 힘을 숨기고 있었다.

삼천은 이대로 정 소감과 대치할 마음이 없었다. 청운과 가까운 그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삼천은 정 소감을 달래듯이 말했다.

“정 소감, 이야기 안 끝났소. 일단 힘을 거두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오.”

“닥쳐라! 네놈이 무슨 마음으로 그따위 더러운 말을 뱉는지 모르지만,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수작을 부린다면, 내 네놈의 목을 칠 것이다!”

서슬 퍼런 정 소감의 기세에 삼천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생각한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정 소감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자신 역시 도움을 받기를 원했는데 일이 시작부터 틀어졌다.

삼천은 아직은 때가 아님을 알고 정 소감에게 사죄했다.

“큭, 다른 뜻은 없었소. 미안하게 되었소.”

삼천의 사과에도 정 소감의 표정은 싸늘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알겠소. 미안하구려.”

삼천은 순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너무 쉽게 생각한 자신의 실수였다. 조금씩 천천히 접근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다.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던 삼천은 힐끔 정 소감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서 모습을 감췄다.

삼천이 떠난 뒤에도 정 소감은 그대로 있었다.

그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 뿐이었다.

* * *

일주야가 흐르는 동안 걱정과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무림맹 일부 인사들은 괜한 걱정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청운과 제갈신기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우려하던 일이 드디어 벌어졌다.

회의실로 문사건을 눌러쓴 중년의 사내가 뛰어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중년 사내에게 모였을 때 사내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쏟아냈다.

“소림사 제자들이 습격을 받았다고 하옵니다.”

“뭐라? 그게 무슨 말인가?”

“어서 소상히 아뢰게!”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에 중년 사내는 서둘러 입을 놀렸다.

“소림사에서 무림대회를 위해 출발하신 공야 대사님과 제자들이 습격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사옵니다.”

전서구로 전해진 소식이라 자세한 내용은 빠져 있었다. 그러나 보통 일이 아니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

“어떤 놈은 어떤 놈이겠소이까? 사도맹 놈들이 아니겠소이까?”

“그 죽일 놈들이……!”

무림맹과 소림사는 지척이다. 반나절이면 올 수 있는 거리인데 그사이에 습격을 받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문사가 회의장으로 급히 뛰어들며 다른 소식을 전했다.

“급보이옵니다! 산동 악가에서 오던 일행이 마화문의 습격을 받아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하옵니다.”

“마화문? 역시 사도맹 놈들이군!”

마화문은 사도맹을 이루는 스물여덟 문파 중 하나였다.

그런데 회의를 주재하고 있던 제갈신기는 오히려 그 때문에 이마를 찌푸렸다.

‘마화문이라고? 그들은 악가를 공격할 만한 배짱이 없을 텐데?’

하지만 다른 간부와 장로들은 적을 사도맹으로 기정사실화했다.

“맹주! 어찌하시겠소이까? 놈들을 놔둘 수는 없는 일 아니오?”

“당연하지요! 당장 무사들을 파견해서 놈들을 징벌해야 하오!”

이 사람, 저 사람 소리치자, 제갈신기가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잠시만 조용히 하시오.”

간부들이 벌게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제갈신기를 보았다.

제갈신기가 전령에게 물었다.

“악가는 어디에서 습격을 받았다고 하느냐?”

“정주를 지나서 공의(鞏義)에 다다랐을 때라 하옵니다.”

제갈신기는 거리를 가늠했다.

‘무림맹에서 하루 이틀 거리군. 설마 다른 곳도?’

적이 작정하고 공격한 거라면 다른 곳에서도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제갈신기가 양조생을 보며 말했다.

“맹주님, 아무래도 이곳으로 오는 무림인들에게 조심하라고 알려야겠습니다.”

“그게 좋겠소. 즉시 전령을 보내시오.”

“하옵고, 혹시 또 다른 습격이 있을지 모르니, 맹의 무사들을 보내서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사옵니다.”

“의기대와 천추대를 보내시오.”

무림맹주 양조생은 제갈신기의 청을 곧바로 수락했다. 급한 일이기에 장로들의 동의는 필요 없었다.

장로들 역시 이번만큼은 딴지를 걸지 않았다.

제갈신기는 한쪽에서 잔뜩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청운을 보며 전음을 보냈다.

-진무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 사도맹에서 한 짓처럼 보이는가?

-저는 사도맹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사도맹이 전면전을 할 생각이라면 모를까, 왜 드러내놓고 공격을 감행한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나도 그게 조금 이해가 안 되네.

-사도맹이 힘만 앞세우는 곰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당연하지. 사도맹에는 천년 묵은 여우만큼이나 교활한 자가 있네. 그라면 이런 일을 절대 승인하지 않았을 거네.

-장로님들께 말하면……. 아, 해봐야 총군사님의 말을 듣지 않을 것 같군요.

제갈신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청운의 말뜻을 이해한 것이다.

장로들은 이미 사도맹의 짓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 짓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해봐야 불붙은 모닥불에 기름을 부은 꼴만 될 뿐이다.

-제가 한번 알아보지요.

-자네가?

-사도맹이 아니라면…… 그들 짓일 가능성이 큽니다.

-으음……. 나 역시 같은 생각이네. 나도 조사해볼 테니 진무사도 한번 알아봐주게.

제갈신기는 서둘러서 전서구를 사방으로 날렸다. 그러고는 발 빠른 전령을 무림맹으로 향하는 관도로 보냈다.

전령과 전서구에는, 단독으로 오지 말고 여럿이 뭉쳐서 오라는 당부의 말이 적혀 있었다.

청운은 삼천과 금의위 일부를 공의로 보내서 마화문의 흔적을 뒤쫓게 했다.

그러고는 자신은 금의위 몇 명만 데리고 따로 움직였다.

* * *

금의위와 함께 용문석굴 근처에 도착한 청운은 일전에 싸움이 벌어진 곳을 둘러보았다.

신비세력의 무사들이 펼친 무공의 흔적을 좀 더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였다.

시일이 지났는데도 일부 흔적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바위에 파인 흔적도 그대로였다.

청운은 그 흔적들 중 특이한 부분을 종이에 옮겼다.

신비세력은 무사들을 포섭하면서 혈단만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높은 경지의 무공 역시 건네주었을 가능성이 컸다.

무림맹이든 어디든 숨어 있는 자들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이 마땅하게 없는 현재로선 무공의 흔적도 훌륭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청운은 반나절 동안 무공의 흔적을 찾아 그렸다.

그러고는 주변이 잘 보이는 산꼭대기의 튀어나온 바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놈들의 주력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야 하는데…….’

아무리 조사해 봐도 딱히 감이 오지 않았다.

하긴 무림맹조차 오랜 세월 조사하고도 놈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상태 아닌가.

‘일단 하나하나 조사하다 보면 언젠가는 드러나겠지.’

그런데 무언가가 신경을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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