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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39화 (139/257)

# 139

139화

잔뜩 흥분한 조장의 음성에 금의위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들은 앞에 나서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상관인 청운이 있기 때문이었다.

청운은 고개를 돌려 조장을 보며 말했다.

“무림맹 조장 따위가 감히 나와 맞서겠다는 것인가?”

“머, 뭐요?”

청운이 손을 흔들었다.

쾅!

경비조장의 몸뚱이가 훌훌 날아가서 나뒹굴었다.

청운이 그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귀가 막혔다면 다시 이야기해주지.”

청운의 싸늘한 한마디에 경비조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청운의 눈에서 뿜어지는 광채가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선다면 자신은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뒤를 봐주는 사문의 어른들께도 누가 될지 모른다.

이를 악문 그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진무사! 오늘 일,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후회? 만일 금의위를 건드렸다가는 황제 폐하의 군대가 그대가 믿고 있는 무림맹을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부숴버릴 것이다.”

경비조장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나름 믿는 것이 있어서 소리치긴 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나간 듯했다.

“아! 그 전에…….”

퍽!

가벼운 발길질에 경비조장의 몸이 떼굴떼굴 굴러갔다.

“그대의 죄상에 대한 것부터 따져야겠다.”

“내, 내가 무슨 죄를…….”

“그대는 무림맹의 조장이라는 같잖은 지위로 양민을 위협했다. 그리고 황제 폐하의 신하가 된 자를 모욕했음은 물론, 황제 페하의 전권을 위임받은 나에게 반기를 들었다. 흐음, 그건 역모죄로 다스려도 되겠군.”

역모죄!

경비조장의 안색이 똥색으로 변했다.

“나, 나는…… 그저 사파 놈을…….”

“사파도 황제 폐하의 백성이라는 걸 잊은 모양이군. 더구나 문광은 조금 전, 황제 폐하의 신하가 되었지.”

“…….”

“아! 하나 더. 그대는 무림맹을 위험에 빠뜨린 죄를 지었으니 무림맹의 보호를 받지도 못할 것이다.”

조장은 뜨악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금의위들이 하나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단주님 때문에 내가 미친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이미 늦은 후였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이 일로 인해서 자칫 상부의 질책이 이어질 게 분명했다.

아마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외단 단주도 발을 뺄 것이 뻔했다.

청운은 수시로 변하는 조장의 안색을 보면서 넌지시 물었다.

“혹시 그대에게 이 일을 시킨 자가 있는가?”

“그, 그게…….”

“있군. 외단 단주인가?”

“…….”

조장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청운은 씩 웃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구경꾼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청운과 정 소감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청운이 정 소감과 나간 후 별채에 백청청이 나타났다. 지금쯤이면 청운이 외부로 외출을 간다는 것을 알기에 함께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한발 늦고 말았다.

“뭐라고요? 벌써 정 소감과 나갔다고요?”

“예, 반각 전에 출타하셨습니다.”

백청청의 물음에 웅천이 대답했다.

백청청은 고운 아미를 찡그리며 토라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흥, 나를 두고 둘이 나가다니.”

허리에 손을 얹고 잔뜩 토라진 표정을 지은 백청청이 웅천을 보며 물었다.

“웅 백호님, 혹시 어디로 가셨는지 아세요?”

“언뜻 듣기로는 백마사 쪽으로 가신다고 한 것도 같은데, 저는 잘 모릅니다.”

“아! 그래요. 웅 백호님께서는 잘 모르시는군요. 그럼 저는 그만 가볼게요.”

“살펴 가십시오.”

웅천은 도도도 달려가는 백청청의 뒷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백마사는 낙양 동편 외각에 자리한 사찰이다.

중원 최초로 세워진 사찰로 여러 가지 전설을 가지고 있는 명승고적이다. 향화객이 줄을 잇고 소원을 비는 곳으로 낙양 삼절로 꼽히는 곳이다.

백청청은 호위 둘을 거느리고 한달음에 백마사에 도착했다.

상당한 규모를 지닌 백마사이기에 백청청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청운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청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 어디 계신 거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청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와서 아직 도착을 안 하신 것인가?’

반각 먼저 출발했다고 하니 그 여우 같은 정 소감이 서둘러 오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기필코 정 소감에게서 청운님을 떼어놓고 말 거야.’

아무리 동생처럼 생각한다 해도 신경이 쓰였다. 생긴 건 어찌나 곱상하게 생겼는지 여자인 자신이 봐도 질투가 날 정도였다.

백청청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백마사 입구에 서 있는데 한 사내가 은근슬쩍 다가왔다.

“저, 혹시 강서백가의 백청청 아가씨가 아니신지요?”

“네? 그런데 누구시죠?”

“아이쿠! 소인이 잘 찾아왔네요. 진무사님을 기다리시는 것이지요?”

“어떻게 아셨어요?”

백청청은 생면부지의 사내가 자신을 아는 체하자 의아했다. 곧 그 사내의 용건을 듣고 기뻐했다.

“진무사님께서 소인보고 아가씨가 오시면 저쪽 제운탑으로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사내의 손길을 따라서 고개를 돌린 백청청은 높이 솟은 탑을 보았다.

백마사(白馬寺)의 제운탑(齊雲塔)이 보였다.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탑으로 백마사의 자랑 중 하나였다.

허나, 백청청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조금 전에 가봤는데 안 계시던데요?”

“아, 그게 조금 늦으신다고 제운탑에서 기다리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운탑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탑입니다.”

“소원이라니요?”

“청춘 남녀가 탑을 세 바퀴 돌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서 가시지요.”

백청청은 사내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백마사는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자신도 유래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제운탑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하지만 청운과 이뤄진다는 소리에 의심을 버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좋아요. 가서 기다리죠.”

“예,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백청청은 앞서가는 사내를 따라서 이동했다. 그 뒤를 두 명의 호위가 따랐지만,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 * *

한편, 청운은 낙양으로 향하는 길에 뜻밖의 습격을 받았다.

뭔가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 같아서 그곳으로 가는데, 그의 옆을 스쳐가던 자들이 난데없이 습격했다.

하나같이 절정에 다다른 인물들이었다.

“죽어!”

그들의 수상한 움직임을 느꼈을 때는 이미 공격이 시작된 후였다.

청운은 허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칼날에 인상을 찡그렸다.

정 소감과 오붓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경계를 하지 않았다. 조금만 신경 썼어도 당하지 않을 상처를 입은 것이다.

한번 시작된 공격은 연달아 청운을 몰아붙이며 사혈을 노렸다.

턱!

청운은 가슴을 찔러오는 사내의 손목을 낚아챘다.

“웬 놈들이냐?”

청운은 사납게 사내들을 쏘아보았다.

습격한 자들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대신 팔을 붙잡힌 자가 어깨를 비틀며 다른 손으로 청운의 허리를 노렸다.

으드득.

팡!

“윽.”

청운은 이마를 찡그리고 신음을 흘렸다. 자신에게 붙잡힌 자가 어깨의 관절을 뽑아버리고 공격한 것이다.

주춤 물러선 청운은 싸늘한 눈으로 자신을 공격한 사내를 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기이한 기운이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두 번이나 공격당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건만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었다.

주위를 포위한 사내들은 청운 외에도 정 소감을 몰아붙였다.

그런데 의외로 정 소감이 잘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그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지 얼마 안 되는데 절정고수 둘을 상대로 여유롭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청운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그 틈을 타고 사내들이 공격했다.

슈슈슉!

단검이 목젖을 노리고 쑥 들어왔다. 고개를 살짝 돌려서 단검을 피한 순간 허리를 향해서 날카롭게 휘어져 오는 검이 있었다.

청운은 빠르게 검을 뽑아 들고 상대의 검을 막았다.

챙! 서걱!

단검을 막고 사내의 가슴을 베었다. 이내 빙글 몸을 돌려서 앞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 청운이 있던 자리에 암기가 박혔다.

후두둑.

청운은 연이어 사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투다다당!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뒤로 물러서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사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목숨을 도외시하고 청운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파고들었다.

‘동귀어진(同歸於盡)?’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이었다.

철천지원수를 만난 듯 사내들은 청운을 몰아붙였다.

스팟!

서걱!

청운의 몸에 또다시 상처가 생겼다.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청운은 뒤로 물러서며 회풍구류검을 펼쳤다.

터더더더덩!

다수를 상대로 최적화된 회풍구류검은 쏟아지는 암기와 상대의 공격을 모두 쳐냈다.

청운은 빙글 몸을 회전하며 오른발을 들어서 강하게 바닥을 찍었다.

쾅! 콰콰쾅!

진각에 의해서 퍼져나간 기파가 둥근 원을 그리며 몰려든 사내들에게 연속으로 충격을 주었다.

청운은 주춤 물러서는 자들을 향해서 환우무상검을 펼쳤다.

‘무상혈!’

붉고 푸른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자세를 잡지 못한 사내들의 허리를 사정없이 베고 지나갔다.

일 초에 공격하던 자들을 모조리 저승으로 보낸 청운은 고개를 돌려 정 소감을 보았다.

둘을 상대하던 정 소감은 어느새 한 명을 쓰러트리고 다른 하나의 목을 쥐고 있었다.

청운은 성큼 정 소감에게 다가갔다.

정 소감의 손에 붙잡힌 사내는 제압되었는지 몸을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반쯤 풀린 눈에 기이한 빛이 일렁거리며 입가에 침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청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증상은 앵속에 의한 것인데?’

항주에서 마주한 하오문도 중 앵속에 취한 자들이 보여주던 증상과 비슷했다.

정 소감은 사내를 보며 물었다.

“누가 보낸 것이냐?”

“크크큭.”

사내의 눈동자가 빠르게 탁해지기 시작했다.

정 소감은 눈살을 찌푸리며 사내를 바닥에 팽개쳤다. 그러고는 청운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틀린 것 같사옵니다.”

“무슨 말인가?”

“놈들은 습격하기 전에 약을 먹었사옵니다. 보통 살수들이 사용하는 방법인데 내공으로 보호를 해두면 약 기운이 퍼지지 않사옵니다.”

“그런 방법도 있나?”

“니에, 기습에 성공하면 약을 뱉어내거나 해약을 먹으면 되옵니다. 실패하면 이자처럼 이지를 상실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청운은 정 소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살수들도 살행을 하기 전에 독단을 삼키거나 숨겨두고 간다. 일이 잘되면 해약을 먹으면 되고, 실패하면 비밀을 안고 죽으면 그만이다.

정 소감은 청운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대, 대인! 다치셨사옵니까?”

“괜찮네. 살짝 베인 것이니.”

“그렇지만 저들의 무기에는 독이 발라져 있사옵니다. 어서 해독하지 않으면 큰일이옵니다.”

“독에 내성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정 소감의 걱정 어린 말에도 청운은 괜찮다며 안심시켰다.

청운은 독에 대한 내성이 강했다. 모두가 뇌기와 혈황진기 덕분이었다.

청운은 이지를 점점 상실해가는 사내를 보았다.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습격과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이라니.

청운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혈황에게 물었다.

-혈황 님, 혹 방법이 없을까요?

[저자 정신 차리게 하는 거? 그거라면 혈기라도 주입해 보아라.]

-알겠습니다.

청운은 지체 없이 사내에게 혈기를 주입했다.

붉은 아지랑이가 청운의 장심을 타고 사내에게 스며들었다.

사내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탁하게 변했던 눈동자가 서서히 맑아졌다.

“크윽, 시, 실패한 건가?”

반쯤 풀려버린 눈에 힘이 들어가며 자포자기한 것 같은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삶의 끝이 겨우 이거였다니…. 우습군.”

무언가 한이 서린 듯한 아쉬움이 사내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일반적인 살수들과는 반응이 많이 달랐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청운이 사내를 향해 말했다.

“너는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이대로 두면 죽게 되겠지만, 협조한다면 살길을 마련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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