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132화
금검장이 일순간에 무너졌고, 도주하던 금검장 무리를 금의위가 처리했다는 소문이 무림맹을 강타했다.
무림맹이 승리하긴 했으나 죽은 사람만 백 명이 넘었다.
장로들과 함께 소식을 기다리던 청운은 안도하는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겼다니 다행이긴 한데, 금의위들이 많이 죽지는 않았는지 모르겠군.’
소식을 전하는 전령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싸움에서 큰 전공을 세운 금의위는 싸움이 끝나자 부상자와 사망자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안가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인물들이다. 굳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일이 끝나면 다시 숨으라고 지시해둔 상태였다.
청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장로들을 보며 말했다. 목소리가 절로 싸늘하게 나왔다.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윗사람들의 고집 때문에 백 명 넘게 죽었다니, 그 많은 사람들이 저세상에서 누굴 원망할지 모르겠군요. 이번 일, 잊지 않겠습니다.”
딱히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청운이 회의실을 나설 동안 장로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앉아서 소식을 기다리던 장로 두어 명만 함께 갔어도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장로 중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숙소로 사용하는 별채로 돌아온 청운은 웅천과 함께 있는 전령에게 좀 더 자세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대인, 천 백호의 활약으로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습니다.”
천 백호는 삼천의 다른 신분이다.
천진산(天眞山)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금의위에 알려진 상태다.
청운이 전령에게 물었다.
“금의위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다섯이 죽고 스물이 부상당했습니다.”
다섯이 죽고, 부상자가 스물?
생각했던 것보다 사상자가 적었다.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후우, 그 정도면 선방한 셈이군.’
만약 많은 이들이 죽었다면 장로들과 대판 싸우는 한이 있어도 가만있지 않으려 했건만.
마음이 조금 편해진 청운이 명을 내렸다.
“오늘 밤 갈 것이니 돌아가서 쉬게.”
“존명!”
전령을 돌려보낸 청운은 창밖을 보았다. 하늘은 맑았지만, 가슴은 답답하기만 했다.
‘이대로는 안 돼. 뭔가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청운은 늦은 밤 안가로 향했다.
무림맹에서 회의가 있다고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런 청운을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청운의 말대로 했다면 이런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장로 중에는 청운이 오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림맹은 이번 싸움에서 엄청난 피해를 봤다. 특히 배를 타고 강 쪽을 지키던 자들 쪽에서 피해가 컸다.
백 명이 넘는 사망자 중 칠팔십 명이 그쪽에서 나왔다.
낙하에 떠 있던 배 중에는 금검장과 관련된 배들이 다수 있었다. 금검장은 배를 항상 비밀통로와 가까운 곳에 정박시켰다.
무림맹은 이를 몰랐다. 그저 고깃배로 생각하거나 낙하를 오가는 운반선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비밀통로를 빠져나온 무사들이 그 배를 타고 다가가서 기습을 한 것이다.
안가에 도착한 청운은 삼천을 만나 당시 상황을 들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삼천의 입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도에 맞고 튕겨진 후부터 기억이 잘 안 난단 말이지?”
나직하게 묻는 청운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 제가 둘을 상대하고 나서 남은 자들도 모두 처리했다고 합니다.”
청운은 창밖에 떠 있는 달을 보고 있는 혈황을 힐끔거리고는 다시 삼천에게 물었다.
“무공은 무엇을 사용했는가?”
삼천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듣기로는 검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야 정신을 차리는 바람에 시체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당연히 그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신을 잃은 상태로 초절정 경지의 고수 둘을 죽였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청운은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그 말을 삼천에게 할 수가 없었다.
“흠, 그 부분은 내가 무림맹에 가서 확인해보겠네. 아마도 금제 때문에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지금 괜찮은 걸 보니 일시적인 현상인 것 같군.”
삼천으로서도 달리 추측할 길이 없었다.
혈황의 영혼이 그의 몸에 들어갔다는 것을 그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알겠습니다.”
청운은 대답하는 삼천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뭔가가 달라진 것 같군.’
삼천의 몸에서 느껴지는 금제의 기운이 더 강해진 상태였다.
“몸에 이상은 없는가?”
“예, 가뿐합니다. 오히려 조금 더 강해진 느낌입니다.”
“호, 다행이군. 그래도 모르니 당분간은 움직이지 말고 휴식을 취하게.”
“예, 대인.”
삼천은 청운과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한 후에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청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밖을 보고 있는 혈황 곁에 섰다.
-하실 말씀 없으세요?
[너를 속일 생각은 없었다.]
청운은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었으면서도 혈황의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삼천의 몸에 들어가신 겁니까?
[처음에는 나도 반신반의했다. 무심코 삼천을 따라 움직였는데…… 너와의 거리가 멀어져도 괜찮지 뭐냐.]
-혹시…… 혈황 님이 가르쳐줘서 펼친 금제 때문 아닙니까?
[뭐 그런 영향도 있다고 볼 수 있겠지.]
-그 금제, 정말 금제가 맞긴 한 겁니까?
[물론이다. 혈황진기의 운용을 위해서 혈기를 심은 것이기도 하다만.]
-알고 하신 거군요.
[한번 실험을 해본 거다. 솔직히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확률을 반도 안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다음부터는 저에게 이야기하고 하세요. 그래야 놀라지 않죠.
[알았다. 그렇게 하마.]
-저도 혈황 님이 평생 영혼으로만 사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몸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도 원치 않아요.
[…….]
혈황은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불만은 없는 듯했다.
-이제 삼천의 몸에 들어간 이야기를 해보세요. 어떻게 된 거죠?
[싸움이 벌어진 후 삼천에게 위기가 찾아왔지. 나에게는 중요한 실험체인 삼천을 그냥 죽게 둘 수는 없었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혈황 덕분에 삼천이 살았다면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 녀석이 정신이 혼미해진 틈을 타서 몸에 들어갔다. 네 녀석처럼 뇌기가 거부를 안 하니까 자리를 빨리 잡을 수 있었지.]
-심상 세계 같은 곳은 없었나요?
[그런 건 없었다. 그리고 녀석의 영혼 역시 볼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혈황 님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았으니.
혈황의 정체가 밝혀져서 좋을 게 없었다. 아무리 삼천이라 할지라도 밝힐 수 없는 비밀이었다.
-어쨌든 혈황 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아이들이 살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혈황도 청운이 더 이상 다그치지 않자 바로 표정이 풀어졌다.
[뭐 별일이라고. 합격진을 미리 준비한 덕에 피해가 줄었다. 그러니 그 부분을 좀 더 다듬는 게 좋겠다.]
-그래서 백가장에 도움을 청할까도 생각 중입니다.
[백가장이라. 하긴 그놈들의 합격진이라면 쓸 만하지.]
-혈황 님도 밑천 좀 더 내놓으시고요.
[……뭐 쓸 만한 것이 있나 생각해 보마.]
-이상한 것 내놓아서 사마도로 오해받게 하지 마시고요.
[…….]
‘아, 그 자식. 뒤끝은…….’
* * *
이번 일로 인해서 금의위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
당연히 청운의 입지도 그만큼 단단해졌고.
그동안 관부 무인들의 실력이 무림인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은연중에 무시했었는데 이번 일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초절정 고수로 의심되는 두 고수를 혼자서 상대한 인물이 백인장이라는 소리에 경계하는 이도 생겼다.
하지만 제갈신우는 회의장에서 여전히 목소리를 높였다.
“내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금검장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금의위가 거기서 왜 끼어든 건가?”
청운도 강하게 나갔다.
“지나가다가 봤답니다. 놈들에게 당하는 걸 보고도 죽게 놔둡니까? 장로께선 그러길 바라십니까?”
“누가 죽게 놔두라고 했나?”
“수하들이 그냥 구경만 했다면 당장 뭐라고 했을 것 아닙니까? 다음부터는 그럴까요?”
“허, 거참…….”
제갈신우는 청운의 연타석 공격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서 눈을 한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어쨌든 자네들은 약속을 어기고, 나서지 않을 자리에 나섰네.”
청운도 냉랭히 말했다.
“약속을 지키는 대신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한다면, 그딴 약속 백 번이라도 어길 겁니다.”
그러고는 홱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어린 제 생각과 경험 많으신 어르신과의 생각은 다른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더 말씀드려봐야 건방지게만 비춰질 것 같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청운은 묵묵히 듣고만 있는 양조생과 장로들을 향해서 포권을 취하고는 성큼성큼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장로들 중에는 탄식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제갈신우를 째려보는 사람도 있었다.
양조생 역시 침중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청운을 붙잡지 않았다.
옹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무림맹의 최고 어른들이었다.
황궁의 진무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제갈신우를 질책하지도 못했다.
양조생은 청운이 나간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제갈신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나라 해도 맹도가 죽어가고 있다면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거요.”
제갈신우가 콧등을 씰룩이며 말했다.
“맹주, 제가 왜 그런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금검장은 단순한 무인들의 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낙하를 기반으로 상당한 상권을 이루고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무너진 금검장의 상권을 무림맹이 고스란히 품에 넣을 생각이었다.
거대한 몸집에 비해서 항상 자금이 모자라는 무림맹 입장에서는 엄청난 거금이 저절로 굴러들어온 셈이니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청운이 끼어들면 황궁에 상당 부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결국 ‘돈’ 때문에 그리도 청운을 몰아붙인 것이다.
양조생은 그래서 더 마음이 무겁고 씁쓸했다.
언제부터 무림맹이 돈 때문에 맹도를 구해준 사람을 내쳤단 말인가.
“아니까 조용히 있었던 거요. 다들 그만 돌아가시구려. 회의는 내일 다시 열겠소이다.”
* * *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사흘이 지났다.
장로들도 더 이상은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청운도 잘된 일이라 생각하고 금의위 위사들이 사용할 진법을 연구하는 일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그날 점심 무렵, 일단의 무리가 무림맹을 방문해서 청운을 찾아왔다.
“대인, 동창에서 보낸 사람들이 왔습니다.”
동창에서 사람을 보낸다더니, 그들이 도착한 듯했다.
“그래? 안으로 모시게.”
곧 방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앞서 들어온 사람이 갑자기 청운을 향해 뛰어왔다.
“대이이인!”
청운은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약관으로 보이는 예쁘게 생긴 환관이 남색 바탕에 용과 봉황이 수놓인 동창 무복을 입고 달려오는 것 아닌가.
청운은 대번에 그가 정 소감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니, 자네는 정 소감 아닌가?”
곁에 있던 혈황이 눈을 깜박이며 한마디 했다.
[정 소감이라고?]
너무도 달라진 정 소감의 모습에 혈황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구화보전이 요물이라더니, 진짜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