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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28화 (128/257)

# 128

128화

청운은 오늘도 용문석굴에 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나지막한 바위산에 자리한 용문석굴은 엄청난 규모였다. 크고 작은 굴들이 벌집처럼 뚫려서 정확한 숫자를 헤아리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큰 것은 높이가 십 장이나 되었다.

그런데 청운이 온갖 전설이 잠들어 있는 그곳을 둘러보는 이유는 꼭 석굴 때문만은 아니었다.

-혈황 님, 놈들이 슬슬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혈황이 서쪽 하늘을 힐끔 보더니 냉소를 지었다.

[애가 닳았겠지.]

-나름 머리를 썼군요. 무림맹 무사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다니.

무림맹에서는 청운이 매일 유람하듯이 이곳저곳 돌아다니자 무사를 붙여놓았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청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청운이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호위를 위해서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자. 놈들이 기다리겠다.]

빈양동의 거대한 석불을 보고 있던 청운은 혈황의 말에 힐끔 서산으로 떨어가는 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린 청운은 곧장 신법을 펼쳐서 그곳을 벗어났다.

청운이 모습을 다시 드러낸 곳은 숲과 맞닿아 있는 강기슭 모래밭이었다. 어느덧 석양이 서산 너머로 넘어가면서 어스름이 밀려들고 있었다.

청운은 그곳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반 각 정도. 강과 숲의 거리가 좁아지는 곳에 다다랐을 때였다.

슈슈슉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뭔가가 청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청운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휘익.

후두둑.

강맹한 기운이 날아오는 암기를 떨쳐냈다.

청운은 천천히 몸을 돌려서 암기가 날아온 숲으로 시선을 두었다.

연이어 숲에서 암기가 다시 날아들었다.

슈슈슈슈슉!

처음과 달리 비검을 비롯한 표창, 그리고 매화침과 같은 암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어스름 때문에 암기들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청운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허리춤의 검을 빼들고 내공을 일으켜서 사방으로 휘저었다.

따다다다당!

암기가 허공을 가득 메우고 청운을 덮쳤다. 그러나 단 한 개도 청운 곁에 다다르지 못했다.

청운은 두 눈을 빛내며 숲을 향해 말했다.

“나오지 않겠다면 내가 가지.”

검을 빙글 돌린 그가 역수로 검을 잡고 그대로 바닥을 찍었다.

쿠웅! 콰콰과쾅!

검강에 의한 충격파가 전면을 향해 쭉 뻗어갔다.

“크윽!”

“헉!”

땅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자들이 신음과 비명을 내지르고는 지상으로 솟구쳤다.

그들은 다시 땅을 박차고 청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타다다당!

청운은 검을 휘둘러서 상대의 공격을 무위로 만들고 반격을 시작했다.

빠지지직!

뇌전을 머금은 그의 검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휘어졌다. 번개의 불규칙성을 닮은 검기가 복면인들의 요혈을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대여섯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겨우 청운의 공격을 피한 자들은 거리를 삼 장 정도로 벌린 뒤 누군가를 기다리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제법이구나!”

냉랭한 목소리와 함께 복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마에 금색실로 일곱 칠(七) 자가 선명하게 수놓인 자였다.

칠야는 숲을 빠져나와 서너 걸음 앞으로 나선 후 차갑게 말했다.

“우리가 누군지 모르지는 않을 터, 오늘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말이 많군. 어차피 뭘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은데. 그만 시작하지.”

“빨리 죽고 싶다면.”

냉랭히 말한 칠야가 손을 들어서 앞을 가리켰다.

기다렸다는 듯 숲속에서 검은 복면인들이 솟구쳤다.

그들은 화살처럼 쏘아져 가며 곧장 청운을 향해서 살수를 뿌렸다.

슈슈슈슉!

허공을 가득 메운 검기의 그물이 청운을 덮쳤다.

숫자는 십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세에는 상대를 죽이겠다는 살기만 가득했다.

[조심해라. 저런 놈들이 진짜 무서운 놈들이다.]

혈황의 말이 아니어도 청운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살수는 자신보다 한두 단계 위의 고수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자들이다.

목표물의 목을 따기 위해서라면 목숨 따위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자들.

더구나 그 살수가 절정 수준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열 번 조심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청운은 검을 들어서 위를 향해 일직선으로 그었다.

쩌억!

검기의 그물이 청운의 검강에 허망하리만치 쉽게 찢겼다.

청운은 연이어 사선으로 검을 휘두르며 바닥을 가볍게 찼다.

팟!

튀어 오른 모래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살과 뼈가 갈라지고 피가 튀었다.

서걱, 서걱.

속절없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살수들을 보며 칠야의 두 눈이 흔들렸다.

‘역시, 저들로는 안 되겠군.’

처음부터 저들로 이청운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공력만 소모시킬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도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칠야는 이를 악물며 명령을 내렸다.

“물러서라!”

삐이이익!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울리자 청운을 공격했던 자들이 튕기듯 뒤로 물러났다.

청운은 그들의 뒤를 쫓지 않고 칠야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끝인가?”

“그럴 수는 없지.”

순간, 칠야의 몸이 흐릿해졌다.

동시에 무언가 반짝이는 물체가 청운을 덮쳤다.

청운은 좌우로 몸을 흔들며 쏟아지는 공격을 피했다.

이번에는 가공할 기세가 좌우에서 날아들었다.

등골을 찌르르 울리는 강한 예기가 느껴졌다.

“좋군!”

일갈을 터트린 청운이 몸을 빙글 돌리며 검을 횡으로 쓸어냈다.

“하앗!”

차라라라락!

강한 기합과 함께 검이 빙글 회전하며 잔상을 만들었다. 허공에 수많은 검영이 만들어지며 밀려드는 기세에 맞섰다.

쩌저저정!

연이은 격돌음과 함께 칠야가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섰다.

그는 청운의 무공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 공격을 해본 것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혼자서는 상대하기가 힘든 놈이었다.

새파란 놈이 이리도 강하다니.

수하들이 당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놈은 오늘 죽음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청운은 물러서는 그를 보며 조소를 지었다.

“벌써 물러서는 거냐?”

“너를 상대할 분은 따로 있다.”

청운은 그 말에 칠야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지면서 어둑해진 나무 그늘 밑에 천년 바위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자가 보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놈의 기세가 느껴졌다.

만일 그가 복면인과 함께 싸움에 참여했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운은 미간을 좁히고 그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커다란 바위를 연상시키는 자였다.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될 법한 우람한 덩치를 가진 거인.

청운과 광존의 시선이 어둠을 뚫고 허공에서 얽혔다.

그때 혈황의 목소리가 청운의 귀로 파고들었다.

[조심해라. 보통 놈이 아니다. 그리고 저놈 외에도 제법 강한 놈들이 몇 더 있다.]

청운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온몸을 휘감는 청명한 기운이 들끓었던 열기를 식혔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예의 덩치 큰 사내가 움직였다.

그가 한 발 앞으로 쓱 내딛자, 그의 움직임에 맞춰서 대기가 요동치는 듯했다.

청운의 미간에 주름이 그어졌다.

상대에게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이상한 광기가 느껴졌다.

주변을 잠식하는 알 수 없는 기세가 먼 곳에 있는 그의 가슴까지 압박했다.

‘강자다.’

상대가 가만히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움직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싸우게 된다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였다.

몰려드는 자들과 놈이 협공을 펼친다면 곤란해질 수도 있는 상황.

청운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어둠이 짙어지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최대한 빨리 결정짓는 게 좋겠어.’

파밧!

생각과 동시에 청운의 몸이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

내공을 한껏 끌어올린 그는 사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르릉!

뇌음과 함께 강맹한 검세가 허공을 갈랐다.

광존은 사선으로 베어지는 청운의 공격을 옆으로 슬쩍 피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후웅! 펑!

거대한 권풍이 청운의 검세를 파고들었다.

청운은 빙글 검을 돌리며 권풍을 잘라냈다.

덩치에 맞지 않은 광존의 민첩함에 청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빠르다.’

파밧.

땅을 박찬 청운은 광존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검을 올려쳤다.

단지 올려쳤을 뿐인데도 대여섯 줄기의 검기가 머리를 치켜들고 광존에게 달려들었다.

피할 수 없는 청운의 공격에 광존 역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양팔을 가슴으로 모은 그는 두 주먹을 강하게 내질렀다.

그의 커다란 두 주먹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피어나며 청운의 검세를 두들겼다.

후앙! 콰광!

주르륵.

청운의 강력한 일격이 광존의 권강에 밀렸다. 그렇다고 낭패를 당한 정도는 아니었다.

광존은 덩치만큼 내공 역시 강했다.

청운은 빠르게 환우구검의 기수식을 잡았다.

광존 역시 자세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듣던 것보다 더 뛰어나군.”

차가운 한마디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광존은 분노를 터트릴 수 없었다. 어느새 청운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광존은 두 눈을 빛내며 우람한 팔을 사방으로 휘저었다. 그의 팔에서 휘몰아치는 강력한 기운이 주변 삼 장을 휘감았다.

그를 중심으로 둥근 권막이 형성되었다. 동시에 둥근 막을 강력한 검강이 두들겼다.

콰콰콰쾅!

출렁거리는 권막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광존은 이를 악물며 쭉 뻗은 양팔에 힘을 주었다.

권막을 두들기던 검강이 잦아들었을 때 어디선가 강력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크아아앙!

사내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린 하늘을 보았다.

한 마리 거대한 청룡이 어둑한 하늘에서 곧장 자신을 향해서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말로만 들었던 놈의 무공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청룡이 권막을 삼켰다.

“요, 용?”

콰앙!

청마룡이 광존을 삼켰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뿌연 먼지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청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으아아앗!”

슈슈슈슉.

환우구검을 한 단계 발전시킨 청운의 새로운 무공이 선을 보였다.

환우무상검 중 무상혈(無相血).

날카로운 예기를 머금은 검강이 먼지를 가르며 지나갔다.

퍼버벅.

무언가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잘리지 않았다.’

청운은 빠르게 손을 휘저어서 시야를 가리는 뿌연 흙먼지를 날려버렸다.

덩치 큰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몸은 청운의 공격으로 인해서 넝마처럼 찢겨 있었다. 그나마 쓰러지지 않고 용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사내의 앞을 막아선 존재가 있었다.

나풀거리는 나삼을 입은 여인이었다.

머리에 쓴 모자에서 흘러내린 면사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청운이 잠시 여인의 모습을 살필 때 혈황의 날카로운 호통 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려라! 위!]

청운은 뒤로 죽 미끄러지며 검을 정면으로 휘둘렀다.

팡!

무언가 시커먼 형체가 떨어져 내리며 청운이 있던 자리를 베었다. 연이어 물러서는 청운을 향해서 짓쳐들었다.

차자장!

청운은 요혈을 노리며 파고드는 상대의 공격을 쳐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공격 때문에 계속 밀려났지만, 다시 승기를 가져오는 건 간단했다.

쾅!

콰과과광!

뒤로 물러서던 청운이 바닥을 강하게 찍으며 훌쩍 물러섰다.

청운을 공격하던 자를 향해서 바닥이 터져 나가며 덮쳤다.

“크윽.”

칠야는 다급한 신음성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청운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베였는지 상의 여기저기가 베어져 있었다.

칠야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청운의 마지막 진각 공격을 맞고 야행복이 찢겨 있었다.

청운이 다시 공격을 시도하려고 할 때 허공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청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선녀라도 되는지 너풀거리는 얇은 옷을 입은 세 여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청운은 얼굴을 붉혔다.

나타난 여인들이 속이 훤히 보이는 나삼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짙어지고 있는데도 보일 건 다 보였다.

“호호호호.”

나타난 여인들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청운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사라락.

옷자락 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인들이 청운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무언가 달콤한 향기가 청운의 콧속을 파고들었다.

띵!

청운은 머리를 울리는 느낌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여인들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광경을 만들고 있었다. 어둠 때문인지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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