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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25화 (125/257)

# 125

125화

콰앙!

온몸에 전해지는 고통과 함께 육양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허공을 걷듯 유유히 바닥에 내려선 청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무림맹은 다짜고짜 살수부터 쓰는 곳인가?”

명백한 힐난(詰難)이었다.

청운의 비난에 누구 하나 반박하지 못했다.

체면도 구겨졌고 명분마저 청운에게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시 허유가 나섰다.

“공자,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는데,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겠는가?”

“말씀하시지요.”

청운은 차갑게 대답했지만, 더는 무림맹과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허유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청운에게 말했다.

“공자의 정체는 모르나 저 안에 누워 있는 자의 정체는 알고 있네. 무슨 말인지 알 거라 생각하네. 내 듣자 하니 공자는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던데.”

“…….”

“우리의 대응이 너무 야박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공자도 정체를 밝혔어야 했네. 그랬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네.”

맞는 말이었다.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자신의 별호와 성명을 밝히는 게 예의다.

청운은 그런 허유에게 말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꼭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 안에 문광이 없다면 공자의 말이 맞네. 그런데도 공자가 정체를 밝히지 않으니 우리 무림맹에서는 공자를 사파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허유는 육양수의 실수를 한순간에 청운에게 덮어씌웠다.

청운은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더 말한다면 분명히 대의명분 싸움이 될 것이고 감정의 골이 깊어질 것이다. 이는 청운이 원치 않는 일이었다.

앞으로 무림맹과 함께 신비세력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허유는 청운이 수긍하는 것 같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일이 이렇게 된 것인지 말해줄 수 있나? 아! 내 정신이 없군. 나는 이름뿐이지만 현재 무림맹에서 장로의 신분으로 있는 허유라고 하네.”

“좋습니다. 저 역시 잘한 일은 아니니 제가 겪은 일을 말씀드리지요.”

청운은 자신이 낙양에 들어와서 겪은 일을 천천히 설명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허유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청운이 문광을 만난 상황과 그와 얽힌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해서, 문광에게 어머니를 뵐 수 있게 해주려는 의도였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아보시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당사자들이 인정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흔들림 없는 청운의 눈빛을 보고 허유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이라면 들 낯이 없었다.

“허허, 내 심히 부끄럽군.”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무림맹 무사들도 청운의 말을 듣고 검을 내렸다.

“인사를 받자고 한 일은 아닙니다. 허유 장로님께서 문광이 어머님을 뵐 수 있게 해주실 수 있는지요?”

“물론이네. 그 정도야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감사합니다. 장로님.”

삽시간에 넘어갔던 명분이 다시 청운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남은 문제가 있었다.

허유가 청운에게 물었다.

“그런데 공자는 누구신가?”

“아, 실례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러나 청운은 끝내 자신의 입으로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어? 이 공자님!”

“이청운 대인이 아니십니까.”

별채 안으로 젊은이들이 들어오다가 청운을 발견하고 아는 체를 했다.

그들 중에는 오룡오봉도 있었고 자룡궁에서 청운과 인사를 한 자들도 있었다.

덕분에 청운의 정체는 다른 사람이 밝히게 되었다.

허유는 후기지수들을 한 차례 힐끔 보고는 다시 청운을 보며 물었다.

“공자께서, 황실에서 오시기로 하신 오호평천대장군 겸 진무사이신 이청운 대인이셨습니까?”

“숨기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제가 이청운입니다.”

허유는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한편으로는 뒷일이 걱정되어서 입 안이 바짝 말랐다.

‘그럼…… 우리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 * *

청운이 무림맹에 도착해서 벌인 일이 금세 무림맹 전체에 퍼져 나갔다.

문광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그를 위해 무림맹과 맞섰다는 소문이었다.

삽시간에 청운은 몸소 인의를 실천한 인의대협이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풍운을 몰고 온 청운 때문에 무림맹이 들끓었다.

그러나 모두가 좋아한 건 아니다.

이 일에 관련된 사람이 무림맹 핵심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꽝!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한 노인이 탁자를 치며 버럭 소리쳤다.

그는 긴 수염을 늘어트린 선풍도골의 풍채를 지닌 노인이었다.

그 노인 외에도 넓은 실내에 십여 명이 둘러 앉아 있었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한 인물들이었다.

예의 노인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다시 소리쳤다.

“이대로 그냥 있을 수는 없습니다. 놈에게 엄중히 경고하거나, 아니면 따끔한 맛을 보여줘서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알려줘야지 않겠습니까?”

“고정하시게.”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노인에게 중앙에 앉아 있던 노인이 말했다.

그러나 중앙 노인의 말 한마디로는 부족했는지 예의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장로님, 그 천둥벌거숭이가 사사건건 무림맹 행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육 장로가 놈에게 창피를 당해서 내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니…….”

“그만하라지 않는가.”

높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예의 노인이 입을 닫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소, 송구합니다.”

끝내 처음 탁자를 친 노인은 어깨를 움츠리며 자리에 앉았다.

다시 실내가 조용해졌다.

이때 중앙 노인의 왼편에 앉아 있던 도사복을 입은 노인이 살며시 입을 열었다.

“이 장로님, 그냥 넘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끄응. 그렇겠지.”

중앙의 노인은 앓는 소리를 하며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왼쪽의 노인이 다시 말했다.

“그놈들이 이번 기회를 그냥 넘기지는 않을 듯싶습니다.”

“하긴, 좋은 기회지 않나. 우리를 물어뜯기에.”

이 장로의 한쪽 눈이 실룩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육 장로를 버릴 수도 없고.’

육양수는 이들 모임에서 중요한 위치였다.

무림맹 열두 장로 중에서 이쪽 모임에 속한 인물이 일곱이고 상대가 다섯 명이다.

처음 화를 낸 노인은 그 열두 장로에 들지 못하는 일반 장로 신분이기에 명예만 있을 뿐이다.

왼편 노인이 다시 이 장로에게 말했다.

“육 장로 자리를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이것이었다.

장로회의는 철저히 투표를 통해서 결정된다. 지금까지는 자신들이 한 명 많아서 여러 가지 안건을 힘들이지 않고 처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장로 자리를 하나 내주게 된다면 반반이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결정이 맹주의 선택으로 넘어가게 된다.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장로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진무사와 자리를 마련하게. 그리고 저쪽과도 만나자고 하고.”

“예.”

손 놓고 있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 판이었다.

무림맹이 벌이는 수많은 이권 중 대부분을 차지했었는데 잘못했다가는 절반을 내줘야 한다.

육양수가 무엇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뛰었는지 모르지만 어떻게든 무마시켜야 했다.

* * *

작은 정원이 딸린 전각 안에 이남 일녀가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명은 검은색 야행복으로 전신을 가린 칠야였고, 나머지 둘은 광존과 요희였다.

이들 셋은 신비세력 노룡회의 수뇌부로 회주의 명령을 받고 청운을 처리하기 위해 나섰다.

덩치가 큰 광존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년이, 여기는 웬일이지?”

“흐응, 낙양에 볼일이 있어서 온 김에 들렀지.”

요희가 예고 없이 나타나서 칠야와 광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몸을 살짝 꼬며 말하는 요희 때문에 특히 광존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진 상태였다.

칠야는 둘 사이가 워낙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서둘러 나섰다.

“요희 님, 이청운을 제거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도와주실 게 아니면 돌아가시지요.”

“난 신경 쓰지 말아요. 유람 온 것이니까요.”

요희가 되지도 않는 말을 했다.

그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한 광존이 폭발하듯이 말했다.

“냄새나는 년이 어디까지 와서 암내를 풍기겠다는 거야?”

“하응,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남자?”

“머? 미친년. 좋게 이야기할 때 꺼져라. 처맞기 전에!”

광존이 아무리 화를 내고 축객령을 내려도 요희는 요지부동이었다.

“에잉! 미친년!”

결국 화를 참지 못한 광존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횡 하니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힐끔 본 요희는 상체를 살짝 숙이며 그윽한 눈길로 칠야를 바라보았다. 건네는 말투 역시 처음과 달라졌다.

“그런데 자기는 소식 들었어?”

“예?”

“이청운이 방금 사고 쳐서 무림맹이 난리야.”

“무슨 소식을 말씀하시는지?”

흑야의 정보망은 중원 전역에 깔려 있다. 특히 무림맹에는 그 정보망이 은밀하고 촘촘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모르는 사건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요희가 갑자기 쳐들어 와서는 이상한 말을 하니 이해가 안 되었다.

요희는 몸을 살짝 틀며 칠야를 유혹하듯이 말을 이었다.

“이청운이 조금 전에 무림맹 외단을 박살 냈어. 육 장로 알지? 그 쌍도 무식하게 쓰는 인간 말이야.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아?”

“끄응, 장난은 그만 치시지요.”

“장난이라니? 애들 시켜서 알아봐. 지금 난리야.”

칠야는 빠르게 어디론가 전음을 보내고 찻잔을 들었다.

그가 찻잔을 비웠을 때쯤 전음이 들려왔다.

이내 요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눈빛이 달라졌다.

“흐음…….”

순간 요희가 눈을 반개한 채 속삭이듯 말했다.

“동생, 누나가 이번에 도와줄까?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 * *

청운이 드디어 무림맹에 입성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마치 신기한 동물이라도 구경하는 듯했다.

청운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총이 따가웠지만 태연하게 영웅문을 지나서 영웅관으로 향했다.

영웅관은 무림맹의 대소사가 결정되는 가장 큰 전각이다.

황궁의 건청궁이나 태화전과 비교해도 그리 작지 않은 규모였다.

영웅관에 도착한 청운은 그 앞에 있는 뜰과 영웅관의 규모를 보며 무림맹의 위세를 느낄 수 있었다.

‘황궁에 비해서 작지 않다니, 대단하군.’

세상 속의 또 다른 세상이라는 무림의 중심이 무림맹이다. 일개 단체 건물이 너무 크고 웅장했지만, 한편으로 이해도 되었다.

“진무사, 어서 오십시오.”

영웅관 기단 위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다름 아닌 제갈신기였다.

청운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천뇌 님께서도 계셨군요.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하하하, 내 진무사 걱정 덕에 무탈했네. 그래, 오는 길에 한바탕했다고?”

“작은 사고가 있었는데, 오해로 인한 일이었습니다.”

청운은 무림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말을 돌렸다.

다른 이들도 듣고 있는 자리였기에 무림맹의 위신을 세워줄 필요가 있었다.

“고맙네. 그래도 혹시 미흡한 일이 있을지 몰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놓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배려에 감사합니다.”

청운은 여러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무인들은 청운의 앳된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약관을 조금 지났다 하던데, 생각보다 더 어리군.”

“황궁제일고수라는 황궁신룡이 저렇게 어릴 줄이야.”

“허허, 영락없는 백면서생 아닌가? 저 나이에 육 장로님을 이겼다고?”

“조금 전에 전해진 소문도 거짓 아니야?”

여러 무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 청운이 너무 앳되게 생긴 것을 지적했다. 그들은 청운이 삼두육비의 괴물은 아닐지라도 우람한 덩치를 가진 장사로 생각한 듯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우려 섞인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어쩜 저리 잘생겼을까?”

“세상에 두 눈이 보석같이 반짝이잖아.”

“어머, 저 피부 좀 봐. 백옥이 따로 없네.”

청운의 뛰어난 외모에 여자 무인들은 난리가 났다. 훤칠하고 잘생긴 모습은 그들의 방심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기단 위의 무림맹 간부들이 서둘러서 청운을 데리고 영웅관으로 들어갔다.

사라지는 청운의 모습을 서로 다른 이유로 아쉬워했다.

영웅관 안은 밖에서 보던 대로 웅장했다.

수백 명까지는 아니어도 백여 명이 들어섰는데도 좁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넓었다.

전각 안쪽에는 무림맹의 핵심 인물들이 서 있었다.

‘응? 누구지?’

중앙으로 걷던 청운의 눈에 한 노인이 들어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의 노인이었다.

살짝 구부린 상체가 영락없는 시골 촌로였다.

청운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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