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24화 (124/257)

# 124

124화

별채로 들어간 청운이 혈황에게 물었다.

-혈황님, 제가 전에 오봉산 계곡에서 마주한 자가 마교도인가요?

[확실한 건 아닌데, 그리 의심이 되더구나.]

혈황도 그의 정체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청운은 혈각룡이 자라는 동굴 입구에서 겨룬 사내를 떠올리며 다시 물었다.

-그럼, 그가 사용한 무공이 천마신공인가요?

[글쎄다. 비슷한 것도 같은데……. 조금 다른 것도 같고.]

-그렇군요.

청운은 더 묻지 않고 잠들어 있는 문광 곁에 가서 앉았다.

혈황은 청운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무서운 놈.’

천마와 겨루면서 그가 펼치는 천마신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청운이 펼친 것이 천마신공일 리는 없지만, 최소한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진각에 내공을 실어서 대지를 통해 적에게 타격을 주는 수법은 화경에 이른 자라면 누구나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절정고수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을 뿜어낼 수 있는 수법은 결코 많지 않다.

천하에서 그러한 수법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무공이 바로 천마신공이다.

그런데 이청운이 펼친 수법이 바로 천마신공으로 펼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위력과 성질은 아직 천마신공에 턱없이 부족했지만.

‘한 번 본 것을 따라 하다니.’

결국 청운이 한 번 손속을 겨룬 자의 무공을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다는 말이나 같았다.

‘이게 두 번째인가?’

황궁에서 백철군이 펼쳤던 무공을 보고 수련하면서 환우구검을 한 단계 발전시켰었지 않은가 말이다.

백운룡과 천마가 보았다면 당장 제자로 들이겠다며 자신의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혈황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흐, 천마, 이놈. 내가 이겼다.’

무엇을 이겼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혈황은 청운의 뒷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무림맹에 비상이 걸렸다.

염천에 의해서 소식이 전해지자 무림맹은 급히 무사대를 파견했다.

그런데 그들 외에도 문제가 발생한 객잔 별채를 향해서 달려가는 자들이 있었다.

청운이 발한 엄청난 기운을 느낀 무림맹 인사들이었다.

객잔 주변은 이중 삼중으로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외단 무사는 물론이고 내단 고수들마저 달려온 상태였다.

대라신선이라 할지라도 뚫고 지나가지 못할 만큼 엄중한 포위망이었다.

무림맹 장로 중 한 사람인 비룡운검(飛龍雲劍) 허유(許愈)도 도착했다. 그는 청운과 겨룬 무사들에게 전후 사정을 들은 뒤에 물었다.

“그럼 싸움은 왜 일어난 것이냐?”

“그자가 사파인을 숨긴 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사파인이라니?”

허유의 안색이 굳었다.

이곳이 무림맹 본단이 자리한 곳이 아니라면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곳은 무림맹 앞마당이다. 사파인 때문에 분란이 발생했다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사내가 연이어 자신이 아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예, 그자가 보호하고 있는 자의 이름은 문광이며 사령회 소속으로 밝혀졌습니다.”

“사령회라고? 사령회 무인이 이곳에는 어쩐 일이냐? 그자를 보호한다는 공자는 또 누구냐?”

“그것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허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작 중요한 정보는 하나도 없군. 있다면 문광이라는 자가 사령회 소속이라는 것인데…….’

무언가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히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무림맹 장로 자리는 나이만 많다고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각 세력에서 중요한 인물을 추천하기 때문에 하나같이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허유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물었다.

“영웅관에서는 연락이 없느냐?”

“예, 전갈을 받지 못했습니다.”

“에잉, 엉덩이 무거운 양반들 같으니라고.”

허유는 무엇이 못마땅한지 무림맹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영웅관은 무림맹 중앙에 있는 대전이다. 무림맹의 상징과 같은 곳으로 정파의 심장이다.

영웅관에도 보고가 들어갔을 텐데 이번 일을 크게 생각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허유는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청운이 무공을 사용할 때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그 강력한 힘을 느끼고 달려왔다.

만일 그들 역시 자신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허유는 객잔을 보며 눈을 빛냈다.

‘어디 얼굴이라도 볼까?’

객잔에 있던 손님들과 종업원들은 모두 밖으로 대피했다.

객잔 뒤편에 있는 별채로 들어선 허유와 일행은 염천에게 인사를 받고 밖에서와 같은 소리를 들었다.

허유는 별반 다르지 않은 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 아주 난장판이 되었군.’

별채를 지탱하는 기단부터 터져 나간 정원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천마신공을 닮았다더니 바닥이 박살 났군.’

하지만 천마신공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공은 독특한 흔적을 남긴다. 특히 천마신공이 펼쳐지면 바닥이 터져 나갈 때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구친다.

그런데 눈앞의 흔적은 은은한 마기도 없었고 튀어나온 흔적도 날카롭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가?’

다행히 사마외도는 아닌 것 같았다.

허유가 경계를 하던 무인들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아이들을 뒤로 물리거라.”

“예!”

경계하던 무인들이 밖으로 나가자, 허유와 함께 들어온 이들이 그들을 대신했다.

허유는 열린 별채 창문 사이로 보이는 청운을 보았다.

‘생각보다 더 어린데?’

학사와 같은 차림이긴 하나 평범한 학사는 아닌 듯했다.

‘허허, 남중일색이로군.’

흔히 볼 수 있는 미장부가 아니었다. 남중일색(男中一色)이라 할 만큼 얼굴이 잘생겼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사파인을 보호하는 거지?’

악인은커녕 오히려 얼굴에서 정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려는데 뒤에서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놈이냐!”

‘젠장 육 장로가 왔군.’

허유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몸을 돌려서 입구를 보았다. 그의 생각대로 덩치 큰 육양수 장로가 쌍도를 메고 들어서는 게 보였다.

허유은 조진양에게 서둘러 인사했다.

“육 장로님, 어서 오십시오.”

“허 장로가 아니시오? 먼저 와 있었구려. 그래 내 제자를 건드렸다는 사파 놈은 잡으셨소?”

“저도 이제 막 왔습니다.”

허유는 육양수가 한달음에 달려온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제자인 조진양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군.’

허유는 탐탁지 않았지만 내색하지는 않고 별채의 창문을 가리켰다.

허유의 손을 따라서 육양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청운의 얼굴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육양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코 평수가 넓어지며 더운 김이 뿜어지는 것 같았다.

“저 빌어먹을 놈이란 말이오?”

육양수의 두 눈에서 시퍼런 한광이 뿜어졌다.

허유는 서둘러 육양수를 막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찌 막으시는 게요?”

“무작정 죄를 묻기에는 상황이 이상해서 그럽니다.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 같으니 제가 먼저…….”

“지금 무슨 말씀인 게요?”

육양수는 와락 일그러진 얼굴을 허유에게 들이밀었다.

허유는 더운 콧김이 얼굴을 간질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나이만 비슷했어도.’

육양수는 자신은 같은 장로지만 나이가 열 살이나 많았다.

그렇다고 그냥 있기에는 뭐해서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뒤쪽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리 소란이오?”

청운이었다.

어느새 청운이 밖으로 나와서 부서진 기단 위에 서 있었다.

모두의 이목이 청운에게 집중되었고 허유와 말을 섞던 육양수는 청운을 쏘아보며 말했다.

“네놈이냐? 네놈이 내 제자를 암습한 것이냐?”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모습을 보니 누구를 말하는지는 알겠습니다. 그래도 암습이라니요. 정당한 대결이었습니다.”

“저, 정당한 대결?”

“그렇습니다. 한두 명이 본 것이 아니니 직접 물어보시지요.”

수십이 지켜보았다. 조진양이 미쳐 날뛰다가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육양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순순히 인정할 수 없었다.

“이노옴! 네까짓 백면서생이 내 제자를 이겼다고? 암습했거나 사술을 썼겠지!”

“그리 생각한다니 유감입니다.”

“뭐, 뭐라? 유감?”

육 장로의 두 눈에서 한광이 다시 뿜어졌다. 동시에 몸에서 뿜어진 기세가 청운을 덮쳤다.

웬만한 고수라 할지라도 온전히 받아내지 못할 거대한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청운은 태연하게 기세를 받아넘겼다.

이를 몰라볼 허유가 아니었다.

‘허, 예상은 했지만, 더 대단하지 않은가.’

약관이나 되었을 청운이 무림맹 장로 기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저 나이 때 육양수의 기세를 가볍게 넘길 후기지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육양수가 곧장 청운에게 쏟아져 들어갔다.

“육 장로님!”

너무도 놀란 허유가 육양수를 불렀지만 늦고 말았다. 그가 이미 독문병기인 설혈쌍도(雪血雙刀)를 뽑아 들고 허공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붉은 도광이 허공을 가득 메우더니 그대로 청운을 덮쳤다.

콰콰콰쾅!

뿌연 먼지가 청운이 있던 자리를 가득 메웠다.

허유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청운이 반격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반격도 하지 못하고 당했다.

‘내 잘못이군. 백면서생이었어.’

대단한 고수로 착각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만일 청운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학사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육양수를 막았을 것이다.

허유가 자책하고 있는데 뿌연 먼지 사이에서 청아한 음성이 들렸다.

“무림맹은 예의가 없는 곳이군.”

모두의 시선이 서서히 옅어지는 뿌연 먼지로 모였다.

서서히 드러나는 형체는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 있는 청운이었다.

청운은 차가운 목소리로 자신을 공격한 육양수에게 말했다.

“살수를 썼단 말이지요?”

“엄살 부리지 마라! 네놈이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다행이군요. 그럼 좀 더 힘을 쓰시지 그러시오.”

명백한 조롱이었다. 그러나 육양수는 처음과 달리 흥분하지 않았다.

‘이놈 뭐지?’

청운의 경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무려 육성 공력을 담아서 쏘아낸 일격이었다.

그런데 낭패한 기색도 없이 처음 그 모습 그대로였고, 지금도 여유롭게 자신에게 다시 공격해보라며 도발하고 있었다.

본능이 위험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자신을 지켜보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으득.

육양수는 도병을 움켜쥐었다.

깊게 호흡을 가다듬은 그가 설혈쌍도를 상하로 겨누었다.

파밧!

가볍게 땅을 차며 튀어나간 그는 도를 휘둘렀다.

허공 가득 희고 붉은 도가 선명하게 잔상을 만들더니, 곧장 청운을 향해서 빛처럼 쏟아졌다.

청운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시리도록 맑은 검이 그의 검집에서 튀어나오더니 둥근 원을 그렸다.

그는 원을 그린 검을 쏟아지는 도를 향해서 치켜들었다.

채앵!

차자자자장!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 불꽃을 뚫고 시커먼 인형이 튀어나왔다.

“으아아아!”

육양수가 쌍도를 십자로 베며 청운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팟!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히 청운의 몸을 베었다고 생각했다.

‘도에 걸리는 게 없다.’

육양수는 빠르게 몸을 돌리며 방금 베고 지나친 청운을 보았다.

청운의 몸이 쩍 갈라지는 게 보였다. 그런데 청운의 몸이 허공에서 연기처럼 흩어지는 것 아닌가.

‘허상? 어디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자신이 느끼지도 못할 바른 움직임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이때 누군가 외쳤다.

“위다!”

모두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육양수도 그 목소리를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한 마리 청룡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헉! 저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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