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123화
청운이 가부좌를 튼 채 운공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혈황이 청운을 힐끔 보며 말했다.
[몰려왔구나.]
-예상했던 일입니다.
청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별채의 입구를 통해서 무장한 자들이 몰려들어왔다. 개중에는 조금 전 골목에서 마주한 자도 있었다.
청운은 그들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실소를 지었다.
‘무림맹 무인들을 데려왔군.’
문광을 구타하던 자와 함께 온 것을 보니 경비대 같았다.
청운은 뒷짐을 진 채 회랑에 서서, 몰려온 사내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당당함에 몰려온 자들이 멈칫거렸다.
학창의를 입은 학사에게서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무언가가 흐르는 것 같았다.
선두의 중년 사내가 한 발 나서더니 청운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무림맹 무룡당 삼조장인 염천이라 하오. 공자의 존성대명을 알 수 있겠는지요?”
무룡당(武龍堂)은 무림맹 외단 소속 무력단체 중 하나다. 보통은 외곽 순찰을 하며 특수한 경우 이렇게 출동하기도 한다.
청운은 마주 포권을 취했다.
“염 조장이셨구려. 반갑소. 남에게 자랑할 만한 이름은 아니오. 그런데 위명이 쟁쟁한 무룡당 무인들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이오?”
저들이 왜 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도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체를 밝히면 쉽게 해결될 일일 수도 있지만, 밝히지 않은 것 또한 그들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사파인을 공자께서 붙잡았다는 신고가 있었소이다.”
“…….”
“그자를 저희가 데려갔으면 하오만.”
염천은 최대한 정중하게 청운에게 말했다. 그의 태도야 흠잡을 데 없었지만 함께 온 자들은 금방이라도 출수할 기세였다.
청운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에 사파인은 없소.”
“그게 무슨 말씀이오? 공자, 저 안에 사령회 소속 문광이라는 자가 있지 않소이까?”
“저 안에 누워 있는 사람이 문광은 맞지만, 사령회의 문광은 아니요.”
청운의 대답에 염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공자, 이미 여러 사람을 통해서 신고가 들어온 일이오. 어찌 거짓을 말하는 것이오?”
“거짓이라니? 염 조장이 볼 때, 내가 거짓말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시오?”
염천의 미간이 조금씩 깊어졌다.
‘무림맹 본단이 있는 이곳에서 이처럼 당당하다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인데.’
좀처럼 청운의 정체가 짐작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힘으로 밀고 들어가기에는 찜찜했다.
평범한 옷차림이지만 귀(貴)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시간을 끌 수 없었기에 최대한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공자,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소. 내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니 그만 길을 비켜주시면 안 되겠소?”
“내 분명히 말하지 않았소? 저 안에 있는 자는 그대들이 찾는 자가 아니라고.”
청운의 대답에 염천의 미간이 결국에는 확 일그러졌다.
‘하아, 있는 집 자식들은 어찌 이리 똑같은지.’
살짝 짜증이 일었다.
청운의 행동을 보니 명가의 후손이 맞는 것 같았다. 이놈들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리되면 피곤해지는 것은 자신들같이 배경 없는 무인이다. 그렇다고 어물쩍거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젠장, 곧 비룡단이 몰려올 텐데.’
비룡단(飛龍團)은 무림맹 외단을 책임지는 실질적인 정예무인들이다. 더군다나 조진양 단장이 직접 오면 깨져 나가는 건 자신이 될 것이다.
그들이 오기 전에 자기 선에서 끝내야 일이 커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끝내야 한다.’
사내는 일이 커지기 전에 자기 선에서 끝내기로 마음먹고 청운에게 말했다.
“공자께서 뜻을 굽히지 않으시겠다면 저희도 별수 없습니다.”
“힘으로 겁박하겠다는 거요?”
“겁박이라니요? 다만 공무를 집행할 뿐이외다.”
이미 염천의 눈빛은 차갑게 변한 뒤였다.
염천의 말이 끝나자 곁에서 지켜보던 자들이 넓게 포진하기 시작했다. 힘으로 뚫고 들어가겠다는 말이었다.
염천이 차갑게 말했다.
“이 모든 일은 공자가 자초한 일이니, 우리를 원망하지 마시오. 쳐라!”
“예!”
사방에서 청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나마 병장기를 뽑아 든 자들은 없었다. 적수공권으로 청운을 덮쳤다.
퍼버버벙!
기세등등하게 청운을 덮치던 사내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졌다.
청운은 처음 그 자세 그대로였다. 그러나 염천은 볼 수 있었다. 청운의 오른쪽 어깨가 살짝 흔들렸다는 것을.
‘지랄! 감당 못 할 고수네.’
설마 했건만 예상대로였다.
고수 한두 번 보는 것 아니다. 자신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고수들이 무림맹에는 넘쳐난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비교해서 청운의 실력이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직 멀쩡하게 서 있는 부하들도 있었다. 그들도 보는 눈은 있는지 주춤거릴 뿐 청운에게 덤비지 못했다.
어찌해야 할지 고민을 하는 사이 뒤쪽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빨리도 오는군.’
비룡단이 온 것 같았다.
뒤로 고개를 돌리자 안으로 들어서는 인물들이 보였다.
염천은 선두의 덩치가 좋은 조진양에게 포권하며 인사를 건넸다.
“조 단주님, 어서 오십시오.”
조진양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마를 찡그렸다.
‘뭐야? 무룡당이 당했어?’
크게 다친 자는 없어 보였지만, 쓰러진 자들을 부축하는 모습을 보니 이미 한바탕한 듯했다.
평소라면 멈추지 않고 공격했을 텐데 어물쩍거리고 있다는 것은 상대가 감당하지 못할 고수라는 뜻.
조진양은 염천에게 전음으로 물어보았다. 곧 돌아온 대답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정체도 못 알아냈다고?’
조진양은 고개를 홱 돌려서 청운을 노려보았다.
‘이놈 봐라? 네놈이 누군지 모르지만, 때와 장소를 잘못 택한 줄 알 거라.’
조진양이 한쪽 눈을 실룩이더니 한쪽 손을 들었다.
신호인 듯 별채의 담장 위로 백의에 멋들어진 용이 수놓인 무복을 입은 비룡단이 나타났다.
조진양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한쪽으로 머리를 살짝 숙인 그가 청운에게 말했다.
“감히 무림맹 본단에 와서 분란을 일으키다니, 누군지 모르지만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말이 지나치군.”
“흥, 정체를 밝히지 않는 걸로 봐서 사파인인 문광 놈과 한패가 분명하구나! 쳐라!”
담장 위에 있던 비룡단원이 일제히 발검하며 청운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무림맹의 정예인 비룡단 무사들답게 기세가 사뭇 대단했다.
슈슈슈슉.
검기가 허공을 가득 메우며 청운을 덮쳤다.
동시에 청운이 발을 살짝 들어서 별채 기단을 강하게 밟았다.
콰앙!
쩌저저적!
퍼버버벙!
청운을 중심으로 땅이 터져 나가며 폭발하듯이 위로 솟구쳤다.
청운을 덮치던 검기가 와해되고, 솟구친 흙덩이가 공격하던 자들을 덮쳤다.
대경한 비룡단원들은 자신들을 덮치는 파편을 쳐내기에 급급했다.
터더더덩!
청운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쌍장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기운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사방으로 솟구쳤다.
빠지지지지직!
푸른 번개가 순식간에 비룡단원들을 덮쳤다.
“크아아악!”
“컥!”
비룡단원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그나마 실력이 뛰어난 자들 몇몇은 뇌전을 쳐냈지만, 그들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조진양은 입을 쩍 벌렸다.
“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건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등에 멘 쌍도를 뽑았다. 그러고는 내공을 끌어올리며 청운을 향해 쇄도했다.
동시에 충격을 덜 받은 비룡단원들도 청운을 덮쳤다.
청운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다시 발을 들어서 기단을 밟았다.
쿵!
쩌저저저적!
콰콰콰쾅!
처음보다 더한 위력의 폭발과 함께 땅이 터져 나갔다.
솟구친 흙덩이가 청운을 공격하던 자들을 덮쳤다.
조진양과 비룡단원들은 정신없이 흙덩이를 쳐냈다. 그러나 이어진 뇌전 공격까지는 막지 못했다.
“크윽! 젠장!”
조진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의 쌍도가 기세를 잃고 축 늘어졌다.
조진양은 이를 악물며 청운에게 외치듯이 말했다.
“네놈! 마교냐?”
난데없는 질문에 청운은 고개를 돌려서 혈황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입니까?
[크흠, 글쎄다.]
혈황이 무언가 말을 아끼는 것 같았지만, 청운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조진양을 보며 말했다.
“마교는 무슨? 나도 정파 사람이다.”
“정파? 천마신공을 사용하고도 정파라고?”
“무슨 말인가? 내가 언제 천마신공을 사용했다고?”
“흥! 방금 네놈이 펼친 무공이 천마신공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내 무공의 어디가 천마신공이란 말인가?”
“진각을 이용한 공격은 천마신공의 특징이다.”
“그래? 그럼 검을 쓰면 정파인가, 사파인가? 아! 그대처럼 쌍도를 쓰면 전부 정파인 건가?”
“뭐라?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것이냐?”
“훗, 이치가 그렇지 않은가? 진각을 이용한 공격을 했다고 천마신공이라니? 내 무공 중 어디에서 마기가 느껴지기라도 하는가?”
“…….”
순간 조진양은 말문이 막혔다.
청운의 말대로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뇌기에 의한 공격에서 파사의 힘이 느껴지는 듯했다.
‘젠장, 아니군. 어쩌지?’
조진양은 난처함에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그 모습을 본 청운이 조진양을 향해서 말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걸 보니 꼬투리 잡겠다는 수작인가?”
순간, 조진양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무엇이 분한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를 악다문 그는 땅을 박차고 청운을 향해서 쇄도했다.
쐐에엑!
카가강!
청운은 어느새 검을 뽑아 들고 조진양의 쌍도를 쳐냈다.
그러고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며 검을 들지 않은 왼손을 들어서 조진양의 가슴을 내쳤다.
펑!
“크윽!”
콰당!
조진양이 청운의 일장에 날아가서 바닥을 굴렀다.
무림맹 외단을 책임지는 단주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당하자, 지켜보던 자들이 경악했다.
청운의 실력은 자신들이 전부 덤빈다 할지라도 감당할 수 없는 고수였다.
그때 조진양이 벌떡 일어나며 눈을 치켜뜨고 전의를 불태웠다.
“이, 이놈……!”
그때 염천이 조진양을 말렸다.
-애들을 보냈으니 곧 내단에서 사람들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만 참으시지요.
으득.
출수하려던 조진양이 이를 깨물며 멈췄다.
그들의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청운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어디 안 도망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그만 물러가시오. 환자가 있어서 더 소란을 피우면 안 되니까.”
몸을 돌린 그는 휑하니 별채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림맹 안마당에서 마교도로 의심되는 자가 당당하게 축객령까지 내린 터였다.
조진양의 얼굴은 붉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달아올랐다.
“이, 이 새끼가 정말……!”
“단주님, 참으셔야 합니다.”
염천이 서둘러 조진양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성정상 별채를 박살 낼 것이 분명했다.
“비켜라! 저놈이 죽든 내가 죽든, 결판을 내고 말겠다! 으아아아!”
조진양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청운이 들어간 별채로 몸을 날렸다.
크아아앙!
동시에 별채의 열려진 창문에서 거대한 청룡이 튀어나와 조진양을 덮쳤다.
콰앙!
콰다다당!
조진양의 몸이 끈 떨어진 연이라도 되는지 허공을 날아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염천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서 떨어지는 조진양을 받아 들었다.
‘이런, 기절했군.’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정신을 잃지 않았다면 다시 별채를 향해서 달려들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간담이 서늘했다.
‘허, 역시 덤비지 않길 잘했어.’
염천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죽은 자는 없군.’
다친 자들은 많았지만, 팔다리가 잘리거나 죽은 자는 없었다.
아마도 저 안의 학사 복장을 한 자가 손에 사정을 둔 듯했다.
한 차례 별채를 본 그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상자를 즉시 옮기고, 남은 자들은 주위를 경계하라.”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