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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19화 (119/257)

# 119

119화

동중경은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키고 청운을 쏘아보았다.

“진무사, 금군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성싶소? 뒷감당할 자신이 있소이까?”

그는 그 상황에서도 겁박을 주저하지 않았다.

청운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쯧쯧, 내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진무사지만, 오호평천대장군 신분으로 온 것이라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지휘사를 이렇게 만들고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소?”

“그건 그대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 알량한 권력을 믿고 설친 것에 대해서 후회할 날이 올 것이오.”

동중경은 청운을 쏘아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하지만 청운은 그의 말에 눈썹 한 올 끄떡하지 않았다.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알고 있다. 무엇인지 아는가?”

“…….”

“나는 나중에 후회하겠지만, 그대는 지금 당장 후회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 이자를 당장 처넣어라!”

청운은 호통에 동중경과 반항하던 자들이 감옥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가택연금을 하려 했지만, 도주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명령을 바꾸었다.

“모두 가두고 철저히 감시하라! 면회는 물론이고 외부와 어떤 접촉도 허용하지 마라!”

“존명!”

청운은 신비세력과 연관된 자들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오태산으로 달려갔다.

간밤에 금의위를 파견해서 오태산 인근에 있다는 또 다른 오가장을 감시하게 했다.

태원 소식을 그곳에 있는 놈들이 알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추국을 마무리 짓지 않고 급하게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놈들이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한다면 낭패였다.

* * *

오태산 초입에 들어선 청운은 품속에서 작은 피리를 꺼내 길게 두 번 불었다.

삐익~ 삐익!

그 소리에 화답하듯 저 멀리 능선 위에서 피리 소리가 들렸다.

삐익!

청운이 그곳으로 달려가자, 금의위 위사 하나가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대인.”

“고생이 많네. 어느 쪽인가?”

“예, 저쪽 능선을 다섯 개 넘으면 하얀 절벽이 나옵니다. 그 절벽 우측으로 돌아가 들어가서 다시 두 개의 능선을 넘으면 되옵니다. 그런데 저… 지금 오가장에 불이 났습니다.”

“뭐라고?”

불길한 느낌이 든 청운은 그가 알려준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가고 있는 방향에서 상당히 많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제길, 늦었나?’

금의위 위사가 알려준 곳에는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금의위 위사의 말대로 오가장에 불이 난 듯했다. 멀리서 봐도 제법 큰 장원이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청운은 곧장 몸을 날려서 마을로 들어갔다.

금의위가 마을 사람들을 추궁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놈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정녕 모른단 말이냐?”

“소인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나리, 제발 살려주십시오.”

금의위 곁으로 내려선 청운이 무거운 어조로 물었다.

“멈추게, 석 천호.”

고개를 돌린 석덕조가 청운을 향해 예를 올린 후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오셨습니까, 대인, 아무래도 저희가 한발 늦은 것 같사옵니다.”

“불이 언제 났다고 하던가?”

“동이 틀 때쯤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불길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요.”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신속하게 움직였는데도 늦었다면 누군가 이들에게 소식을 전했다는 말이었다.

‘전서구나 전서응을 보낸 것 같군.’

청운은 씁쓸함을 베어 물고 석덕조에게 물었다.

“홍 천위는 어디 있는가?”

홍상경 천위는 금의위에 새로 합류한 자였다. 이번에 석덕조와 함께 움직였는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놈들의 흔적을 뒤쫓고 있습니다만,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젠장.”

청운은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

신비세력의 정보력을 얕본 자신의 실책이었다.

새벽이라면 서너 시진 만에 태원의 소식이 전해졌다는 뜻 아닌가 말이다.

그사이 불을 지르고 사라지다니.

“나는 장원을 살펴볼 거네. 마을사람들은 그만 다그치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감시는 철저히 하고.”

“예, 대인.”

청운은 명령을 내리고 장원으로 이동했다.

장원에는 아름드리 기둥이 세워진 건물이 몇 채나 있었다. 그 커다란 건물들이 다 타려면 하루 종일 걸릴 듯했다.

그래서인지 완전히 타서 잿더미만 남은 곳도 있었고, 불길이 잡혀서 반쯤 남은 건물도 있었고, 아직 불길이 타오르는 건물도 있었다.

사람들이 불을 끄려 했지만 근처의 우물은 모두 길어 쓴 듯 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몇 명은 멀리 있는 냇가에서 물을 떠오는데, 그 정도로는 건물의 불길을 잡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불타는 건물을 쳐다보던 청운은 한쪽에 내버려져 있는 커다란 삽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바라보든 말든 흙을 퍼서 건물에 뿌렸다.

한번 팔 때마다 삽 가득 떠진 흙이 건물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삽질을 하는 속도도 빨라서 흙덩이가 줄줄이 이어서 날아갔다.

[호오, 삽질이 제법이군. 그 정도면 소와 대결해도 안 지겠는데?]

오죽하면 혈황도 감탄해서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청운은 그의 너스레에 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그 광경을 본 다른 금의위들도 삽을 찾아와서 함께 흙을 팠다.

물을 뿌려도 쉽게 꺼지지 않던 불길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흙을 뿌린 위에 물이 뿌려지자 불길도 더 이상 흙 사이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검은 연기는 여전히 피어올랐지만, 불길은 완전히 잡힌 듯했다.

-혈황 님,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봐 주십시오.

[후우, 그래. 어디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볼까?]

한숨을 내쉰 혈황은 불타버린 잔해 속을 헤집고 다녔다.

천하의 혈황이 불에 탄 잔해나 뒤져야 하다니.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혼이어서 시커먼 재가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장원을 둘러보던 청운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러고 보니 이곳도 자룡궁처럼 진세를 응용해서 건물을 배치한 것 같군.’

그는 재빨리 장원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역시나 진세를 응용해서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구궁을 응용했어.’

그는 중요한 건물의 위치가 어디일지 가늠했다.

그러고는 안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더니, 폭삭 주저앉은 건물의 잔해 앞에 섰다.

-혈황 님, 이곳을 살펴주시겠습니까?

[거기에 뭐가 있을 것 같으냐?]

혈황이 보기에는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잔해 더미였다.

-이곳도 자룡궁처럼 진세를 따라 건물이 배치되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이 장원의 중심이 되는 장소입니다.

[그래? 알았다.]

혈황은 곧장 잔해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곧장 밖으로 나와서 청운에게 손짓했다.

[지하실이 있다.]

‘좋았어!’

쾌재를 부른 청운은 장력을 날려서 건물의 잔해를 한쪽으로 치웠다.

시커먼 재로 쌓이긴 했으나, 지하로 연결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계단이 나타났다.

입구가 제법 넓은 걸 보니 평범한 지하실은 아닌 듯했다.

청운은 입구를 막은 재를 치웠다.

금의위 넷이 달려들어서 함께 치웠다.

곧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뚫렸다.

청운은 계단을 따라서 지하로 내려갔다.

채 몇 걸음 내려서지 않았는데 철커덩 소리와 함께 기관이 작동했다.

청운은 빠르게 호신강기를 둘렀다.

‘암기?’

티디딩!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침이 호신강기에 부딪힌 후 떨어졌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걸 보니 독이 발라져 있는 것 같았다.

‘기관까지 설치한 곳이라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겠지.’

암기 공격에 오히려 미소를 띤 청운은 검을 뽑아들고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캄캄한 통로가 그의 앞에 뻗어 있었다.

“횃불을 만들어서 가져오게!”

청운은 밖을 향해서 소리치고 기다렸다.

그사이 혈황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곧 금의위 위사 하나가 횃불을 만들어 왔다.

청운은 횃불을 받아들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혈황이 안에서 나오며 말했다.

[조심해라, 통로에도 기관이 있는 것 같다.]

청운도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십여 걸음쯤 걸었을 때 기관이 작동하는 미세한 소음이 들렸다.

청운은 검강을 날려서 벽과 그 안쪽의 기관을 파괴했다.

기관을 부수지 않으면 나중에 들어올 금의위들이 낭패를 당할 수 있었다.

한참을 이동한 청운 앞에 넓은 석실이 나타났다.

한쪽 면이 오 장은 될 것 같은 석실의 벽에는 굳게 닫힌 철문이 십여 개나 있었다.

청운은 석실 중앙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혈황이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무슨 실험을 진행한 흔적이 보인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놈들이 수상한 실험을 한 것 같다.]

청운은 철문을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방마다 여러 가지 도구와 함께 시체들이 보였다. 어떤 자는 벽에 매달린 채 죽어 있었고 어떤 자는 길쭉한 돌침대에 반듯하게 누워서 해부된 모습이었다.

[급하게 떠나면서 실험체들을 죽인 것 같구나.]

혈황의 말대로 급하게 떠나다 보니, 증거를 전부 없애지 못한 것 같았다. 불탄 흔적이 있는 것을 봐서는 이곳도 불을 지르려고 했었던 것 같았다.

외부와 달리 이곳은 벽이 돌로 되어 있어서 불이 제대로 붙지 않았고, 그나마도 입구와 바람구멍이 잿더미로 막히면서 불이 일찍 꺼진 듯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혈황이 청운을 급하게 찾았다.

[이리 와봐라.]

청운은 혈황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다른 석실과 달리 전부 불타 있었다.

그런데 혈황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석실의 한곳을 가리켰다.

청운은 수북이 쌓인 잿더미를 향해서 손을 휘저었다.

휘익.

먼지 털어내듯이 휘저은 청운의 손길에 잿더미가 치워졌다.

그 속에서 붉은색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운은 수북이 쌓인 물건 중 하나를 들어 올렸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물체였다.

“사슴뿔을 닮았군.”

[쯧쯧,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만 보고도 시를 짓는 학사 놈이 사슴뿔이 뭐냐? 이럴 때는 용의 뿔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 이게 혈각룡입니까?”

[눈치는 빠르구나. 그것이 내가 얘기한 혈각룡이다. 어떠냐? 힘이 느껴지느냐?]

“흠, 그러고 보니 탕약에 들어 있던 힘이 이 녀석으로 인한 것이군요.”

청운은 익숙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보름간 아침저녁으로 마시며 내공을 늘려주던 친숙한 물건이었다.

청운은 주위를 둘러보며 손을 휘저었다.

후웅.

청운의 손길에 따라서 일기 시작한 바람이 서서히 휘돌면서 쌓인 재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적당히 힘 조절을 한 터라 무거운 물체는 그 자리에 남았다.

남은 물체 대부분은 불에 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그런데 안쪽 벽 아래에 있는 그릇 무더기는 멀쩡해 보였다.

청운은 그릇이 쌓여 있는 곳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무언가를 담았던 용기였는데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여기 하나 건졌습니다.”

청운은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붉은 구슬 같은 것을 들어 올렸다.

[응? 설마, 완성품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급하게 가져가면서 흘렸나 봅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물건을 찾았다.

비록 그을린 것 하나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때 문득 도지휘사사에서 엿들은 짤막한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안전한 장소에 숨겨뒀습니다.”

일호 교관이 도지휘사에게 했던 말이었다.

‘돌아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지.’

청운은 주위를 더 둘러본 다음 지하를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는 재가 잔뜩 묻은 옷으로 싼 봇짐이 있었는데, 그 봇짐에는 안에서 찾은 혈각룡이 들어 있었다.

청운은 석덕조에게 봇짐을 넘기며 잘 간수하라 일렀다. 시간이 나면 연구해볼 생각이었다.

-혈각룡을 얻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당분간 영단을 제조하지는 못하겠지요.

영단 제조를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양의 혈각룡이 들어가는지 모르지만, 놈들이 혈각룡을 놓고 간 이상 당분간 영단 제조를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혈황의 생각은 달랐다.

[아마 또 만들 거다.]

시큰둥한 혈황의 대답에 청운이 놀라서 되물었다.

-예? 저만큼 재료를 빼앗았는데 또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저 정도야 금방 채취하지. 아마 저건 놈들이 가져가면서 흘린 걸 거다.]

-혈각룡이 그렇게 많이 생산됩니까?

[생긴 건 저 모양이지만 이끼다. 지금은 모르겠다만, 내가 봤을 때는 동굴 안에 가득했었다.]

혈황의 말에 청운의 눈이 커졌다.

-설마, 혈각룡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세요?

[어… 여기서 얼마 안 된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혈황이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청운은 그를 노려보았다.

‘아니, 그걸 알고 계셨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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