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17화 (117/257)

# 117

117화

“그게…… 도지휘사사입니다.”

석덕조의 말에 청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라? 도지휘사사?”

“예, 대인.”

석덕조는 준비한 두루마리를 청운에게 공손하게 올렸다.

청운은 두루마리를 죽 펼쳐서 내용을 확인했다.

도지휘사사에 대한 사항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보고서를 다 읽은 청운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두루마리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탁!

“연관된 자가 누군지 알아냈는가?”

“송구합니다.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도지휘사사에 놈들과 연관된 자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아직은 누가 놈들과 연관되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처럼 대담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상당한 고위직일 것이 분명했다.

‘군부에도 놈들의 세력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고위직이 관여되어 있다면 완벽히 소탕하기가 쉽지 않겠군.’

잠시 생각을 정리한 청운이 석덕조를 보며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적이 역도와 관련되어 있다면, 밀고 들어가셔서 한 번에 쓸어버려야 합니다.”

청운은 이미 군부와 하남성에서 마찰을 빚었었다. 이를 잘 아는 석덕조가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밀어붙이라 말하고 있었다.

청운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톡, 톡톡.

증거도 없이 산서성 도지휘사사를 쳐들어간다면 그 여파가 상당히 클 것이다. 어쩌면 황궁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자신을 몰아붙일지 모른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증거는 찾으라고 있는 것이지.’

잠시의 시간이 억겁같이 흐른 후, 열릴 것 같지 않던 청운의 입이 열렸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지. 황궁에 전서구를 띄우고 금의위를 대기시켜라.”

“존명!”

내친걸음, 물러설 수는 없었다.

한 달간 정보를 모았고 놈들의 실체를 직접 확인했다. 꼬리는 잡았지만, 몸통과 머리를 아직 잡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고 그냥 뒀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 뻔했다.

‘이제 때려 잡아주마.’

청운은 마음을 다잡았다.

석덕조가 물러나고 홀로 남은 청운은 두 눈을 빛내며 혈황을 불렀다.

“혈황 님, 유람이나 다녀오실까요?”

[이 야심한 밤에 어딜 가려고?]

“그냥 바람이나 쐬려고요.”

[너 자꾸 밤이슬 맞고 돌아다니는 거 아니다.]

혈황은 구시렁거리면서도 이미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청운은 빙그레 웃으며 뒤를 따랐다.

* * *

청운은 오가장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묻힌 오가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내가 진입한 후 도주하는 자들의 뒤를 은밀하게 따라붙어라.

청운은 장원을 감시하는 금의위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러고는 곧장 장원의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굳게 닫힌 대문을 지키는 자는 없었다. 그러나 안쪽에서 바깥을 감시하는 자들이 있었다.

청운은 대문을 향해서 장력을 날렸다.

슈욱, 콰앙!

후두두둑.

청운의 일장에 대문이 박살이 났다.

안쪽에 있던 자들 중 일부가 충격파에 휩쓸려서 날아갔다.

스르릉.

청운은 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박살나면서 퍼진 굉음에 안쪽에서 부산한 움직임이 들려왔다.

“무슨 소리야!”

“적이 들어온 것 같다! 비사아아앙!”

청운은 그 소리를 들으며 냉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다 깨웠겠지.’

늦은 밤이기에 잠자리에 든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일일이 찾으러 다니기보다 한 방에 불러드리는 방법을 택했다.

[조용히 산보 가자는 놈이 요란하기는.]

혈황이 툭 한마디 던졌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청운의 뜻대로 사방에서 무인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는 청운을 보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한 사람밖에 없었다.

“웬 미친놈이냐?”

누군가 청운에게 호통을 쳤다.

청운은 소리친 사내를 보며 말했다.

“안 덤빌 것이냐?”

“뭐라? 당장 저놈을 쳐라!”

명령이 떨어지자 모여든 자들이 일제히 청운을 공격했다.

청운은 우뚝 선 자세에서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특별한 형식은 없었다. 그저 손가는 대로 검을 허공에 휘저을 뿐이다. 그런데도 효과는 확실했다.

검이 지나가는 곳이 곳 검로였고, 면면부절 이어진 검기는 끊임이 없는 검기의 그물을 만들어냈다.

청운을 공격한 자들은 청운에게 접근도 못하고 몸이 갈라지며 쓰러졌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명령을 내린 사내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고 눈을 부릅떴다.

“어, 어찌……?”

청운은 사내를 보며 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쉐에엑!

희미한 파공성과 함께 사내가 눈을 부릅뜨며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사내의 머리가 목에서 분리되며 바닥으로 떨어져 굴렀다.

스르륵, 무너지는 몸뚱이의 목에서 피분수가 위로 솟구쳤다.

모여든 자들은 청운의 가공할 신위를 접하고 주춤거리며 눈치를 봤다.

청운이 그런 사내들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살고 싶으냐? 그럼 도망쳐라.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청운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다수의 환영으로 분리된 신형이 사내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헉!”

“크윽!”

단말마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울렸다.

잠깐 사이, 대문 입구로 몰려들었던 자 중 두 발로 서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청운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서 예의 창고 앞으로 나아갔다.

창고 앞에는 십여 명의 사내들이 포진해 있었다.

“웨, 웬 놈이냐? 이곳이 어딘 줄 알고 감히……!”

누군가 청운에게 외쳤다.

청운은 코웃음 치며 검을 들었다.

“어디긴? 마굴이지.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마굴.”

겉으로 보면 단순히 무공을 익히는 곳일 뿐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공력을 높이고, 그로 인해서 사람이 죽어가도 그걸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들 아닌가.

자신과 함께 들어간 사람들만 해도 스물네 명이 죽었다. 시신을 거적에 싸서 들고 나가는 걸 자신의 눈으로 봤다.

아마 이전에도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갔을 것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아무리 강해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참여했다 해도 그들의 죽음을 방관한 것은 분명 죄악이었다.

더구나 약의 분량을 조절하며 사람을 상대로 시험까지 한 자들 아닌가 말이다.

“인간을 도구로 생각하는 자들은 나 역시 인간으로 봐주지 않을 생각이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쳐라!”

포진한 사내들이 일제히 청운에게 달려들었다.

입구에서 공격하던 사내들과 사뭇 다른 기세였다. 개중에는 절정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고수도 섞여 있었다.

후우우웅.

파지지징!

청운은 검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앞으로 내밀었다.

청운은 지난번 백철군이 펼쳤던 월광파천무를 보며 영감을 얻어서 자신의 검공을 한 단계 진화시킨 상태였다.

슈슈슈슈슝!

퍼버버버벅!

허공에 만들어진 검의 잔상이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실체화가 되어서 공격하던 자들의 가슴을 꿰뚫었다.

단 삼 초식 만에 십여 명이 절명했다. 살아남은 자들이 그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치기에 바빴다.

제아무리 간덩이가 크더라도 자신들과 실력이 비슷하거나 강한 동료들이 맥없이 죽어가는 모습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청운은 공포에 질린 그들을 놔둔 채 곧장 창고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슈슈슉.

예리한 기운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숨어 있는 자들의 존재를 알고 있던 청운은 그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검을 종횡으로 휘둘렀다.

촤아악!

어둠과 함께 사람의 몸도 갈라졌다.

털썩, 털썩.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쓰러진 그들을 뒤로한 채 청운은 동굴이 뚫려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혈황이 동굴을 보며 주의를 주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과 기관을 상대하는 것은 다르다. 방심하지 마라.]

청운은 고개를 슬쩍 끄덕이고 성큼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 기관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찌리리릭.

벽이 미세하게 진동을 일으켰다.

그그그긍.

청운은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츠츠츠츠!

검기가 석벽을 가르고 그 안쪽에 내장된 기관마저 잘라냈다.

소리가 멈추고 진동도 잦아들었다.

저벅, 저벅.

청운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호신강기를 일으킨 그의 몸에서 은은한 광채가 흘렀다.

슈슈슉.

이번에는 사방에서 암기가 날아들었다.

우웅!

티딩, 티디딩!

후두두둑.

호신강기에 부딪친 암기가 튕겨져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광장이 나왔다. 지난 보름간 생활했던 장소였다.

그 광장에는 복면을 쓴 십여 명이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청운을 노려보는 그들의 눈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상대는 온갖 기관 진식으로 죽음의 길이 펼쳐진 동굴을 상처 하나 없이 걸어 나온 자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물러설 곳도 없고.

“너는 누구냐?”

일호 교관이 소리쳐 물었다.

청운은 솔직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오십호.”

“뭐?”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를 몰라보나, 실망인걸?”

그제야 일호 교관이 청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이를 갈았다.

“이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그러는 네놈들은 무슨 짓을 벌이는 것이냐?”

“몰라서 묻는 것이냐? 강호에 도움이 될 고수를 키우고 있지 않으냐!”

일호 교관은 청운이 정파의 고수일지 모른다 생각하고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청운이 입꼬리를 비틀며 조소를 지었다.

“우습군. 그래서 죄 없는 자들을 꼬드겨 실험체로 사용한 것이냐?”

“…….”

청운의 말에 일호 교관의 눈빛이 흔들렸다.

청운은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고 살기를 일으켰다.

일호 교관은 살을 에는 강한 살기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 내 말을 들어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봐라. 들어는 줄 테니.”

“너도 알다시피 내공을 비약적으로 쌓을 방법이 우리에게 있다. 너를 다른 자보다 더 강한 고수로 만들어 주마.”

피식.

청운은 실소를 지었다. 부작용을 초래할지 모르는 약은 그동안 먹은 것 정도로도 충분했다.

“나도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너희들 뒤에 있는 자가 누군지 알려준다면 살려주마.”

“흥! 네놈 혼자 우리를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너야말로 죽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검을 내려놓아라. 그러면 무한한 영광과 부를 안겨주마.”

일호 교관은 말을 마친 직후 좌우의 복면인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의 전음을 들은 복면인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청운은 그들의 눈빛만 보고도 그들의 마음을 눈치챘다.

“왜? 도망이라도 치려고?”

냉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차갑게 말한 그는 중앙으로 걸어갔다.

복면인들은 뒤로 물러서며 청운을 빙 에워쌌다.

“지금!”

일호 교관이 짧게 소리치자, 복면인 대여섯 명이 몸을 날리며 청운을 공격했다.

청운은 검을 빙그르르 돌리며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사방으로 검기를 날렸다.

번갯불 같은 검기가 그물처럼 퍼져나갔다.

채재쟁, 챙챙!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에 이어 육골이 잘리는 섬뜩한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복면인 셋이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해보고 나뒹굴었다.

일호 교관이 그 틈을 이용해서 몸을 날리더니 동굴의 입구 쪽 통로로 들어갔다.

복면인 몇이 일호 교관을 따라서 움직였다.

청운은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도 피식 웃기만 했다.

청운은 그들을 놔둔 채 남은 자들을 먼저 제거했다. 청운의 검에 목이 잘리고, 가슴이 베인 자들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어디 한번 도망쳐 보아라.’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청운은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몇 명 정도야 살아서 도망친다 해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신비세력이 인간을 대상으로 수상한 약을 시험하려던 곳이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망친 자들은 신비세력을 쫓는 데 미끼가 되어줄 것이다.

“이제 사냥을 해보지요.”

청운의 무심한 말투에 혈황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식, 어째 나보다 더 냉혹한 것 같군.’

* * *

“헉, 헉, 헉….”

가뿐 숨소리가 적막을 깨며 어둠을 흔들었다.

어둠 속에서 내달리던 사람들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오가장에서 빠져나온 자들이었다. 모두 셋. 복면을 벗은 그들은 쉬지 않고 서쪽으로 달렸다.

그런데 셋 중 한 명이 몸이 불편한 듯 다른 이가 부축한 채 이동하고 있었다.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자 선두의 사내가 멈춰 서서 뒤따르는 자를 기다렸다.

둘이 도착하자 다친 사내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힘드냐?”

“죄송합니다.”

“아니다.”

일호 교관이 다친 사내를 부축하는 척하더니 옆구리에 빳빳하게 세운 수도를 찔러 넣었다.

푹!

공력이 실린 수도는 철판이나 다름없었다. 살을 찢고 뼈를 부수며 파고든 수도는 결국 심장마저 터트렸다.

“끄억! ……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