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15화 (115/257)

# 115

115화

그날 늦은 밤, 청운이 자리 잡은 별채에 일단의 사내들이 방문했다.

청운의 명령을 받고 태원부에 잠입한 금의위들이었다. 총 여섯 명으로 각기 다른 곳에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인사를 주고받은 그들은 그동안 모은 정보를 청운에게 보고했다.

모든 보고를 다 들은 청운이 그들에게 물었다.

“오가장은 별다른 문제가 없단 말인가?”

“예, 현재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오가장을 반년 넘게 살펴봤는데, 무현관과 달리 그동안 수상한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육중경의 부하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빼면 여타 다른 곳과 다르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육중경의 부하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되어 있던데.”

“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장원에서 들락거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육중경은 십중팔구 신비세력과 연관이 있는 자였다. 그 수하들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런 자들이 사라졌다면 육중경과 신비세력의 고리가 끊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무현장은 어떤가?”

“예, 수상해보이기는 하는데, 대인의 명 때문에 외부에서만 살피다 보니 아직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잘했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신비세력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청운도 목숨의 위협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 금의위만 들어갔다가는 안위를 장담할 수 없었다.

청운은 몇 가지 사항을 더 확인한 다음 그들을 돌려보냈다.

이렇다 할 결정적인 수확은 없었다. 그래도 신비세력의 꼬리가 될지 모르는 곳을 알아냈지 않은가.

‘자세한 것은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금의위들을 돌려보낸 청운은 야행복으로 갈아입고 역용을 했다. 그러고는 어둠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 * *

청운이 있는 별채와 무현관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청운은 한 번의 도약으로 무현관에 스며들 수 있었다.

무현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제법 큰 건물이 십여 채는 될 듯했다.

정원이 있었을 것 같은 곳에도 연무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무장 사방에는 병장기를 놓을 수 있는 거치대가 있었다.

딱히 경비가 삼엄한 것은 아니었다. 화톳불이 타오르는 곳에 서너 명이 모여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곳곳에서 은밀한 기운이 느껴졌다. 은신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저쪽과 저쪽, 그리고 중앙 건물과 우측의 창고에도 있군.’

중앙 건물은 관주의 거처로 보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청운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창고 쪽으로 이동했다.

스르륵.

그는 만사은신사형을 펼쳐서 몸을 주변과 동화시켰다.

그러고는 지붕 위로 오른 다음 소리 없이 건물 속으로 스며들었다.

건물 안쪽 대들보 위에서 사방을 조용히 살펴보던 그가 소리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숨어 있는데, 혈황은 아무런 제약 없이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 괜히 들어왔나?’

혈황에게 부탁했으면 되었을 텐데.

한참 동안 이리저리 창고 안의 물건들을 살펴보던 혈황이 스르르 청운 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별다른 것이 없구나.]

-뭐 하는 곳처럼 보입니까?

[무공서하고 값나가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 같구나.]

-그럼 중앙 건물을 살펴야겠군요.

[그래야지. 자룡궁에서처럼 싹 쓸어 담을 게 아니라면. 응?]

주위를 둘러보며 청운에게 말을 하던 혈황의 눈에 무언가를 보였다.

스르르, 몸을 이동시킨 혈황이 병장기 거치대 앞에 섰다.

[호, 이곳에서 보게 되다니.]

그의 표정에 아련함이 떠올랐다.

청운은 혈황이 보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특이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긴 봉에 여러 개의 둥근 고리가 달려 있었다.

-무엇입니까?

[천교의 무인들이 수련할 때 사용하던 무구(武具)다.]

-천교 물건이 여기 있다면……?

[그래, 네가 생각한 대로 그놈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저거, 밖의 연무장에도 있던데요.

은신해 있는 자들을 신경 쓰느라 사방을 살펴보던 중 수련장 한쪽에 세워진 거치대에서 똑같이 생긴 물건이 있는 걸 언뜻 보았다.

단순히 봉의 일종이라 생각했는데 수련 도구라고 하니 그 쓰임새가 궁금했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입니까?

[팔에 고리가 달린 팔찌를 착용하고 봉의 고리에 연결한 다음 초식을 펼치면 자세를 교정할 수 있지.]

자세히 보니 고리가 봉의 일정 간격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볼품없어 보이지만 효과는 확실한 무구다. 의외로 정교한 무고여서 만들기도 쉽지 않은 물건이지.]

혈황의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별 소득을 얻지 못한 청운은 창고를 빠져나왔다.

남은 곳은 중앙 건물이었다.

무현관의 관장이 사용하는 곳으로 보였는데, 청운이 직접 그곳에 숨어들지는 않았다.

처마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긴 그가 혈황에게 부탁했다.

-안에 좀 살펴봐주세요.

혈황은 청운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청운과 그는 목적이 같았다. 크게 어렵지도 않은 일이고.

게다가 청운이 보지 못하는 것을 자신은 볼 수 있으니 은근한 재미도 있었다.

한참이 지나자 혈황이 돌아왔다.

[수상하게 보이는 건 없다.]

-그래요?

혈황의 말에 청운은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나?’

어딘가에 신비세력과 관련된 증거가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일단 돌아가시죠.

[알았다. 그래도 무구를 발견했으니 헛걸음은 아니구나.]

-예, 최소한 신비세력과 무현관이 무관하지는 않다는 말이니까요.

서둘러 무현관을 빠져나오는 청운의 손에 눈여겨본 무구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힐끔 쳐다본 혈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일은 오가장을 살펴보자.]

* * *

다음 날, 청운은 태원 외곽에 있는 오가장으로 향했다.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한 장원은 주변 숲과 어우러져서 고풍스런 멋을 자아내고 있었다.

청운은 숲에 몸을 숨긴 채 장원을 살펴보았다.

장원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금의위의 말대로 오가는 이 한 명 없이 조용했다.

-지나치게 조용한데요?

한 시진이 넘도록 들락거리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일반적인 곳과 지나치게 다르다는 건 뭔가 수상한 면이 있다는 뜻과도 같았다.

[차라리 한 놈 잡아서 입을 여는 게 어떻겠느냐?]

청운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다.

조용히 알아보려고 했는데, 이곳에서 무작정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렇게라도…….

그때였다.

멀리서 마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기다리자, 마차 몇 대가 정원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마차는 이십여 명이 호위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정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대문이 열렸다.

마차는 열린 대문 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대문이 다시 닫혔다.

-여기가 무현관보다 더 이상하군요.

[들어가 볼 거냐?]

청운은 혈황에게 알아봐달라고 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게 나을 듯했다.

-그래야겠습니다.

청운은 만화은신사형을 펼쳐서 주위와 동화시키고 경신법을 펼쳐서 장원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 청운은 마차에서 내리는 사내들을 보았다.

십 대에서 이삼십 대 건장한 사내들이 하나둘 마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누군가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족히 이삼십 명은 되겠군.’

청운은 이동하는 사내들 뒤를 따라서 은밀하게 움직였다.

안쪽으로 안내를 받은 사내들이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혈황 님, 안쪽을 좀 살펴봐 주시겠습니까?

[기다려라.]

혈황은 한마디 툭 던지고는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청운은 혹시 몰라서 어둠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갔던 혈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나왔다.

-응?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안쪽에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더는 들어갈 수 없더구나.]

-아! 통로가 제법 긴가 보군요.

혈황은 청운에게서 일정 거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처음보다는 비약적으로 거리가 늘었다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었다.

[그래, 중간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기관진식까지 설치되어 있더군.]

-무작정 들어갔으면 들킬 뻔했군요.

청운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신의 실력이라면 들어간다 해도 무슨 일이 있겠냐마는, 자칫 저들에게 경계심만 심어줄 수 있었다.

진짜 고수가 숨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 아파질 것이고.

[어떻게 할래?]

장원 안쪽을 바라보던 청운이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개봉에 있는 석 천호와 금의위 주력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습니다.

태원에 오자마자 연락했으니, 지금쯤은 출발했을 것이다.

무림맹의 회합도 아직 여유가 있었다.

서둘러서 놈들을 잡으려다가 큰 것을 놓치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게 나았다.

[하긴 칠 때 확실히 쳐야 뒤탈이 없는 법이지.]

* * *

석덕조가 금의위와 함께 태원에 도착한 것은 닷새가 더 지난 후였다.

“대인, 이제 도착했습니다.”

“석 천호, 오느라 고생했네.”

석덕조의 안광이 예전보다 깊어진 것을 보니 실력이 한층 높아진 것 같았다.

“수련에 성과가 있었나 보군.”

“모두 대인 덕분입니다.”

“다른 이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제법 쓸 만해졌습니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다면, 자신 휘하의 금의위가 황궁 제일의 정예가 될 것이 분명했다.

“우린 지금 오가장을 감시하는 중이네.”

“예, 대인. 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청운은 연이어 금의위들이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지시를 받는 석덕조의 눈빛이 빛을 발했다.

그날 밤.

청운은 금의위의 연락을 받고 거처를 나섰다.

“대인, 전에 말씀하신 마차와 비슷한 마차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전에는 마차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마도 최근 들어서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듯했다.

어스름한 밤이 내려앉은 사위는 고요했다.

풀벌레 소리가 천지를 가득 메울 때 일단의 마차가 거칠게 숲길을 달리고 있었다.

달빛을 벗 삼아 달린 마차는 어느덧 커다란 장원 앞에서 멈췄다.

그그긍.

문이 열리자 마차가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모두 내려라!”

“서둘러라. 시간이 없으니!”

사방에서 고압적인 소리가 들렸다.

마차에 타고 있던 사내들이 신속하게 줄을 섰다.

다섯 대의 마차에서 총 오십 명 가까운 인원이었다. 나이는 이십 대와 삼십 대로 크게 차이나지 않는 건장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줄의 맨 뒤편에는 몰래 끼어든 청운도 있었다.

혈황이 말한 통로 안쪽으로 들어가 보려면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처럼 행동하는 게 제일 나았다.

다행히 사내들 그 누구도 청운이 펼친 만사은신사형을 간파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뭘 하려는지 모르겠군요.

[들어가 보면 알겠지. 좌우간 너는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네 몸은 네 것만이 아니니까.]

혈황은 본래 청운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청운이 잘못되면 복수도 물거품이 되니까.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사내들은 청운이 끼어든 것도 모르고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모두 입을 다물고 뒤를 따라와라!”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사내들의 뒤를 따라서 이동했다.

안쪽에 있는 작은 문을 지나서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예의 창고 앞이었다.

“주목하라.”

사내는 뒤로 돌아서서 사내들을 훑어보았다.

기선 제압을 하려는지 그의 두 눈에서는 기광이 번쩍였다. 그 눈빛을 받은 사내들이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사내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

“모두 잘 알겠지만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겠다. 안에 들어가서 교관들의 말에 절대 복종하라. 토를 달거나 입을 여는 자… 죽을 것이다.”

서슬 퍼런 사내의 말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몰래 끼어든 청운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마차에서부터 교육받은 내용이었다.

“자, 따라 들어와라.”

문이 열리며 하나둘 사내를 따라서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창고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안쪽에는 열 명이 넘는 사내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모두 복면을 하고 있었다. 그중 다섯 명의 이마에 일에서부터 오까지 숫자가 적혀 있었다.

복면인 중 이마에 일자가 적힌 자가 나서서 말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나는 제일 교관이다. 나를 부를 때는 일호 교관님이라 부르면 된다.”

“…….”

“너희는 오늘부터 보름간 수련을 할 것이다. 목숨을 거는 일이지만 지시에 잘 따른다면 누구 하나 죽지 않고 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사람들은 눈을 빛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흡족했는지 일 교관은 다시 입을 열었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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