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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13화 (113/257)

# 113

113화

오호평천대장군은 황실의 일원에게 내리는 일종의 명예직이거늘, 황제의 말대로라면 실권마저 주어진 셈이었다.

병부 책임자인 병부상서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황상! 지나친 처사이옵니다! 진무사 이청운은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미천하여…….”

그가 다급히 부당함을 아뢰는데, 황제가 손을 들어서 그의 입을 막았다.

“되었다! 짐의 처사가 마음에 안 들면, 그대가 나가서 역적 무리들을 잡아오든가!”

그러면서 쳐다보는 눈빛이 어찌나 사나운지 한마디만 더하면 당장 끌어낼 것만 같았다.

이전과 전혀 다른 황제의 태도에 병부상서 석태는 하던 말을 멈추고 침을 꿀꺽 삼켰다.

하긴 면전에서 백철군이라는 무부에게 치욕을 당한 황제 아닌가.

당시 신하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방관만 했었다.

황제의 그때 심경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면, 당장 그 죄를 묻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었다.

육부 상서 중 가장 힘이 센 병부상서가 입을 닫자, 다른 사람들은 아예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나라의 존망을 앞에 둔 지금, 짐은 능력 있는 자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중용할 것이니라! 그대들 자식 중에서도 능력이 있는 이가 있으면 언제든 데려오도록 해라!”

황제가 그렇게 신하들의 가문에까지 기회를 주겠다는 말을 하자, 이제 청운을 뭐라 탓할 명분도 없어져버렸다.

“삼원과 그대들은 부디 짐을 보좌하여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도록 하라! 알겠느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병부상서가 반대하려다가 황제에게 호되게 질책을 당한 후 오히려 청운의 위치만 공고해졌다.

전에는 강호행을 하면서 오군도독부의 장수들과 사이가 좋지 못해서 마음껏 병력을 거느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 내려진 장군직으로 인해서 그들에게 명을 내릴 수 있게 되었으니, 청운은 제국 제일의 실세가 된 셈이었다.

그 소식이 황궁에 퍼지자 많은 이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병부상서가 황제에게 혼이 났다는 말을 듣고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반면 학사 출신의 문관들은 청운의 영전을 환호하며 반겼다.

청운이 보화전을 나서자, 환관 하나가 다가오더니 넌지시 말했다.

“소관을 따라오시지요.”

청운은 가타부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환관을 따라간 곳은 자금성 뒤편에 있는 전각이었는데, 그곳에는 정원 태감과 금의위 수장인 풍천호가 먼저 와 있었다.

청운의 등장에 가볍게 인사를 건넨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여전히 정원 태감은 불만이 사라지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청운을 보며 입을 열었다.

“황상께 우리가 조언을 한 일은 알고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항상 정원 태감님과 대영반께서 도움을 주시는 걸 잊지 않고 있습니다.”

“흥.”

청운의 감사 인사에도 정원 태감은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그가 정 소감 때문에 이런다는 것을 알기에 청운은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참, 정 소감이 무사히 수련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흥! 내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정 소감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겝니다.”

“하하 물론입니다. 이 모든 일이 오해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정 소감과는 인연도 있지만, 동생 같아서 신경 쓰는 것이니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삼원, 그 말에 거짓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 지켜볼 것입니다.”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있던 풍천호가 틈을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그보다 삼원,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가?”

“예, 중원을 돌며 놈들의 세력을 파헤쳐볼 생각입니다.”

“위험하지 않겠나?”

“무림인들과 힘을 합치기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제갈 선생과 이야기가 되었나 보군.”

“예, 이번에 무림맹에 들려서 세부사항을 조율하기로 했습니다.”

천뇌 제갈신기의 위명은 황궁에까지 알려져서 황실에서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물론 제갈세가 인물들이 황실에서 많이 활동하기에 더 조심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풍천호가 청운에게 말했다.

“그보다 이렇게 삼원을 부른 이유는, 이번에 제수받은 오호평천대장군이 가지는 권력을 설명하기 위함이네.”

“세이공청(洗耳恭聽) 하겠습니다.”

청운은 귀를 씻고 공손하게 듣겠다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 모습에 둘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랫사람에서 어느새 윗사람이 되었으니 질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전한 뒤에도 예전 상관을 대우하는 자세를 취하니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풍천호는 품속에서 제국 전역에 퍼진 병력의 구성과 그들을 관장하는 장수들의 이름이 적힌 책자를 건네며 말했다.

“제국에는 자네가 어쩔 수 없는 힘이 있네. 특히 조심해야 할 인물은 총 셋이네.”

“그들이 누구인지요?”

“먼저 남경에 계신 이왕야와 청해성에 계신 진무왕 전하께서 계시네.”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황상의 총애를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황제는 황족에게 큰 권력을 가진 군권을 맡기지 않는다. 반란이라도 일어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국에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황족이 둘이나 있었다.

청운도 익히 아는 일이기에 풍천호에게 물었다.

“그럼 다른 한 분은 누구십니까?”

“대장군이네.”

대장군은 현재 원정을 떠난 상태였다. 청운도 만나보지 못해서 그의 무공이 어느 경지인지는 모르지만 황실제일고수로 알려진 무패의 장수였다.

그를 따르는 장수들 역시 상당한 실력자라고 알려져 있었다. 동창이나 금의위에서 오군도독부가 마음에 안 들어도 함부로 못 하는 이유가 바로 대장군 때문이었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원 태감이 거들었다.

“강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너구리 같은 자야.”

의외의 말에 청운은 정원 태감을 바라보았다.

정원 태감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언짢은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자지. 음흉한 너구리야. 그자 때문에 동창이나 금의위가 숨을 죽일 때가 많다네.”

청운은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이쪽과는 줄이 다른가 보군.’

황궁에서 연줄은 상당히 중요했다. 지금처럼 청운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도움이 컸다. 만일 이들이 견제했다면 지금처럼 순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들을 도우라는 말이겠지.’

청운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소관은 언제나 두 분 곁에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호호호, 고마운 일이군.”

“역시 삼원이야.”

둘은 청운의 대답에 흡족하게 웃었다.

* * *

청운이 황제의 허락을 받아서 황궁을 나선 건 그로부터 칠 주야가 흐른 뒤였다.

삼천은 따로 움직인 다음 적당한 곳에서 만날 생각이었다.

도망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많은 비밀을 털어 놓아서 오히려 신비세력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야 할 판이었다.

더구나 혈황이 알려준 방법으로 금제를 해놓아서 배신을 하면 처절한 고통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금제법에는 혈황이 청운 몰래 꼼수를 부린 게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청운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서둘러서 떠나는 감이 있었다.

혈황이 청운의 마음을 눈치채고 한마디 했다.

[너, 혹시 백 소저가 사흘 거리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서두르는 것 아니냐?]

“그,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제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얼굴은 왜 붉혀? 그건 그렇고 백 가주에게 인사 안 하고 가도 되겠느냐? 한 성격 하던데.]

백철군의 얼굴을 떠올린 청운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서둘러서 대답했다.

“바쁘신 분인데 귀찮게 할 수 있나요. 전에 인사드렸으니 되었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청운이 혈황의 대답도 듣지 않고 경공을 극상으로 펼쳐서 저만치 나아갔다.

그 모습에 혈황은 뒤를 따르며 혀끝을 찼다.

[쯧쯧쯧, 숙맥 같으니라고. 그 계집아이, 괜찮던데…….]

황도를 나와 청운이 향한 곳은 일 년 전 수련했던 태행산이었다.

꼭 진기 합체만을 위해서 그곳에 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강호에서 활동하려면 남들이 모르는 비밀 거점이 하나쯤은 필요했다. 그는 태행산의 그 계곡을 비밀 거점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최악의 경우,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경우 자신이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

청운의 경공은 이미 중원에서 짝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빠르고 경쾌했다. 입신의 경지에 다다른 비천무영신법을 이용해서 하루도 안 돼 계곡에 도착했다.

계곡 입구에는 뿌연 안개가 서려 있고 커다란 바위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출입자사(出入者死)’

커다란 바위에 검기를 이용해서 새겨진 글씨는 용사비등(龍蛇飛騰) 했다. 큰 글씨 곁에는 작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황실금지(皇室禁地).

황실에서 봉표(封標)를 새워서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금표(禁標)라고 부르는데 청운이 곡을 빠져나오기 전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칫 누군가 계곡 안쪽으로 들어와서 터를 잡을 수도 있기에 마련한 조치였다.

청운은 봉표 외에도 계곡으로 이어지는 입구에 진법을 설치했다.

혈황의 도움을 받아서 운무금쇄미종진(雲霧禁鎖迷綜陣)을 펼쳐놓았다.

운무금쇄미종진은 진세가 안개를 생성해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게 만들고 환상을 통해서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진법이었다.

그렇다고 입구에 쓰인 것처럼 무작정 출입자를 죽일 수는 없는 일. 들어온 자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다시 입구로 돌아나갈 수 있게 해놓았다.

청운은 봉표를 보며 혈황에게 말했다.

“침입자는 없겠지요?”

[글쎄다. 절정고수라면 절벽을 통해서 들어갈 수도 있을 테니 뭐라고 말할 수 없구나.]

입구를 통하지 않고 절벽을 통해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다. 높이가 백 장이나 되고 안개가 끼어서 고수가 아니면 내려가기가 쉽진 않겠지만.

“다행히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은 없네요. 일단 들어가 보죠.”

청운은 거침없이 안개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빠르게 진법을 빠져나온 청운은 크게 변하지 않은 내부의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안쪽 끝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시원하게 물안개를 만들고 있었고, 한쪽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분지를 윤택하게 만들었다.

갑작스런 청운의 등장에 안에서 살던 산짐승이 깜짝 놀라긴 했지만 도망치지는 않고 멀리서 구경했다.

청운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서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크지는 않았지만 통나무로 만든 집답게 튼튼해 보였다.

일 년 정도 비어 있다 보니 내부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창문을 열고 장력을 이용해서 먼지를 날려버린 청운은 깨끗해진 실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청소는 이 정도면 되었고…. 혈황님, 배도 출출한데, 노루나 한 마리 잡으러 가지요.”

* * *

신비세력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청운 때문에 정보망을 총동원했다.

그들에게 청운은, 콧노래 부르며 길을 가는데 갑작스럽게 날아와서 머리통을 박살 낸 짱돌 같은 원수였다.

말 그대로 ‘쳐 죽일 놈!’ ‘씹어 먹을 놈!’인 것이다.

애써 키운 자룡궁과 하오문을 박살 내놓더니, 백가장 고수들을 황궁에 박아놓아서 간자들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놈이 황궁에서 나온 이후 오리무중이었다.

그것도 한 달째.

청운은 신비세력이 자신을 찾든 말든 자신의 기운을 하나로 만드는 일에만 전념했다.

세 가지 기운을 하나로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청운은 자는 시간마저 줄이며 전력을 기울였다.

‘분명 심상 속에 있을 때 내공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단초를 발견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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