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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01화 (101/257)

# 101

101화

앞으로 쭉 미끄러지듯이 나아간 청운은 사방으로 벼락 치듯 검을 휘둘렀다.

적의 허점을 파고드는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아무도 그의 검을 막아내지 못했다.

시산혈해.

청운이 지나친 곳에는 어김없이 피가 낭자했다.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이라 했다.’

좋은 뜻을 가진 자는 오지 않고, 이미 온 자는 선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이들은 결코 좋은 뜻으로 온 자들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앞길을 막으면 모두 죽일 자들이다.

이미 이곳에 침입하면서도 경비들을 보이는 족족 죽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청운은 이를 악물었다.

살려둘 가치가 없는 자들에게 베풀 자비는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려는 자들은 자신들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지켜볼 자들에게 분명히 보여줄 생각이다.

이들 말고 더 강한 자들을 어서 보내라고.

어서 음지에서 나와 자신과 자웅을 겨루자고.

싸움이 끝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청운의 무서운 기세가 이어질 때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익!

위지휘사사를 습격했던 자 중 살아남은 자들이 서둘러 몸을 빼냈다.

도망치는 자들은 수십에 불과했다.

청운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추격을 멈추고 부상자부터 살펴보시오!”

적을 추격하려던 백연우는 청운의 다그침을 듣고 이를 악다물었다.

화가 치밀었지만 참아야 했다.

곳곳에서 신음을 흘리는 부하들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부하들이 차디찬 바닥에 싸늘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적어도 이번 습격에 백이 넘게 죽고 그보다 많은 부하가 부상을 입었다.

흥분도 잠시 그의 두 눈은 여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쩌면 이차 습격이 있을 수도 있다.’

군문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답게 일거수일투족이 진중했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서 청운 앞에 선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인, 괜찮으십니까?”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예를 먼저 갖췄다.

청운은 그런 그를 보며 위무했다.

“괜찮소. 그보다 부하들이 많이 상했군요.”

“소장이 방심했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요. 설마 했는데 이처럼 대담한 놈들일 줄은 몰랐소.”

어느 정도 습격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자가 습격할 줄 몰랐다.

놈들은 다짜고짜 숫자로 밀고 들어왔다.

그 바람에 많은 사상자를 냈다.

예상했으면서도 일을 그르치다니, 자신답지 않은 실책이었다.

청운은 장내를 수습하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다.

‘놈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담한 자들이다. 황군을 공격하는 걸 망설이지 않을 정도로.’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린 청운의 눈빛이 깊어졌다.

‘어쩌면… 무림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아무래도 신비세력에 대한 판단을 달리 해봐야 할 것 같다.

* * *

하남성 상구 위지휘사사 습격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쉬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수백 명의 부상자와 백여 명이 죽임을 당한 사건이었다.

변방에서 오랑캐들과 싸운 것도 아니고, 정체불명의 인물들에게 습격을 받아서 생긴 피해였다.

습격자 중 포로로 잡힌 이들과 죽은 자들을 살펴보고 정체가 밝혀졌다.

정오 무렵, 청운은 상구 위지휘사사의 장수들을 소집했다.

오전 내내 포로 심문과 시체에서 얻은 물증이 파악되자 소집된 회의였다.

지휘첨사로 있는 백연익의 보고에 청운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반문했다.

“방금 왜구라고 하였소?”

“예, 대인, 놈들의 복장과 무기, 그리고 포로로 잡힌 이들을 심문한 결과 남해에서 활동하던 왜구입니다.”

청운은 그제야 혈황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영의 검술이다.]

왜구들의 고향에서 사용된다는 실전 검술이라는 말에 흥미를 느꼈었다.

그런데 멀고 먼 나라의 무사들이 어찌 이곳까지 온 것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첨사, 남해에서 활동하던 왜구가 내륙까지 왔다는 말이오?”

“예, 놈들은 남해에서 주로 활동하던 자들인데 이번에 동해 주산군도(舟山群島)까지 올라와서 보타암과의 싸움에서 패했다고 합니다. 그 후 도망치다가 장강을 타고 이곳까지 흘러들었다고 합니다.”

주산군도 보타암과의 싸움에서 패한 왜구가 장강을 타고 거슬러 올라왔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수로가 잘 발달한 곳이니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앞뒤가 맞지 않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청운이 보고하는 지휘첨사에게 물었다.

“첨사는 그 말을 믿소?”

“대인, 거짓일 겁니다.”

그 역시 놈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연이어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그래도 일부는 사실일 것입니다. 남해에서 왔다거나 그런 부분 말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빠져 있습니다. 좀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언가 새로운 사실이 나올 것입니다.”

놈들이 남해에서 활동하던 자들이 맞을 수도 있다. 아니, 맞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 왜 왔냐는 것이다.

청운이 백연우를 보며 물었다.

“위지휘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백연우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읍하고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대인,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들이 이곳을 습격한 이유는 혁련휘를 구출하거나 이곳의 전력을 가늠하기 위함이라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경계를 강화하고 수상한 자들이 있는지 대대적인 수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청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전혀 엉뚱한 방향이다 보니 확신이 들지 않았다.

바닷가도 아니고 내륙에서 벌어진 해적의 습격이다.

놈들이 물러갔지만 이들 말고도 다른 자들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청운은 지휘첨사 백연익에게 다시 물었다.

“놈들이 무슨 목적으로 습격을 했는지 모르지만 공교로운 부분이 있고, 정확히 뇌옥을 습격하려 했다는 정황이 있네. 더욱이 동조하던 금군이 있었다면 계획적이라는 이야기지. 그들의 심문은 끝났소?”

적이 습격할 때 안에서 내통하던 자들이 있었다. 두건을 쓰고 있었지만 그중 일부를 잡을 수 있었다.

전부 셋이 잡혔는데 그들에 대한 심문도 오전에 있었다.

백연익은 굳은 얼굴로 청운의 질문에 답했다.

“대인, 송구합니다. 새벽에 모두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뭐요? 그들이 왜 시체가 되었다는 말이오? 자살이오, 아니면 타살이오?”

“타살이옵니다.”

금군 내부에 적과 내통하는 자들이 아직 남았다는 말이었다.

늦은 시간에 습격을 받고 아침에 심문하려고 했었다. 안일한 대처에 귀중한 증인을 잃었다.

청운은 백연우를 보며 낮게 말했다.

“관리를 어찌한 거요?”

“송구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뇌옥의 경계를 강화했지만, 안쪽은 허술했다. 백연우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외각 경계를 강화하고 내부를 단속 못 한 제 불찰입니다.”

“이 문제는 따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이미 죽어버린 자들을 다시 살릴 수는 없다.

청운은 더 추궁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사인은 어찌 되오?”

“독살입니다.”

“독살?”

“예, 새벽에 그들에게 마실 물을 건넸는데 그 물을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내부에 아직 첩자가 남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물을 건넨 인물은 누구요?”

“간수인데, 아무래도 그는 첩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흐음, 그렇겠지.”

뻔히 보이는 수법이었다.

누군가 간수 몰래 독을 탔을 것이다.

그렇다고 간수를 조사하지 않을 수 없기에 조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청운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다. 놈들은 이미 관과 무림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나를 끄집어내려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놈들의 대응이 약했다.

간을 보듯이 자신을 살살 건드릴 뿐 강력한 공격을 하지 않고 있었다.

‘놈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혁련휘의 안위겠지. 나를 휘에게서 떨어트리려는 수작인 것 같은데….’

뻔히 보이는 수작질에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황도가 또 시끄러워지겠군.’

이대로 상구 위지휘사사를 벗어난다면 차후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오군도독부의 위소가 왜구에게 습격당한 일이었다.

북진무사가 왜구의 침입으로 수백의 사상자가 났는데 외면한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진퇴양난이지만 사면초가는 아니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사방에 적이 있었지만 고립무원(孤立無援)은 아니었다.

‘네놈들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청운은 생각을 정리하고 백연우에게 물었다.

“위지휘사는 무림인들과 친하오?”

“제법 연을 맺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상구에서 활동하는 무림인들과는 제법 사이가 좋습니다.”

“잘됐구려. 그들을 부르시오. 사파건 정파건 할 것 없이 불러서 대대적인 수색에 나서시오.”

“대인, 무슨 말씀이신지요? 놈들을 추격하는 데 무림인을 동원하라는 말씀이신지요?”

“추격하라는 말이 아니라 경계만 하시오. 특히 개봉으로 이어지는 길에 무림인들과 병사들을 쫙 까시오. 아! 그리고 산동성의 조현과 단현에도 전서구를 띄워서 장강과 산동성 경계를 강화하고 수상한 자들이 있는지 살피라고 전하시오.”

백연우는 의아했다. 적을 추격한다면 잡을 수 있을 텐데 방어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대인, 놈들을 추적하는 일은 위소의 병력 중 추적술에 능한 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나서거나 대인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놈들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하하. 놈들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오. 내가 혁련휘에게서 떨어지는 일 말이오.”

“하면 소장이 움직이겠으니 대인께서는 이곳을 맡아주십시오.”

“미안한 말이지만 놈들 중에는 화경의 고수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오.”

백연우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초절정에 이른 고수다. 한 단계 위인 화경의 고수와 겨룬다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백연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청운에게 말했다.

“소장과 제 부하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승낙하신다면 추격대를 꾸려서 직접 움직이겠습니다.”

결의에 찬 모습이 보기는 좋았다. 역시 백가장 출신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승낙할 수는 없었다.

“그게 바로 놈들이 원하는 일이오.”

“무슨 말씀이신지요?”

“놈들은 우리 둘 중 하나가 움직이길 바라고 있다는 말이오.”

청운의 말에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백연우였다.

청운은 그런 백연우에게 전음을 보냈다.

백연우는 전음을 다 듣고는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장이 어리석었습니다. 대인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백연우는 부하들의 죽음에 대해서 그냥 넘길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놈들에게 핏값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청운의 전음을 듣고 한발 물러섰다.

그가 부하들을 둘러보며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어서 상구 무림인들을 불러 모으지 않고.”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존명!”

장수들이 백연우의 명령에 움직였다.

청운은 그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왜구가 지난밤에 습격했다는 소문이 삽시에 상구에 퍼졌다.

민심이 흉흉해졌지만 굳이 소문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상한 자들이 있으면 신고하라며 포상까지 걸었다.

청운의 명령대로 연락을 받은 상구 무림인들이 위지휘사사로 몰려들었다.

그들 외에도 뜻있는 무림인들이 대거 위소로 찾아왔다.

백연우는 상구의 성문에서부터 대로변에 병사들을 파견해서 경계를 강화했다. 무림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보좌하게 했다.

한편으로는 왜구의 발견에 포상금을 내걸었다.

“놈들을 발견하는 자는 은 천 냥을 내리고, 그들을 포박하거나 죽이는 자는 한 명당 은자 백 냥을 포상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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