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100화
포로들 입에서 별의 별 잡스러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사실인지 추측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청운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영풍상단이 정기적으로 거래한 곳이 다섯 곳이다.’
그들이 신비세력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었다.
개방에 그들에 대한 감시를 부탁했다.
문제는 그들이 얼마나 깊이 관련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영풍장에서 일하던 자들은 자신들이 신비세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곳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철저한 점조직이군.’
괜히 신비세력이 아니었다.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자들이었다.
힘이 있는데도 정체를 숨긴다는 것은 그만큼 철두철미한 자들이라는 말. 생각보다 신비세력을 일망타진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닷새가 지나자, 청운은 황도로 갈 준비를 마쳤다.
황제의 명령을 완수했으니 황도로 돌아가야 했다.
이미 역적을 전부 잡아들였다는 보고를 황도로 보냈다. 남은 건 혁련휘를 포함한 관련자들을 황도로 이송하는 일이었다.
황제가 친히 치국(治鞫)할 것이니 죄인들을 황도로 이송하라는 황명이 떨어진 것이다.
청운은 자신의 손으로 둘을 죽이고 싶었지만, 이미 둘 다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특히 혁련종도는 일 년을 살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죽을 것이다.
그는 죽은 거나 다름없는 그들을 이용해서 이무기를 낚아볼 생각이었다.
◈ ◈ ◈
그르르륵.
달그락, 달그락.
십여 대의 수레가 이동하고 있었다.
죄인을 실은 수레는 튼튼한 나무를 이용해서 사방을 창살로 막은 상태였다.
창살이 달린 수레에는 혁련종도와 혁련휘, 그리고 그의 일당들이 실려 있었다.
온몸을 굵고 튼튼한 밧줄로 꽁꽁 묶어서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혹시 무공을 이용해서 사고를 칠 수도 있었기에 내공 역시 제압한 상태였다.
이번 일에 일반 병사 백여 명이 동원되었다.
청운은 처음부터 함께한 금의위가 아닌 일반 병사들을 동원했다.
이송은 순탄했다.
앞을 막아서거나 습격하는 자들이 없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청운은 유람이라도 나온 듯 한가한 표정이었다.
그런 청운에게 혈황이 물었다.
[놈들이 미끼를 물을 것 같으냐?]
-휘가 중요한 인물이라면 이대로 보내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요란하게 포로를 이송하고 있었다.
놈들의 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시간도 충분히 끌었다.
빠르지 않게 이동하며 그들이 준비할 시간을 주었다.
[그래도 너무 눈에 보이는 함정 아니냐.]
-허허실실이라지 않습니까. 알면서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청운은 빙그레 웃었다.
그동안의 상황을 놓고 본다면 혁련휘는 신비세력에서 중요한 인물이 분명했다.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모르는 중요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놈들은 반드시 온다. 저 녀석 역시 그걸 알기에 초조하겠지.’
청운은 앞을 보았다. 휘장 사이로 혁련종도와 혁련휘가 타고 있는 수레가 보였다.
혁련휘는 무엇이 불안한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역시 청운과 비교되던 기재였다.
청운이 뭘 노리는지 알기에 불안에 떨고 있었다.
청운이 혁련휘를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본 혈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악마 같은 놈. 하여간 학문을 했다는 놈들이 더한다니까.]
* * *
챙챙챙!
싸움이 벌어진 건 해가 중천에 뜬 오시(午時) 말이었다.
작은 소로로 연결된 숲을 지나는데 복면을 한 자들이 습격했다.
하나같이 무공이 대단한 자들이었다.
일반 병사들이 상대할 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습격을 미리 알고 있던 청운이 나섰다.
그들은 청운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너무도 싱거운 싸움이었다.
습격자 중에는 절정 경지에 오른 자도 있었지만 청운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들도 청운의 실력을 모르지 않을 텐데 무식하게 밀고 들어왔다.
알고도 공격했다는 건, 함정의 유무를 살펴보겠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습격은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다. 습격자 수십 명 중 살아남은 자는 고작 다섯밖에 안 되었다.
청운은 제압된 다섯을 보며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놈들을 포박하라.”
“예, 대인!”
병사들이 나서서 전장을 수습했다.
다섯 명은 포승줄에 묶여서 수레에 짐짝처럼 던져졌다.
전장이 수습되자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일행이 먼저 들린 곳은 상구였다.
영성에서 개봉으로 가려면 꼭 들러야 하는 중간 지점이 상구다.
이곳까지 오면서 일행은 세 번의 습격을 받았다. 모두 물리쳤지만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병사 여럿이 죽거나 다쳤다.
청운은 상구에 있는 위지휘사사로 향했다. 병사들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대인, 어서 오십시오.”
중년의 사내가 위지휘사사 앞에 나와서 청운과 일행을 반겼다.
그는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백연우 위지휘사였다.
초절정에 이른 그의 무위는 위지휘사라는 자리가 작게 느껴질 만큼 대단했다.
이미 몇 달 전 안면을 익힌 인물이기에 청운도 거부감이 없었다.
청운은 그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번 자리했던 방으로 안내된 청운은 상구 위지휘사사 무장들과 자리했다.
“대인, 큰일을 해내셨다 들었습니다.”
“고맙소. 걱정해준 덕에 일을 수월하게 처리했소. 이번 일에 백가장이 큰 도움을 주었으니, 이 일을 황상께 고해 상을 내리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백연우는 강서 백가장 인물이다.
청운이 누구인지 가문에 알린 덕분에 그들과 만남이 수월했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덕담을 주고받을 때, 말석에 앉아 있던 이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무장이 청운에게 말했다.
“대인, 소장은 백인장 백권혁입니다. 소장, 대인께 청이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방금 말을 꺼낸 젊은 무장에게 쏠렸다.
젊은 무장의 결연한 표정을 본 다른 무장들이 뭔가를 짐작하고 펄쩍 뛰었다.
“너 설마……?”
“이 녀석아, 미쳤느냐?”
“여기가 어떤 자리라고 나서! 너 이따 보자.”
“아니, 그게 아니옵고, 저는 그저…….”
“조용히 안 해?”
곁에 있던 무장들이 으르렁거리며 젊은 무장의 입을 막았다.
위지휘사마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젊은 무장의 처우를 바로 결정했다.
“백 첨사는 어서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을 끌어내서 엉덩이를 걷어차라! 그리고 창고정리로 돌려라! 당장!”
“예, 장군.”
젊은 무장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끌려 나가는 폼이 측은했는지 청운이 그들을 멈춰 세웠다.
“잠시 멈추시오. 위지휘사, 무슨 청인지 들어봐도 되겠소?”
청운은 예의를 갖춰서 백연우의 뜻을 물어보았다.
“대인, 대인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저 녀석은 사사로이 제 사질 되는 녀석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가끔 응석을 부리지요. 하하하.”
“그럼 저 무장도 백가장 사람이겠구려. 그렇다면 그 청이 무엇인지 내 들어줄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드리리다.”
“아닙니다.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철없는 것이 가끔 헛소리하는데 오늘이 그날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어색한 웃음소리에 청운은 의아했지만, 백연우가 그리 말하니 굳이 더 나서지는 않았다.
‘같은 가족이니 설마 큰일을 당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며 시간이 흘렀다.
청운은 위지휘사에게 병력을 지원받기로 하고 하룻밤 이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든 청운의 두 눈이 스르르 떠졌다.
‘허, 설마 이곳까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위지휘사사가 있는 이곳으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이미 혈황은 그들이 오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뭐 하느냐? 어서 일어나지 않고.]
청운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허리에 검을 차고 밖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곧장 놈들이 다가오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주변이 훤히 보이는 지붕 위에 올라선 청운은 위지휘사사로 스며드는 그림자들을 확인했다.
‘족히 백은 넘겠군.’
놈들의 의도는 뻔했다. 다만 혁련종도와 혁련휘를 구하고 멈출지, 아니면 자신까지 처치하려는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금군이 주둔한 곳을 습격하는 자들이라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문제는 놈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것인데….’
청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복면인들이 기도를 숨기고 있었지만 움직임이 날렵하고 경쾌했다.
뛰어난 고수이거나, 아니면 암살에 특화된 무공을 익힌 자들이 분명했다.
[신법이 은밀한 것을 보니 암살자 같다.]
청운의 고민을 알기라도 하는지 혈황이 대번에 놈들의 정체를 알려줬다.
청운 역시 같은 생각이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였다.
‘이대로 놈들이 날뛰었다가는 큰 피해를 보겠지.’
실력이 뛰어난 암살자가 백이 넘는다.
몇 천 명이 주둔한 곳이라지만 하룻밤이 지나기도 전에 모두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호, 알고 있었나?’
청운이 막 움직일 때, 위지휘사사의 내원에서 어디론가 급히 움직이는 자들이 보였다.
그 숫자는 열을 넘지 않았지만 청운은 그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백연우와 부장들이군.’
무장을 전부 갖추지는 못했지만 각자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혁련휘와 포로들이 감금되어 있는 뇌옥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슈슈슉.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복면인들이 경비를 서는 병사들을 하나둘 처리하며 빠르게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의외인 것은 누군가가 그들과 합류해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내통하는 자들이 있었군.’
위지휘사사에 복면인들과 내통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금군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얼굴을 두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슈욱!
청운은 복면인들의 뒤를 습격했다. 소리 없이 접근한 그는 복면인들의 혈도를 제압했다.
막 셋을 제압했을 때 날카로운 공격이 느껴졌다.
복면인 무리에서 청운의 등장을 알아차리고 공격한 것이다.
챙챙챙.
청운은 검을 휘둘러서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다르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공격이었다. 검법이 아닌 도법에 가까운데, 일반 도법과는 형식이 달랐다.
검 역시 양날 검이 아닌 외날 검이었는데 도라고 보기에는 폭이 너무 좁았다.
오직 일격필살 공격 위주의 살인검은 원과 곡선을 배제한 직선 공격이었다.
쉑쉑!
청운은 연환으로 이어지는 놈들의 공격에 뒤로 물러섰다.
청운이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검날이 청운의 인상을 찡그리게 했다.
흑야대와는 다른 형태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보법 역시 처음 접하는 형태였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발놀림이 아닌 앞으로 뛰어드는 보법을 취하고 있었다.
따당! 챙챙!
청운은 막고, 튕겨내고, 반격했다.
‘시간이 없다.’
안으로 뛰어든 자들이 금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위지휘사가 나섰으니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다행히 백가장 출신인 위지휘사와 부장들이 놈들을 막고 있었다.
그래도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빨리 자신이 합류하지 않으면 일반 병사들의 피해가 클 것 같았다.
‘강을 유로 제압하는 게 좋지만, 이번엔 강으로 맞선다!’
청운은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쿵!
발아래로 기를 회전시켜서 사방으로 폭발시켰다.
쩌저적 콰과쾅!
바닥의 돌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포위하고 있던 자들을 덮쳤다.
폭발 속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뒤로 물러서는 복면인들이 깜짝 놀라며 도를 휘둘렀다.
푸캉! 푸캉!
청운이 폭발과 함께 검기를 날렸는데 대부분이 막혔다. 하지만 청운은 실망하지 않고 재차 공격했다.
뿌연 먼지가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사방으로 강력한 검격이 날아갔다.
퍼버버벅!
복면인들이 막기에는 그의 검세가 너무도 강력했다. 단 일검에 일곱 명이 밑동 잘린 짚단처럼 쓰러졌다.
청운은 곧장 바닥을 차고 비천무영신법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