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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98화 (98/257)

# 98

98화

챙!

흑야대주는 검을 들어서 환우일섬을 막았다.

가볍게 막아내는 모습에 청운은 이를 악물었다.

남은 공력을 마저 끌어올린 그는 연달아 이 초식 환우번천과 삼 초식 환우붕괴를 펼쳤다.

그 강맹한 위력에 흑야대주는 훌쩍 물러섰다.

흑야대주가 빠진 공백은 곁에 있던 흑야대가 나서서 막았다.

몇 명의 흑야대 무인이 쓰러지자, 뒤로 물러섰던 흑야대주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파바밧!

뒤로 돌린 그의 검에 붉은 기운이 어린 것이 보였다.

‘검강?’

분명히 검강이었다.

슈욱!

강하게 휘둘러지는 일격에 청운 역시 검강을 일으켰다.

쾅!

둘의 검이 부딪치자 사방으로 기세가 폭발하듯이 휘몰아쳤다.

연이어 둘의 검이 격돌했다.

쾅쾅쾅!

흑야대주의 검격은 무겁고 강력했다. 마치 도끼로 장작을 내려치는 듯한 검법은 도법처럼 느껴질 만큼 패도적이었다.

검이 부딪칠 때마다 청운은 내부가 진탕되었다.

더구나 상대는 하나가 아니었다.

사방에 깔린 흑야대 전부가 적이었다.

흑야대주와 잠시라도 검을 맞댄다 싶으면 그의 부하들이 어느새 등 뒤와 양옆을 공격했다.

천잠사와 단단한 몸이 없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지금도 온몸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기처럼 달려드는 흑야대와 벌처럼 쏘아대는 흑야대주의 공격은 청운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혈황은 부상당한 청운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놈들이 감히……!’

청운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상대방 하는 짓이 너무도 야비했기 때문이었다.

저 검둥이 무리 속에 고약한 놈들이 셋이나 숨어 있었다.

전면에서 청운과 맞서는 놈 하나와 숨어서 희롱하듯이 청운을 습격하는 둘.

놈들은 쥐를 잡아놓은 고양이처럼 청운을 이리저리 툭툭 치며 가지고 놀았다.

뻔히 보이는 놈들의 장난질에 혈황은 분노했다.

아무리 마도사파라 해도 무인들이 아닌가 말이다.

무인이면 무인다운 면이 있어야 했다.

특히 고수라면 고수다운 풍모를 지녀야 했다. 그래야 마도가 싸잡아서 욕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초절정에 달한 고수들이 합공을 하면서도 창피한 줄을 몰랐다.

최소한 자신이 활동할 때에는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요즘 놈들은 자존심을 오물통에 처박은 듯했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직접 싸우지 않는 한 청운의 죽음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분노가 극에 달한 혈황이 그 생각을 하다 흠칫 눈을 치켜떴다.

‘응? …가만? 내가… 직접 싸워?’

번뜩 떠오르는 생각.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청운은 전과 달리 공력에서 엄청난 진보를 보였다. 깨달음도 얻어서 경지가 이미 화경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동안의 노력으로 혈황진기를 어느 정도 되찾은 상태였다. 비록 청운에게는 숨기고 있었지만.

‘좋아! 해보자!’

팟!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혈황의 몸이 움직였다.

다른 놈들의 육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멋진 몸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었다.

아직 혈황진기가 모자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그냥 통과해버렸으니까.

이미 청운 몰래 몇 번이나 실험을 해본 그였다.

쾅!

청운의 몸과 부딪친 혈황은 몸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 같은 뇌기에 의해서 뒤로 튕겨졌다.

여전히 뇌기는 혈황을 거부했다.

감히 어딜 들어오려고 하느냐며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이 빌어먹을 놈아! 네 주인을 죽이고 싶은 것이냐!]

혈황이 버럭 화를 냈지만 뇌기가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하지만 혈황은 멈추지 않았다.

휘청!

방금 자신과 청운이 부딪치면서 청운 역시 충격을 받았다. 덕분에 자세가 흩어졌고, 적들은 그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허공에 놈들의 검이 가득했다.

이대로 그냥 두면 청운은 수십 자루의 검을 몸에 꽂게 될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혈황은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토해내며 청운의 몸으로 뛰어들었다.

지지지지…!

뇌기가 강하게 막아섰다.

하지만 혈황은 물러서지 않고, 이를 앙다문 채 몸을 들이밀었다.

뇌기에 몸이 타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비켜! 이놈아!!!’

그 순간!

쑥!

마치 갈라진 종이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듯 혈황의 영이 청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 직후, 흑야대 무인들이 검을 앞세운 채, 우뚝 서 있는 청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터더더더덩!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흑야대 무인들이 청운의 몸을 검으로 찌르면서 나는 소리였다.

멀리서 지켜보던 자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잡았군!”

“징그러운 놈! 이제 끝이다! 으하하하!”

혁련휘도 대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흑야대 대원들은 웃을 수가 없었다.

“거, 검이 안 들어가…….”

청운의 몸에 검을 찔러 넣었는데, 검이 피부만 겨우 뚫었을 뿐, 살을 깊숙이 파고들지 못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청운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자 하나가 크게 외쳤다.

“피해!”

그가 뒤로 몸을 빼려는 순간, 청운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붉은 기운이 번쩍하며 폭사했다.

파바바바밧!

퍼버버버벅!

폭발하듯 퍼져나간 혈광은 공격하던 자들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그러고는 마치 눈이 달린 것처럼 선회해서 청운에게 다시 돌아왔다.

청운의 주변이 단 일수에 초토화되었다.

혈인이 되어버린 청운과 몸을 두르고 있는 붉은 아지랑이가 묘한 조화를 이뤘다.

그때 감기다시피 했던 청운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화아아악!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가 빠르게 갈무리되었다.

아지랑이처럼 청운의 몸을 휘감고 있던 붉은 기운이 환희의 노래를 부르듯 출렁거렸다.

흑야대주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서, 설마… 혀, 혈황신공?”

흑야대주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덜덜 떨었다.

“어, 어찌… 저 저주받은 무공이….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경악으로 물든 흑야대주의 두 눈이 짙은 공포로 물들었다.

자신이 아는 한 저런 특징을 지닌 무공은 천하에 오직 하나였다.

혈황신공.

삼백 년 전 천하를 지배했던 혈사천교의 지존신공.

수백 수천 가닥의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모두 강기로 이뤄졌다고 전해지는 무적신공.

흑야대주는 조금 전 전설로만 전해지던 광경을 목격했다. 수십이나 되는 부하들의 몸을 꿰뚫고 지나간 강기의 다발을.

하지만 혈황신공은 삼백 년 전 혈황이 실종된 후 사라졌고, 그날 이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혈황신공을 익혔다면 교에서 모를 리가 없다.

더구나 저놈은 불과 일 년여 전만 해도 무공의 무자도 모르던 학사였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 내가 본 것은 뭐지?’

어쨌든 놈에 의해서 수십 명이 한꺼번에 죽은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게 혈황신공에 의해서든,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어떤 마공에 의해서든.

흑야대주는 도망치고 싶었다. 아니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청운의 모습이 발길을 붙잡았다.

혈인이 되어버린 청운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보였다. 다리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 어쩌면 오늘이 놈을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빠드득.

흑야대주는 이를 악물며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붙잡았다.

시간이 이대로 흐른다면 저 애송이가 대업에 가장 걸림돌이 될 것이 뻔했다.

지금도 무림맹에서 무언가를 눈치채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로 인해 신교도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세력을 이용하는 계략을 꾸몄던 것이고.

그런데 이청운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놈에게 당한 세력이 벌써 여럿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오늘 여기서 놈을 죽인다!’

두려웠지만 오늘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듯했다.

결심이 선 순간, 흑야대주가 크게 외쳤다.

“대업을 위해! 놈을 오늘 꼭 죽인다!”

“존명!”

살아남은 흑야대 대원들이 한목소리로 명령에 답했다.

흑야대주는 고중월도 끌어들였다.

“고 가주도 전력을 기울여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멈췄던 검진이 다시 발동되었다.

멀리서 영풍장의 무인들이 무기를 고쳐 들고 두 눈을 빛냈다.

“쳐라!”

흑야대주의 명령에 흑야대원들이 일제히 청운을 공격했다.

그들은 사방에서 검기의 그물을 만들며 청운을 덮쳤다.

잘 짜인 촘촘한 검기의 그물이 청운을 뒤덮었다.

피할 길 없는 강력한 협공이었다.

그들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촤라라라락!

빠지지지직!

검기의 그물과 청운의 몸에서 솟구친 붉은 아지랑이가 격돌하자 검기의 그물이 허무하게 찢어졌다.

“헉!”

“무슨 말도 안 되는….”

수십 명이 하나가 되어 만든 검기의 그물은 흑야대주라 할지라도 찢어낼 수 없는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종잇장 찢기듯이 저항 없이 찢겨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에 넋을 잃었다.

그 순간,

버버버버벅.

대경한 흑야대 무인들의 미간이 가느다란 혈기에 의해 모조리 뚫렸다.

“미천한 것들.”

청운의 입에서 흘러나온 차가운 한마디가 살아남은 자들의 귀를 때렸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자들은 지독한 공포에 몸이 굳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숨은 겨우 구했지만 정신이 무너진 것이다.

청운, 아니 혈황이 주위를 한 차례 보더니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염왕을 만나면 내가 보냈다고 고하라!”

우르르르릉.

쩌저저저정!

혈황의 웃음소리에 천지가 요동쳤다.

검붉은 먹구름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 구름 사이로 뇌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활황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붉은 기운이 혈황의 몸 주위로 뻗어 나갔다.

순식간에 영풍장이 검붉게 변했다.

“혈ㆍ룡ㆍ천ㆍ하!”

크아아아앙!

거대한 혈룡이 검붉은 대지를 뚫고 나왔다.

모습을 드러낸 혈룡은 전부 세 마리.

“쯧쯧. 고작 오성인가?”

혈황은 혀를 찼다.

혈황신공이 삼성에 다다라야 혈룡 한 마리를 만들 수 있다.

그다음부터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한 마리의 혈룡을 추가시킬 수 있다.

하지만 혈황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네까짓 것들 상대로는 과하지. 크하하하!”

콰과과광!

혈황의 의지가 혈룡들에게 닿았다. 혈룡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혈룡의 공격에 흑야대는 물러서지 않고 대항해보지만 부질없는 몸부림이었다.

혈룡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산산이 찢겨진 시체뿐이었다.

혈룡이 날뛸 때 혈황도 움직였다.

그는 흑야대주와 다른 화경 고수를 공격했다.

또 다른 화경 고수는 오십대 초반쯤의 나이로 보였는데, 혁련휘 근처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마치 혁련휘를 보호하는 게 그의 임무라도 되는 듯.

“호법! 놈을 조심하시오!”

흑야대주가 다급히 소리쳤다.

호법이라 불린 자도 바짝 긴장해서 전력을 다해 혈황의 공격에 맞섰다.

혈황에게서 뻗어 나온 혈기가 그자의 방어막을 무색하게 만들고 순식간에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호법이라 불린 자는 눈살을 찌푸렸는데 큰 충격은 받지 않은 듯했다.

흑야대주는 그 모습을 보고 안도하며 혈황을 공격하려다가 다시 눈을 부릅떴다.

이 장 정도 떨어져 있던 혈황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푹!

혈황의 손이 호법이란 자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나왔다.

혈황의 손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들려 있었다.

동시에 두 눈을 부릅뜨고 있던 사내가 털썩 쓰러졌다.

“하나.”

혈황의 입에서 무심한 듯 흘러나온 소리가 흑야대주의 귀에 박혔다.

다시 혈황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흑야대주가 목표였다.

흑야대주도 전력을 다해서 맞섰다.

하지만 실처럼 가느다란 붉은 기운은 그의 방어막 사이를 쉽게 뚫고 들어왔다.

츠츠츠츠.

‘헉!’

무언가 전신 요혈을 통해 스며들었다.

흑야대주는 두 눈을 부릅떴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 이럴 수가… 정말… 혈황신공…이란 말인가?’

신교의 호법이 대항도 제대로 못해보고 죽었다.

흑야대주는 이제야 화경에 오른 고수가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죽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 역시 혈황신공의 기운에 침습 당한 것이다.

전설에 전해지기로, 혈황진기에 침습 당하면 잠시 동안 공력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그게 바로 혈황신공의 무서운 점이기도 했다.

과거 혈황은 그 점을 이용해서 천하의 고수들을 굴복시켰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력을 끌어올리니 경맥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다.

혈황의 손이 다가오는 게 보고도 제대로 반응할 수가 없었다.

‘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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