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97화 (97/257)

# 97

97화

바닥에 누군가가 숨어 있었다.

미처 살필 겨를도 없이, 청운은 다가오는 공격에 맞서야 했다.

영풍장 내원 곳곳에서 흑풍의를 입은 자들이 쏟아졌다.

그들은 청운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진 자들은 새로운 흑야대였다.

파바바바밧.

규칙적이고 빠른 그들의 움직임은 새로운 검진을 발동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청운은 그들이 뜻대로 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공력을 집중시킨 그는 곧장 한쪽에서 달려오는 자들을 향해서 청마룡을 발출했다.

크아아앙!

짧은 거리에서 거대한 용의 형상에 직격당한 선두의 흑야대 무인들이 터져나갔다.

청마룡은 힘을 잃지 않고, 뒤쪽에 있는 자들마저 덮쳤다.

깜짝 놀란 흑야대 무인들이 몸을 틀며 피했다. 청마룡이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파밧!

청운은 계속 전진하지 않고 바닥을 밟으며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는 우측에서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검이 연속으로 허공을 갈랐다.

갑작스러운 청운의 공격에 우측 흑야대가 맞섰다.

채재재재쟁!

검기가 허공에 난무했다.

청운의 검기에 맞선 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실력으로는 청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파지지지직!

청운의 전신에서 폭풍 같은 뇌기가 발산되었다.

옥죄던 기운이 뇌기에 닿는 순간 폭음과 함께 흩어졌다.

콰과쾅!

뿌연 흙먼지가 비산했다.

청운은 뇌기를 한순간에 폭발시켜서 십 장 안을 초토화시켰다. 땅거죽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었다.

옥죄던 기운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때 음산한 목소리가 울렸다.

“대단해. 듣던 것보다 더 대단하군.”

허공에 메아리치는 음성은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가 천지전성술을 펼치고 있었다.

곧 예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무공을 익힌 지 얼마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황궁무고에서 기연을 만났나 보군.”

상대의 말에 청운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청운은 뇌신룡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는 뇌신룡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청운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넘겨짚어 본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청운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숨기겠다는 건가? 상관없는 일이지. 어차피 죽을 테니까.”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사방을 포위한 자들이 다시 움직였다.

네 방위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왔다.

처음과 변함없는 공격이었는데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청운은 뇌신룡의 독문 무공인 뇌룡폭풍검을 펼쳤다.

파지지지직!

거대한 뇌기가 청운 주위를 휘감았다.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겨 있었지만 흑야대는 이를 무시하고 파고들었다.

청운은 검을 떨치며 흑야대를 맞이했다.

사방으로 검을 휘두르며 보법을 밟았다. 청운이 지나갈 때마다 흑야대 무사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그들이 뭉쳤다지만 청운의 보법과 검법을 상대할 실력은 안 되었다.

그런데 잘 흘러가던 흐름 속에 변화가 찾아왔다.

투캉!

막 세 번째 사내의 검을 쳐내고 허리를 베려던 청운의 검에 묵직함이 전해졌다.

청운은 묵직한 검격에 검병을 강하게 쥐었다.

속도가 살짝 느려졌다. 그 바람에 세 번째 사내의 허리를 베지 못했다.

그 순간, 뒤쪽에서 청운의 목을 향해서 검이 날아들었다.

청운은 상체를 숙이며 검을 피한 후 위에서 떨어지는 검을 막았다.

챙!

“크읍.”

청운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생각지도 않은 충격이 검을 타고 가슴을 울렸다.

서걱.

청운의 옷자락 끝이 살짝 베어졌다. 청운은 그대로 몸을 숙이며 빙글 상체를 돌렸다. 검이 함께 돌며 상대의 허리를 베었다.

여유롭던 청운이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사방을 가득 메운 흑야대와 그 속에 숨어 있는 고수들 때문에 움직임이 둔화되었다.

갑자기 두 배 빠른 공격이 기습처럼 펼쳐졌다. 임기응변으로 겨우 막고 있지만 조금씩 상처가 생겼다.

흑야대 무인 수십을 베었지만, 여전히 사방에는 흑풍의를 입은 자들로 가득했다.

청운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쾅!

강한 일격에 흑야대가 주춤 물러서는 순간, 곧장 허공으로 몸을 띄우려고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청운의 행동을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허공에 검기의 그물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

만일 청운이 그대로 몸을 띄웠다면 검기의 그물 속으로 뛰어드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청운은 이를 악물며 뇌룡표풍검을 사방으로 뿌렸다.

거대한 뇌기를 머금은 검기가 상대를 덮쳤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몇 사람이 감진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청운을 괴롭히고 있는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주저 없이 청운의 검기를 쳐내며 곧장 반격을 시작했다.

채재쟁.

물러설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청운은 그토록 경계하던 촘촘한 그물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놈! 무엇을 망설이느냐!]

혈황이 조금 전부터 위험을 알려왔었다. 형국이 불리하니 밖에 대기하는 금의위를 불러서 뒤를 받치라고 했었다.

어쩌면 혈황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금의위가 상대할 수 없는 고수들이었다. 검진도 무시무시했다.

처음부터 함께 왔다면 몰라도, 저자들의 무서움을 알게 된 지금은 그들을 부르기가 꺼려졌다.

금의위들이 전처럼 자신을 구하기 위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어찌 본단 말인가.

그렇다고 도망치듯 이곳을 벗어는 것도 싫었다.

이대로 도망친다면, 혁련휘를 잡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떠나더라도 저놈만큼은…….’

청운이 흑야대와 싸우고 있을 때 한쪽에서 이를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영풍장주 고중월과 흑립을 깊이 쓰고 있는 몇 명, 그리고 청운이 그토록 찾고 있던 혁련휘와 그 일행들이었다.

고중월이 흑립을 쓰고 있는 사내를 향해서 살짝 상체를 숙였다.

혁련휘와 흑립을 쓴 사내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공자, 저자가 정녕 뇌신룡이 아닌 이청운이 맞소?”

“예, 이야기를 종합해 봤을 때 놈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놈은 독문무공을 사용하지 않고 있지 않소?”

“그래서 저놈이 음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사용할 것입니다.”

혁련휘는 확신했다. 그리고 느끼고 있었다.

‘저놈은 이청운이 분명해!’

혁련휘의 대답에 흑립을 쓰고 있는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단지 확신이 없었을 뿐.

흑립을 쓴 사내는 한동안 청운의 움직임을 살펴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대단한 친우를 두셨구려.”

“대주, 친우라니요. 불구대천지수입니다.”

혁련휘의 짜증 섞인 말에 흑야대주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동문수학했으면 친우지요. 좌우간 정말 대단한 놈이군. 이제 겨우 약관의 나이에 저 정도 무공을 지녔다니.”

흑야대주는 진정으로 감탄했다. 눈앞의 혁련휘도 대단한 무제지만 청운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다.

‘진정 저자가 이청운이란 말인가?’

여전히 의문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저런 움직임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혁련휘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와신상담하며 무공을 익혔다. 문에서 천하제일이 되지 못했으니 무공으로 천하제일이 되고자 했다.

최근에는 놈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고야 말겠다며 이를 악물고 수련했다.

‘무공만은 네놈에게 지기 싫었다. 그런데…….’

청운이 펼치고 있는 무위에 할 말을 잃었다.

‘죽이리라! 결코, 네놈하고는 같은 하늘 아래서 살지 않을 것이다!’

빠드득!

혁련휘는 이를 강하게 깨물며 다짐했다.

그런 혁련휘의 심정을 아는지 흑야대주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공자, 놈은 오늘 죽을 것입니다.”

그 말에 혁련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복수를 자기 손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상관없었다.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채챙, 챙챙챙!

싸움의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니 더 치열해졌다.

바닥을 구르는 흑야대 무사 숫자가 늘어난 만큼 청운의 의복도 찢어진 곳이 늘어났다.

강철같이 단단한 몸도 계속되는 공세에 상처를 입었는지 붉은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그나 다행인 것은 움직임이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올가미에 걸린 짐승 꼴이라는 것이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포위망을 뚫고 전장을 넓게 쓸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움직임이 봉쇄된다면 앞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

우웅.

쾅!

“크윽!”

청운의 등을 검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천잠사와 단단한 몸뚱어리 덕분에 살짝 베인 정도였다.

[어서 환우구검으로 검식을 바꿔라.]

혈황이 청운을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청운 역시 그러잖아도 환우구검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 허공을 찢어발기는 소리가 들렸다.

쉐에에엑!

강력한 일격이 날아들었다.

사방에서 숨은 고수들이 일제히 청운에게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다.

슈슈슈슉!

[피해!!!]

혈황의 절규와 같은 외침이 청운의 귀청을 때렸다.

하지만 워낙 빠르고 한두 사람이 아니어서 피할 수가 없었다.

청운은 환우구검을 방어식으로 바꾸어서 일단 몸부터 보호했다.

쾅!

우당탕!

강력한 공격이 청운의 전신을 향해 쏟아졌다.

사방에서 날아든 공격이 워낙 강력해서 대부분 막아냈음에도 그 충격까지 모두 해소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거센 충격을 받은 청운이 튕겨나가서 바닥을 굴렀다.

“크윽!”

신음과 함께 울컥 핏물이 목구멍을 뚫고 올라왔다.

청운은 상대에게 내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싫었다. 올라오는 피를 뱉지 않고 꿀꺽 삼켰다.

고개를 들자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끝장을 내겠다는 듯 일격필살의 공격이었다.

스르륵.

청운의 검이 날갯짓하듯이 움직였다.

동시에 무언가 번쩍이더니 공격하던 선두의 사내를 덮쳤다.

슈욱!

푹!

환우일섬!

환우구검 일 초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운의 모습이 흐릿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를 덮쳤던 자들이 동시에 꼬꾸라졌다.

비천무영신법.

청운은 아꼈던 두 가지 무공을 혼신의 힘으로 펼쳤다.

초절정의 고수들이 일검에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청운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한 후 몸을 일으켰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놈들에게 뛰어들어서 검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이대로 저놈을 포기해야 하나?’

청운은 혁련휘를 잡을지 아니면 후일을 도모할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스스스.

그때 흑야대가 다시 움직였다.

“놈을 쳐라!”

흑야대주가 공격명령을 내렸다.

‘다 잡은 고기를 풀어줄 수는 없지.’

조금 전 청운에게 일격을 날린 것도 그였다.

한발 물러서서 청운의 움직임을 지켜본다면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 훤히 보였다.

그런 흑야대의 변화에 혈황이 호통 쳤다.

[더는 위험하다. 다음을 기약하자!]

혈황이 볼 때는 더 싸워봐야 답이 없었다. 금의위를 불러도 늦은 상황이었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어쭙잖은 실력으로 상대를 경시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

항상 칭찬만 하던 혈황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청운은 혈황의 말처럼 몸을 뻬내기도 쉽지 않았다.

흑야대가 거머리처럼 청운을 물고 늘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빠른 발과 상대를 압도할 무공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상을 입고도 저 정도라고? 역시 살려둬서는 안 될 놈이군.’

멀리서 명령을 내리던 흑야대주는 쓰러져가는 부하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대로 뒀다가는 부하들을 전부 잃을지도 몰랐다.

결국 그가 검을 빼들고 몸을 날렸다.

흑야대를 맞아서 싸우던 청운은 갑자기 몸을 틀었다.

혈황의 경고와 동시에 이뤄진 행동이었다.

쑤욱!

챙!

시리도록 맑은 검이 청운의 검에 막혔다.

청운은 사내를 확인한 후 검을 튕겨서 상대의 검을 털어냈다.

팅!

동시에 신형을 빙글 돌리고, 공격해 들어오는 검을 쳐냈다.

따다다당!

청운은 곧장 바닥을 차듯이 밟으며 신형을 흑야대주를 향해서 날렸다.

환우구검의 첫 번째 초식인 환우일섬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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