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96화 (96/257)

# 96

96화

[그래, 아무래도 배신자들과 손을 잡고 천교를 공격했던 놈들 같다. 이놈들이 펼친 검진이 그때와는 조금 다른 것처럼 보이긴 한데, 진법의 기본적인 운용이 놈들의 검진과 같아.]

“으음, 예상했던 대로 놈들이 나왔군요.”

그 동안 자룡궁의 배후에 천교를 멸문시킨 암중 신비세력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했었다.

증거가 없어 확신하지 못했을 뿐.

그런데 마침내 단서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혁련휘와 혁련장도 신비세력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군.’

[영풍장도 놈들과 연관되어 있을 거다.]

“그러겠죠. 일단은 수레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청운과 혈황은 도망친 자들이 남기고 간 수레로 향했다.

저 멀리서 금의위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함정을 파고 기다렸던 건 백살마녀만이 아니었다. 청운 역시 멀지 않은 곳에 금의위들을 숨겨두고 있었다.

* * *

영풍장에 전운이 감돌았다.

나름대로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모처에 지원을 요청했다.

함정을 파고 돌아오기로 한 시기도 앞당겼다.

그 때문에 따로 사람들을 파견하지 않고도 나름대로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도착했어야 할 백살마녀가 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이 틀어진 게 확실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움직일 수도 없었다. 정예 전력이 빠져나가면 정파의 습격을 받을지 몰랐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일단 경계부터 강화했다.

“아직이더냐? 아직 한란에게서 연락이 없느냐?”

“예, 사람을 보낼까요?”

“아니다. 모두 습격에 대비하고 준비한 것을 점검하라 일러라.”

영풍장주 고중월은 이를 악물었다.

한 놈이라면 이처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금의위에 이어서 뇌신룡마저 날뛰고 있었다.

어쩌면 뇌신룡과 연관된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상부에서도 그 점을 중시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영풍장의 증원 요청에 흑야대를 파견해 준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들이 있는 이상 자룡궁에 있는 정파 놈들이 모조리 몰려와도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돌아와야 할 한란이 오지 않으니 짜증만 났다.

‘빌어먹을! 바보 같은 운형검만 아니었어도….’

고중월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지난번 화산파와의 싸움만 아니었어도 이처럼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소소검 한매의 은원 때문에 치러야 했던 대가가 너무도 컸다.

고수들의 부재가 너무도 뼈아팠다.

그런 고중월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곁에 있던 중년 사내가 말했다.

“가주, 너무 심려 마시오. 흑야가 나섰으니 놈은 필히 죽임을 당했을 것이오. 그들이 펼치는 검진은 나라 해도 감당할 수 없으니….”

고중월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의 두 눈에 배가 툭 불거진 돼지가 들어왔다. 어찌나 먹어대는지 지금도 그의 손에는 커다란 족발이 들려 있었다.

고중월은 목구멍으로 울컥 올라오는 무언가를 억지로 삼켰다.

이을 앙다문 그는 고개를 돌렸다.

‘빌어먹을 놈, 네놈 같은 자들 열이 덤벼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는 고수란 말이다.’

고중월은 차마 속마음을 내뱉지 못했다. 저 돼지도 상부에서 파견해 준 자였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유가기공을 익히고 있는 고수였다. 한 손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니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말대로 된다면 다행이지만 불안했다.

‘아니야. 이곳에도 흑야가 있으니 해볼 만해.’

파견 나간 흑야대는 서른다섯 명이었다. 이곳에도 흑야대원이 칠십 명이나 있었다.

숫자가 두 배나 되었다.

영풍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백여 명이 모여 있었다.

금의위 복장을 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기도를 숨긴 채 청운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운은 영풍장을 보며 혈황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흠, 조금 이상한데?]

조금 전부터 혈황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영풍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특별한 기운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딘지 전과 다른 분위기였다.

-놈들이 함정을 파고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청운이 우려하던 상황이었다.

이미 백살마녀를 통해서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영풍장에도 함정이 펼쳐져 있을 수 있었다.

[함정이야 박살 내면 되는데……. 어째 찜찜하구나.]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지 않습니까?

진퇴양난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살펴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혁련휘가 문제였다.

‘휘 녀석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이미 몸을 피했을까?’

놈의 성격상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도망칠 확률이 높았다.

놈은 평상시에도 좀처럼 앞에 나서지 않았다. 모든 걸 살피고 움직이는 꼼꼼한 성격이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놈. 그런 놈이기에 불리하다 싶으면 도주할 수도 있었다.

청운은 자신을 보고 있는 금의위 중 대장격인 석덕조를 불렀다.

“석 천호.”

“예, 대인.”

“금의위는 뒤로 물러선다.”

“대인, 위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를 아끼시는 것은 알지만 홀로 쳐들어가기에는 적의 힘이 너무 강합니다.”

석덕조는 청운이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청운의 보호를 받을 수는 없었다.

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싸움은 나 혼자 한다. 그대들은 천라지망을 펼치고 대기하라. 이번 임무의 핵심은 싸움이 아니라, 혁련휘의 체포임을 명심해라.”

“충! 명을 받들겠습니다.”

석덕조는 청운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앙다문 그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천라지망을 형성했다.

금의위들이 떠나는 것을 살핀 청운은 영풍장으로 발걸음하며 생각했다.

‘휘가 여전히 나를 무시하면 좋겠군. 그런 마음이 있다면 필히 남아 있을 텐데.’

청운은 혁련휘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알기에 눈을 빛냈다.

영풍장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몇몇 위사가 입구에 서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오가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청운은 길게 뻗은 대로를 거침없이 걸었다. 그 모습을 본 위사들이 긴장했다.

이미 위에서 습격이 있을 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 지시에는 수상한 자가 나타난다면 곧장 위에 알리라는 내용도 있었다.

입구를 지키던 자들 중 하나가 부리나케 안으로 뛰어들었다.

남은 자들 역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청운을 경계했다.

겉모습은 평범하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기도를 흘리는 자였다.

정문에 다가선 청운은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쾅!

가벼운 손짓 한 번에 현판이 산산조각 나서 흩날렸다.

입구를 지키던 표사들이 깜짝 놀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도망치듯이 뛰어들었다.

청운은 천천히 활짝 열린 대문을 통과했다.

넓은 마당이 보였다.

한쪽에 짐이 쌓여 있었다. 상단이라는 이름을 걸고 표국 일도 하는 곳이니 짐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 짐 뒤에 웅크리고 있는 자들은 상단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청운은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사방에서 숨죽이고 있는 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기운이 약한 걸 보니 영풍상단의 일반 무사들인 듯했다.

청운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때 놈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슈슈슈슉.

단검과 암기가 청운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충분히 예상한 공격이었다.

청운은 손을 휘저었다.

후웅!

한차례 바람이 마당을 휩쓸고 지나갔다.

후두두둑.

땅바닥으로 수십 개가 넘는 단검과 암기들이 떨어져 내렸다.

청운은 일반 무사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오문 무리와는 또 달랐다.

청운은 그들을 순식간에 지나쳐서 안쪽으로 이어진 큰 대문을 마주했다.

곁에 있던 혈황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생각보다 강하고 많다. 네가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가겠느냐?]

-예, 이번에 혁련휘를 놓치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위험함을 알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오늘 잡지 못하면 어디론가 사라질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잡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우웅!

콰앙!

청운의 장력에 대문이 지붕 채 터져나갔다.

뻥 뚫린 정문 너머로 수십의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흑풍의를 입은 사내들.

흑야대였다.

신비세력의 전투집단.

‘놈들이 이곳에도 있었군.’

몇 시진 전에 마주했었던 자들과 동일한 자들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떡하니 앞에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청운은 주저 없이 검을 뽑았다.

공력을 끌어올린 그는 뇌룡표풍검을 펼치며 곧장 치고 들어갔다.

흑야대 역시 준비하고 있었기에 곧장 검진을 발동시켰다.

파지징.

쾅!

힘 대 힘의 대결.

서른다섯 명의 내공이 하나로 뭉친 흑야대의 힘은 청운의 공격력을 상회했다.

주춤 물러선 청운은 곧장 보법을 펼치며 신형을 흩트렸다.

처음에는 유령기환보를 밟으며 잔상을 만들었다.

다시 청운과 흑야대가 격돌했다.

백살마녀와 함께 있던 자들에 비해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만큼 강했다.

청운은 뇌룡표풍검을 거침없이 휘두르며 흑야대를 압박했다.

흑야대 역시 다섯 무리가 돌아가며 청운의 검에 맞섰다.

장내는 순식간에 폭풍을 만난 듯 어지러워졌다.

땅바닥이 뒤집히고 담장이 무너졌다.

기파가 터지며 공격의 영향권에 든 모든 사물을 박살 났다.

따다다다당!

청운은 검을 빠르게 휘두르며 따라붙는 흑야대를 떨쳐냈다. 약간의 거리가 벌어지자 청운은 하공을 밟고 검진의 중신으로 뛰어들었다.

왼손에 묵룡파천권의 힘을 담아서 진의 중심에 일권을 날렸다.

쾅!

이어서 뇌룡표풍검이 뇌전을 머금고, 틈이 벌어진 검진을 강타했다.

“크윽.”

직격당한 흑야대 무인들이 물러섰다.

순간적으로 검진이 멈췄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청운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회풍구류검.

검기가 회전하며 앞줄에 있던 자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흑야대의 검진을 이루던 핵심인물 한 명과 다섯의 몸에 구멍이 뚫렸다.

그로 인해 하나로 움직이던 검진이 깨지자, 흑야대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청운은 곧장 가슴으로 검을 끌어안았다. 검을 빙글 한 바퀴 돌린 그는 사방으로 검기를 발출했다.

슈슈슈슈슉!

퍼버버버벅!

청운의 공격을 막아보려 했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났다. 흑야대가 청운과 대등하게 검을 섞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검진 때문이었다.

그 검진이 사라졌으니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으악!”

“컥!”

하나둘 흑야대가 쓰러졌다. 청운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살계를 열었다.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손속에 사정을 둘 만큼 약하지 않은 자들이기에 과감하게 죽였다.

청운은 빠르게 보법을 펼치며 사방을 휘저었다.

그때였다.

챙!

소리 없이 날아든 비도가 허공에서 빙글 돌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게 보였다.

팟.

청운은 바닥을 차며 뒤로 물러섰다.

푸욱!

청운을 상대하던 흑야대 무인의 가슴에서 시퍼런 검날이 튀어나왔다.

다행히 청운은 그 자리에 없었다.

가슴이 뚫린 흑야대 무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의 뒤에는 흑립을 쓴 흑야대 무인이 서 있었다.

그는 검에 묻은 피를 허공에 털어내며 청운을 노려보았다.

흑립 밑으로 그의 이빨이 보였다.

씨익 웃는 모습이 야차의 미소 같았다.

“허.”

청운은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동료의 가슴을 찌른 것이다. 자신의 시야를 가린 기습공격이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혈황이 다급하게 말했다.

[조심해라. 강한 놈들이 섞여 있다.]

청운 역시 느끼고 있었다. 방금 상대한 자들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파밧!

청운은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에 보법을 밟았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고 신형을 흩트렸다.

순간, 청운이 있던 땅바닥이 갈라지며 불쑥 검날이 튀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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