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95화 (95/257)

# 95

95화

한란이 손을 살짝 들었다. 그게 신호인 듯 청운을 포위한 자들이 공격 자세를 취했다.

한란이 청운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동생, 뇌신룡이 아니라 삼원 이청운이었어?”

“어떨 것 같습니까?”

“개인적으로 삼원이었으면 해. 듣자 하니 잘생겼다던데.”

“그런 얘기는 자주 듣습니다.”

청운은 부정하지 않았다.

이미 항주와 소주에서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었다. 덕분에 중원 전역에 소문이 났다.

그래도 그동안 자신이 뇌신룡인지는 모르고 있었을 텐데 오늘 일 때문에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문제는 영풍장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혁련휘가 이 소식을 들으면 엉덩이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도망칠지도 모르겠군.’

아무리 영풍장이 강해도 작심하고 잡으려 했다면 혁련휘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혈황의 복수 때문에 아직 잡아들이지 않았다. 배후에 있는 자들을 끌어내려고.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놔둘 이유가 없을 듯했다.

‘하긴, 정리할 때도 됐지. 너무 오래 놔뒀어.’

청운이 생각을 정리할 때 포위한 자들이 움직였다.

일곱 명이 한 조씩 다섯 조였다. 그들은 청운을 중심에 가두고 오행의 방위를 막았다.

한란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청운을 노려보았다.

“동생 실력이 그렇게 좋다던데, 오늘 이 누나 눈 호강하게 생겼네.”

“눈 호강하려다 눈알 빠지는 사람을 더러 봤지요.”

“그 입 놀리는 것도 오늘로 끝이 될 거 같아 안타깝군. 그럼 어디 시작해볼까?”

한란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흑립 사내들이 곧장 진을 발동했다.

청운도 보고만 있지 않았다. 흑립 사내들이 진을 발동함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챙! 채재쟁!

청운은 연달아 검을 떨치며 흑립 사내들을 공격했다.

흑립 사내들이 검진을 펼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지난번 대향림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그의 무공은 한 단계 발전한 상태였다.

지금 실력이라면 영풍장에 숨어 있는 고수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검을 마주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이것 봐라?’

청운은 자신의 공격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자들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개인의 실력은 자신보다 한참 떨어졌다. 그런데 검진의 위력인지 검을 타고 전해지는 묵직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의 검에서 전해지는 힘이 배가되었다.

‘진의 중심에 선 저들 다섯이 문제군.’

각 조마다 중심이 되는 자들의 실력이 대단했다.

다른 이들이 위기에 처하면 어느새 그들이 나서서 그의 공세를 막았다.

거기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처음에는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었는데 점점 조여들고 있었다. 진법이 압축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진이 좁혀질수록 위력이 늘어나는구나.’

진이 발동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압박감이 두 배가 되었다.

찌이이잉!

청운의 검이 검명을 토해냈다.

동시에 청운의 신형이 여러 개로 분리되었다.

그는 유령기환보를 밟으며 환영을 만들었다.

동시에 회풍구류검을 사방에 뿌렸다. 다수를 상대로 위력을 발휘하는 검법이었다.

따다다다당!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청운이 절기를 펼치는데도 검진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평소라면 곁에 와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을 혈황도 입을 닫고 조용했다.

해볼 수 있는 데까지 마음대로 해보라는 뜻인 듯했다.

‘진을 깨려면 저들 다섯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검진의 약점은 이미 발견했다. 그들의 움직임 역시 모두 파악했다.

문제는 점점 거세지는 압박을 어떻게 떨쳐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청운은 회풍구류검을 버리고 뇌룡폭풍검으로 전환했다.

빠지지지직!

파징, 파징.

뇌룡폭풍검에 담긴 뇌기가 검진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청운과 검을 맞댄 사내들이 움찔거렸다. 덕분에 진이 조금은 헐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청운은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크르르릉!

짐승의 포효 같은 소리가 청운의 검에서 울렸다.

순간, 허공을 가르는 청운의 검에서 한 마리 뇌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뇌룡은 이내 검진의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조심하라! 뇌룡이다!”

목표가 되었던 자들이 빠르게 물러섰다. 곁에 있던 자들이 자리를 메우며 힘을 보탰다.

콰콰광!

연이어 폭음이 들리더니 뇌룡이 푸른 번개를 남기고 사라졌다.

‘제법 준비를 철저히 했군.’

이처럼 쉽게 사라질 뇌룡이 아니었다. 이미 청운이 익힌 무공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지난번 영풍장과의 대결에서 보인 뇌신룡의 무공을 보고 파훼법을 준비한 것 같았다.

흑립 사내들이 청운의 공격을 막긴 했지만, 그 대가로 검진이 조금 더 헐거워졌다.

청운은 다시 뇌룡을 일으켜서 검진을 두들겼다.

이번에도 사내들은 주춤하기만 했을 뿐 누구 하나 쓰러지는 자가 없었다.

‘강력한 일격인데 막아냈다는 것은 이들의 내공이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뜻이군.’

검진은 서른다섯 명의 내공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여섯 명의 내공을 한 사람이 받아서 일곱이 되고 일곱이 하나가 되어 다섯을 이룬다.

다섯이 다시 하나로 이어져 있으니 다시 보기 힘든 검진이었다.

그들 모두의 내용이 합쳐졌다면 청운이 아무리 고수라 해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모든 내공을 내준다면 한순간도 버티지 못할 터. 아마도 이삼 할, 많아야 삼사 할 정도의 내공이 한 곳으로 뭉쳐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다섯 사람이 내공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과 비슷했다.

회리리릭.

청운은 요혈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을 피하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일반적으로 허공은 디딤 발이 없어서 움직임에 제한이 걸린다.

그런데 청운이 허공으로 몸을 피하자 검진을 펼치는 자들의 두 눈에 광채가 번뜩였다.

청운의 뒤를 따라서 다섯 줄기의 검기가 솟구쳤다.

슈슈슈슈슉.

일직선으로 날아간 검기는 청운을 휘감았다.

팟.

청운은 허공을 밟으며 빙글 몸을 회전했다.

청운의 몸이 스르르 옆으로 미끄러졌다.

“어떻게 허공에서 저런 움직임을 보이지?”

멀리서 지켜보던 한란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극상의 경공술이었다.

허공에 뜬 상태에서 평지처럼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다니,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찌이잉.

청운의 검이 높이 솟구쳤다.

정점에 이르는 순간 강한 빛을 폭발시켰다.

쾅!

크아아앙!

한 마리 청룡이 빛 속에서 용음을 토해내며 튀어나왔다.

청마룡이었다.

청룡은 먹이를 노리듯 곧장 다섯 줄기의 검기를 덮쳤다.

“크아악!”

“커억!”

처절한 비명과 함께 강력했던 검진이 깨졌다.

청운은 망설임 없이 검을 회수하며 사방으로 검기를 날렸다.

촤라라랑.

허공에 푸른 검광이 가득했다. 뇌전이 어두운 하늘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쩌저저저정!

동시에 다섯 줄기 뇌전이 바닥을 향해서 내리꽂혔다.

청운은 계속 청마룡을 운용하며 뇌룡폭풍검을 연달아 펼쳤다.

뇌룡멸겁이 사내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폭음과 비명이 뒤섞여서 터져 나왔다. 사지가 잘리고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서 있는 자는 고작 일곱.

청운은 섬전보를 밟으며 비틀거리는 흑립 사내들을 향해 검을 질러 넣었다.

푹! 푸욱!

청운을 공격하던 서른다섯이나 되던 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지켜보던 이들이 아연실색했다.

일부 쟁자수와 표사들은 공포에 질려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자식… 뭐야, 어디서 저런 괴물이……!”

한란도 안색이 창백해진 채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처럼 도망칠 수는 없었다.

철저히 준비한다고 했건만 청운을 어찌하지 못한 것이 억울한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말도 안 돼…….”

신음과 같은 소리가 그녀의 비틀린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청운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의 두 눈에서 안광이 폭사되었다.

한란은 지옥의 야차를 본 것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청운은 한 발 한 발 그녀를 향해서 다가갔다.

이를 악다문 한란은 두려움을 떨쳐내며 양손에 내공을 주입했다.

그녀의 손이 갈고리처럼 변했다.

손가락 하나하나에서 하얀빛이 스며 나왔다.

스스스스.

“감히 나를 우롱하다니. 네놈의 심장을 꺼내서 씹어 먹어 주마!”

곧장 앞으로 튀어나간 그녀는 청운을 향해서 양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지공이 허공을 찢었다.

챙!

청운의 검과 그녀의 지공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검기와 부딪쳤는데도 한란의 손가락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십여 합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한란은 뒤로 훌쩍 물러서며 청운의 검을 피했다.

물러서는 그녀의 두 눈에서 하얀 불꽃이 튀었다. 그녀의 옷자락이 일순간 팽팽해지며 쫙 펴졌다.

쐐애액!

동시에 그녀의 손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백색 강기가 허공을 가르며 뻗어나갔다. 그녀의 독문무공인 탄천마강이었다.

지금의 백살마녀를 있게 만든 최고의 무공.

그러나 이를 알고 있는 청운은 곧장 빙그르르 몸을 돌리며 사방에 잔상을 만들었다.

청운의 잔상이 지강에 꽤 뚫리며 하나둘 흩어졌다.

사라지는 잔상만큼 새로운 잔상이 나타났다.

청운의 잔상이 점점 한란을 포위했다.

“죽어라, 개자식아!”

한란은 미친 듯이 소리치며 쌍장을 휘저었다.

만천화우를 펼치듯이 지공을 쏘았다.

청운의 잔상 중 하나가 허공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잔상은 격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 잉어처럼 그녀가 쏘아 보내는 지공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한란의 눈이 커졌다.

청운과 그녀의 두 눈이 마주쳤다.

덜컥 겁이 난 한란은 이를 악물고 탄천마공을 극성으로 펼쳤다.

슈슈슈슈슉!

하지만 그 정도 공격으로는 청운을 잡을 수 없었다.

청운의 신형이 쌍장을 휘두르는 한란을 지나쳤다.

푹!

“컥!”

한란의 입에서 외마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고개가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칼자루가 자신의 가슴에 달려 있었다.

그녀는 불신이 가득 담긴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청운은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한쪽 손을 뻗었다.

펑!

그녀의 가슴에 박혀 있던 장검이 그대로 가슴을 박살 내며 청운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뻥 뚫려버린 가슴 사이로 여러 주검이 보였다.

쿵.

한란의 몸이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허물어졌다.

무림 악녀로 이름 높던 백살마녀 한란의 최후였다.

청운은 몸을 내려다보았다.

옷자락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아직 부족하군.’

한란에게 입은 흔적도 있었지만 서른다섯이 펼쳤던 검진에 의한 흔적이 더 많았다.

다행이라면 단단한 몸뚱어리와 호신강기로 적절히 몸을 보호해서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운은 힐끔 혈황을 보았다.

혈황 역시 청운을 보고 있었다.

청운이 머뭇거리자 혈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싸웠다. 아직 부족하지만 이제는 어디 가서 비명횡사하지는 않겠군.]

완전한 인정은 아니었다.

그저 홀로서기를 할 만큼 청운의 실력이 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직 부족한 것 같은데요.”

청운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그렇게 상처도 입고 옷도 버리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맞으면서 배울 때보다는 나았다.

“알겠습니다, 혈황 님.”

이곳에서의 싸움만 끝났을 뿐,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영풍장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면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런데 혈황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조금 전, 검진을 펼친 시커먼 놈들 말이다….]

“예, 아시는 자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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