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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90화 (90/257)

# 90

90화

일개 병사들이 진무사의 추상같은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이왕신도 한 방에 쓰러졌다.

차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당장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청운은 은전을 나눠주는 자들을 보며 말했다.

“여기 은자 천 냥이 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는 자에게 포상으로 내리겠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미 천 냥을 받은 인물이 있지 않은가.

모두들 눈빛을 빛내며 청운을 바라보았다.

“매음굴의 위치와 납치당한 이들이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지 알려주는 자에게 포상하겠다.”

“제가 압니다.”

“소인이 제일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나리! 그놈들보다는 제가 알 압죠!”

눈치 빠른 이가 서둘러 손을 들고 나섰다. 돈에 눈이 돌아간 그들은 서로를 헐뜯으며 돈을 차지하려고 아우성쳤다.

청운은 한 명을 뽑은 뒤에 병사들과 함께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앞을 막아서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청운은 매음굴을 돌며 여자들을 옮겼다.

빚으로 팔려온 이도 있을 것이고 강제로 끌려온 여자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살기 위해서 제 발로 걸어들어 온 여자도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삶이 박복하구나.’

청운도 조실부모하고 어려운 생활을 했었다.

뛰어난 머리를 인정받지 못했다면 지금의 지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병사들은 서둘러 사람들을 구하라.”

작업은 계속되었다.

구해진 여인들은 모두 소흥 천호소로 보내졌다.

곡물상회에 있던 여자들도 모두 천호소로 보내졌다.

천호소는 난리가 났다.

끝없이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수백 명이 몰려왔건만 아직도 더 많은 이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 * *

소흥이 백가장과 청운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수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

대부분 백가장에 의한 살육이었다.

그렇다고 청운의 손에 죽은 이들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사실은 밤이 채 지나기도 전에 소흥 전체에 퍼졌다.

덕분에 살아남은 하오문도들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고 급하게 소흥을 떠났다.

대대적인 토벌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하오문이라 할지라도 방법이 없었다.

상대가 너무도 강했다.

그렇게 소흥에 있는 하오문은 하룻밤 사이에 토벌되었다.

다음 날, 소흥 천호소로 간 청운은 황당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관복을 멋들어지게 입은 중년 사내가 청운에게 큰소리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아무리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았다지만 경우가 아니지 않습니까!”

청운은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눈앞의 인물은 이곳 천호소를 관장하는 주만 천호장이었다.

오군도독부 소속이라서 그런지 금의위 소속인 청운에게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둘은 품계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었다.

황제의 최측근인 청운에 비해서 주만은 고작해야 지방에 있는 천호소 천호장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진무사인 청운에게 이처럼 대든다는 것은 그에게 뒷배가 있다는 말이었다.

청운은 그의 뒷배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만이 자신의 뒷배를 밝혔다.

“이곳은 남경왕부 관할입니다. 진무사의 행동은 이미 보고했습니다. 어찌 진무사가 허가 없이 활개를 쳐서 왕야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말씀이십니까?”

청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이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해 못 할 상황은 아니지만 천호장에게 들을 말도 아니었다.

그가 우려하는 부분은 하나뿐이었다. 남경왕부의 주 왕야가 황제의 친동생이라는 것.

남경왕부의 권세는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막강했다.

황제 역시 아끼는 동생이기에 남경을 맡겼다.

이곳 천호소는 오군도독부 소속이지만 남경왕부의 명령을 받는다. 그러니 중앙에서 내려온 청운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주만은 자신의 말을 듣고 반박하지 않는 청운을 보며 득의양양했다.

점점 콧대가 올라간 그는 목청마저 올렸다.

“진무사는 이번 일에 대해서 책임을 회피하지 못할 것이오. 감히 쥐꼬리만 한 권력을 믿고 수천의 죄 없는 백성을 죽인 죄를 엄히 물을 것이오.”

턱을 하늘 높이 들며 거들먹거리는 그의 행동은 안하무인이 따로 없었다.

청운의 열릴 것 같지 않던 붉은 입술이 벌어졌다.

“다 떠들었는가?”

“머, 뭐라?”

“개소리 다 짖었냐고 물었다.”

“…….”

청운의 차가운 한마디에 주만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청운에게서 알 수 없는 위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강자의 위엄이었다.

“죄 없는 이들을 죽여? 네놈 눈에는 저기 죽지 못해 사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납치당해서 몸을 팔아야 했던 저 여인들이 불쌍하지도 않으냐?”

청운은 함께 온 여자들을 가리키며 냉랭하게 말했다.

그가 더욱 강하게 몰아붙이려고 하는데 입구에서 청아한 소리가 들렸다.

“누가 그들이 죄가 없다는 것이고, 납치를 당했단 말인가?”

주만 천호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청운의 고개가 돌아갔다.

곤룡포를 입은 사내가 천호소 입구를 지나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주위에 수십 명의 무장을 거느린 그의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청운은 몸을 돌려서 곤룡포를 입은 사내를 보았다.

균형 잡힌 몸매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을 가진 인물이었다.

‘고수다.’

한눈에 그가 예사롭지 않은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청운은 그자의 가슴에 수놓인 용을 보고 예상할 수 있었다.

[황족이군. 용 다리가 네 갠데?]

혈황이 그자의 가슴에 수놓인 용의 다리를 세고 말했다.

발이 네 개 달린 용을 가슴에 달수 있는 인물은 황족뿐이다.

문제는 사내가 황족 중 누구냐는 것이었다.

곤룡포의 사내가 기단을 올라 청운 앞에 섰다.

청운이 사내를 보며 먼저 예를 취했다.

“진무사 이청운입니다.”

“반갑네. 나는 응천부 부윤으로 있는 주천옥이네.”

“칠왕야를 뵙습니다.”

사내는 황제의 열두 동생 중 일곱째 동생인 주천옥이었다.

그가 남경에 있는 응천부의 윤(尹)으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응천부(應天府)는 남경왕부가 자리 잡은 남경을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곳이고 윤(尹)은 그곳의 대장을 가리켰다.

“진무사 이야기는 귀가 따갑게 들었네. 황상께 여쭤보니 황궁무고에서 기연을 얻었다고?”

“모두 황제 폐하의 성은(聖恩)이옵니다.”

감출 일은 아니기에 사실대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기연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청운의 대답에 주천옥은 피식 웃음 지으며 청운을 살폈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그의 신분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불쾌감도 잠시 주천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강서백가와 함께 소흥을 피바다로 만들었다고?”

“죄인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불가피하다. 수천이 죽었는데도?”

“물론입니다. 즉결처분은 진무사의 고유 권한입니다.”

청운은 당당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해명할 수도 있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천옥이 우려하던 부분을 꺼내 들었다.

“진무사는 그렇다 치고 강서백가는 어떻게 된 일인가?”

“제가 도움을 청하기도 했고 그들의 은원이 걸린 일입니다. 그들의 어린 가족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 억울한 일. 가족이 억울하게 죽었으면 수천 명을 죽여도 된단 말인가?”

청운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백가장에게 혈겁은 안 된다고 말했다.

칠왕야는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렇다 치세,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니. 그런데 말이야.”

주천옥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청운을 보았다.

한 마리의 독사가 먹이를 노리는 듯한 눈빛이었다.

“증거는 있나?”

“정황과 증인이 있습니다.”

이미 예상한 질문이기에 청운은 곧장 답했다.

그러나 주천옥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 없이 수천을 죽였다는 말인가?”

“확실한 정황과 증언 그리고 그들의 앞을 막고 습격한 하오문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판단할 때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크하하하. 어이가 없군.”

주천옥이 크게 웃었다.

청운은 주천옥이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주천옥은 고개를 돌려서 기단 아래를 보았다. 함께 이곳으로 들어온 수십 명의 무인이 있었다. 그들을 향해서 명령을 내렸다.

“당장 소흥을 피로 물들인 강서백가 무인들을 끌고 와라!”

“존명!”

추상같은 명령에 무장들이 움직이려고 할 때 청운이 나섰다.

“멈춰라! 왕야, 불가합니다.”

청운은 무장들의 발길을 막았다.

주천옥이 억지를 부리는 데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 청운의 행동에 주천옥은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청운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이를 드러냈다.

“진무사, 뭐하자는 것인가? 감히 나를 막겠다는 것인가?”

제국의 하늘 아래에서 왕족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은 엄청났다. 그런 왕족의 앞을 막고도 무사할 수 있겠냐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청운은 마지막 패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뭘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이 일은 응천부 윤께서 나서실 일이 아닙니다.”

“머, 뭐라?”

청운의 말에 칠왕야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의 신분은 청운이 감당할 수 없는 황족이었다.

그래서 청운은 황족이 아닌 관리로 상대하겠다는 선포를 했다.

자신이 물러선다면 백가장은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청운의 응대가 주천옥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가, 감히 나에게 맞서겠다고?”

“왕야, 진무사의 권한을 정녕 모르십니까?”

차분한 청운의 응대에 주천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 감히 나를 겁박해?”

새파란 진무사 따위가 자신을 겁박하다니!

절로 이가 갈렸다.

빠드득!

하지만 함부로 막 대할 수도 없었다.

청운의 말대로 진무사에게는 말도 안 되는 권한이 있었다.

어떠한 사법기관을 거치지 않고 감찰, 체포, 형옥, 처벌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북진무사는 황제의 최측근이나 황족들에게 주어지는 무소불위의 관직이었다.

더군다나 황족이라 할지라도 조사하고 포박할 수 있는 권한이 진무사에게 있다는 것을 주천옥은 잘 알고 있었다.

주천옥은 청운을 한동안 노려봤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앞을 막아서는 청운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다고 당장 치도곤을 낼 수 있는 자도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그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진무사가 아니던가.

“빠드득, 이청운! 오늘 일… 잊지 않을 것이네.”

주천옥은 이를 갈며 휭하니 몸을 돌렸다.

기단을 내려가서 함께 온 무장들과 돌아가려 했다.

그때 청운이 무장들을 보며 물었다.

“잠깐! 그대들은 남경왕부 무장인가, 아니면 금의위 소속인가?”

주천옥과 함께 온 무장 중 하나가 몸을 돌려서 군례를 취하며 대답했다.

“저희는 금의위 소속입니다.”

“그래? 복장이 달라서 설마 했는데 금의위였군. 어디 소속인가?”

“예, 남경 위소(衛所)에 속한 금의위입니다.”

금의위 위소는 중원 전역에 오십 개가 넘는다. 이들은 그중 한곳인 남경 위소의 금의위였다.

청운은 남경이라는 말에 피식 웃으며 무장에게 다시 물었다.

“금의위 어디 소속인가? 남진무사인가, 북진무사인가?”

“부, 북진무사입니다.”

“후후, 그럼 내 휘하라는 말이냐?”

“예, 진무사.”

대답하는 무장의 얼굴에는 귀찮게 왜 묻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청운은 황당함에 얼굴이 굳었다.

중원 전역에 있는 금의위 중에는 북진무사에게 배속된 다섯 군데의 위소가 있다.

그중 제일 큰 곳은 황도에 있고 중경과 이곳 남경이 두 번째로 컸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청운 휘하의 직속 금의위라는 말이었다.

‘이놈들이 왕야를 믿고 상관을 무시하겠다는 건가?’

안 그래도 속이 안 좋은데, 그동안 조용히 있던 혈황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미 네가 누군지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도 무시하는 걸 보니 너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는 거군. 몇 대 패라. 지금 얕보이면 나중이 힘들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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