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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81화 (81/257)

# 81

81화

적에게 허점이 드러났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청운에게 전력을 다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철컥!

슈슈슈슉!

은빛 광채가 사방에서 청운을 향해서 폭사되었다.

가느다란 세침이었다. 너무 세밀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암기들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세침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언뜻 보였다. 극독이 발라져 있는 게 분명했다.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각자의 독문무공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슈슈슈슉!

쉐에에엑!

검기와 장력들이 청운의 몸을 강타했다.

퍼버버버벙.

굉음과 함께 청운이 있던 자리가 폭발했다.

뿌연 흙먼지가 사방을 덮었다.

“됐어! 대라신선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

누군가 크게 외쳤다.

신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 공격을 받고 무사할 수 없다는 강한 자신감이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흙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일부 성질 급한 자들이 장력을 이용해서 바람을 일으켰다.

휘이이잉.

시야를 가리던 흙먼지가 사라졌다.

“어? 없다.”

“어디냐?”

형체도 없이 사라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본능적으로 모습이 사라진 청운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외쳤다.

“위다!”

거대한 마룡이 허공에 그대로 떠 있었다. 푸른 뇌전을 머금은 마룡은 험악한 얼굴을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마룡의 머리 위에 한 사내가 오연히 서서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청운이었다.

‘폭멸천하!’

콰르릉!

고막을 찢어발기는 뇌음과 함께 청운이 검을 내리그었다.

동시에 잔뜩 성을 내던 마룡이 지상으로 빠르게 날아들며 살아남은 자들을 일거에 휩쓸었다.

콰과과광!

집채만 한 마룡이 휩쓸고 간 자리에 무사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모조리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크윽.”

모든 것을 쓸어버릴 엄청난 공격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다.

숫자는 십여 명, 낭패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어 보였다.

스스스.

청운의 몸이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섰다.

차가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뚝 선 청운의 모습은 전신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살아남은 하오문 무사들은 청운을 포위했다.

“네, 네놈은 누구냐?”

살아남은 하오문도 중 한 명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청운에게 물었다.

묵묵부답.

청운은 대답 대신 질문한 사내를 향해서 일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서걱.

깔끔한 한 수.

평범한 공격이었는데 피하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눈으로 지켜보고도 믿지 못할 상황에 다른 이들이 주춤 몸을 떨었다.

열릴 것 같지 않던 청운의 입술이 열렸다.

“지옥으로 보내주마.”

빠지지지징!

슈슈슈슈슉.

청운의 신형이 번개처럼 빠르게 사방을 휘돌았다. 그의 움직임은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그들이 청운의 빠른 공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모든 이들이 차디찬 바닥에 쓰러졌다.

오직 청운만이 백여 구의 시체가 널브러진 대지 위에 우뚝 서서 공허하게 하늘을 볼 뿐이었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모두가 네놈들이 뿌린 씨앗이니.”

청운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쳐서 한 마리 비조가 되어 사라졌다.

휘이잉.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백여 구의 시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꿈틀.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곳에 미세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어지러이 널려 있는 시체들 사이에서 한 인형이 상체를 일으켰다.

“커헉.”

막혔던 숨을 몰아쉬며 차가운 공기를 들이켰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사내의 숨소리는 거칠었다.

어깨부터 그어진 검상이 길게 가슴을 지나 반대편 허리로 이어져 있었다.

깔끔한 일검에 베어진 상처였다.

그런데 가슴과 배 부분에서는 피가 흘러내리지 않았다. 어깨 부분에서 흘러내린 피가 가슴과 배를 적시고 굳어 있을 뿐.

사내는 거칠게 웃옷을 찢었다.

길게 베어진 가슴보호구가 보였다.

“천잠사를 덧대서 살아남은 건가?”

가슴보호구를 두르고 있는 비단은 도검을 막아낸다는 천잠사를 엮어서 만든 무가지보였다.

“그 악마 같은 놈에 대해서 알려야 해.”

사내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았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서 적의 출연을 알려야 한다는 것만이 사내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 * *

하오문의 척살대를 모조리 죽인 청운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항주로 돌아왔다.

그가 먼저 향한 곳은 흑검방 본부였다.

“어디 다녀오십니까?”

자리를 내준 장준은 어젯밤 홀연히 사라졌다가 오후가 되어서 돌아온 청운을 반갑게 맞이했다.

청운은 자신의 지시를 기다리는 장준을 보며 말했다.

“오늘부터 이틀 안에 항주에 있는 하오문 지부들을 모조리 청소할 거네. 뒤를 받쳐줄 아이들을 준비하게.”

“드디어 때가 되었군요. 알겠습니다.”

청운은 칼을 빼든 이상 하오문 무리를 최대한 지워버릴 작정이었다.

놈들 중에 도를 넘어선 짐승이 많았다. 물론 죄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몇 때문에 놈들의 악행을 놔둔다면 자신이 검을 잡은 의미가 없었다.

‘이 세상에서 살 가치가 없는 자들은 죽는 게 나아. 그들을 죽여서 선량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살귀가 되어주겠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유시가 지났을 무렵 흑검방이 움직였다.

이미 하오문의 핵심 세력이 어디 있는지 전부 파악한 뒤였기에 움직일 동선을 그려놓았다.

“서문 대로의 천궁객잔부터 시작해서 이쪽 일륜장을 지나서 여기로 이동하면서 하나씩 격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항주를 그려놓은 커다란 지도 위를 가리키며 장준이 청운에게 설명했다.

청운은 설명을 듣고 몇 가지를 수정했다.

“준비를 잘했군. 단, 여기 북문 쪽에도 두 군데의 비밀지부가 있으니 여기도 들리도록 하고 강을 건너서 중앙을 치는 것으로 하세.”

“알겠습니다.”

청운은 흑검방 무사들을 여러 갈래로 나눠서 대기하도록 지시했다.

한꺼번에 움직였다가는 놈들 눈에 띌 염려가 있었다.

최소한 새벽이 올 때까지 놈들의 눈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청운이 먼저 들린 곳은 예정대로 천궁객잔이었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는데 흑검방 무사들이 빠르게 치고 들어가서 박살 냈다.

청운은 그들 틈에 숨어들어서 실력 좋은 자들을 상대했다. 때로는 지풍을 날려서 흑검방을 보호했다.

하오문은 혹시 모를 흑검방의 습격에 대비해서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청운이 함께하는 흑검방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자신이 왜 쓰러지는지도 모른 채 하오문 고수들이 하나둘 쓰러졌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단주라는 자가 끌려 나왔다.

“차후에 심문할 것이니 모조리 포박해서 가두게.”

“예!”

청운이 비록 하오문을 지워버리기로 작정했지만, 그렇다 해서 무작정 하오문도들을 죽이지 않았다.

싸움 도중에 죽는 자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굳이 잡힌 자들의 목을 베지는 않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그들의 죄를 소상히 알아보고 죄상에 따라서 처벌할 생각이었다.

천궁객잔을 마무리 짓고 청운은 곧장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다음 장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운은 무지막지하게 하오문을 공격했다.

앞을 막아서는 자는 용서치 않았다.

그렇다고 모두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 일정 이상 되는 실력을 지닌 자가 나설 때만 살수를 쓰고 다른 이들은 기절하거나 팔다리를 부러트리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항주의 하오문 세력을 대부분 붕괴시킨 청운은 다음 단계를 위해서 백가장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문을 걸어 잠그고 수련에 힘쓰게.”

“알겠습니다.”

장준도 더 이상은 힘에 벅찼다.

기껏 빼앗은 곳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면 다시 적에게 넘어갈 것이 뻔했다.

일단은 빼앗은 곳에 대한 관리부터 철저히 해야 했다.

그는 그 일을 위해서 연합한 세력을 최대한 이용할 작정이었다.

그들에게 일부 권한을 넘기더라도 하오문에 빼앗기는 것은 막아야 했다.

* * *

대향림에 도착한 청운은 끝없이 펼쳐진 산맥을 바라보았다.

‘어디쯤 있을까?’

하오문이나 백가장 무사들이 어디에서 대치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서둘러 그들의 소재를 파악해야 했다.

청운은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가장은 분명히 항주가 아닌 소흥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소흥으로 들어가는 서쪽 길은 대항림과 이어진 부양과 제기, 두 곳뿐이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백가장이 습격을 하려고 움직였다면 눈에 띄는 길을 이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산길로 이동했을 확률이 높기는 한데…… 겉에서는 찾기 힘들군.’

나무에 가려져서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혈황님 어느 쪽일까요?”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 머뭇거리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여라. 이번 기회에 경공수련 한다 생각하고 어디 한번 달려 봐.]

대향림이 문제가 아니었다. 끝도 없이 산맥이 이어져 있었다. 이 깊고 높은 산맥에서 그들을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 한번 달려보겠습니다.”

파밧.

청운의 신형이 한 마리 비조처럼 날아올랐다.

한 번 발을 놀릴 때마다 수십 장씩 앞으로 쏘아졌다.

주변 경관이 빠르게 지나갔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한 시진 만에 찾을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 기감을 펼치고 살피자 아래에서부터 메아리치며 올라오는 병장기 소리를 포착할 수 있었다.

채앵. 채애앵.

청운은 서둘러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으로 향했다. 산세가 수려한 계곡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청운은 망설이지 않고 계곡으로 뛰어내렸다.

다섯 명이 수십 명에게 포위된 채 고전하고 있었다.

청운은 한쪽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의 싸움을 구경했다.

공격하는 자들이나 방어하는 자들 모두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공격하는 자들이 숫자와 실력에서 압도적인데도 소수가 버티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펼치는 검진이 대단하기 때문이었다.

[저 빌어먹을 검진을 오랜만에 보는군.]

-아시는 검진입니까?

[너도 한번 상대해보면 알겠지만… 진짜 빌어먹을 검진이다.]

맺힌 게 많은지 혈황이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백가장 검진은 소림의 백팔나한진에 버금간다. 특히 방어에서는 무적이라고 할 수 있지.]

소림사의 나한진은 공격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에 반해서 백가장의 검진은 방어에 특화되어 있었다.

혈황도 그 검진을 상대해본 적이 있었는데, 진짜 질리도록 끈질겨서 파훼하는 데 한참을 고생했었다.

-하긴 제가 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군요.

청운은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잠시 싸움을 지켜보았다.

챙, 채앵.

맑은 검명이 울리며 불꽃이 튀었다.

다섯이 펼치는 검진은 위태로워 보였지만 연계가 잘되어 있었다.

한쪽이 밀린다 싶으면 다른 쪽에서 상대를 공격하거나 막아냈다. 수세에 몰리며 하나가 아닌 다섯이 나서서 물리쳤다.

‘다섯이되 하나이고, 하나이되 다시 다섯이라니.’

청운은 백가장 무인들이 펼치는 움직임을 보면서 그 속에 담긴 이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검진은 선천 오행과 후천 오행의 묘를 담고 있었다.

청운은 예전에 읽었던 오래된 죽간을 떠올렸다.

-무에서 하나가 나오고 다시 다섯으로 갈라져서 만물을 만드니 이를 선천오행이라 한다. 만물이 그림자를 만드니 이를 후전오행이라 하고 삼라만상이라 명명한다.

저 멀리 동방의 끝에 신선이 사는 나라가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흘러나왔다는 죽간을 읽은 적이 있었다.

‘중원에는 사상팔괘의 이치와 음양오행의 이치가 있다. 오늘 책으로만 봤던 오행만물의 이치를 보게 되다니 행운이군.’

뜻하지 않은 기연이 찾아들었다.

검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환한 불이 켜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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