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80화
퍼버버벅.
청운은 사내의 반문에 다시 두들겨 팼다.
다행인 점은 그렇게 무자비하게 때리면서도 사내가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하도 많이 맞다 보니 어디를 어떻게 때려야 하는지 잘 아는 청운이었다.
적당한 힘 조절과 함께 아픈 곳만 골라서 패자 사내는 정신없이 이런저런 말을 했다.
“저는 하오문 항주지부 왕팔 단주입니다. 칠단주로 항주 서부시장의 점포를 관리합니다.”
왕팔은 자신의 소속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불기 시작했다. 신변잡기부터 하오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모조리 불기 시작했다.
그가 하오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거짓말처럼 청운의 구타가 멈췄다.
말을 하면서도 왕팔 단주는 청운이 하오문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신나게 불기 시작했다. 딱히 비밀내용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 위치가 되면 다 아는 하오문의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험악한 얼굴로 역용한 청운이 씨익 웃자 왕팔 단주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휴, 흉신악살이다.’
잘못하면 명년 오늘이 제삿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청운의 행동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전문가의 솜씨가 분명했다.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처절하게 사람을 다루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사내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던 청운은 처음으로 질문을 했다.
“대향림에서 대치하는 자들은 누구냐?”
“강서백가입니다.”
“강서백가? 설마 백운산 자락의 운성에 있는 그 백가장은 아니겠지?”
무림지존을 배출한 가문은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강서백가는 단연 으뜸이었다.
청운의 눈빛이 두려웠는지 왕팔은 서둘러 대답했다.
“맞습니다. 거기 식솔을 하오문에서 건드렸습니다.”
“뭐?”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면…….”
왕팔은 두 눈에 불을 켜는 청운의 모습에 자신이 아는 내용을 빠르게 풀어놓았다.
일 년 전쯤이었다.
백가장 사람들이 항주에 여행을 왔었다.
그들의 씀씀이와 호위무사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작업을 했다.
결국 약을 타서 모두를 취하게 하고 호위들과 남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여자들을 집단으로 겁탈하고는 소흥에 있는 매음굴에 팔아넘겼다.
갑자기 실종당한 식솔들을 찾기 위해 백가장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대로 사건이 잊힐 때쯤 소흥의 매음굴로 팔려간 여자 중 한 명이 탈출했다.
[이런 미친놈들.]
혈황이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청운도 황당함에 입을 쩍 벌렸다.
그 와중에도 왕팔이 계속 말했다.
“마침 지나가던 병사들에게 그 여자가 구출되었습니다. 웬만하면 병사들이 모른 척할 텐데, 하필 그 병사들을 거느린 인물이 백가장 방계였습니다. 그때 병사들과 하오문이 제대로 한판 붙어서 많이 죽었습니다.”
“탈출에 성공했나 보구나.”
“웬걸요. 전부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려졌지?”
“구경하던 자들 중 한 명이 그 소식을 백가장에 알렸다고 합니다.”
“아!”
“혹시 몰라서 저희 하오문에서 백가장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흥을 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대향림에서 방어를 하는 중입니다.”
“그게 언제쯤이냐?”
“한 달 조금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흑검방이 항주에 들어오기 직전입니다. 만일 백가장과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흑검방이 항주에서 이렇게 활개 치고 다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운이 좋았다.
왕팔의 말대로 하오문의 핵심 전력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흑검방 무사들의 시체가 전당강을 가득 메웠을 것이다.
천운이 따랐는지 흑검방이 항주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을 때는 하오문의 핵심 전력이 대향림으로 떠난 뒤였다. 더욱이 남은 자들 중 일류급 고수들도 소주로 이동했다.
덕분에 항주에 이렇다 할 전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죽기를 각오하고 흑검방을 상대했다면 못 막을 것도 없지만, 남겨진 자들은 핵심 고수들이 돌아와서 처리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청운은 흑검방이 항주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천위대는 뭐지?”
“본문에서 파견 나온 자들인데, 모두 일류 고수 이상이고, 절정 고수도 제법 됩니다. 절강성 일대에서는 그들과 맞설 문파가 없습죠.”
뜻밖의 정보였다.
청운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혈황을 보았다.
-혈황님. 하오문은 무공이 약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너도 겪어 보았지 않았느냐. 그만그만한 녀석들이다. 그런데 저 녀석 말을 들어보니 수상한 구석이 있구나.]
생각보다 하오문의 전력이 강했다.
백가장은 얼마나 많은 고수가 숨죽이고 있는지 모르는 곳이다.
무림지존 백운룡의 유훈이 아니었다면 천하를 향해 포효했어도 몇 번은 했을 가문이다.
그런 가문을 상대로 하오문이 팽팽하게 맞선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백가장이 전력을 투입하지 않았거나 하오문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오문이 강하겠지. 절정 고수가 상당수 있다면 어지간한 대문파와도 붙어볼 수 있을 거다.]
-하오문의 역사를 보면 고수가 있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갑자기 허공에서 솟아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뻔한 것 아니냐? 어디서 기연을 얻었거나 조력자가 생겼나 보지.]
청운은 자신을 보며 도망칠 궁리를 하는 사내를 보았다.
정보를 얻었으니 남은 건 이놈을 어떻게 할지를 정하는 일이었다. 그냥 죽이기에는 아는 것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사내에게 물었다.
“살고 싶으냐?”
“대인! 살려만 주십시오. 무슨 짓이든지 하겠습니다.”
왕팔은 청운이 악귀 같은 놈이라 생각했다.
정말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살길이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청운에게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
그 노력이 가상했던지 청운은 품속에서 천 냥짜리 전표를 꺼내고 말했다.
“살고 싶으면 지금처럼 정보를 건네라. 그럼 그때마다 돈을 주마.”
“예?”
뜻밖의 행동에 왕팔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륙전장에서 발행한 천 냥짜리 전표였다.
꿀꺽.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살아남는 것을 떠나서 어쩌면 한밑천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자리를 옮길까?”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왕팔이 앞장섰다.
쓰러진 동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의리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하오문은 원래 이런 곳이지 알 수 없었다.
* * *
태호 아래에 호주(湖州)가 있고, 호주 아래에는 막간산(莫干山)이 자리하고 있었다.
항주에서 북서쪽에 있는 산으로 간장(干將)과 막사(莫邪)라는 전설의 명검이 탄생한 곳으로 유명했다.
그곳 막간산의 봉우리에 한 사내가 백색 장포자락을 휘날리며 우뚝 서 있었다.
휘이잉.
한 줄기 매서운 바람이 산 아래에서부터 불어왔다.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내의 한쪽 뺌에는 기다란 검상이 그어져 있었다.
역용한 청운이었다.
청운은 무심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곁에 서서 허공을 보던 혈황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는군.]
청운은 고개를 내려서 혈황이 보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일단의 무리가 빠르게 달려오는 게 보였다.
숫자는 백여 명 정도. 움직임이 빠르고 경쾌했다.
“대단하군요.”
[흠. 하오문이 언제 이렇게 컸지?]
청운은 달려오는 하오문 무사들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혈황 역시 하오문이 이 정도 전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했다.
그가 아는 하오문은 그저 이류와 삼류들의 집합체였다. 숫자만 많고 온갖 암기와 독으로 무장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달려오는 자들은 하나같이 강자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조심해라. 하오문은 예부터 암기술과 독술이 발달한 자들이니.]
“알겠습니다.”
모든 하오문 사람들이 개X끼들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눈앞에 보이는 자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다.
하오문 척살단.
왕팔에게 듣기로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백정이라 했다.
“내 결코 네놈들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놈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산 자의 배를 가르고 팔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내서 병신을 만든다고 했다.
청운은 왕팔의 이야기를 듣고 손에 피를 묻히기로 결심했다.
이로 인해서 악마로 불린다 해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눈에 확 보일 정도로 놈들이 다가왔다.
스르릉.
청운은 허리춤에 매인 검을 뽑았다.
검신이 시리도록 맑은 빛을 뿌렸다.
팟.
청운은 산봉우리를 박차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곧장 떨어져 내린 그는 이내 허공을 밟으며 유려하게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극상의 비천무영신법이었다.
그는 오른손에 들린 검에 내공을 불어넣고 서서히 날개를 펴듯이 검을 어깨높이로 들었다.
파바밧.
펄럭거리는 옷자락과 함께 허공을 밟으며 나아간 청운은 둥근 원을 그리며 머리 위로 치솟았다.
‘환우광폭!’
쩌저저정!
속으로 내지른 일갈과 함께 빛이 번쩍였다.
허공에서부터 푸른 빛줄기가 쏟아졌다.
아래에서 빠르게 경공을 펼치던 자들이 가공할 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동시에 자신들을 덮치는 거대한 빛줄기에 기겁했다.
콰과과쾅!
선두에 달리던 자들의 몸이 터져나갔다.
제대로 대항도 못 하고 청운의 일격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그러나 청운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선 청운의 몸이 한 마리 용이 되어 앞으로 나아갔다.
크아아아앙!
거대한 용음과 함께 다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폭멸!’
청운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검을 강하게 올려 베었다.
청운의 검에서 거대한 청룡이 튀어나오더니 달려오던 자들의 가운데를 파고들었다.
“피해!”
누군가 강하게 외쳤지만 조금 늦고 말았다.
청룡의 몸이 번쩍이더니 몸체를 두르고 있던 비늘이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번쩍!
파바바바방.
후두두둑 소리와 함께 가죽 뚫리는 소리가 천지를 뒤덮었다.
선두와 가운데가 뻥 뚫리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좌우와 뒤쪽에서 달려오던 자들뿐이다.
단 이 초식 만에 절반에 가까운 고수들이 생을 달리했다.
가운데로 뛰어든 청운의 신형이 그림처럼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빙그르르.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환우구검을 펼칠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빠지지직.
검에서 푸른 정전기가 일었다.
청운의 가라앉은 몸이 회전하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회오리치듯 푸른 뇌전이 청운의 몸을 휘감았다.
하오문의 고수들 역시 구경만 하지 않았다. 청운이 가운데로 들어오는 순간 각자가 공격을 퍼부었다.
파바바방.
퍼벙 퍼버버벙.
수많은 공격이 쉴 새 없이 청운의 몸을 두들겼다.
그러나 청운의 몸을 돌고 있는 푸른 뇌전의 기운은 절대 방어막이라도 되는지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공격을 당한 청운은 연이어 밀고 들어오는 공격을 그대로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마룡폭풍!’
청운의 몸에서 푸른 청색의 내공이 솟구치더니 뇌기와 한데 어우러졌다.
이내 한 마리 마룡이 되어서 장내를 휘감았다. 뇌기를 머금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뇌기에 둘러싸였던 청운의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허공으로 검을 치켜세운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하오문도의 눈에는 허점투성이로 보였다.
“기회다. 쳐라!”
“공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