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79화 (79/257)

# 79

79화

그들이 지나가고 또 다른 무리가 같은 방향으로 길을 재촉하는 것이 보였다.

[좋은 놈들 같지는 않군.]

그들이 지나갈 때 일반인들이 두려움에 슬쩍 몸을 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을 알고 있거나, 혹은 풍기는 흉흉한 기세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오문도들인 것 같습니다.

청운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 방향이면 기루가 모인 곳이겠군요.

[그렇겠지. 홍등가로 연결된 곳이니 놈들이 가는 곳은 분명 지부 같은 곳일 게다.]

하오문 문도들이 몰려간 곳은 홍루가 모인 홍등가였다.

고급 기루인 청루의 기녀들은 기예를 팔았지만 홍루는 몸을 파는 곳이다.

홍루에서 생활하는 여인들은 청루의 기녀들보다 삶이 풍족하지 못했다. 비참한 생활을 하는 여인들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녀들 중 많은 이들이 하오문과 관련되어 있었다.

청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객잔을 나섰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홍등가로 향했다.

멀리서부터 붉은빛을 뿌리는 수많은 붉은 등이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청운은 기감을 넓히며 무인들을 찾았다.

내공이 높은 자들이 뭉쳐 있는 곳은 필시 하오문의 본거지일 확률이 높았다.

청운이 들어서자 길거리에서 남자들을 붙잡는 여인들이 하나둘 달라붙었다. 여러 가지 흥정을 하며 쉬어가기를 권했지만 청운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역용한 중년의 인물이 차갑고 삭막한 얼굴에 칼자국까지 있어서인지 청운에게 달라붙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움직인 청운은 곧 수백 명이 뭉쳐 있는 곳을 발견했다.

홍등가의 중앙에 있는 건물 앞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건물과 별반 다르지 않은 크기였다.

하지만 혈황이 다녀와서 알려준 바로는 상당한 규모였다.

[앞의 건물은 위장이다. 뒤쪽 벽을 통과하면 안쪽에 큰 장원으로 연결된다.]

청운은 조금 더 앞으로 지나간 뒤에 어둠이 깔린 골목길에서 만화은신사형을 펼쳤다.

절정 고수도 알아보기 쉽지 않은 은신술을 펼친 청운은 곧장 건물의 지붕 위로 올라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래에서 보았던 화려함보다는 칙칙하고 음습한 분위기였다.

-감시하는 자들도 있군요.

[이런 곳은 도둑놈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보통은 지붕 위도 감시를 하지.]

지붕의 어둠이 내려앉은 곳에 몇 사람이 숨어 있었다.

청운은 빠르게 어둠으로 스며들며 모습을 감췄다.

“어서들 오게. 오느라 고생했어.”

“별일 없으셨습니까? 흑검방 놈들이 활개를 치는 바람에 아주 죽겠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산적같이 생긴 덩치 좋은 중년 사내가 몰려드는 자들을 일일이 상대했다.

모두가 잘 아는 사인지 스스럼없이 대했다.

산적같이 생긴 사내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야 그놈들이 올 곳은 아니지.”

“하긴 흑도라고 해서 아무나 계집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럼, 특히 계집장사는 우리 하오문의 주된 수입원 아닌가. 놈들이 이쪽에 뛰어든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안 봐주고 정말 전부 죽여버릴 생각이야.”

“하하하. 지금쯤 놈들은 자신들이 대단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자자, 그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세. 다들 왔으니 어서 들어가게.”

“예.”

청운은 사내들의 이야기 속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생각대로 놈들이 놓아두고 있었군.’

아직 그 이유까지는 모른다. 그러나 오늘 잘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상당한 숫자의 하오문도들이 몰려들었다. 각양각색의 인물들이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자들부터 험악하게 생긴 자들까지 다양했다.

사내들만 모인 건 아니었다. 여인들도 제법 많은 숫자가 모여들었다.

여인 중 상당수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었다. 척 봐도 그녀들이 웃음을 파는 여인들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들만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전각 안에서 의견이 오갔다.

“흑검방 놈들이 기고만장하고 있습니다. 이놈들을 어찌할 건지 위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 겁니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웅성거리던 자들이 모두 입을 닫았다.

중앙에 있는 삼 층 기단(基壇) 위에 서 있던 중년의 사내가 그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모인 이유는 흑검방인지 흑검방인지 하는 흑도 놈들 때문이오.”

처음 이곳에 모이는 이들을 마중하던 산적 같은 수염의 중년 사내였다.

주위를 둘러본 사내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크고 힘을 주어 외쳤다.

“놈들을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다들 알겠지만 천위대가 대향림에서 놈들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흑검방 놈들을 칠 수가 없습니다.”

대향림은 소흥의 옆에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워낙 산세가 험하고 깊어서 약초꾼들도 길을 잃어버릴 만큼 위험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산적 같은 사내의 말에 예의 사내가 나서서 물었다.

“흑검방 놈들이야 천위대 몇 명만 와도 되지 않습니까? 몇 분 요청합시다.”

“왜 안 했겠소? 그런데 그들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오히려 증원을 보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소.”

“젠장 어쩌자고 그들을 건드려서.”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를 향한 불만이었지만 산적 같은 중년 사내의 말에 입을 닫았다.

“진정들 하시오! 조만간 본문에서 고수들이 온다고 하니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이오. 아무리 그들이 강해도 우리 하오문은 예전의 하오문이 아니지 않소.”

“그건 그렇지.”

“암. 우리를 업신여기던 놈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버려야 해.”

산적같이 생긴 중년 사내가 회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가 항주 지부장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이들을 잘 다독이는 것을 봐서는 결코 낮은 지휘로 보이지는 않았다.

청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무언가 일이 또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한 중년 미부가 질문했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인가요?”

“맞습니다. 천위대가 없어도 흑검방 놈들이라면 우리 힘으로도 가능하지 않소?”

중년 미부의 말에 곁에 있던 말쑥한 사내가 말을 받았다.

불만이 많은 음성이었다.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며 다시 불만을 표시했다.

장내가 시끄러워지자, 상석 위의 사내가 그들을 달래듯이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자자. 진정들 하십시오. 대향림도 문제지만 소주도 문제입니다. 지금 일류에 든 무인들이 대거 소주에 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만으로 놈들을 상대했다가는 우리 피해가 너무 큽니다. 진정 그러길 원하십니까?”

모두가 입을 닫았다.

싸우면 피해는 당연히 생긴다. 그러나 그 피해를 자신들이 떠안기는 싫었다.

회의는 한참 동안 진행되었다.

대부분이 기단 위에 서 있는 산적 같은 사내가 불만을 가진 자들을 다독이는 형태였다.

청운은 이들의 회의 내용을 들으며 혈황에게 물었다.

-소흥과 소주에서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나 봅니다.

[내 생각으로는 하오문을 견제하려는 움직임 같다.]

-그럼 대향림에서 견제를 하고 있다는 세력은 소흥에서 밀려난 자들일까요? 아니면 다른 세력일까요?

[저놈들 중 한 놈 잡아서 물어보자.]

가장 좋은 방법은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일이었다.

남경에서도 하오문도 한 명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아냈으니 가능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회의가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랐다.

산적 같은 수염을 가진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자. 오늘 정기모임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흑검방 놈들이 걱정되시는 것 같으니 일단 서호까지 진출하지 못하게 중편 대로에서 막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막을 것입니까? 또 애들을 보내야 합니까?”

“우리 홍일방에서 막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뭐 홍 방주가 그리 말한다면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놈들이 신경 쓰이겠지만 조만간 일거에 쓸어버릴 것이니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홍일방은 하오문에 속한 세력이다.

홍등가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자들로 하오문에서 제법 강력한 힘을 지닌 자들이었다.

홍일방 방주는 주위를 둘러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다음 회의는 내달 보름에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회의가 끝났다.

회의를 전부 들은 청운은 조용히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무리를 선택해서 뒤를 따랐다.

길게 뻗은 대로를 지나서 좁은 골목길로 이어지는 곳에 십여 명의 사내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조금 전 홍등가에서 회의하던 자들 중 한 무리였다.

그들의 선두가 골목 안으로 꺾어진 직후, 골목 안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퍼벅.

우당탕.

“아이고.”

앓는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꺾어진 골목에서 뒤로 날아와 바닥을 굴렀다.

“뭐야?”

“씨X, 습격이다!”

뒤따라가던 자들이 인상을 쓰며 골목 안으로 달려갔다.

우당탕탕.

투덕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조용해졌다.

남아 있던 사내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골목으로 접근했다.

막 꺾인 골목길을 확인함과 동시에 두 눈에 별이 번쩍였다. 사내 역시 뒤로 날아가서 뒹굴었다.

“젠장, 튀어!”

한 사내가 크게 외치며 뒤로 발길을 돌렸다.

다른 사내들 역시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고는 몸을 돌려서 골목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골목 안에서 지켜보던 청운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동료를 버리고 그냥 도망을 치네요.”

[그러게 말이다.]

밑바닥 인생일수록 의리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오문은 아닌 것 같았다.

청운은 쓰러져서 신음을 흘리는 자들을 뒤로하고 도망치는 자들을 향해서 나아갔다.

딱히 경공을 펼치는 건 아니었지만 그의 한걸음에 십여 장이 쑥쑥 지나갔다.

퍼, 퍼버벅.

채 골목길을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한 명을 놔두고 모두가 쓰러졌다.

남은 한 명마저 청운에게 목덜미가 잡혀서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이익! 놓아라. 이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바락바락 고함을 쳤지만, 그의 목소리를 주위로 퍼져나가지 못했다. 청운이 내공을 이용해서 주위로 흘러나가는 소리를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쾅!

“커억.”

청운은 사내를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단말마와 함께 사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청운은 우두커니 서서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사내는 잠시 정신이 없더니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청운에게 말했다.

“흑검방이냐?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퍼버벅.

청운은 대답 대신 발길질과 주먹질을 했다.

딱히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공포에 물든 사내를 주무르기에는 충분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려달라고 사내가 울부짖었다. 그러나 청운은 대꾸하지 않고 계속 사내를 팼다.

사내의 머릿속에는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이라면 뼈가 부러진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잔머리를 굴린 그는 상대가 자신을 왜 이렇게 패는지 깨달았다.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온몸을 새우처럼 웅크린 사내가 외치듯이 말했다.

사내의 외침에 청운은 두들겨 패던 것을 멈췄다.

주먹질이 멈추자 사내는 머리를 감싼 팔 사이로 힐끔 청운을 보았다.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청운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사내를 다시 팼다.

퍼버벅.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청운의 공격에 사내는 악을 쓰며 외쳤다.

“마, 말씀만 하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청운의 무자비한 구타가 멈췄다.

열릴 것 같지 않던 청운의 입술이 슬그머니 열렸다.

“불어.”

“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