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78화
“무엇이든지 하, 하문만 하십시오. 소인이 무엇이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제일이었다.
청운은 그런 놈의 심리를 이용해서 정말 궁금한 부분을 질문했다.
“왕부에서 네놈들에게 무엇을 지시했느냐?”
“예? 어찌 물으시는지?”
“죽고 싶은 것이냐? 질문은 받지 않는다. 네놈은 그저 대답만 하면 된다. 아는 대로 소상히 말해라. 만일,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면 네놈의 팔다리를 하나씩 뽑아버리겠다.”
슈욱, 펑!
청운은 뒤쪽으로 일장을 날렸다.
쓰러져 있던 자 중 한 놈이 청운을 습격하려고 했는데, 청운이 먼저 알아차리고 공격한 것이다.
붕 날아간 자가 벽에 처박혀서 피를 토했다.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살수를 펼치는 청운의 모습에 사내는 딸꾹질을 하며 대답했다.
“소, 소인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건 왕부에서…….”
왕부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이런저런 세금을 걷고 있었다. 그 일을 하오문이 맡게 되었다고 한다.
딱히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다. 이곳에 사는 자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으니까.
청운은 이야기를 다 듣고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더 묻지는 않았다. 따로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좋다. 그럼 다른 것을 물어보마.”
“나리! 무엇이든지 하문만 하십시오. 소인이 모조리 읊어드리겠사옵니다.”
청운은 주위를 둘러보며 사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듣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청운은 한적한 곳에 다다라서 사내에게 물었다.
“하오문의 현 상황을 알고 싶은데.”
“예? 어떤 것을……?”
“남경은 되었고, 항주와 소흥에 과한 부분만 알려줬으면 좋겠다.”
사내는 청운의 질문에 마른침을 삼켰다. 청운이 정확하게 무엇을 묻는지 감이 안 왔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질문을 했다.
“대인, 질문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어떤 것을 묻는지 제가 정확하게 알아야 대답을 해드릴 것 같습니다.”
“어려울 것 없다. 그냥 네놈이 아는 모든 것을 말하면 된다. 지부며 지부장 이름, 특징, 그리고 현 상황 같은 것 말이다.”
“…….”
청운의 말에 사내는 입을 쩍 벌리며 눈알을 굴렸다.
청운이 하오문의 정보를 원하고 있었다. 자칫 배신자가 되는 일이었다.
그런 사내의 낌새를 눈치챈 청운이 달래듯이 말했다.
“내가 사고를 크게 치고 이곳으로 도망 왔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혹시… 하오문에 들어오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하오문에 들어갈 생각이다. 기왕 들어갈 거, 줄을 잘 서야 하지 않겠느냐? 만족할 만한 정보를 준다면 은자 천 냥을 주마.”
“저, 정말이십니까?”
청운이 천 냥짜리 전표를 꺼내서 흔들었다.
사내의 복잡했던 머릿속이 밝아졌다.
이런 고수가 하오문에 입단하면 자신의 입지도 탄탄해질 것이다.
설령 문제가 생긴다 해도 은자 천 냥을 갖고 도망치면 된다. 그 돈이면 어디로 도망가서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라면 소인이 알려드리겠사옵니다. 나중에 입단하시게 되면 소인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헤헤.”
사내는 하오문에서 잔뼈가 굵은 자였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을 청운에게 줄줄 늘어놓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 외에 하오문도들만 아는 사실도 말했다.
하오문이 어떻게 되든지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살고 싶었다. 살아야 청운이 준 돈도 쓸 수 있었다.
그 바람에 결국은 앵속에 대한 이야기까지 했다.
“그 앵속이라는 물건이 아주 요물입니다. 그걸 식사나 술에 슬쩍 타서 먹이기만 하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뤄집니다.”
사내의 말에 청운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혹시 남경왕부도 앵속과 관련이 되어 있느냐?”
“예, 왕부의 고위직 중 일부가 이미 앵속에 중독이 되었습죠.”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이처럼 남경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운은 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아느냐?”
그러면서 누런 황금을 꺼내 내밀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이걸 더 주마.”
족히 스무 냥은 되는 금원보였다.
‘백날 이곳에서 일해 봐야 얼마나 벌 수 있겠어? 여차하면 여길 뜨지 뭐.’
사내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사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그들이 누구냐면…….”
사내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청운의 손에 들린 황금이 그의 품속으로 사라졌다.
청운은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기가 찼다.
‘이놈들, 아주 작정을 했구나.’
하오문의 행사는 지나치다는 말도 모자랄 만큼 위험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 하고 있었다.
“나중에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지?”
“헤헤헤, 저쪽에 있는 소강루에 와서 육삼이를 찾으십시오.”
육삼이라는 사내와 헤어진 청운은 역용을 다시 하고 겉옷을 뒤집어 입었다.
조금 전까지는 남색 장포를 입고 있었다면 이제는 백색 장포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된 청운은 남왕부로 향하던 발길을 돌렸다.
아무래도 남경왕부의 문제는 나중에 해결해야 될 것 같았다.
하오문의 힘이 남경왕부에 너무 깊숙이 파고든 상태였다.
남경왕부의 일을 건들면 하오문도들이 몸을 숨길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하오문을 먼저 치고 남경왕부의 문제를 처리하는 게 나았다.
* * *
남경을 바로 나선 청운은 경공을 펼쳐서 이틀 만에 절강성 항주에 들어섰다.
청운은 먼저 흑검방이 자리 잡은 곳으로 향했다.
이미 흑검방은 항주의 번화가에 떡하니 장원을 구입하고 인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청운이 건넨 은자의 위력이었다.
그들은 인근 번화가의 객잔과 기루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항주 곳곳에 점포들을 매입해서 영역을 넓혔다.
여기에 흑검방이 그동안 알고 지내던 흑도 고수들을 초빙했다.
대부분이 하오문에 밀려서 몰락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오문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증오했다.
복수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서 포기하고 살았는데 흑검방이 나타나서 손을 내밀자 덥석 잡았다.
흑검방이 급속도로 세를 키우자 여기저기서 잡음이 일었다. 대부분이 다른 세력보다는 하오문과 마찰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세력 싸움이 벌어졌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하오문의 힘이 항주를 전부 휘어잡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들이 전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늦은 밤 고래등같이 커다란 전각들이 들어선 멋들어진 장원에 한 중년 사내가 날아들었다.
남들의 이목을 의식해서인지 사내의 움직임은 은밀했다.
불 켜진 커다란 전각에 내려선 사내는 입구를 경비하고 있는 자들을 일 수에 제압하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냐!”
채앵.
검을 뽑아 드는 맑은 소리가 실내에 울렸다.
중년 사내는 자신을 견제하는 십여 명의 무인들을 무시하고는 중앙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네.
짧은 한마디에 사내가 벌떡 일어나서 머리를 조아렸다.
“오셨습니까, 대인!”
인사를 한 사내는 흑검방주 장준이었다. 그는 앞에 있는 사람이 청운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방주가 극진하게 인사를 하자, 무기를 뽑아 들었던 이들이 엉거주춤 무기를 거뒀다.
-사람들을 물리게.
청운의 전음에 장준이 수하들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물러가서 대기해.”
사내들이 우르르 나가자, 장준이 청운 곁에 섰다.
“대인, 역용을 하신 것입니까?”
“그렇다네.”
뇌신룡의 모습이 아닌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 모습으로 바뀐 상태였다.
흑검방주는 신기한 듯 청운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전혀 역용하신 것을 모르겠습니다. 인피면구는 아닌 것 같고?”
흑도에게 인피면구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 중 하나였다. 얼굴 전체를 바꾸거나 일부를 변형할 때 사용했다.
인피면구를 만들 때 보통은 짐승의 껍질을 이용하는데, 사람 피부를 도려내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무공으로 변형한 것이네. 그보다 일을 잘하고 있더군.”
“충분한 자금과 무공이 있으니 거칠 것이 없습니다.”
장준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과 보름 만에 항주 일부를 손에 넣었다.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항주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점은 없는가?”
“예, 대인. 이직까지는 하오문의 견제가 심하지 않습니다. 다른 세력과도 가능한 한 마찰은 피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나타난 자들이 처음부터 활개를 치고 다닌다면 기존 세력에서 반발이 심할 수도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른 세력들도 하오문을 견제했다.
“하오문이 차지하고 있는 곳만 치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하오문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세력과는 서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상천국이라는 항주는 향락의 도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항주에는 상당한 하오문 문도가 활동하고 있었다.
본래 하오문은 천민들의 집단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숨겨두었던 힘을 외부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여러 이권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강력한 힘으로 순식간에 주변을 장악했다.
“처음에는 바짝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놈들의 실력이 별로였습니다. 어떻게 항주에 있던 세력이 놈들에게 당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청운은 장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오문이 그렇게 약하다고?
청운의 고민을 아는지 곁에 있던 혈황이 입을 열었다.
[놈들이 무언가 흉계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핵심 전력이 다른 곳에 가 있거나.]
-그럼 조만간 일이 벌어지겠군요.
청운이 생각하기에도 항주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 하오문이 이렇다 할 반격을 안 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었다.
청운은 흑검방주에게 지시를 내렸다.
“감시 인원을 두 배로 늘리게. 일이 벌어지면 곧장 내게 알리고.”
“알겠습니다.”
장준은 청운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에게 청운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산을 깎아서 장강을 막으라 하면 막아야 했다.
* * *
여러 날이 흘렀지만 하오문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하오문이 관리하거나 운용하는 객잔과 가계를 흑검방이 치는 일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하오문도 직접적으로 공격해 오는 일에는 가만히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방어를 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그 이상의 반격은 하지 않았다.
밑바닥 인생 중에서도 악바리로 소문난 하오문이다. 그런 자들이 자신의 물건을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다는 건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렇게 흑검방이 조금씩 세력을 넓혔다.
긴장의 시간이 흘러갈 때 청운은 서호에 가보았다.
청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서호는 십 장 아래의 밑바닥이 환히 보일 만큼 맑았다.
청운은 항주에 온 뒤 시간이 나면 서호에 자주 갔다.
수려한 경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호 주변에 하오문도들이 자주 모습을 보인다는 첩보를 접해서였다.
“혈황님,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청운은 자신이 서호에 온 이유도 잊은 채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풍경에 절로 탄성을 터트렸다.
혈황 역시 청운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은 여전하군. 산천이 변한 건 없건만…….]
그답지 않게 감상에 빠져들었다. 무언가 아스라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청운이 말했다.
“저기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객잔에 가보시죠.”
힐끔 혈황이 청운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붉은 등이 걸린 객잔이 보였다. 제법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삼 층 객잔은 고풍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것도 좋지.]
청운과 혈황이 객잔에 들어가서 요리를 시켜놓고 서호의 정취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일단의 무리가 움직이는 모습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수상한 자들이군요.
십여 명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하나같이 흉흉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