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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73화 (73/257)

# 73

73화

아쉽게도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주위를 의식하고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다행히 화산파에서 청운을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덕분에 식사를 끝낸 청운은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그 와중에도 화산파 제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소소검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화산파 제자들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객잔을 나섰다.

청운 역시 식사를 끝마친 터라 뒤따라서 객잔을 나섰다.

하지만 화산 제자들을 쫓아가지 않고 곧장 풍운장으로 향했다.

풍운장에 도착한 그는 몇 가지 지시를 내린 후 영성을 향해 달렸다.

* * *

영성에 도착한 청운은 곧장 개방의 삼장로를 만났다.

“화산파 제자들이 소소검 한매를 찾기 위해서 영성으로 오고 있소. 개방에서 그들에게 한매에 대한 걸 알려준 거요?”

“화산파가 먼저 소소검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소이다. 별생각 없이 그들에게 정보를 넘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소?”

“문제 될 것은 없소. 화산파 제자들이 영성에 들어오면 그들의 움직임을 잘 지켜봐 주시오.”

“알겠소이다.”

이번 일로 영풍장에 변화가 생길지도 몰랐다.

딱히 원했던 일은 아니었다. 정보를 통제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청운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 날, 삼장로가 화산파 제자들의 소식을 가져왔다.

청운은 삼장로의 보고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다행히 영풍장을 찾아가지는 않았군.”

이번에 온 화산파 제자들은 제법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그중 중년 도사 하나는 초절정의 고수였고, 절정에 다다른 이들도 여러 명이었다.

그들도 한매가 영풍장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테니 곧장 찾아갈 수도 있었다.

자칫 힘으로 영풍장을 압박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몰랐다.

청운은 잠시 삼장로를 보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내가 영풍장에 혁련휘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그들을 건들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시오?”

“글쎄요…….”

“놈들의 숨겨진 전력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오.”

“그 정도요?”

삼장로는 청운의 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방주인 염악을 이길 정도의 고수는 천하에 그리 많지 않았다.

비록 방주가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으로는 청운 역시 전력을 다하지 않은 듯했다.

그런 청운이 저리 신중하다는 것은, 영풍장에 자신들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뭔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한매를 비롯해서 다른 사군자가 모두 영풍장에 있소.”

“정말이오?”

“그렇소. 그런데 그들이 전부가 아니오.”

청운의 말이 이어질수록 삼장로의 머릿속에서 위험신호가 울렸다.

“대인, 그럼 화산파 무인들이 위험할 수 있겠구려.”

“내 생각은 그렇소.”

삼장로는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화산파를 먼저 만나야겠소이다.”

자리를 털고 나가는 삼장로를 보다가 청운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혈황이 그런 청운에게 말했다.

[나설 생각이냐?]

-예, 아무리 생각해도 화산파가 이번 일에 개입했다가는 일이 틀어질 것 같습니다.

자신이라고 해서 영풍장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목적이 없었다면 혁련휘를 잡아 팔다리를 모두 부러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건드릴 때가 아니었다. 그들의 배후가 밝혀질 때까지는.

그런데 화산파 제자들이 공격하면 그들이 어디로 튈지 몰랐다.

하지만 혈황의 생각은 달랐다.

[내 생각에는 그냥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예?

[너무 오래 놔두었어. 한번 건드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놈들이 도망간다면, 그때 추적해서 배후에 있는 놈들을 찾아보면 되지 않겠느냐?]

청운은 미간을 좁히고 잠시 득실을 따져보았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손해가 더 클 듯했다.

-어쨌든 삼장로를 따라가서 상황을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고집을 꺾지 않는 청운을 보며 혈황은 혀를 찼다.

[쯧쯧, 아무튼 학사라는 것들은 생각이 많아.]

청운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영성의 서쪽에 있는 한 장원이었다. 개방의 삼장로가 그곳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들만 온 것이 아니군요.

[그러게 말이다. 이 정도면 화산파에서 작정을 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처음 개봉에서 확인한 화산파 인원은 열셋이었다. 그런데 장원 안에는 오십 명 가까이 모여 있었다.

어쩌면 더 많은 인원이 몰려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화산파에서 한매에 대한 일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뜻이었다.

청운은 만사은형사신을 펼쳐서 화산파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 근처까지 접근했다.

다행히 운형검 한죽처럼 기감이 발달한 자가 없어서 들키지는 않았다.

“운형검 한죽이 여전히 한매 곁에 있다고 합니다.”

건물 안에서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자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하군.”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군자 중 다른 둘도 영풍장에 숨어 있다고 개방에서 알려왔습니다.”

개방의 삼장로가 청운의 우려를 화산파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 바람에 그들은 영풍장을 곧장 공격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모두 영풍장에 있다면 이대로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들의 무공이 삼십 년 전보다 더 강해졌다면.”

삼십 년 전에도 강했던 자들이다. 그들의 혈수에 수많은 무림인이 목숨을 잃었었다.

그런데 삼십 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발전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소소검이 당시에 펼쳤던 무공은 한백풍월검법입니다. 당시 화후가 칠성이었습니다. 지금은 화후가 더 깊어졌을 겁니다.”

“으으음.”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낭랑하니 젊은 목소리였다.

“장로님, 무림맹에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건 아니 될 말이야.”

“무림맹에 청하는 게 어려우면, 우리 화산파와 가까운 문파 고수들에게만 도움을 청하지요. 지금 자룡궁에 여러 정파인들이 와 있지 않습니까?”

“흠, 그건 생각해 보자꾸나.”

청운은 방 안의 대화를 들으며 안도했다. 다행히 바로 공격하지는 않을 모양이다.

그러나 혈황은 불만이 많았다.

[쯧쯧쯧, 그렇게 잘난 척하던 화산파가 꼬리를 말기는…….]

“그만큼 적이 강해서 조심하는 것이겠지요.”

[강하긴? 모두 그놈들이 약해서 그런 거다. 너도 마찬가지고. 네놈이 다른 짓 안 하고 수련을 했어 봐라. 벌써 쓸어버리고도 남았을 거다.]

혈황은 청운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피해야 조금 보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영풍장을 쓸어버려야 했다. 그런데 청운은 더 큰 고기를 잡겠다고 미적거렸다.

성질 급한 혈황으로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자신이라면 쳐들어가서 모조리 머리를 박살 냈을 텐데…….

* * *

화산파는 영풍장을 주시하기만 할 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승산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공격했다가는 생각지 못한 피해를 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변화가 생겼다.

개방제자가 달려와서 말했다.

“한매가 포구로 향하는 짐마차를 따라 영풍장에서 나왔습니다요.”

“한매가 영풍장에서 나왔다고?”

“예, 대인. 포구로 향하는 수레 뒤에 마차가 따라붙었습니다요. 그런데 그 마차의 휘장 사이로 한매의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요.”

개방도의 말에 청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밖으로 나서지 않았던 한매가 모습을 드러내다니, 뭔가 좀 의아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청운이 개방제자에게 물었다.

“화산파에도 알렸는가?”

“예, 그쪽으로도 연통을 넣었습니다요.”

“수고했네. 돌아가는 길에 당주에게 들려서 주머니를 하나 받아가게.”

“감사합니다.”

청운은 개방도가 떠나자 몸을 일으켰다.

“한판 붙겠지요?”

[그렇겠지. 화산파에게는 다시없을 기회일 테니.]

영풍장에서 포구로 가는 길에는 한적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 한곳에서 화산파 무인들이 숨어 있다가 영풍장이 운영하는 상단을 습격했다.

격렬했던 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남은 건 휘장이 쳐진 마차였다.

화산파 제자들은 마차를 포위했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청운이었다.

그런데 청운은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놈들이 함정을 판 것일까요?

[그렇겠지. 그러니 저렇게 잔뜩 몰려왔겠지.]

제법 떨어진 곳에 수십 명이 숨어서 호시탐탐 화산파 제자들을 노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함정이었다.

처음부터 화산파를 끌어들이기 위해 나선 거라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았다.

“소소검!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서 나와라!”

지붕이 있는 마차를 포위한 화산파 제자 하나가 큰 소리로 한매를 불렀다.

마차 안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한 화산파 무인이 조심스럽게 마차로 다가가 휘장을 찢듯이 걷어냈다.

촤라락.

마차 안의 광경이 드러났다.

두 명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노파의 모습인 한매였고, 다른 한 명은 서른쯤 보이는 자였다.

“맞군. 어서 마차에서 내려라. 아니면 끌어낼 것이니…….”

화산파 무인이 소소검 한매를 겁박했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좋게 말로 끝날 상황은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 있던 한매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입을 놀렸다.

“쥐새끼들처럼 기어 들어와서 한다는 짓이 겨우 습격이었느냐?”

“흥, 네년이 할 말은 아니다. 어서 마차에서 내려라!”

“어디 끌어내봐라. 예전에 그랬듯이.”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약속을 어겼으니 벌 받을 각오를 하라. 뭣들 하느냐, 어서 저년을 끌어내지 않고!”

“예!”

두 명의 화산파 무인이 마차로 다가갔다.

한 손에 검을 쥐고 한매를 견제하며 다가가더니 그대로 한매를 겨누었다.

한매는 둘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크게 웃어젖혔다.

“깔깔깔. 예나 지금이나 하는 짓이 똑같구나.”

“닥쳐라!”

가까이 다가간 무인이 한매를 겨눈 검을 살짝 찔러 넣으며 위협했다.

팅!

한매는 목에 드리운 검을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검이 찌르르 울리며 질러가던 검의 궤적이 크게 벋어났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검이 하늘로 솟구치자 화산파 무인은 뒤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동시에 한매의 손에서 무언가 빛나는 물체가 뿌려졌다.

피리리링!

따다다다당.

암기를 던졌지만 다행히 화산파 무인은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검으로 쳐냈다.

바닥에 착지한 그는 한매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사이 다른 자가 한매를 공격했다.

그자는 검기를 뿌리며 화산파 고유의 검공을 선보였다. 매화검수인지 허공에 매화송이가 흩날렸다.

“오랜만에 보는 매화로구나. 역시 아름다워.”

한매는 옛 정취에 취한 듯 눈이 살짝 풀리며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그러나 이도 잠시 그녀의 두 눈이 싸늘하게 변했다.

“역시 마음에 안 들어!”

쉐에엑!

한매의 손이 갈고리처럼 변하더니 허공에 떠 있는 매화를 할퀴고 지나갔다.

카카캉!

“크윽.”

화산파 무인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검을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의 손에 담긴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호오, 제법인데요.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저 늙은것들을 허투루 보면 안 된다고.]

지켜보던 청운은 한매의 손짓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별거 아닌 움직임인데 둘을 가볍게 제압했다.

청운은 숨어 있는 자들을 신경 쓰며 화산파 일행을 살폈다.

그때 한매가 마차에서 스르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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